말씀 115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3-25)
2023-11-19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가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1.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13-17)
2.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구속받아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둔다(18-21)
3. 말씀으로 거듭났으므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22-25)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거룩하게 살아갈 새로운 열망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13-17)
1)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주실 은혜를 온전히 사모하라(13절)
1) 13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니라”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7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입니다.
2) 그러므로 그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즉 “온전히 소망하라.”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합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림을 온전히 소망할 수 있을까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유대인은 보통 무릎까지 내려오는 소매없는 긴셔츠를 입습니다. 긴 셔츠는 종교의식이나, 휴식할 때, 시장에서 대화할 때 입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거나 전쟁을 할 때는 옷을 허리띠에 말아서 위로 올립니다.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결단하고 준비되도록 말합니다. 예수님 재림 때 주실 그 영광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이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준비된 상태를 “근신하라”고 합니다(살전 5:6, 벧전 5:8). 근신은 술취한 것의 반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6은 “정신을 차리고”라고 합니다. “마음이 완전히 맑고 그 결과 바른 판단을 내리는 상태”이다. 그리스도께서 곧 나타나실 것이지만 아직은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대적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고난의 압박이 우리를 술취한 듯이 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초점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예수의 나타남에 대한 소망에 집중합시다. 이 땅에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내가 받은 직분을 다합시다.
2) 모든 행동에서 거룩하라(14-16절)
1)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우리가 깨어서 정신차리고 할 일을 15절에서 말합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거룩한 자가 되라.” 우리는 왜 거룩한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4절이 말합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전에 알지 못할 때 따르던 우리의 사욕, 욕망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욕망으로 달려 갑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 처럼 모십니다. 물질, 인정, 성취, 즐거움에 탐심이 생깁니다. 그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대신 그런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미 우상 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함과 돌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합시다.
2)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은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나타냅니다. 죄악된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전체 속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것으로 구별해 둔 것도 거룩이라고 합니다. 성전, 예루살렘, 선지자, 이스라엘 민족 등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15절에서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고 합니다. 종교의식 뿐 아니라 모든 삶에서 거룩하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하라”는 레위기 19:2에 나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앞과 뒤에서18, 20장은 특히 십계명 중에서도 음행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결혼과 성의 순결을 지키는 일에서 거룩합시다.
3) 모든 삶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10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 생활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3)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절)
1) 하나님처럼 거룩한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입니다. 17절은 말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심판주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사람을 봐 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합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은 무서워 피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높으신 분 앞에서 사랑으로 경외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말합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거룩하게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5:21은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두려워 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가볍게 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종하고 복종하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도 삼위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행해야 합니다. 엡 6:6은 “종들아 두려워 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이어서 엡 6:9는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리스도인 종들과 그 종의 주인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서로 존중합니다. 우리도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관계에서 항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합시다. 우리 성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서로를 존중합시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있지만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이 땅의 문화를 따라 가지 않고 하나님의 가문의 문화대로 살아 갑니다. 천국의 기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구속받아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둔다(18-21)
1)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보배피로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우리는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받았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조상들이 물려 준 헛된 행실을 따랐습니다. 헛된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 세상의 물질이나 인정 등등을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죄의 노예였습니다. 마귀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구약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할 때 집집 마다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을 잡아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피를 출입구 문 테두리에 발라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모든 이집트의 처음 난 짐승이나, 첫아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문 테두리에 그 피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이집트 왕 바로는 그제야 하나님께 굴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했습니다.
3) 그런데 우리는 그런 짐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죄가 없고 완전한 분이었습니다. 20절은 말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 죄를 용서하는 제물로 사용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게 계획하셨습니다.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태어난 때부터 말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하늘로 와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4) 이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도자로서 부활하여 하늘 나라로 먼저 들어 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양심을 평화롭게 하여 우리가 감히 확신 가운데 하나님께 나가게 합니다. 엡 2: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제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억압받고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우리에게 영광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혹은 신뢰)와 소망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줄 수 있음을 믿습니다.
3. 말씀으로 거듭났으므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22-25)
1) 진리를 순종함으로 거룩하게 되어 형제 자매를 사랑함(22절)
1) 22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진리베는 복음 말씀을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인 복음 말씀들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장과 마지막 15장에 “믿어 순종하게 한다”(롬 1:5, 15:26 )고 말합니다. 순종 보다 먼저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참 믿음이 있으면 순종이 따라 나옵니다. 순종하려면 먼저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순종이 따라 나옵니다. 믿고 순종한 결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전에 이기적이고 탐심을 추구하는 우리를 성령님께서 깨끗하게 해 주었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것”은 구약에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출 19:10. 수 3:5, 요 11:55). 자발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것을 종교의식을 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약에서는 자발적인 의지로 마음이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된 것은 거룩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제2의 천성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2)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된 결과로, 우리는 형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거짓이 없는”형제 사랑입니다. 쇼를 하듯이 보이기 위해서 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형제 자매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성도 가운데서 맺고 있습니다. 성령님께 순종할 때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옛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22절은 명령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이런 사랑에서 더 성장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뜨겁게 서로 사랑합시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시다. 매일 사랑하는 데서 성장합시다. 그런 사랑은 2:2에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요즘 사회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그리스도인들도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성도는 고립된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 입양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성도와 형제 자매가 됩니다. 서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십니다. 우리 집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에 태어난 사람은 부모님이 낳으신 다른 사람과 형제 자매 관계로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성도를 우리의 형제 자매로 그냥 받아들입시다. 동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성령님의 힘을 얻고 또 사랑합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를 제안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존중하며 인사합시다. 인가와 축복의 말은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성도를 찾아가며 인사하고 이름표를 보여 주며 자기 소개를 합시다.
2) 복음 말씀으로 거듭남(23-25절)
23절에 우리는 거듭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중생했습니다.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 자매로서 사랑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복음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씨로서 우리 마음들을 새롭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 전파를 말합니다. 우리로서는 복음을 듣고 복종합니다. 그 때에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생명을 주고 창조하는 효력이 있습니다. 복음 말씀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영생을 주십니다.
24절은 이사야 40:6-8의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40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바벨론 포로로 가 있던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입니다. 신약시대교회 교회에도 위로하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사야 40:6-8을 오늘 본문 24 , 25절이 인용하며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거듭나기 전의 사람의 영광은 헛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나기 전의 사람은 세상적이고, 사라지고 헛된 피조물입니다.
구약 시대 권세를 부렸던 바벨론은 풀과 같고 그들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집니다. 초대교회를 핍박하던 로마의 영광도 사라집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모든 좋은 것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선포했습니다. 25절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말하십니다. 선포된 말씀이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씀이 살리는 효과를 내게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가 영원한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 집니다.
복음 말씀이 영원토록 항상 있듯이, 이 말씀이 거듭나게 한 성도들의 믿음도 항상 있을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셋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전 13:13).
그 때문에, 거듭나서 영생을 누리는 성도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여러분은 복음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재림 때에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소망하면서 매 순간 순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삶을 삽시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므로 거룩한 삶을 삽시다. 우리 아버지가 심판주이시기도 하니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 갑시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는 세상의 악한 관습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복음 말씀을 듣고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 났습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대로 순종함으로서 형제 자매들 끼리 더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합시다.` 사랑하면서 하나님처럼 거룩한 사람으로 변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