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3편
악한 사람의 잘됨을 보고 불평하며 기도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
(찬송 시편 69편 https://cafe.daum.net/-goodchurch/ROHB/71)
2021-4-23, 금
맥락과 의미
시편 73편부터 시편의 제3권이 시작됩니다.
시편 제3권(73~89편)은 주로 아삽의 시편과(73~83편) 고라 자손의 시편(84~85, 87~88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윗 시대에 성전 찬양을 인도했던 세 명의 레위인 중 한 사람입니다(다른 두 명은 헤만, 여두둔[에단]). “아삽의 시”라는 제목은 아삽뿐만 아니라 아삽의 대를 이어 그 자손이 지은 시편도 포함합니다. 74,79,83편 등은 명백하게 아삽의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73편은 사악한 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물질적인 번영보다는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참된 복임을 고백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참으로”(실로, really)라는 말이 3번(1,13,18절) 나와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문제: 악인의 번성을 보고 믿음이 흔들림(1-12절)
1) “나는” 악인의 번성함을 보고 믿음이 흔들림(1-3절)
2) “그들”(악인)은 번성하는 상태(4-12절)
2. 전환점: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한 새로운 깨달음(13-17절)
3. 해결: “그들” 악인의 멸망과 “당신”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나”의 복(18-28절)
1) “그들”이 당하는 재난(18-20절)
2) “나”의 번성(21-28절)
1. 문제: 악인의 번성을 보고 믿음이 흔들림(1-12절)
1) “나”의 믿음이 흔들림(1-3절)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참으로”라는 확신의 말로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올바른 이에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마음이 깨끗한 이들에게!’(1절). 이 고백이 분명한 성도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가 번성하는 것을 보고 “나”는 실족하여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2절). 악하고 오만한 자가 번성하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3절).
2) “그들”(악인)이 폭력 가운데 번성함(4-12절)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나”의 믿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내 눈에 “그들”(악인)이 악을 행하는데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성도는 악인의 행복을 과도하게 높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한 자는 평생 고난이 없고 죽을 때도 행복해 보입니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물질적으로 번성하므로 교만합니다. 사실은 그들이 사람에 대한 강포를 옷처럼 입고 있습니다. 사회적 폭력을 행사하고 억압을 합니다. 억압을 통해 물질을 생각보다 더 얻습니다. 폭력을 통해 많은 물질을 얻고 살이 쪄서 튀어나온 그들의 눈은 교만한 눈이기도 합니다. 교만하여 사람들을 모욕하며 악하게 말합니다. 그들의 교만한 말은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번성하며 교만하고, 교만하면서도 번성하므로, “그의 백성”에게 매력을 줍니다. 하나님 그분의 백성이 악한 자에게 몰려듭니다. 그 악한 자들이 주는 혜택을 가득한 잔에 물을 마시듯이 마십니다. “지존자”(하나님)는 알지 못한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난다”라고 말합니다. 악한 자를 지도자로 받들면서 악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는 “나”도 하마터면 이 유혹에 넘어갈 뻔했습니다.
2. 전환점: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한 새로운 깨달음(13-17절)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실로”가 원문에는 제일 먼저 나옵니다. 앞에서 “그들”(4-12절)이 어떤 상태인가를 말하다가, 13절부터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손으로 거룩한 삶을 산 것이 “실로 헛되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1절)는 확신이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는데 악인에게는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매일 징벌을 받는다는 느낌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재난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징벌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이 모든 믿음의 씨름 가운데 중심을 찾았습니다. 악한 자를 추종한 하나님의 백성처럼 “지존자”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해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합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주”(당신)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당신으로 새롭게 만납니다. 악한 자처럼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의 믿음의 공동체(세대)를 배반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위기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의 교회 공동체에 속했음을 아는 일에서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 곧 악한 자의 번성과 경건한 자의 고난에 대한 답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앙적 답을 찾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할 때에 깨달았습니다. 예배 가운데 레위인의 시편 찬송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주시는 영적 깨달음이 해결책이었습니다.
아삽은 역시 레위인으로서 신학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책임을 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전까지 이성과 감정으로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그가 성소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을 예배할 때 비로소 해결되었습니다. 지금 악인이 번성하는 것 같아도 악인들의 “종말”(마지막)을 보면 누가 참으로 행복한지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해결: “그들의 멸망. “당신”께 가까이하는 “나”의 복(18-28)
1) ‘당신’(하나님)이 “그들”을 파멸하게 하심(18-20절)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다시 “참으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나”도 아니고 “그들”도 아니고 “주”(당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성도의 마음속에 펼쳐집니다. “나”는 미끄러질 뻔했고(1-3절) “그들”이 안전해 보였지만(4-12절), 실로 하나님 ‘당신’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셨음을 보고(18-20절) “나”는 오히려 안전한 곳에 두셨음을 고백합니다(21-28).
물질적으로 번성하고 교만한 자들은 갑자기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전멸하였”습니다. 악한 자를 추종하는 자들조차도 놀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말합니다. “황폐되었는가?” 하나님께서 마치 한동안 주무시기나 하듯이 악인의 번성을 허락하시지만 결국은 그들을 파멸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것이 사악한 자들의 종말의 모습입니다(17절).
2) “나”의 번성(21-28절)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악한 “그들”을 결국 심판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21절부터는 “내”가 하나님 ‘당신’께 가까이 가면서 고백합니다.
