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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호세아 11:1-11 "사랑으로불타는 하나님" 유해신 목사 2024-9-29 주일예배 설교

작성자축제|작성시간24.09.29|조회수66 목록 댓글 0

말씀 1174

사랑으로 불타는 하나님(호세아 11:1-11)

           2024-9-22

자녀된 우리를 향해 사랑이 불타는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사랑이 불타시는 분입니다. 대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ㅎ습니다. 항상 냉철하고, 또 명령하고, 명령을 어기면 법대로 심판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 불탄다고 계시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신이십니다.

자녀된 우리를 향해 사랑이 불타는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첫째 과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자녀로 입양했지만 그들은 배반했습니다 (1-4절)

둘째, 현재와 미래: 하나님은 자녀들의 죄 때문에 앗수르를 통해 징벌하실 것입니다(5-7절)

셋째, 먼 미래: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회복시킬 것입니다(8-11절)

넷째, 하나님은 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로서 살게 하십니다.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불타오느는 따뜻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과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자녀로 입양했지만 그들은 배반했습니다 (1-4절)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사랑했습니다. 여기 어리다는 것은 약하고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예들을 하나님께서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아들로 애굽에서 불러 내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을 닮은 자녀가 되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가문에 걸맞게 거룩하고 품위있게 생활을 하도록 불러 내셨습니다.

신명기 7:7-8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느나니”

그들을 자녀로 삼으신 것은 그들 안에 어떤 사랑할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자녀로 삼으신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  쪽에서 무조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쪽에서 사랑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하나님쪽에서 먼저 사랑해 주셨고 아들과 딸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5:6-8이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6–8).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언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인하고 간음하고 있었습니다. 미워하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고, 마음으로 더러운 생각을 하던 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는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된 이스라엘은 그 다음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절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원문에는 “선지자들이”라는 말은 없고 “그들이”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나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백성들을 불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오도록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음성으로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갔습니다. 출애급한지 몇 개월 후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금송아지 모습으로 만들어서 그 앞에 절하며 경배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날을 앞두고는 아예 바알을 섬겼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다음에도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우상 숭배를 그만하라고 해도 계속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만을 믿고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 처럼 의지합니다. 돈과 명예, 쾌락, 성취 이것들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는데서 멀어져 있습니다.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하신 일이 백성을 강하게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강하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의 수준에 맞게 조금씩 훈련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거름마를 가르쳤습니다. 아기가 일어설 수 있을 때 부모님은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이리 와”하고 손을 놓습니다. “아 걷는다”기뻐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손을 다시 펴서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앞서 가면서 인도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연약할 때에 걸음마 연습을 시켰습니다. 처음 출애굽 할 때 짧은 길로 인도할 수 있었지만, 그 곳에는 적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빙 둘러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막되 먹은 아이들처럼 되지 않도록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거룩한 삶이 싫었습니다. 오히려 이집트에서 살던 때를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싫어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적인 질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해 주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하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기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아닌 우상을 향해 마음이 나누어 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맙시다. 하나님께 절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인정합시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인도하실 때 짐승처럼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처럼 다루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인격적으로 대했습니다. 사랑의 줄로서 이끌었습니다. 명령만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가르치면서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는 직역하면 “내가 그에게 굽혀서 먹였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먹을 것을 떠먹이듯이 하셨습니다.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천막치고 있는 곳까지 만나를 배달해 주셨습니다. 광야의 만나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먹여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말해 줍니다. 물론 우리가 직업활동을 할 때 땀흘려 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력으로 모든 일을 하도록 하나님은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시듯이, 우리 직업에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보살피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 간증을 합니다. 풍부할 때, 또 궁핍할 때 어떤 때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빌립보서 4:11)(신약 322).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서 돌보아 주시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있어도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였슴니다. 빌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주셔서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한 것에 감사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 돌보심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높인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것입니다.

 

둘째, 현재와 미래: 하나님은 자녀들의 죄 때문에 앗수르를 통해 징벌하실 것입니다(5-7절)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이집트에서 하나님께서 해방해 주셨는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이백성은 다시 이집트땅으로 돌아가야 할 자들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해방한 후에, 앞으로 불순종하면 벌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신명기 28:68은 말합니다. “너희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하나님은 제2의 애급, 이집트를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앗수르입니다. 불순종하는 백성을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포로로 가기 전에 앗수르의 침략을 받을 것입니다. 잘 방어가 된 성 안에 들어가 있어도 앗수르 군대가 성문의 빗장을 깨뜨릴 것입니다.  성들을 쳐서 무너뜨릴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심판하시는가? 이스라엘의 계책 때문입나다.  이스라엘이 인간적으로 꾀를 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것과 외국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심되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참으로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치시고 깨뜨릴 것입니다.

