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0편
거짓과 폭력의 세상에서 드리는 기도
(찬송 35장)
2023-4-27, 목
맥락과 의미
140편은 폭력과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139편에서는 시인을 괴롭게 하는 악인이 사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140편에서는 그러한 악인이 폭력과 거짓말로 시인을 공격하는 데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140편에는 “폭력의 사람”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오고(2, 4, 11절) “입술의 사람”이라는 말이 한 번 나옵니다(11절). 원수가 두 가지 폭력, 곧 물리적인 폭력과 언어 폭력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압제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의 중간 부분인 6-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인의 머리를 감싸 보호해 주신 것을 감사하겠다는 신뢰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 고백을 중심으로 악/악한 것(1, 2, 11절). 혀(3, 11절) 입술(3, 9절) 밀침(4, 11절)이 앞뒤로 반복됩니다. 원수의 공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심을 구조적으로 나타냅니다.
여호와께서 보호하심을 고백하기 전에는 원수가 시인을 공격하는데(3-5절), 하나님의 보호가 선언된 후에는 동일한 해악이 악인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의인을 보호하시는 것뿐 아니라 악인에게 심판을 내려서 그들을 전멸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이 시에는 “여호와”라는 성호가 일곱 번 사용되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이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께서 계시면서 자기 백성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1. 구원을 위한 기도(1-5절)
2. 신뢰의 고백(6-7절)
3. 보복을 위한 기도(8-11절)
4. 의인의 찬송 (12-13절)
1. 구원을 위한 기도(1-5절)
1-5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악한 자에게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이 다소 일반적인 묘사라고 한다면, 4-5절에서는 조금 더 개인적인 호소의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1절에서 시인은 악한 자를 “폭력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특징을 세 가지로 지적합니다. 첫째, 그는 마음속으로 악한 것들만 생각합니다. 둘째로 날마다 싸움만 일으킵니다. 셋째로 뱀의 혀와 독사의 독처럼 말로 사람을 공격합니다.
“폭력의 사람”이라고 하면 폭력이 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됨을 가리킵니다. 사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항상 불안함과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런 공허감을 정당한 것들로 채우려 하기보다는 서로 폭력을 일삼음으로 달래려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나는 평화의 사람이고 평화의 말을 원하지만, 세상은 싸우려고 덤빈다” 고 호소합니다(시 120:7).
3절에서는 악인이 말로 공격하는 것을 가리켜, “그들은 뱀처럼 자기 혀를 날카롭게 벼리고, 입술 아래에는 살무사의 독을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4-5절에서는 폭력의 사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악인의 손이 시인을 치려 하고 그의 걷는 발을 밀쳐서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가던 길에서 밀쳐 낸다”는 말은 그의 활동 공간을 빼앗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악인은 치밀한 계획 아래 폭력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사냥꾼처럼 올무와 그물과 올가미를 준비하여서 시인이 다니는 길목에 숨겨 두었습니다. 시인이 평소에 다니는 길을 잘 아는 자이고, 또 그의 약점과 부족함도 잘 아는 자입니다. 평소 시인의 발걸음을 주시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시인의 발이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려 합니다.
시인은 덫과 그물을 숨겨 놓은 사람을 가리켜 “거만한 그들”이라고 하였습니다(5절). 그들이 시인을 밀쳐 내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자기 밑에 두고 좌우하기까지는 계속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들을 두고 보지 못합니다. 교만한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거만한 그들은 자기의 계획대로 다른 사람이 자기의 올가미와 덫에 걸려들면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 자들입니다. 교만한 자들의 이러한 욕심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를 들어주면 또 다른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2. 신뢰의 고백(6-7절)
원수들이 사방을 두르고 공격하려 할 때에 시인은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 6절에 주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노래하였습니다. 자기의 힘에 의지하여 원수를 맞서려 하지 않고 주님께 피했습니다.
7절에 여호와 주님을 “나의 구원의 능력”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나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실 것이며, “구원의 능력”이시므로 자신을 능히 구원하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여호와를 “나의 구원” 혹은 “나의 힘”이라고 찬송하는 것은 과거 출애굽 구원의 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출 15:2). 시인은 과거에 홍해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자기를 구원하셨다고 찬송합니다.
전쟁의 날에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셨다고 합니다(7절). 악인이 다른 방어막을 다 파괴한 후에 최후의 일격을 노리는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그런 위급한 때에도 오직 주님께 피하며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시인의 생명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3. 보복을 위한 기도(8-11절)
8절에 “악한 자의 탐욕을 채워 주지 마십시오” 하고 간구합니다. 악인은 말하자면 특별한 목적 없이도 자기 탐욕을 채우고자 악을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교만한 사람에게는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만이 최고의 관심사이고,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입니다.
이어서 “원수가 스스로를 높일까 두렵습니다” 하면서, 그들의 죄가 자기 개인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아룁니다. 시인은 자기가 당한 개인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주시길 구하고 있습니다.
9절에 시인은 자기를 둘러싼 자들이 입술로 만든 해악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여기에서 상황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시인 한 사람을 여러 악인들이 빙 둘러서 말로 공격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시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머리 위에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입술 아래에 독사의 독을 감추고 혀를 날카롭게 벼려서 시인 한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이제는 자기들이 뱉은 말 그대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시인의 머리를 공격하려고 하였지만, 여호와께서 시인의 머리는 보호하시고 그들이 뿜어낸 악을 모두 그들의 머리에 돌려서 그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하실 것입니다.
