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1166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습니다(창 45:1-15)
2024-2-25
고난 가운데 복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 보고 서로 용서합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족들에게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고난 가운데서 은혜로 일하셨습니다. 요셉은 과거에 형들에 의해 노예로 이집트에 팔려 갔습니다. 분노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제일 높은 공무원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음을 알았습니다. 고향에 있는 그의 가족, 하나님의 백성을 기근 가운데서 먹여 살리도록 사명을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형들을 용서하며 화해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복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 보고 서로 용서합시다.
1. 요셉은 형들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 보고 형들을 용서했다(1-15절)
2. 그리스도와 성도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1. 요셉은 형들을 통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바라 보고 형들을 용서했다(1-15절)
1) 요셉이 자기를 밝힘(1-4절)
1) 요셉은 이집트에 있는 집에서 10명의 형과 1명의 동생과 식사를 했습니ㅏㄷ. 요셉은 울음이 나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을 섬기는 이집트 공무원들을 집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요셉이 운 이유는 형들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쪽 44장에 서 요셉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 베냐민(막내 동생이지요)을 인질로 두고 당신들만 고향으로 갔다 오시오.” 그 때 요셉의 형 유다가 나섰습니다. 자기를 인질로 삼아 주고 베냐민은 고향으로 가게 해 달라고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전에 다른 동생(요셉을 말합니다)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제 다시 막내 동생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슬픔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대신에 저를 인질로 잡아 두십시오.” 형들이 전에 요셉을 판 일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고통을 준 것을 회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들이 서로 희생하려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까지 요셉은 자기가 그들의 동생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참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를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3)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정말 살아 계십니까?” 이 말을 들은 형들은 놀라서 말문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종으로 팔아 넘겼던 요셉이 큰 권력을 갖고 있다니.” 그들이 놀란 것은 전쟁에 진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두려움이었습니다. 어쩌면 사형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4) 요셉은 다시 말합니다.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슬픔에 잠긴 그들을 어루만집니다. 다시 말합니다. “ “내가 바로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집트로 팔았었지요”
2)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파송하심( 5-8절)
1)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파송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형들이 그렇게 괴로와 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들은 심지어 자신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심한 죄책감에 큰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알고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을 요셉은 위로해 줍니다. 우리도 넒은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자기 잘못 때문에 괴로와 할 때 그냥 덮어 줍시다. 오히려 위로합시다.
2) 요셉에게 형들을 향한 우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행한 일을 고백합니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노예로 팔린 후 20년 이상의 긴 영적 훈련 가운데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내 젊은 인생은 이렇게 노예로 끝나구나.” 그런 절망가운데 있었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감옥에 갇혀서도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꿈을 푸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고 이집트의 최고관리가 되었습니다.
첫아들을 낳았고 “므낫세”(잊는다)로 지었습니다. “내 가족, 고통스런 과거를 잊는다”는 뜻입니다. 형들에 대한 요셉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를 노예로 팔아 넘긴 형제를 나는 잊는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3) 그러나 긴 고통의 날들과 세계 제국의 최고관리로 영광을 누리면서 그는 하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형들이 아니라, 요셉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이끄시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팔아 넘기는 일을 사용하여, 하나님은 자기를 이집트로 파송한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 보존을 위해 보내신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청년기 때인 17세쯤 될 때 이집트에 팔려서 지금 나이가 39세입니다, 거의 22년 되는 긴 세월에 하나님이 섭리로 일하신 것을 고백합니다. 2년 동안 온 세계에 굶주림이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5년이나 남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을 것입니다. 7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내가 너의 자손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이 약속을 이루는 데 요셉 자기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나를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 노예 생활도, 지금의 이 영광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번성하게 하는 사명자로서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4) 8절에 “하나님께서 나를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다” (숨), 7절에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에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자리에 두신 목적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세상에 번성하는 일을 섬기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형들에게 보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형들이 자기를 팔아서 노예생활을 시작한 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번성하게 하는 직분을 담당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과 환경을 다스리시는 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형들이 한 악한 행동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다고 고백합니다.
나중에 형들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창세기 50:20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고 순종합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악한 일을 의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꾸셨습니다. 선한 일을 의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아 남게 하셨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은혜로우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 보면서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약속(9-13절)
1) 요셉은 형들의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섬깁니다. 9-13에서 에서 아버지에게 말을 전합니다. 아버지와 전 가족이 이집트로 이민을 오라고 합니다. 요셉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합니다.
à 요셉이 형들을 향한 친절과 부모님을 향한 효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이루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4) 기쁨으로 마음껏 울다(14-15절)
1) 이렇게 요셉은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야기합니다. 형들이 아주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여러 말로써 위로하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제시해줍니다. 요셉은 이렇게 한 다음 베냐민의 목을 안고, 또 형들의 목을 안고 웁니다(15절).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이제야 제대로 풉니다.
요셉의 섭리신앙은 우리에게 좋은 모범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자신을 사명자로 이집트에 파송한 것을 자각하고 고백합니다. 자기에게 해를 끼치려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섬긴 것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2. 그리스도와 성도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
그리스도와 성도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하고 섬깁니다.
1)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고 용서하심
1) 사람이 하는 악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이룬 가장 좋은 예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행전 4:27, 28 (신약 193)은 말합니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악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죄를 용서하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면서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기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5-11절(신약 319)을 보겠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 그 분은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팔려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셔서 그 분께 모든 사람과 천사들이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요셉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 지셨습니다. 또 요셉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사도행전 6:7 “말씀이 흥왕하고 제자들의 수가 많아 졌습니다.” 말씀이 생육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말씀을 풍성히 전할 때 성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언약의 축복, 요셉이 이룬 이 번성의 축복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교회를 번성하게 하십니다.’
2) 성도의 고난을 통한 유익과 용서
1)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로 삼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한복음 17:18).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에 보내셨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요셉에게 고난을 주셨던 하나님, 예수님께 고난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로마서 8:28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을 결국은 우리의 유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해도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가 다듬어 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섭리하시므로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31-32(신약 314페이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우리도 요셉처럼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요셉처럼 우리 가진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기억합시다. 직업, 돈, 지식과 지혜, 건강.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섭리가운데 우리를 이 땅에 제자로 파송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뿐 아니라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풍성히 누리도록 이 교회에 예배를 잘 세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이 직분을 다하라고 이 고통 가운데서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말씀을 즐거워 하게 하셨습니다. 물질과 정서적 안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은 섭리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고 잘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며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집트로 팔려온 노예 요셉을 본받읍시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의해 파송되어 온 하나님의 직분자임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자손 번성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보냄을 받았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직분을 위해 요셉을 노예가 되게도 하셨고 또 세계 제국의 통치자로 삼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합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섭리하십니다. 오해를 받고 고생스런 일이 일어날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님의 제자로 파송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직분자로 이 세상에 파송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가정을 세웁니다. 직장에서도 파송받은 자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노예처럼 취급받는다는 느낌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일하십니다.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일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