그들을 심판하는 이유를 7절이 다시 말합니다.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는 그들을 높이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고 부릅니다. 선지자들이 불러도 일어나는 자가 없습니다. 은혜의 초대가 있지만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들의 악한 대로 내버려 두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우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와 같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징계가 있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셋째, 먼 미래: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회복시킬 것입니다(8-11절)

이렇게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심판하실 때 마음에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아이고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너를 완전히 놓아 버리겠는가?” 하나님이 아들 딸들에 대한 크신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도시를 말합니다(신명기 29:23). “내가 너를 벌하지만 어떻게 소돔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시키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뒤집힌다. 너희를 향해 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불탄다.” 배반한 아들  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히 불타오릅니다.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며 훈련할 때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서 마음으로 아파하십니다.  우리를 훈련하고 징계할 때도 마음으로아파하십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민하신 다음 결심하십니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은 불타는 진노보다 큽니다. 맹렬한 진노를 실행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백성은 언약을 어기지만 하나님은 언약 약속을 지키십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 26:12). 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징벌을 내리셔서 백성을 여러 곳으로 흩으시지만 계속 살아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의를 무시하면서 완전히 심판을 완전히 하지 않는 이유는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사람의 생각과 능력을 초월하십니다. 사람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거룩한 분”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분은 구원과 구속과 연결됩니다(사 10:20, 12:1, 43:3,14, 48:17, 54:5)  거룩함으로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백성들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거룩함으로 백성을 초월하지만 백성 가운데 계시면서 무슨 일을 하실까요? 백성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입니다. “내 아들들과 딸들이 죄를 짓고 더러우니까 나는 너희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짓고 더러운 백성 가운데 계시면서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는 분입니다.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부정과 부패를 하나님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백성 가운에 오셔서 백성이 받아야 할 심판을 다 받게 하시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회복하십니다.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사자가 소리치면 산들에 메아리 치며 다 들립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사자왕으로 백성을 불러 내실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부를수록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부터  떠나 갔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따를 것입니다. 사자가 부를 때 그들은 떨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떨 것입니다.

애굽에 있는 백성들, 앗수르에 있는 자녀들이 돌아 올 것입니다. 이 예언은 남유다가 바빌론 포로로부터 돌아 올 때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이방인들이 돌아 왔습니다. 전에 이방 나라에 버려졌던 이스라엘의 먼 후손들도 돌아 올 것입니다.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됩니다. 그러나 선택하신 자들에게는 복음이 라이언 킹의 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비둘기 같이 바른 지식이 없이 이집트와 앗수르 사이에 오간 백성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갔던  백성이 이제 거꾸로 여호와를 향해 돌아 올 것입니다.

오순절 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마케도니아와 애굽과 리비아와 온 세계로부터 떨며 왔습니ㅏㄷ.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 딸로 인침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다는 생각이 듭니까?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 오십시오.

 

넷째, 하나님은 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로서 살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2:15는 아기 예수님이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갔다가 돌아 온 이야기를 합니다. 호세아 11:1 에서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고 말한 것을 예수님께서 성취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이스라엘은 실패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못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죄를 이기고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마리아와 요셉 그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세례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우리 죄를 용서하는 제사로 드렸습니다.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지 않고 용서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정행위를 한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하나님의 아들딸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예수님의 죽음에 의해 만족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26(신약  243)은 말합니다.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롬 4:5도 더하여 말합니다.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죄인인 우리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의 날개로 하나님께로 집으로 날아 옵니다. 복음에서 사자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그러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날아 오십시오. 그분의 은혜가 제공하는 복음을 감사하게 믿으면서 나아 오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거룩함에서 사랑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애굽에서 내 아들과 딸들을 불렀다, 그들은 내 자녀이고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았으니까 정말 자녀답게 품위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가운데 더러운 생활을 살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라고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 거룩함 가운데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함과 사랑을 실천합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이 다른 사람에게 산소 같은 신선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빛으로 비치고 소금 처럼 살맛나는 생명의 영향을 주도록 합시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입이 되고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거룩과 사랑을 나타냅시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섬겼듯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같이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나의 가치를 낮추지 마십시오.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은 예수님과 같이 되는 존귀함입니다.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긍심을 가집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 처럼 연약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정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징벌하십니다. 하나님이 징벌하는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품위있고 거룩한 인생을 살도록 훈련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이해합시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내리신 그 사랑에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거룩한 분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우리도 본받읍시다. 거룩하지 않은 불신자와 어울립시다. 그러나 그들의 천박한 삶의 방식을 배우지는 맙시다. 오히려 거룩함으로 사람들과 다르게 삽시다. 사람들과 다르지만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합시다.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합시다. 하늘의 영광을 떠나서 종의 모습이 되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종으로서 사람들을 섬깁시다. 섬기는 우리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광가운데 높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이 땅에서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삶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녀된 우리 위해 사랑이 불타는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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