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0편
죄사함의 복음
(찬송 시편 130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3-2-3, 금
맥락과 의미
시편 130편도 성전에 올라가면서 구약 성도가 부르던 시편입니다. 시편 129편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장차 원수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130편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받으며 깊은 데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130편 1-4절은 하나님을 “당신”(2인칭)으로 부르고 5-8절은 “그분” (3인칭)으로 부릅니다. 전반부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이고 후반부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1-6절은 시인이 “나”(1인칭)로 표현하며 호소하고 기다리는데 7-8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130편에는 “여호와,” “주님”[아도나이]으로 부릅니다. 개역 개정 성경은 “당신”을 “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해설에서는 “아도나이”는 오렌지색으로 “주님”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아도나이”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를 표시하는 단어입니다. 이 시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다섯 번 나오고 “주님”이 세 번 나옵니다.
1-2절, 3-4절, 5-6절은 각각 “여호와”와 “주님”이 한 번씩 나오고 마지막 7-8절은 “여호와”를 두 번 사용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이 시는 깊은 구렁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시인데 여기에서 더 밝혀지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여호와의 여호와되심을 더 알아가게 됩니다.
1. 깊은 구렁에서 부르짖음 (1-2절)
1) 깊은 구렁
이 성도는 “깊은 곳”에서 부르짖습니다. “깊은 곳”이라고 번역한 말은 원래 “깊은 바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사 51:10; 겔 27:34).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깊은 구렁, 스스로 풀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없는 깊은 수렁에 떨어졌음을 깨닫고서 이 성도는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소용이 없고 하늘의 하나님께서 위에서 손을 내밀어 주셔야만 그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2) 믿음의 부르짖음
이 성도는 깊은 데에 빠졌고 그의 주위에는 그를 삼키려고 달려드는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큰 바다의 파도처럼 휩쓸면서 그를 덮치려고 합니다. 이 성도는 주위의 요란한 소리들에 개의치 않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시인은 큰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큰 어려움을 “깊은 수렁”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합니다. 자기의 경험을 늘어놓지 않고 오직 “주님(아도나이)”을 부르면서 자비함을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아도나이)”은 여호와와 비슷한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그 여호와께 자비를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모세는 “주여[아도나이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출 34:9)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도나이는 권능의 주님이신데 죄악을 사하시는 데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한 주님께 시인은 자비를 내려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2. 사죄의 은혜와 경외함(3,4절)
1) 죄악을 살피심과 용서하심
깊은 데서 여호와 주님을 부르는 시인은 자기가 당하는 어려움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3절에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하면서 죄의 문제를 고백합니다. “지켜본다”고 번역한 말은 6절에 나오는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파수꾼이 “적이 오는가 안 오는가” 하고 자세히 살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 하고 자세히 살피신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욥 14:16-17).
이 성도는 하나님의 살피심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용서하심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이 주위를 응시(凝視)하는 것처럼 꼼꼼히 따지시는 의로우신 분이지만, 동시에 그 죄악을 용서해 주시는 분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용서해 주시는 것은 죄를 죄라고 판단하신 후에 하시는 일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인식으로 주님께 용서를 구합니다(143:2). 무한한 사랑 가운데서 긍휼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2) 용서하심과 경외함
4절에서 “용서하심”과 “경외함”을 연결해서 말합니다.
첫째, 시인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며 나옵니다. 그 때의 심정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둘째,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는 데에 이릅니다.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더욱 경외하고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그분을 경외하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신 10:12).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130편의 시인은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지만 초점은 자기의 제물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죄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주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5-6절은 그러한 태도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3. 여호와만을 기다림(5,6절)
1)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을 기다림
5-6절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다림”과 “바람”입니다. 5절에는 “기다린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바란다”라는 말이 한 번 나옵니다. 5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 영혼이 기다리며 그 분의 말씀을 나는 바랍니다.” 6절에는 “기다림”이 세 번 나오는데 사실 원문에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도 “바란다”는 말이 나옵니다. 시편 130편의 후반부는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이 강조됩니다.
5절에, 이 성도는 여호와를 기다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4절에서 “죄악을 용서함이 주님께 있으니, 이것은 주님을 경외케 하려 함입니다” 하고 고백한 성도는 5-6절에서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신이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내가 제물을 바치니까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식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의 사죄하심을 바라면서 주님의 처분에 자기를 맡기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얼른 생각하면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면서 제사를 드린 다음에 기다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네 죄 사함을 받았다” 하는 주님의 사죄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제사장을 통해 선언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2) 파수꾼의 기다림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이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던 성도에게 빛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그분의 백성은 이제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광명한 데에 이르게 됩니다.
