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083
하나님이 우리 사랑하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요일 4:7-21)
2022-2-20
삼위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복을 받읍시다.
우리 성도들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도 말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헌금하여 서로 돕고 있습니다. 서로 인사하고 말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의 부유함이나 자기실현이 목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나라, 사랑의 새 공동체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이제 그만 사랑할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할 때 받는 복을 말합니다.
삼위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복을 받읍시다.
1.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서로 사랑합시다(7-10절)
2. 사랑하는 자의 복: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합니다(11-16절)
3. 사랑하는 자의 복: 심판받을 두려움이 없습니다(17-21절).
이시간 성령님께서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서울 서로 사랑하도록 변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1.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7-10절)
1)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으로 나온 사랑으로 사랑(7-8절)
1) 7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성도님을 부르는 말입니다. “사랑받고 있는 자들아”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 듣고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읍시다.
왜 계속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서로 사랑합니다.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안다는 것은 16절에 “알고 믿었다”고 합니다. 삼위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 배속에서 한 번 태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다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우리도 서로 사랑합니다. 8절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삼중적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둘째,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랑합니다. 셋째, 우리들은 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보내 우리에게 생명주심(9-10절)
1-1) 9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교회에 속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2)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 분의 독생자를 그리스도로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10절).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한 죄인들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저주받을 존재인데, 그 모든 저주를 그리스도께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1-3)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에 끝나지 않습니다. 독생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십니다(9절).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의롭다고 인정하실 때,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처럼 삽니다. 그리스도처럼 사랑합니다.
2)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랑받을 권리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우리 죄를 용서하는 속죄제물을 삼아 주셨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 이 큰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직 죄악된 본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기적으로 되려고 합니다. 사랑의 수고를 그만두고 싶어합니다. 형식적으로 사랑하려는 유혹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말씀을 배우면서 계속 사랑의 사건이 이어지도록 기도합시다.
2. 사랑하는 자의 복: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합니다(11-16절)
1)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주하심(11-12절)
1) 11절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마땅하다는 것은 “빚진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형제 자매들에게 갚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그 같은 사랑으로 형제 자매를 사랑합시다.
2)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2-16절에서 네 번이나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이 복을 네 번이나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동거하게 만드십니다. 우리와 하나님이 친밀한 교제를 나눕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있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속 계십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십니다. 사랑이 있는 그 곳에 하나님이 거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우리들 안에 흘러 갑니다.
3) 성도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교회 안에 거주하시고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3중적이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교회 공동체 안에 사랑을 시작하셨습니다. 위로부터 받은 이 사랑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거기서 머물면 사랑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까지 나가야,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 집니다.
우리가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서로에게 다가가며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실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라서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2) 성령님 안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면 하나님과 동거함(13- 16절)
1) 그런데 온전한 사랑은 사람들끼리 사랑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한다고 참 사랑은 아닙니다. 13-15절은 성령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고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13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하는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께 실제 임재하신다는 확신을 성령님께서 주십니다.
2)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면서 일하십니다. 14절은 말합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구주로서 일하심을 전에 보았고 그 본 것을 계속 증언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15절, 이 복음 말씀을 듣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는 하나님의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과 공동체가 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하는 이 은혜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주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함께 거주하시고 서로 사랑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이 사랑에 우리도 교회 공동체로서 함께 참여합니다. 그 사랑의 공동체에 들어 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합니다.
3)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거함(16절)
3) 16절은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가지고 계신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우리를 사랑하는 태도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안에” 인격적으로 실제로 임재하십니다..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사랑의 실천이 계속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 그 분은 사랑이십니다. 삼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그래서 성도가 성도를 향한 사랑. 이 사랑 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십니다.
이렇게 네 번이나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하는 복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동거하는 것을 압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동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는 동거합니다. 성도끼리 서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거하는 복을 누립니다.
3. 사랑하는 자의 복: 심판받을 두려움이 없습니다(17-21절).
1) 사랑하는 자는 심판날에 담대하고 이 땅에 두려움이 없음(17-18절)
1) 17절은 말합니다. 이로써 사랑이 온전히 우리에게(우리와 함께) 이루어 졌습니다. 17절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온전히 이루어 집니다.” 온전한 사랑은 3중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 이렇게 세가지 측면에서 사랑이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또 우리들 서로의 관계 속에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온전하게 될 때 우리는 심판날에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랑이 가능하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주께서(그분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교회 가운데 계십니다. 사랑으로 함께 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복음선포를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지금 살고 있습니다(9절).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예수님의 형상으로서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 재림의 날이 두렵지 않습니다.
3) 하나님께서 사랑을 보이면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그날 심판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십니다. 그날에 우리의 몸을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빌 3:21, 신약 32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행한 사랑의 수고를 칭찬하러 하시려고 오십니다(고린도전서 4:5). 그래서 참 성도는 지금 이 땅에서도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성하신 행동과 약속 안에 완전함이 있습니다.
“사랑안에서 온전해 져 온 사람” 하나님이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만든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3) 두려움은 형벌받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18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알지 않고, 그 사랑안에 복종하지 않을 때, 마지막 날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면서 양심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삼중 사랑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없이 고요한 평화에 도달합니다. 이렇게 두려움 없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 서로 사랑합시다.
2)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보이는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남(19-21절)
19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눈 앞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이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형제도 사랑합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을 우리도 형제 자매들에게 실천합시다.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받을 자격이나 권리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격없고 권리가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형제 자매를 조건없이 사랑합시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서 빈자리가 있고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알고서 나 쪽에서 먼저 사랑합니다. 사랑은 받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런 사랑 아닙니까?
3) 사랑하는 방법
사랑의 방법은 첫째 마음으로 사랑합시다. 미워하거나,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보복하려는 마음을 버립시다. 사랑의 태도를 가집시다. 둘째 사랑의 말로 축복합시다. 다른 어떤 약보다 사랑의 말은 성도를 세웁니다. 에베소서 4:29(신약 313)에서 말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무슨 말이든지 내 말을 듣는 사람이 힘을 내서 일어서도록 은혜를 끼치는 말을 골라서 합시다. 셋째, 사랑의 행동을 합시다. 서로를 환대합시다. 함께 만나 식사도 하며 서로 이야기를 들어 줍시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무관심과 싫어하는 마음 대신에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을 기쁘게 당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 땅에 필요한 어떤 것을 구하는 것 보다 더 간절히 구합시다. 우리의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을 듬뿍 받아 사랑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주세요”라고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삼위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복을 받읍시다.
1. 독생자를 속죄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서로 사랑합시다(7-10절)
2. 사랑하는 자의 복: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합니다(11-16절)
3. 사랑하는 자의 복: 심판받을 두려움이 없습니다(17-21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백성으로 계속 사랑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칭찬받을 것을 바라고 나갑시다. 지난 주 보다 이번 주에는 조금 더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