21절은 “... 때”로 시작합니다. 내 마음이 흔들렸던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양심이 찔립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 부정함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산란하다”는 원래 ‘효모’라는 말에서 왔습니다(출 12:15,34). 내 마음의 부끄러움이 심해서 마치 효모가 반죽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하듯이 어지럽습니다.
22,23절은 각각 ‘나 자신은’ 하면서 강조하는 같은 말로서 서로 비교하여 말합니다. 나는 “주” 당신 “앞에”, 즉 ‘당신과 함께’ 짐승같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어서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를 알까?’ 하는 나에게 이제 알게 해주십니다.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은 “내 오른손을 붙드셨”습니다(23절). 내가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항상 사실이지만, 내가 그것을 알 때 나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그 영적인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오른손을 붙드셔서 넘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나의 지식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의 “교훈”(계획, 자문, 충고)이 나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종말은 파멸이지만 나는 이후의 삶에서 영광으로 받아들여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갈 때도, 이 땅의 삶이 끝날 때도, 그 후에도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영광이 가득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나는 영광스럽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나는 갈망합니다. “주(당신) 밖에”(25절)는 뜻은 다르지만 “주(당신)와 함께”(23절)와 소리는 같게 들립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약해지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입니다. 내 마음이 흔들렸지만 하나님은 내가 다시 정결한 마음으로 굳게 설 수 있는 반석입니다. “영원한 분깃”입니다. 영원한 기업입니다. 악한 자가 자랑하는 물질적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 나의 기업입니다. 물질적으로 큰 고통이 있고 악한 자들의 번성을 볼 때도, 그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은 계속 나와 함께 계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물질적인 것 등)을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진실로 나와 함께 하시는 “주” 당신을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당신을 떠나 음녀같이 된 자는 당신과 “함께”하는 나와는 다릅니다. ‘당신’이 “멸하십”니다.
28절은 ‘나 자신은’이라고 강조하며 시작합니다. 나 자신은 하나님께 “가까이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복”입니다. 복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복’)을 행하신”다(1절)는 이 성도의 첫 고백에서 나온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제 성도는 체험적으로 알았습니다.
성도가 누리는 복은 사악한 자들처럼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이 누리는 현세적인 복이 아닙니다. 그들의 복은 사실은 그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저주입니다. 이 성도는 물질의 부족과 악한 자의 조롱 가운데서도 복을 누립니다. 그 모든 고난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는 앞에서 나온 ‘당신’이 아니라 ‘주님’(‘아도나이’)입니다. 곤한 마음이 흔들릴 때 굳센 반석이 되어주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든든히 지켜주십니다. 하물며 재산이 늘고 자손이 번성하고 친구가 많은 때는 더 여호와의 축복을 감사하며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모든 행하신 일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내가 전할 복음은 ‘하나님을 믿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복임을 전파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내게 복이다. 나는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는다’. 신앙의 갈등을 통해 체험적으로 알게 된 하나님을 전파합니다. 예배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이 복을 전파할 것을 결심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시편 73편은 지금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사는가? 과연 하나님은 좋으신 분인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우리는 새롭게 깨닫습니다. 우리가 항상 흔들리고 재난을 당하며 항상 징벌을 받는 것 같았지만 사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께서우리의오른손을붙들어주셨습니다’(23절). 하나님은 교훈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우리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이 얻었던 건강과 물질적인 번영보다 훨씬 좋고 더 영구적이고 실제적인 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23절), 붙들어주심과(23절), 인도하심과(24절), 후에 영광으로 영접해 주시는 것(24절)이 그것입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습니다(27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28절).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때문에 믿음 자체가 복입니다(1,15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우리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4,5)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빛을 나타냅니다(마 5:16).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빌립보서 3:21). 하나님께 가까이한 우리의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 것입니다(시편 73:1).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린도전서 15:58).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에게 주신 위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믿음의 투쟁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8:31.32).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7,8).
시편 73편의 성도처럼 이 믿음을 굳세게 잡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불신자의 번성을 볼 때 우리는 함께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떠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배반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하면서 말씀을 들으며 나 자신의 믿음을 회복합니다. 내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전하는 것뿐 아니라 믿음의 갈등과 승리도 복음입니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시편 73편의 위치
시편 73편은 1~2권(1-72편)과 3~5권(73-150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73련은 시편 1-72편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의인의 복과 악인의 멸망을 선언했습니다. 73편은 현실 세계에서 과연 그러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성도의 체험을 통해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멸망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합니다.
시편 73편은 3-5권의 서론 역할을 합니다. 시편 1권의 서론인 시편 1,2편이 한 역할을 시편 73편이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말한 의인의 복됨과 악인의 망함을 시편 73편이 말합니다. 시편 2:12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을 말했는데 시편 73:28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시편 73편은 복을 받는다는 것이 물질적 번영이라기보다는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1-73편에 대한 요약입니다. 이것을 확인한 성도들의 찬양이 이제 74~150편에 나올 것임을 예고합니다.
<참고> “참으로”(18절, ‘아크’), “어찌하여”(19절, ‘에카’)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위의 구절에서 “참으로”(‘아크’)와 “어찌하여”(‘에카’)는 발음이 모음만 다릅니다. 그들의 멸망에 대한 생각을 이어갑니다.
<참고> “강포”(6절, ‘하마스’), “피난처”(28절, ‘마하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악한 자들의 “강포”(6절, ‘하마스’)와 여호와의 “피난처”(28절, ‘마아스’) 되심은 세 음절의 순서만 다릅니다. 악한 자와 하나님이 하는 일을 대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