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에 순종함
(찬송 3장)
2023-12-12, 화
맥락과 의미
1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율법과 죄의 짐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쉼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초청 대상에는 예수님을 거역하는 백성과 바리새인, 서기관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주님을 믿고 나오면 죄용서 받고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초청을 거부하는 것을 12장이 보여줍니다. 안식일의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예수님을 재판에 넘기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쉼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이들은 쉼의 날(안식일)을 문제 삼아서 율법의 멍에를 계속해서 메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멍에를 강요합니다.
1. 자비를 베푸는 안식일을 회복하신 예수님에 대한 도전(1-14절)
2. 이사야 42장이 예언한 하나님의 택한 종(15-21절)
3. 성령님으로 귀신을 추방하는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사단 세력(22-45절)
4. 예수님의 참된 가족(46-50절)
1. 자비를 베푸는 안식일을 회복하신 예수님에 대한 도전(1-14절)
1) 성전보다 큰 대제사장: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을 변호(1-8절)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배고픈 사람은 언제든지 남의 밭의 이삭을 따 먹으며 생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수확하듯이 낫으로 잘라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신 23:25).
바리새인이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보고서는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허용되지 않는 일)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2,3,10,13절).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3,5절)는 말로서 바로 가르칩니다. 그들이 성경 자구에는 익숙하면서도, 성경의 정신은 깨닫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군인들과 함께 사울을 피해 다닐 때, 원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성전의 진설병을 먹었던 성경의 기록(사무엘상 21:4)을 그리스도는 인용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이 굶어 죽지 않도록 율법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또 제사장은 안식일에 일하도록 만드셨다는 성경(민 28:9,10)을 주님은 언급하십니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아야 하는 날이지만,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아침 저녁으로 각각 두 마리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은 단지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제사장들은 힘든 노동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호6:6)는 하나님의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7절)이라고 한탄하십니다. 안식일에 불쌍한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가르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지키기만 하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바꿀 수도 있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뜻을 더 충분히 가르치고, 또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비벼 먹는 것을 기뻐하는 그런 자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 성수” 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주일은 쉼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물질로 섬깁시다.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이 바로 우리 가족이요, 그 가운데서도 나이 드신 부모님입니다.
2) 안식일에 손이 마비된 사람을 고치심(9-21절)
같은 안식일에 이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회당에 가셨는데 거기 손이 마비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하면 고발하기 위해 감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하십니다.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12절) 이 말씀은 “너희는 새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반복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사람은 새나 양보다 귀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고치십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 싫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예수님을 더 따르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2. 이사야 42장이 예언한 하나님의 택한 종(15-21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아시고 피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사람들이 죽이려고 할 때 피하라고 가르치신 대로 자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10: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겸손히 섬깁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자구를 지키며 종교적 행동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약한 자의 재산을 빼앗는 일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종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감추고 섬기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널리 전파되어야 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육체적 질병을 고쳐주는 분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으로 살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42:1-3에서 예언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성취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택함을 받은 종의 신분으로 다음과 같은 일을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이루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 온 세계를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시는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18절).
셋째,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분(11:29)이라서 다투고 소리지르면서 사람들을 굴복시키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거역하고 소송하려 할 때도 조용히 자리를 피하십니다.
넷째, 예수님은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라도 오래 참으시면서 회복시켜가십니다. 심판날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점점 커져갑니다.
다섯째, 온 세계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소망할 것입니다(18,21절).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소망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다스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 안에서 사랑의 나라를 세우시고 다스리십니다.
원수 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부족함을 오래 참으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합시다.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는 연약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의롭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안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합시다.
3. 성령님으로 귀신을 추방하는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사단 세력(22-45절)
1) 바알세불 논쟁(22-30절)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예수님이 바알세불, 즉 귀신의 대장인 마귀를 힘 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했습니다(24절).
예수님께서는 악한 사단의 나라에서도 그렇게 자기편끼리 쫓아내며 분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내가 행하는 이 기적 가운데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와 있다. 귀신보다 더 강한 귀신의 대장 마귀를 내가 결박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귀신과 더러운 영, 악한 생각, 악한 세력을 우리 가운데서 몰아내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온갖 더러운 생각을 버립시다. 우리의 시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성령께서 성도를 회복하고 거룩한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 비난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합시다.
