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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강해

예레미야애가 1장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호소 2023-6-30, 금

작성자축제|작성시간23.06.29|조회수89 목록 댓글 0

예레미야애가 1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슬퍼하며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호소

(찬송 360장)

2023-6-30,

맥락과 의미

1장은 예루살렘 성을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그를 위해 애곡하는 노래입니다. 1-11절에서는 시인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12-22절은 예루살렘 자신이 부르는 슬픔의 노래로 묘사됩니다.

시에서는 특히모두”()이라는 단어가 여러 반복되어 사용됩니다. ( 16, 2,2,3,4,6,7,8,10,11,12,13,15,18,21,22,22) 이것은 예루살렘이 당한 환난이 총체적임을 강조하는 표현법입니다.

 

1. 예루살렘의 과거의 영광과 상반된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슬퍼함(1-9a)

2. 예루살렘의 심정이 되어 자신의 슬픔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소(9b-22)

 

1. 예루살렘의 과거의 영광과 상반된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슬퍼함(1-9a절)

1-3: 시인은 예루살렘 성을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이전과 지금의 극명한 차이를 여러 이미지로 대비합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홀로 외로이 앉아 있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나라 중에 으뜸이었는데, 지금은 과부같이 외롭습니다. 이전에는 지체높은 공주였는데, 이제는 노비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밤새 서럽게 웁니다. 과거에는 여인을 사모하던 남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곁에서 달래주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친구인 알았는데, 이제는 배신자요 원수로 변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으로 끌려가환난(오니) 많은 고난(아보다)” 당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힘든 노예 생활 가운데 고된 노역을 감당하는 것에 표현입니다( 1:14; 3: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참된 자유와 쉼을 주셨는데, 이들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결과 다시 종으로 끌려가 곳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4-6: 시온은 제사와 예배의 장소였는데, 이제 기능이 멈추었습니다. 절기에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 도로가 한산하고, 성문도 한산합니다. 오직 재사장들과 처녀들이 탄식하여 애곡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원수된 바벨론은 형통함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페샤)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예루살렘을 심판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의도적으로 배반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과 반역의 결과입니다.

7-9a: 과거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신부로서 그분께서 주시는 모든즐거움”(마흐모드: 보물)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습니다( 19:5-6).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환난과 유리의 고통을 당합니다. 백성들이 대적들의 손에 넘겨질 때에도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적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것은 스스로 크게범죄함”(하타아)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간음하다 벌거벗은 채로 발각된 음란한 여인처럼 사람들에게 수치와 업신여김을 당합니다.

예루살렘의 옷자락에까지 부정함의 증거가 명백히 남아 있기에 그는 자신의 죄를 결코 부인할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그의 종말을 걱정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몰락한 그를 위로해 주지도 않습니다.

 

 

 

2. 예루살렘의 심정이 되어 자신의 슬픔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소(9b-22절)

1) 하나님께 호소: 구원하여 주시옵소서(9b-11)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은 여호와께 호소합니다. 남편에게 간음의 죄를 지은 부끄러운 아내와 같은 처지이지만, 겸손하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하여 도우심을 구합니다.

원수가 예루살렘의 불행을 조롱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을 낮추시기 위해서라도 예루살렘의 환난을 살펴 달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이 함부로 성전에 침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성전의 거룩한보물들”(마흐모드) 함부로 약탈해 갔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보아서라도 원수들을 내쫓아 달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곤궁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보물”(마흐모드, 7절의즐거움 같은 단어) 팔아서 양식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9:16에서는 같은 단어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의미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가장 소중한 자녀를 팔아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있습니다.(참고- 2:20)

이들은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2) 사람들에게 호소: 나의 고통을 보라 (12-19)

12: 여인 예루살렘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돌아봐 달라고 합니다. “너희들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보라.”

여기에는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고통이 다른 어떤 도시가 당한 고통보다 더욱 극심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고통을 교훈 삼아 자신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13-15: 예루살렘 성이 멸망당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높은 곳에서 불화살이 떨어져 성의 중심부에 불이 타올랐습니다. 성의 주변에 그물을 쳐서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붙잡았습니다. 포로들의 목에 멍에를 묶어서 꼼짝할 없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군인들과 청년들을 죽이고 상처입히고 사로잡아 갔습니다.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은 주님이심을 인정합니다. “여호와께서주께서주께서…” 비록 예루살렘 성을 직접 공격한 것은 바벨론 군대이지만, 배후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16-19: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공격하시고 멸망시키셨다는 사실에내가 운다.” 예루살렘의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흘러 내립니다. 위로자이시며 생명의 회복자이신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이 득세한 상황에서 백성들은 외로움 가운데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방에 적대적인 세력들만이 가득하고,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 불결한 여인이 되어 수치심과 공포 가운데 떨고 있습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그분의 명령을거역하였기에”(마라) 당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출애굽 때에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거역하던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20:10; 1:26; 9:7 ). 예루살렘의 멸망은 출애굽 때부터 이어져 이스라엘의 오랜 거역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고통 가운데 눈물 흘리면서도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애가를 부르며 멸망을 초래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데로 나아가는 백성들은 참으로 복됩니다.

