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장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원수 되심을 슬퍼하는 노래
(찬송 236장)
2023-7-1, 토
맥락과 의미
2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원수가 되셔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땅을 황폐하게 만드신 것에 대한 탄식입니다.
1장에서는 과거의 영광과 대비되는 예루살렘의 현재의 비참한 상태를 호소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그러한 어려움을 일으키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고 설명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내 원수”라고 말하면서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1.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불타는 진노를 쏟으심을 슬퍼함(1-10절)
2. 이스라엘의 비참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임을 인정함(11-17절)
3. 온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18-22절)
1.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불타는 진노를 쏟으심을 슬퍼함(1-10절)
1절: 1장과 마찬가지도 2장도 “슬프다”(에카: 어떻게) 하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자신의 “딸”과 같이 소중히 여기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셨습니다.
“구름으로 덮었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임재하실 때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셨습니다.”(출 16:10) 평소에 성막에 임재하셔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심판주로 임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움”(티프엘렛)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성전을 내동댕이쳐서 부숴 버렸다는 말입니다. 또 그의 “발판”(하돔-레겔)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잊어버리셨습니다.
“아름다움”은 대제사장의 옷을 묘사할 때 쓰인 말이기도 합니다.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티프엘렛) 할지니.”(출 28:2) 하나님께 속한 것의 거룩한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발판은 지성소의 언약궤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대상 28:2).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셨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임재하지도 않으시고 예배를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철저히 하나님께 버려졌습니다.
2-5절: 하나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지”(하말) 않으셨습니다(2,7,21절). 진노를 쏟아 부으시며 권능의 손길로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십니다.
성채들을 “엎으시고”(나가),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습니다.”(할랄) 이 표현들은 출애굽 때 애굽에 “재앙”(네가, 출 11:1)을 내린다, 가나안 정복 때 이방 민족들을 “몰살시키신다”(할랄, 수 11:6)고 할 때 쓰이는 강력한 표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원수처럼 대하셨습니다.
그의 전능하신 “오른손”을 드셔서 지도자를 죽이시고, 불태우시고, 활을 쏘시며, 눈에 띄는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이시고, 모든 건물들을 부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오른손”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던 권능의 손이었습니다(출 15:6). 그런데 지금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학살과 파괴의 손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언약 백성을 향한 자비를 완전히 거두신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철저한 진노 앞에 시인은 두려워하며 부르짖습니다.
6-7절: 주님께서는 예배에 관련된 모든 거룩한 제도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성막과 성전, 거룩하게 구별하신 장소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안식일을 비롯해서 모든 절기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시간들도 잊혀지게 하셨습니다. 왕과 제사장 등 예배를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신 직분자들도 멸시하셨습니다.
왕과 제사장을 연결시켜 말하고,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말합니다. 그동안 유다에 왕을 세우시고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음이 암시됩니다.
우상숭배하며 더 이상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는 예루살렘은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조도 멸망하고, 성벽도 무너집니다.
8-10절: 하나님께서 시온의 성벽을 허무시기로 결심하시고 측량줄을 치십니다. 파괴할 부분을 정확히 계산하여 철저하게 무너뜨리십니다.
임금과 고관들은 다스릴 영토를 잃어버리고 민족들 사이에서 흩어져 버렸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선지자에게는 더 이상 묵시를 내려주지 않으십니다. 직분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권한을 남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리에서 내리시며 흩어 버리십니다.
시온의 원로들은 아무런 위로와 소망의 말도 하지 못한 채 다만 땅에 앉아서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베를 허리에 두르며 회개할 따름입니다. 처녀들도 앞날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습니다.
높은 자들부터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 절망과 애도의 행렬에 동참합니다.
2. 이스라엘의 비참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임을 인정함(11-17절)
11-12절: 시인은 극심한 슬픔에 눈이 상하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쏟아지는 듯한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고 칭하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곧 자신에게 닥친 불행으로 여기며 아파합니다.
백성들이 멸망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품 안에 안겨있는 자식이 “먹을 것을 달라”고 신음하며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13-14절: 이러한 예루살렘의 비참함은 바다같이 큽니다. 비교 대상이 없을 만치 전무후무한 비극입니다. 그 어떠한 사람도 세력도 고쳐줄 수 없는 철저한 멸망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 결정적 원인이 거짓 선지자들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거짓된 예언을 하였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렘 23:17)는 헛된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죄악을 은폐하였고 미혹케 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지금의 비참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15-17절: 이제 예루살렘은 모든 지나가는 자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영광이요, 온 세상의 기쁨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되었느냐?”고 박수치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합니다.
예루살렘의 원수된 자들도 함께 조롱합니다. “우리가 그를 멸망시켰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왔다”고 하며 스스로를 높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은 원수의 음모가 승리한 결과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비참 가운데 낮아진 것, 세상 사람들과 원수들이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이 부르짖음 가운데 소망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고통을 끝내시고 회복을 가져다 주실 수 있는 분 또한 하나님 뿐이시라는 신뢰가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심판 이전에 회복에 대한 말씀 또한 주셨습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원수들은)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렘 33:6,9)
심판의 계획과 말씀을 이루신 하나님은, 회복의 계획과 말씀 또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3. 온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18-22절)
18-19절: 예루살렘의 성벽조차 쉬지 않고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리라고 합니다. 모든 백성들로 주님께 마음을 치며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마음을 쏟으며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어미의 품 안에서 배고픔에 죽어가는 자녀들을 위해 손을 들고 간절히 기도하라고 합니다. 재앙을 주신 분이 주님이시니,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20-22절: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행하실 수가 있습니까? 식량이 없어서 여인들이 자기 자식을 먹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주께서 세우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남녀노소 모든 백성들이 칼과 기근으로 죽었으며, 그들의 시체가 길에 늘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진노에 날에 자비를 행하지 않으시고 주의 백성들을 사정없이 도살하셨습니다.
절기에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몰려들듯이, 두려운 일들이 사방에서 몰려 옵니다. 누구도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원수들이 나의 소중한 자녀들까지도 다 죽였습니다.”
“사방으로부터 오는 두려움”(마골 밋사빕)은 예레미야가 제사장 바스훌에게 공격당할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핍박한 유다 제사장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을 선언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렘 20:3). 예루살렘이 지금 당하는 처절한 심판은 하나님과 예레미야를 거역하며 지은 죄악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러 재능을 주시고 물질적 축복을 주신 까닭은 그것들을 잘 사용하여 주님을 예배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주신 은사와 직분을 낭비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흔드시고 빼앗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과 물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사용합시다.
애가의 시인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께 간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자비를 구하는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큰 영광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이 자비를 의지하여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죄용서를 구하고 도우심을 구합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7)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삶에서 열매맺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지금 내가 당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놓여 있음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으십니까? 나의 고통을 해결하여 주시길 간구해야 할 분은 누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