2) 성령모독죄 (31-37절)
바리새인에게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은 인자(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도전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은 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회개하게 하고 변화시키십니다.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성령님을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눈앞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악한 생각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반역하는 자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합니다(32절). “성령모독죄”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는 모든 죄가 성령모독죄는 아닙니다. 베드로도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그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과 달리 예수님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서 넘어진 것입니다.
성령모독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런 저주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합시다. 말씀에 두려움으로 순종합시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34절). 세례자 요한이 전에 그들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나오는 바리새인들(3:7)에게 한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심판할 것(“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3:12)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이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심판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33절). 행동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압니다. 산상수훈 결론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지를 보고 판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7:18).
사람들이 하는 말은 “말이라는 행동”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쌓인 생각이 말이라는 행동으로 밖으로 나옵니다. 말을 통해 영혼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로써 옳다고 인정받기도 하고 정죄 받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선한 일을 악하다고 말하는 자의 마음은 악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일을 선하다고 인정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게 선한 말을 하는 선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를 통해 하시는 선한 일들을 악평하지 맙시다.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성도를 격려합시다.
3) 표적을 구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38-45절)
(1) 요나보다 더 크신 분: 참 선지자(38-41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이 많은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도 또 표적을 구합니다. 그리스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막 8:11). 하나님의 아들을 의심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표적을 구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자기를 과시하기나 하듯이 표적을 행하지 않습니다(4:7).
예수님은 “오직 요나의 표적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3일 동안 무덤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부활하시는 그 표적을 보여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기적은 십자가의 표적을 바라보게 합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사람을 용서하여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표적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그 순간에 십자가의 구원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과거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표적을 보고 회개했습니다. 심판날에 니느웨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바리새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2)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 지혜로운 왕(42절)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들으러 온 남방 여왕은 예수님의 지혜를 배우고도 믿지 않는 이 시대 사람을 정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크신 지혜로운 왕이십니다.
(3) 귀신을 추방하시는 분(43-45절)
44절, “집”은 사람의 영혼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세우는 것을 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더 비참합니다. 영혼이 약간 청소된 그곳에 더 많은 귀신이 몰려와서 악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복음의 빛을 받았으니,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계속 영적인 무장을 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하고 순종합시다.
4. 예수님의 참된 가족: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46-50절)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고 손가락질받는 제자들을 형제자매라고 크게 높여주십니다.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 나라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이 세상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더욱 힘씁시다. 복음에 순종하는 새로운 공동체로 살아갑시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말씀으로 다음을 마음에 되새깁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다 이루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신 제사장이십니다. 예배의 날인 안식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즐깁시다. 주일을 율법적으로 지키지 맙시다.
둘째,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지혜롭고 크신 참된 왕이십니다. 질병을 정복하는 왕이십니다. 낮아지셔서 약한 자들을 만지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도 겸손히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답게 말씀을 배우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마귀의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우리를 그리스도는 마귀의 권세로부터 계속 해방하고 계십니다. 그 나라의 승리를 확신하며 넉넉한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시기심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으려 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셋째, 예수님은 요나보다 크신 참된 선지자이십니다.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표적인 십자가의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신기한 표적을 구하면서 종교적 만족이나 실리를 구하는 차원에서 벗어납시다. 자신의 죄를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매일 죄용서 받읍시다. 말씀대로 계속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삽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쫓아내다(엑발로)
12장에서는 “쫓아낸다”(엑발로)는 말이 많이 반복됩니다 (20, 24, 26, 27, 28, 35절).
<참고> 그리스도는 제사장, 왕, 선지자
“더 큰 이가 여기 있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제사장입니다(6절). 요나보다 더 큰 선지자가 여기 있습니다(41절). 솔로몬보다 더 큰 왕이 여기 있습니다(42절). 하나님의 아들로서 제사장,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합시다.
<참고> “내 사랑하는 아들”(3:17)과 “나의 사랑하는 자”(12:18)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언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성령님께서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습니다(3:16-17).
12:18-21은 구약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세례 때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메시아로 임명받으신 아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메시아로서 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