5-6절에는 “내 영혼”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 성도는 자기의 영혼을 다 쏟아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간절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지금 깊고 어두운 데에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없이는 그 깊음과 어둠에서 헤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간절히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4. 이스라엘의 구원(7,8절)
1) 시인과 이스라엘의 간구
앞에서는 시인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말하며 마칩니다. 7절과 8절에서 “속량(구속 救贖)”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는데, 이 단어는 특히 값을 치르고 구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값을 치르고 노예를 해방시킨 경우에도 사용되고(출 21:8) 조금 더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인자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구속을 여호와를 바라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려고 함께 성전에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제사에 참여하고 함께 사죄의 선언을 듣습니다. 7월 10일의 속죄일에 드리는 제사는 백성 전체의 죄 사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매년 속죄일에 사죄의 선언을 기다렸고 또한 민족적으로 회개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함께 성전에 나아가 여호와를 기다렸습니다. 예를 들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일은 그들의 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계였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징계를 받고 돌아온 후에도 그들은 함께 여호와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면서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일이 오직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인자와 풍성한 구속을 주시는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분 앞에 나아옵니다.
2) 사죄의 복음
130편의 성도는 지금 깊은 데서 부르짖으면서 개인과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깊은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개인이나 국가가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혹은 사회적인 면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 성도는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그 문제들이 풀어지기를 간구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의 핵심인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개인적인 면에서 죄 사함을 구하고, 혹은 다 함께 국가적인 면에서 사죄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성도의 간구는 우리로 하여금 죄가 근본 문제이며, 죄 사함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다시금 알게 합니다. 130편의 시인은 사죄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어려운 형편은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용서하심만을 구합니다. 주님께서 사죄를 선언하시면 자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옛적부터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이러한 복음의 말씀으로 다스리셨습니다. “너희는 예물을 들고 오면서 거기에만 마음을 쏟지 말고 사죄를 바라면서 나아오너라. 그러면, 나는 인자와 풍성한 구속을 베풀고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 복음을 들려주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죄의 복음으로 구약의 백성을 부르셨고, 구약의 성도는 130편에서 그 복음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5.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
1) 성전과 제사의 뜻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
130편은 깊은 데서 부르짖는 것으로 시작하고 여호와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처음 세 연에서 각각 “여호와-주님”이 나오고 마지막 연에서는 “여호와-여호와”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고 또한 주님으로서 그들의 죄를 사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시인은 깊은 데서 부르짖었는데 그가 깨달은 것은 여호와라는 성호가 가진 깊은 의미였습니다.
시편 130편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을 나타내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백성으로 하여금 성전에 와서 사죄의 복음을 듣도록 하셨지만,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는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주님을 경외하면서 나아온 사람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고 선언하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을 계속 경외하고 사랑하면서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2) 중보자의 현재적인 일과 우리의 경외하는 태도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바르게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죄를 바르게 깨닫고 나아옵니다. 요한일서 1:8에서는 만일 우리가 스스로를 죄 없다 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고 진리가 그 속에 없다고 밝혔고, 또한 이어서 1:9-10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죄 사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나가면서 죄를 더 깊이 깨닫습니다.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그 죄의 심각함을 더 깊이 깨닫고, 사죄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는데, 요한일서 2:1-2에서는 그러한 경우에 대해서도 가르쳐 줍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중보자로서 일하고 계시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다음에 뒤로 물러나 가만히 앉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도 자기의 죄를 깨닫고 깊은 수렁에서 주님께 부르짖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대언하시는 분입니다. 의로우신 그분은 십자가의 공효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시편 130편은 깊은 데서 부르짖으면서 여호와의 자비하심만을 바라고 기다리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여전히 깊은 데서 시인은 부르짖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르짖음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서 드리는 소망의 간구입니다.
그는 부르짖으면서 여호와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더 명료하게 알았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비밀과 분명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는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나아갈 수 있었고, 깊은 데서 부르짖으면서 그 시대를 이기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백성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한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깊은 수렁을 깊은 수렁이라 하고 어둠을 어둠이라고 하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홀로 깊은 수렁에 빠진 것과 같은 때에 우리는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낙담하기가 쉽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하시는 인자하심이 여호와의 이름에 박혀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새겨져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러한 시편으로 가르쳐 주시면서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한 심정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영원한 빛을 약속하시면서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어디에서 위로와 도움을 구합니까? 주님께서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나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확신합니까? 낙심할 때에도 예배와 말씀을 통해 주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힘씁시다. |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30편”을 검색해서 들으며 연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