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5편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헛된 우상을 믿는 것
(찬송 6장)
2023-3-18, 토
맥락과 의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시편 120-134편까지 이어집니다. 많은 준비를 하고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응답을 받고 교제를 나누고, 제사장의 축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열다섯 편의 시편에서 노래하였습니다.
135-136편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사람의 찬송이 나타납니다. 135편에서는 우상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자를 조롱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136편에서는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합니다.
135편은 하나님과 우상을 대비하고,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계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시인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로 인도합니다.
1. 여호와를 찬송하라(1-4절)
2. 모든 것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송함(4-7절)
3.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함(8-14절)
4. 우상과 우상 만드는 자의 헛됨(15-18절)
5. 여호와를 송축하라(19-21절)
1. 여호와를 찬송하라(1-4절)
1-4절에서는 특별히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면서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종들”에게 찬송하라고 합니다. 14절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변호해 주시고 자기 종들을 긍휼히 여겨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19-20절에서도 레위인과 제사장이 중심이 되어서 찬송을 인도하고, 백성 전체가 여호와의 종으로서 함께 찬송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는 모든 백성이 바로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3절에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로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단지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서 누리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가나안 땅을 주신 구원의 일 가운데 여호와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누리며 찬송합니다.
4절에서도 찬송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시고 “보물”로 택하셨기 때문에 찬송하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9:5-6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내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이때에 “소유”라는 말은 특별한 소유, 곧 왕관의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는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물로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더 뛰어나거나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의 사랑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러한 사랑을 받은 사람의 마땅한 반응은 오직 여호와의 선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감사와 찬송의 이유가 충분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시다.
2. 모든 것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송함(4-7절)
5-7절에서는 출애굽기와 예레미야서를 인용합니다(렘 10:10-14; 출 18:10-11; 출 15:4-12). 그런데 시인은 “내가 확실히 아노니” 하는 말을 덧붙여서 자기의 신앙을 담아서 인용합니다.
5-7절에서는 하나님의 “만드시는” 일을 찬송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다른 신들보다 뛰어나고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하늘과 땅, 바다와 깊음 가운데서 그분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특히 안개를 올라오게 하시고 비를 보내시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이것은 15-18절의 “만들어진” 우상과 대비가 됩니다. 가나안에서는 바알을 구름과 번개와 비를 주관하는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알 숭배자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에 바알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난잡한 종교 의식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우상들을 염두에 두고서 시인은 비와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우상들보다 뛰어나다고 선언합니다.
동시에 여기에는 출애굽의 구원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치셨고, 홍해를 가르셔서 애굽의 군대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애굽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은 애굽에 있는 신들을 심판하신 것이었으며, 동시에 그분의 백성을 해방하신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의 세력이 강력해 보이고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더 강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의 헛됨을 바라보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
3.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함(8-14절)
5-7절에서 우상에 대하여 논박한 시인은, 8절부터는 직접적으로 출애굽의 구원을 찬송합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바로의 장자부터 여종의 장자까지, 그리고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심으로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표적들을 보내셨지만 바로는 무능하여서 자기의 종들, 곧 자기 신하들을 지켜 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과 종으로 삼아 주셨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와 “자기의 보물”로 삼으셨기 때문에(4절), 그들보다 힘센 왕들을 친히 죽이시고 그 땅을 자기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10-12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공급받았습니다. 자기들이 건축하지 않은 성읍들을 얻고, 파지 않은 우물을 얻으며,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많거나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선물을 받은 사람들로서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신 6:10-14).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찬송함이 마땅합니다.
13절에, 여호와로부터 가나안 땅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연이어 부르면서 찬송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하고 그분을 기억함은 대대로 이른다고 노래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대대로 유월절을 기념하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묻는 자녀에게 출애굽의 구원을 가르치면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대대로 성찬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고백합니다.
14절에,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참으로 자기 백성의 억울한 형편을 변호해 주시고 또한 자기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돌보시는 사실을 노래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 32장에 기록된 모세의 노래를 인용한 것입니다(신 32:36). 이 노래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분의 권능으로 구원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백성들은 스스로의 죄악되고 무능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구원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자신의 죄와 부족을 바라볼 때 좌절하고 낙심하지 맙시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의지합시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우상 숭배를 이기는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4. 우상과 우상 만드는 자의 헛됨(15-18절)
이어서 시인은 우상의 헛됨을 지적합니다. 우상의 특징을 “입-눈-귀-입”의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우상은 입이 있지만 말도 못하고, 눈이 있지만 듣지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며, 숨도 못 쉽니다. 곧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가 모두 우상처럼 된다는 말은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문제를 바르게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바르게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입에 숨이 없습니다. 곧 죽은 존재와 같이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상 숭배는 매우 뿌리 깊은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시내 산에서부터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들의 안전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어서 끊임없이 우상 숭배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나라가 멸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시편을 부르며 우상을 조롱하고, 우상을 만들려는 자기들의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가장 좋은 길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5. 여호와를 송축하라(19-21절)
시의 마지막에서는 네 부류의 사람을 부르면서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이스라엘 가문 – 아론 가문 – 레위 가문 –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과 레위 가문을 중심으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송축한다”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을 여호와께 돌려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고서도 찬송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기 손으로 이룬 것을 자랑하는 우상 숭배자와 비슷할 것입니다. 찬송은 주님께서 주신 복을 여호와께 돌리는 것이고 이것이 여호와의 종이 마땅히 취할 태도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죄인을 먼저 사랑하여 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감사함과 자족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반면에 우상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기뻐하는 대로” 행하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자기의 소원을 우상에 반영하여 추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가 만든 그 우상에 의하여서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권력이나 돈을 추구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권력이나 돈의 노예가 됩니다. 그 결과는 호흡이 없어지는 것, 곧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헛된 우상 숭배에서 돌이킵시다. 내가 기뻐하는 뜻대로 살려 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그분만 의지하는 “여호와의 종들”로 살아갑시다. 참된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변 사람들도 이 찬양에 함께 동참하도록 도와줍시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 또한 책임져 주심을 확신합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주님을 찬양하며 그분만 의지하며 살아갈 때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며 영원한 기업을 물려주실 것입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이 소망 바라보며 오늘도 고난의 현실 가운데 찬양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오늘날 내가 하나님 대신에, 또는 하나님과 나란히 의지하고 섬기는 우상이 무엇입니까? (돈, 명예, 건강, 성취 등)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깨닫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아름답다(나임)”
3절에 “아름답다(나임)”는 시편 133:1에서는 “형제가 연합하여 지내는 것이 아름답다(나임)”고 할 때 나옵니다. 시편 16:6, 11에서는 “제비 뽑아 얻은 기업이 아름다운(나임) 곳에 있고 주님의 오른편에 아름다움(나임)이 있다”에 쓰입니다. 이러한 용례를 보면 이 표현은 단지 눈과 귀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서 누리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참고> 가나안의 ‘풍우신’ 바알 숭배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구름과 번개와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알 신을 새긴 부조(浮彫)를 보면 바알이 번개를 잡고 땅에 던지고 있는 것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바알이 긴 잠에서 깨어나서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보내면 이제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알 숭배자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에 바알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난잡한 종교 의식을 행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