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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시편

시편 36편 반역죄가 악인을 다스리는 세상에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송함 , 2021-2-6, 토

작성자축제|작성시간21.02.05|조회수375 목록 댓글 0

시편 36편

반역죄가 악인을 다스리는 세상에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송함

찬송: 시편 36편, 32편

2021-2-6,

 

36편은 35편의 내용을 더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35편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들어 주실 때 가난한 자들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가난한 자들과 함께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겠다는 말로 끝이 났습니다.

36편은 같은 주제를 좀 더 넓게 말합니다.

1. 묘사: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묘사합니다(1-4절).

2, 찬송: “하늘”에 가득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바라보고 또한 그분의 집에서 보호를 받는 것을 찬송합니다(5-11절).

3. 간구: 하나님의 자비와 의로서 악인에게 구원하시기를 간구합니다(10-12절).

제목에서 다윗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한 점을 강조합니다. 반역하는 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 자기의 길을 스스로 정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1. 묘사: 죄의 종인 악인의 교만함 (1-4절)

 

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2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악인의 죄(반역죄)가 말하기를” 직역하면, ““반역죄가 악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예언자가 예언하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표현합니다(참조. 시 110:1; 삼상 23:1-3). 반역죄는 악인에게 신적인 권위를 가진 듯이 말합니다. 에덴에서도 사단(뱀)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반역죄가 악인의 마음에 악한 말을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악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경외함”은 물론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조차 일부러 그 생각을 눌러 버립니다.

“목전”(1절), “스스로”(2절)“에는 “눈에는”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관점)이 아니라 자기들의 눈(관점)을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반역죄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면 자기의 죄인됨을 인정할 것입니다. 자기의 눈이 기준이 기준이므로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담하게 죄악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비뚤어진 “눈”으로 판단하고 “입” 죄악과 속이는 것을 쏟아냅니다. 여호와를 바르게 경외하는 것이 지혜인데 거기서 멉니다. 지혜가 없는 그들은 이제 선을 행하기를 그칩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죄의 노예가 된 악한 사람들은 침상에서 누워서도 죄악을 생각합니다(4절). 바깥으로부터 유혹이 없을 때도 마음 속에서 죄악된 마음이 꿈틀거립니다.

경건한 성도는 땅의 죄악된 현실을 생각하면 침울해 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죄악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도는 눈을 하늘로 돌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바라보며 찬송합니다.

 

2. 찬송: 여호와의 참된 인자하심과 의 (5-9절)

1)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송함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공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악이 세력을 떨치는 현실 속에서 성도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5-6절의 원문은 “여호와여”으로 시직하고 마칩니다. 그 중간에서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의로우심과 그분의 판단 등 그 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고백합니다(참조. 시 89:14).

하늘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자비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큰 산”(직역하면 하나님의 산)들과 같습니다. 마치 큰 산이 요동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의는 변치 않습니다. 사람의 의는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서 변덕스럽게 바뀌는 것과 다릅니다. 악인들이 주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다스리고 심판하십니다.

그분의 판단은 “깊은 바다”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판단은 “정의”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정의로운 다스림과 판단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매우 두렵고 무서운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하늘, 구름, 산, 바다에 스며든 그 분의 인자하심, 진실하심, 의로우심, 판단하심을 찬양합니다. 가운데 있는 사람과 짐승을 “구원”하십니다. 어려움에서 구원받습니다. 사람들만 아니라 짐승들까지 돌보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선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악인들에게도 해와 비를 보내십니다. 성도는 이처럼 큰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생각하며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특별히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말합니다. 언약의 신실함이 자연 속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과 사람을 감싸고 있습니다. 노아에게 하셨던 그 언약을 계속 지키십니다(창세기 8장).

 

2)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주신 특별한 복을 찬양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특별한 “인자하심”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보배롭습니다. 보배로운 것은 개인적인 친밀함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인자하심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합니다.” “성전으로 피하는 것”을 말합니다(참조. 시 5:11; 57:1; 61:4). 성전의 지성소에는 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천사가 날개를 서로 맞대어 서 있었습니다.(왕상 6:27; 8:6). 그 날개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함께 하신 영적 사실을 표시해 주셨습니다. 그 곳을 향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인은 성전에 나아가 주님의 인자하심 안으로 피할 때 하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는 것처럼 “그 날개 그늘 아래”서 품어 주십니다. 이 성도는 평소 체험한 것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3) 회복된 낙원에서 즐거워함

 

8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

주님께 피한 사람은 주님의 집에서 기름진 것을 먹고 큰 기쁨의 강에서 마십니다. “기름진 것으로 먹는다”는 화목제의 음식을 말합니다. 화목제는 죄용서 받고,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들이 하나님과 백성과 함께 먹고 즐거워 하며 잔치를 벌이는 제사입니다. 화목제의 고기의 육질이 좋아서 맛있는 것 보다 함께 함에서 기쁨이 더 큽니다.

주님께 피한 사람은 “복락의 강물”에서 물을 마십니다. “에덴의 강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신 에덴 동산의 기쁨을 다시 주십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주신 것을 먹고서 생명의 원천이 주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생명은 내가 무엇을 이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서 먹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생명의 원천이 주님께 있으니 “주님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본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빛을 본다”는 말은 죽지 않고 “생명을 영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빛도 다른 데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 가운데서” 봅니다. 생명도, 빛도 주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교만한 악들은 자기의 눈이 판단의 기준입니다(1,2절). 그리하여 하늘과 온 땅과 바다에 충만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과 의로우심과 판단하심에 대하여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자기의 눈을 기준으로 삼고서 자기가 보는 것을 강조한 사람은 도리어 장님이 됩니다. 자기의 눈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께 피한 사람은 주님의 빛 안에서 바른 것을 보면서 나아갑니다.