주변 다른 민족들에게 고통을 볼지어다하고 다시 자신의 원통함을 하소연합니다(참고- 12). 바벨론의 공격 앞에 애굽을 비롯한 다른 여러 민족들을 하나님 대신 헛되이 의지했지만, 그들은 자신을 배신하였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버리고 속이는 다른 나라들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자신의 책임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의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가운데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정당한 징계가 그들에게 내려졌습니다.

 

3) 다시 하나님께 호소: 원수에게 보복하소서 (20-22)

예루살렘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라아)!” 앞서 18절에서 주변 나라들에 고통을 볼지어다(라아)!” 외쳤지만 아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같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충분한 위로를 얻지 못한 예루살렘은 다시 하나님의 위로를 구합니다.

밖에서는 전쟁 가운데 원수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안에서도 죽게 됩니다. 아마 내에 전염병이나 기근이 있었던 같습니다. 실제로칼과 기근과 전염병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고통들입니다( 14:12; 24:10 ).

예루살렘은 간절히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예루살렘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수들은 예루살렘의 재난을 보고 기뻐합니다. 예루살렘을 직접 공격한 바벨론 뿐만 아니라, 모압, 암몬, 에돔, 블레셋 예루살렘의 멸망에 동조한 주변의 전통적인 적대 세력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46-51).

예루살렘은주께서 선포하신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예루살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들이 행한 악에 합당한 재앙을 내려 달라고 빕니다. “나와 같이, 내게 행하신 같이 달라고 구합니다.

예루살렘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은 단지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 심판으로 말미암아 대적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지는 불의가 초래된 넓은 결과에 대해서도 탄식하며 슬퍼합니다.

하나님께서주의 열방을 심판하심으로 세상에 공의를 세우실 , 예루살렘의 회복은 비로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슬퍼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이 예루살렘에게는 복이 됩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주시고자 고난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고난을 믿음으로 받을 있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변화된다면, 죄악과 불행으로 빠져들지 않을 있을 것입니다.

깊은 절망 가운데서도 예루살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간음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예루살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1절에과부같이 되었다 한탄하지만, 정말로 과부가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신부 예루살렘의 신랑이 되십니다.

애가의 곳곳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대목이 이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이들의 참된 회개와 소망에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도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자비하심과 의로우심을 의지합시다. 우리가 어떠한 죄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을 부르짖읍시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우리를 연단하셔서 의로운 자로 서도록 다듬어 가실 것입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7, 11)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
나는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할 때에 누구를 의지합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으십니까?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7, “즐거움”(마흐모드) = 10, 11, “보물”(마흐모드)

7절에즐거움 10절과 11절에 나오는보물 번역은 조금 다르지만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사랑하셔서 귀한 보물을 아낌없이 공급해 주셔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님께서 과거에 주셨던 보물들을 팔아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비참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호세야서 9:16 같은 단어를 자녀를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자녀 또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귀한 보물입니다.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태의 열매(마흐마드) 죽이리라.”

어쩌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물같은 자녀를 종으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참고- 2:20).

 

<참고> 예루살렘의 죄를 고백하는 여러 표현들

예레미야애가 1장에서는 예루살렘이 범한 죄를 여러 다른 단어들로 표현함으로 그들이 범한 죄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한 그들이 행하는 회개가 얼마나 철저하고 포괄적인지를 드러냅니다.

5, 14, 22, (페샤): 상대방의 정당한 소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 직분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반역하는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허물’(페샤) 무엇이니이까? 무슨’(하타아) 있기에 외삼촌께서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1:36)

너희는 삼가 (모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허물’(페샤)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 23:21)

8, 범죄하다(하타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 율법을 어기는 (성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나타내는 )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아온)과실’(페샤)’(하타아)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 34:7)

18, 20, 거역/반역하다(마라): 상급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거스르는 , 규칙을 고의적으로 어기는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거역하여’(마라).”(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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