10절에서는 악인이 당할 처지를 실감나는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그들이 전에 다른 사람을 공격할 때에 썼던 그 불화살이 이제 숯불처럼 그들의 머리에 내릴 것입니다(참고. 시 120:4). 그들은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다시 “물웅덩이”에 빠집니다. 숯불이 그들 위에 쏟아져서 불구덩이에 빠진 꼴이 된 그들은 살 길을 찾아 물웅덩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11절에서는 악인의 모습을 “혀의 사람”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그는 늘 세 치 혀로 일을 도모합니다. 자기의 꾀를 이루려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교묘하게 하고, 그 말을 화살처럼 쏩니다. 사람들을 편으로 나누고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어서 한 사람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11절 후반부에서는 “악이 폭력의 사람을 따라가서 밀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밀친다”는 4절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폭력의 사람은 시인을 밀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밀침을 당하는 것은 “폭력의 사람”입니다.
그는 악한 자로서 “마음속으로 악한 것만 꾀한 사람”입니다(2절). 그런데 그 악한 자가 마음에 꾀하였던 “악”이,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전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봅니다.
4. 의인의 찬송(12-13절)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찬송합니다. 시인은 혀의 사람과 폭력의 사람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억울한 마음을 품지도 않고, 그들이 낮아졌으니까 이제는 내가 높아질 차례라고 생각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자신을 “가난한 자”로 고백합니다.
그는 “의인이 주님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사람이 주님 앞에서 살게 될 것”을 찬송합니다. 물론 정직한 사람을 말할 때에 시인은 그 안에 자기를 포함시켜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악인의 공격 가운데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스스로의 자격 없음을 바라봅니다.
자기를 가난한 이와 불쌍한 이로 여기면서 낮추는 겸손한 사람만이 “주님 앞에서 사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붙잡지 않으면 폭력의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폭력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자기가 받은 피해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다만 가난한 자와 정직한 사람의 무리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악인이 거짓과 폭력을 행사한 이유는 자기의 생각을 실현하고 자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시인은 여호와의 통치를 간절히 바라는 가난한 자로서 정직한 의인의 길에 서기를 원하였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악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지 않으면 우리 또한 악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서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고, 그를 은근히 헐뜯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말은 마음속에 진리가 없을 때에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모세의 제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였고 폭력도 행사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공격하였고, 음모를 꾸며 죽음에 몰아넣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거짓말이나 군중의 비방하는 말에 대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말의 허점과 모순들을 지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언어의 폭력과 육체의 폭력을 십자가에서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혀의 사람은 땅에서 끊어지는 반면, 가난하고 정직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스스로의 죄악에서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된 성향을 이기고 선을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유대인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며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맙시다. 그리스도의 의만을 의지하는 가난한 자로 살아갑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외적으로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그 가운데서 자기의 뜻하는 바를 이루려 힘쓰고 거기서 만족과 평화를 누리려고 질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을 정도로 폭력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장차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인의 머리에 불이 떨어지고 악인이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일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항상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불의한 현실을 당할 때, 내 속에도 동일한 악이 있음을 슬퍼하며 스스로를 회개하는 기회로 삼읍시다. 악인의 폭력 앞에 자신을 가난한 자로 여기면서 찬송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고 사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내 안에 있는 폭력적인 성향이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폭력의 사람”의 대표적 사례: 라멕과 노아 때의 사람들
“폭력의 사람”이라고 하면 폭력이 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성경에 나온 좋은 예는 라멕과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가인의 7대손인 라멕에게는 아내가 둘이 있었는데, 그가 젊은 소년을 죽인 다음에 자기 아내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창 4:23-24). 폭력의 사실을 두 아내에게 대놓고 이야기한 것은 두 여인을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의중이 깔려 있습니다. 라멕은 자신의 폭력성을 과시함으로써 집안을 다스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내리신 벌을 비웃는 표현까지 사용합니다.
노아 시대에 이르면, 사람들은 마음으로 항상 악한 것만을 꾀하였고, 또한 그 꾀한 대로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하고 심판을 선언하셨고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참고> 3-4절, 뱀과 같은 악인들의 공격을 나타내는 발음상 표현법
3절에서는 악인이 말로 공격하는 것을 가리켜, “그들은 뱀처럼 자기 혀를 날카롭게 벼리고, 입술 아래에는 살무사의 독을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뱀”은 히브리어로 “나하쉬”인데 4절에서는 “쉬”라는 발음이 다섯 번 나옵니다. “샤나무 러쇼남 커모-나하쉬 하마트 아크슈브 타하트 셔파티모.” 마치 뱀이 “쉬이” 하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공격하듯이 악인들이 실제로 공격해 오는 모습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참고> 시편 140편과 120편의 연관성
시편 140편은 여러 면에서 시편 120편과 유사성을 보입니다.
140편 2절에서 악인은 “마음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해 모이는 것”을 그들의 본질로 하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120편 6-7절에서도 악인들은 시인의 곁에 항상 머물며 화평을 미워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들로 소개됩니다.
140편 10절에서 “뜨거운 숯불이 악인들 위에 떨어지는 심판” 받기를 구합니다. 120편 4절에서도 악인들에게 “로뎀나무 숯불로 단련한 불화살”이 그들 위에 쏟아지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