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매일말씀묵상-시편

시편 129편 이스라엘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악인들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찬양 2022-9-17, 토

작성자축제|작성시간22.09.16|조회수178 목록 댓글 0

시편 129

이스라엘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악인들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찬양

(찬송 260장)

2022-9-17,

 

맥락과 의미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123편부터는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릴 때의 심정을 노래합니다.

그 중에 129편은 과거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4절은 과거에 당한 고난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5-8절은 자신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도록 간구합니다.

 

1. 이스라엘의 고난 가운데 여호와께서 지키시며 구원하심을 기억(1-4절)

시인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이 시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것을 생각할 때, 아마도 예배 인도자가 회중들에게 외쳤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왔으니 좋다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민족 전체가 당한 끔찍한 비극을 구체적으로 회상합니다. 그럴 때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넘칩니다.

이에 화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찬송합니다. 이스라엘이세워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원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린 시절 당한 고난은 아마 요셉 이후에 애굽에서 포로 생활을 한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호 11:1). 야곱이 이스라엘로 불리고 민족이 선 뒤 불과 얼마 후에 애굽 종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았다면 한 민족으로 제대로 서기도 전에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괴롭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과 광야 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 기간 동안에 여러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다윗 왕조가 서고 난 뒤에는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강대국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의 별칭으로 시온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편은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 쓰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찬송을 드리고 있는 지금도 적국으로부터의 침략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고 하고, 괴롭힌 자들은 ‘그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작고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며, 주변의 적군들은 그 수가 많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 국가들이 어리고 약한 이스라엘을 둘러싸서 곧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금방 멸망을 당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자들은 결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시에서는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읽는 우리는 모두가 그 답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서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침략했을 때,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서 지켜 주셨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멸망시키려 하였을 때도, 에스더나 모르드개 같은 인물을 사용하셔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때가 되었을 때 바사 왕 고레스나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포로들이 본토로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적들이 이스라엘을 이기진 못했지만, 큰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3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포로 시절에 겪은 고통을 보여 줍니다. 적국에서 밭 가는 자들이 이스라엘 포로들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포로들이 일을 열심히 하도록 등에 채찍을 댔습니다. 밭을 갈면서 포로들의 등도 함께 갈아 엎어지다시피 했습니다. 밭고랑이 길어질수록 등에 난 채찍 자국도 점점 더 길어지고 또 깊어졌습니다. 포로생활 가운데 당한 학대가 이토록 생생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뜻을 좌절시키셨습니다. 줄을 끊으셨습니다. 포로를 묶은 줄을 끊으셔서 자유케 하셨다는 뜻 같습니다. 또한 채찍의 끈을 끊으셔서 더 이상 등을 내리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셨습니다. 악인들을 물리치시고 백성들을 친히 구원하셨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에서 여호와의 의로우심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시편 98편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인애와 확실함을 나타내신 것이 곧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은 언약을 지키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납니다.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시인은 1-3절에서 여러 적국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포로 생활 가운데 학대를 당한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바로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말은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수난을 당한 것 또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난 결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때로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실 때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게 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우리를 연단하여서 구원을 이루도록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2.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의 수치를 간구(5-8절)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들의 실체가 점점 드러납니다. 4절에서는 악인들이라고 불렸는데, 5절에서는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시온 성전과 다윗 왕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당하는 고난 중에서 어떤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이유 없이 공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악인들이 당할 수치를 여러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수치는 침략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5절). 그들은 처음에는 기세 등등하여 침략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형편없이 패배할 것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없이 물러갈 것입니다.

실제로 열왕기하 19장을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 성을 침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자기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십팔만 오천 명이 죽고 나머지는 부끄럽게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산헤립도 고국에 돌아가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수치가 이토록 큽니다.

또한 그들의 처지를 지붕 위의 풀에 비유합니다(6절). 예전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지붕이 평평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를 다룬 영화를 보면 대다수 집들이 1층이나 2층으로 낮고, 지붕이 평평한 것을 봅니다. 바람이 불어서 지붕 위에 흙이 조금 쌓이기도 하고, 그곳에 씨가 떨어져서 잡초가 돋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흙이 너무 얕기 때문에 햇빛을 조금만 쬐면 시들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도저히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악인들이 그런 보잘 것 없는 처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추수 때의 곡식으로도 비유합니다(7절). 추수를 할 때 낫질을 하는 사람이 곡식단을 한 움큼씩 쥐어서 낫으로 벱니다. 그런데 수확한 농작물이 얼마나 적은지 손에 쥐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곡식줄기 몇 가닥이 초라하게 자라 있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또 수확한 곡식을 모아서 단으로 묶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상 묶으려고 보니 품에 차지도 않아서 한 단이 성립이 안 됩니다. 농사한 수확이 이렇게 없으면 농사꾼들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악인들의 결과물이 이와 같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처지로도 비유합니다(8절). 6-7절에서 원수들의 땅이 황폐해진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열심히 땅을 경작했습니다(3절). 하지만 그들은 거의 소출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에는 추수하는 시기에 서로 복을 빌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룻 2:4). 하지만 원수의 땅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거둔 것이 전혀 없어서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 것이 너무 분명했습니다.

악인들은 어린 이스라엘을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시온을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대단히 높은 자처럼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시하고 노예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은 악인들이 될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해방하십니다. 수고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분께서(128:2) 악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실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도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구원을 누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려고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의는 완전히 만족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의 복을 누립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고난을 당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즐거워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매한 고난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왕왕 우리의 부족과 잘못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것을 참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죄를 그치고 사명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장차 임할 최후 심판에서도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며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우리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악인들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도 고통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번번이 위기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5-8절에서 악인들이 수치를 당하는 것을 장래에 있을 일로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이런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오늘의 고난을 견딜 힘을 얻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열매를 수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지금 당하는 고난은 선을 이루는 연단의 과정임을 기억합시다. 오늘 하루도 주님에 대한 찬양이 넘치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까요? 고난이 어떤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참고> 4, 하나님의”(짜디크) 구원 그리고 언약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악인에 대한 심판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시편 98:2을 보면 여호와의 의로우심을 구원과 같은 뜻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짜디크)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이 구절에서 “구원”과 “의”가 병행구절을 이루며 서로 비슷한 의미를 나타냅니다(참조. 삼상 12:6-7).

“의”라는 말이 심판과 구원에 함께 사용되는 이유는, 이 말이 “언약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언약을 신실히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 모두가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참고> 6, “지붕의 ”(하찌르-가고트)

지붕의 풀”은 얕은 흙에서 자라서 금새 시들어 버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모욕한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이렇게 저주하십니다.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하찌르-가고트)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왕하 19:27)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굳셀 때 지붕의 풀과 같은 앗수르를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