주님의 빛 안에서 생명을 얻고 바른 것을 보게 된 사람은 이후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나는 저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하면서 우쭐하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계속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3. 간구: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으로 구원해 주소서 (10-12절)

 

10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주님을 아는 자”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고귀함”을 체험한 성도입니다. 이런 자에게 “당신”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계속”하여 베푸소서! 하늘에 스며든 주님의 인자하심과 산들과 같은 주님의 의(5,6절)가 하나님께 와서 피하는 자에게 계속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11절에 처음으로 “나”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을 아는 자와 마음이 정직한 자는 바로 이 시편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나”입니다. “교만한 자”와 “악한 자”의 발과 손이 나를 향해 가까이 왔습니다. “눈”과 “입”으로 죄를 짓고 “불선한(선하지 않은)길에 서는 자들입니다(2,3절) 그들은 침상에 누워서 생각한 그 악을 실제로 “죄악을 행하려고 다가옵니다.

교만한 자가 나를 발로 밟으며 승리를 자랑하지 못하게 해 주소서! 성도는 그들을 피해서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개 그늘에 피하여 그분의 주시는 좋은 음식을 먹고 큰 기쁨의 강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악인이 넘어집니다(12절). 교만한 자가 성도를 잡으려 하던 그곳에서 넘어졌습니다. 넘어져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여호와의 날개 그늘이었습니다. 구약에서 “거기서”는 성전을 말하는데 쓰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피한 자와 즐거워 하는 거기 연회장에 악인이 뛰어든 것입니다. 파티장의 주인께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성도의 “거기서”는 악인이 넘어지는 곳입니다.

 

4. 반역죄가 악인을 다스리는 세상과 주님께서 베푸시는 잔치

1) 반역죄가 명령하는 대로 따르는 악한 자들 -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

“반역죄”가 자기에게 속한 악인에게 말합니다. 악인들은 그들의 주인인 죄악이 하는 말을 권위 있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1절). 로마서 3:18은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경외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3:10은 구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면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말했습니다. 그 결론으로 시편 36편의 첫 구절을 인용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의 핵심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죄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말을 합니다. 의인을 향하여 담대히 거짓된 행위와 악한 일들을 행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담대히 죄악을 행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에는 실패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치십니다. 이후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2)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들

죄악의 말을 듣는 사람은 사망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그들은 의인입니다. 악인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에 여호와께 피하여 달려 갑니다. 그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노래하다가 그분의 집에서 기름진 것으로 먹고 빛 가운데서 행하면서 살아갑니다.

악인의 죄악을 마주할 때에 하늘을 바라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과 진실하심과 신실하심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까지도 구원하시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악인에게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이 미치고 있음을 압니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보여 주신 그 인자하심을 저 사람에게도 보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눅 18:11)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겸손히 주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잔치

악인은 자기의 힘으로 생명을 얻거나 그 생명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하여서라도 자기의 생명을 복되게 하려고 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눈에 맞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반면 성도는 생명이 자기 밖에, 곧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고서 하나님께 나아 갑니다. 여호와의 집에서 살진 것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복락의 강수로 배불리 마셨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상에 나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의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밖에, 곧 그리스도께 있음을 고백하며 성찬의 상에 나아갑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생명을 누리고, 주님의 빛 가운데서 걷게 됩니다. 그 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복락의 강수를 마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베푸신 약속을 장차 온전히 이루실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을 모두 이기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의로우심과 판단하심으로써 그러한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믿고 복종할 일

경건한 성도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악을 행하고 속이는 것으 봅니다. 그 답답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사람과 짐승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을 찬송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성전에서 피할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심을 찬양합니다.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거기에 하나님께 임재하십니다. 성찬에서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에서 이 생명을 맛봅니다. 말씀의 빛을 따라 빛 가운데 걸어갑니다.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도 주님의 은혜로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로 기도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6절,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그분의 판단은 “큰 (깊은) 바다”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판단은 “정의”라는 뜻도 있습니다. “깊음”이라는 이 말은 창세기 1:2에서 창조 전의 상태를 설명할 때 쓴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혼돈을 일으키는 세력에 대한 묘사로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참고> 8절,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8절), 주님의 빛가운데서 우리가 빛을(9절)

시편 36편은 성전에서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먹는 것은 화목제 제사를 말합니다. 화목제는 기름은 하나님께 태워 올리고, 고기는 제사장과 제물을 가져온 성도들과 이웃, 가난한 사람, 레위인들이 함께 먹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이 함께 하는 축제입니다.

주님의 빛은 성전 안의 등대의 빛이 비치는 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8절, 복락의 강물(에덴의 강물)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은 “회복된 에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피한 사람은 “큰 기쁨의 강물”에서 물을 마십니다. “에덴의 강물”이라는 뜻입니다. 에덴 동산(기쁨의 동산)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동산 동쪽으로부터 강물이 흘러 나와 온 세상으로 흘러 갔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반역죄의 말을 듣고서 금하신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화염검을 가진 그룹 천사들을 통해 에덴(기쁨)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땅 어디에도 에덴의 낙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인자하심으로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성전에서 속죄제와 번제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 오려 하면 심판하던 그룹 천사들이 있는 성전으로 그 분의 백성을 초대해 주십니다. 그룹 천사들이 법궤 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보좌가 되어서 하나님을 모셔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그룹천사가 지키고 있는 그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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