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장
십자가에 못박히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찬송 105장)
2023-12-18, 월
맥락과 의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신비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서를 옛날 이야기처럼 읽으면 곤란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보여주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계시면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게 됩니다. 기록된 말씀을 읽고 이해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평이하게 이야기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제자를 만났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1. 변화산 사건: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함(1-13절)
2. 간질에 걸린 아들을 고쳐 주심: 믿음을 요구하심(14-20절)
3.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심(22-23절)
4. 성전세 반 세겔을 내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심(24-27절)
1. 변화산 사건: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함 (1-13절)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1절). 엿새 후는 7일째, 하나님을 만나는 안식일을 상징합니다. 높은 산은 첫 율법을 주셨고 언약을 맺었던 시내산 사건이 새롭게 반복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말씀을 다 들은 다음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피를 언약의 말씀에 뿌려서 언약을 맺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 후 모세와 아론은 70장로를 이끌고 시내산 중턱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함께 먹고 마시며 성찬을 행했습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그리스도는 높은 산에서 제자들의 경배를 받으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2절). 다니엘서 7장, 10장에 나오는 “빛난 옷을 입은 인자 같은 이”와 비슷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단 7:9, 13, 10:5,6). 다니엘이 말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요한에게 나타난 바로 그 분입니다(계 1:12-16).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지금도 영으로 함께 계시고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이 무서워 엎드렸을 때 예수께서 나아와 손을 대시면서 “일어나라.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얼굴이 번개불 같은 분(단 10:6)이 나타났을 때 다니엘은 엎드렸습니다(단 10:9). 그분이 다니엘을 만질 때(단 10:9, 16, 18) 그는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구름 타고 오실 인자가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했습니다(3절). 모세는 구약의 율법,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이기 때문에 구약 전체, 옛 언약 전체가 예수님을 중심에 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신비한 일 앞에 제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의미는 “엘리야가 와서 여호와께서 이루실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할 것”이라는 말라기의 예언(말 4:5)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고 했습니다 (4절). 여기는 시내산, 초막은 성막으로 연결됩니다. 베드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났던 그 장면을 생각하고 모세에게 계시하셨던 성막을 짓자고 하는 것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5절에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는데, 출애굽기 24:15-16에 시내산 언약을 위해 모세가 산에 오를 때 구름이 산을 덮고 머물렀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덮었다는 것은 성전에서 구름이 덮은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컸기 때문에 가리기 위한 것입니다. 3절에 “더불어 말하다”는 출애굽기 34:35에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하러” 들어간다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시내산의 영광이 반복된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모세가 성막에서 나올 때 빛나는 얼굴의 영광을 백성들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제자들은 모세보다 더 뛰어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얼굴의 영광을 가려줄 성막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예수님, 모세, 엘리야 세 분이 있었는데,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구름이 덮었습니다. 그때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5절). “내 사랑하는 아들”은 구약에서 왕으로 임명을 받을 때 하시던 말입니다(시 2:7).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은 이 말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다시 배우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 기뻐하는 자”는 이사야 42:1에 고난받는 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신 표현입니다.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는 신명기 18:15에서 모세 다음의 예언자에 대한 예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라는 것을 점점 알아 갔습니다. 그래서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7절)는 두려워하는 다니엘에게 인자 같은 이가 했던 말입니다(단 8:18, 10:19). 제자들은 성경에서 읽었던 다니엘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자신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깨닫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 하셨는데 그 말은 “부활하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신 예수님(9:27)은 그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오늘도 우리가 체험하도록 손을 잡고 일으켜 주십니다.
9절에,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6장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 다음에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분임을 알기 전에, 그 분이 십자가 고난을 받아야 한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기 전에 영광의 복음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11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는 말씀은 말라기 4:5-6에서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로서 먼저 왔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들 원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인자,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12절).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받으실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지자 일을 하면서, 고난받을 것입니다.
2. 간질에 걸린 아이를 고쳐 주심 (14-20절)
예수님께서 높으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직후에 하신 일은 간질에 걸린 한 아이를 고쳐 주는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와 죄악을 다 담당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거창한 일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셔서 이런 작고 비천한 자들을 돌보시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나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렇게 세심하게 보살피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모릅니다.
제자들이 간질에 걸린 아이를 고쳐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17절). 예수님의 제자를 포함한 그 시대의 사람 전체가 그렇게 악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상태입니다.
다시 20절에서는 제자들이 “믿음이 작은” 것 때문에 치유의 능력을 행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제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6:10), 풍랑이 일 때 두려워하던 제자들(8:26), 믿음이 작아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14:31).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믿음 없음을 두고 말하기도 하셨습니다(16:8).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고, 이미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셨습니다(10:1). 이 사실을 신뢰하는 단순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계속 제자를 가르치셨고, 지금도 교회를 통해 우리들을 가르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제자로서 주신 사명을 배워서 믿음으로 받고,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감당해 냅시다.
3.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다시 예고하심 (22-23절)
16장에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고 죽었다가 부활해야 하심을 예고하십니다(17:9,22-23).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높으신 그분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사실을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잘 믿지 못해서 간질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기도 하고, 또 예수님이 고난받아서 결국 죽임당하셔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심히 근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번갈아가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보인 모든 기적과 가르침은 십자가와 부활로 요약되고 완성됩니다. 제자들이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믿게 하십니다. 고난과 영광 중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있게 가르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순종할 때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 두 가지를 함께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는 찬란한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얻으려면 십자가의 고난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감당합시다.
4. 반 세겔 성전 세금을 내심 (24-27절)
반 세겔 받는 자들은 성전세 걷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24절). 왕은 자기 아들들에게는 세금을 면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26절). “면한다”는 “자유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 “아들”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아들들”입니다. 12:1-8에서 제자들도 안식일의 주인인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일에 일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제자들도 성전세로부터 자유로운 권한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거룩한 일로 부름을 받은 제사장들입니다. 성전세를 내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거침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수님은 세금을 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일에 걸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양보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예수님께서는 일상적 일에서도 이웃의 유익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 시대의 목사들도 사람들이 복음으로 오는 데 방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합니다. 27절에, 물고기를 잡아 그 안에 있는 돈을 베드로에게 “가져다가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기적으로 백성을 먹이실 때 예수님이 빵을 제자들에게 “가지사 주셨다”(14:19,15:36)는 말에 반복된 단어입니다.
지금도 교회와 목사가 복음을 위해 세금 낼 돈을, 섭리 가운데서, 오병이어 기적, 물고기의 기적을 일으켜서 공급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신 분임을 산 위에서 증거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을 향해 나가기 위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비밀 가운데 있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영광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덮으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거룩한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받고 죽어서 부활했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영광과 재림 후의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 가운데서는 고난과 위험이 있습니다.
어려움 앞에 예수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을 가집시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합시다.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믿음이 적은 자가 되지 말고 고난 가운데 주님을 의지하여서 기적적인 체험을 합시다. 믿음으로 살 때 일상에서 기적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말하다”(쉬-라레오)
“말하다”(쉬-라레오)는 출애굽기 34:35에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하러” 들어간다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참고> 26절, “면한다”(엘류떼로스)
26절, “면한다”(엘류떼로스)는 것은 세금을 내지 않을 “자유하다”는 뜻입니다. 신명기에서는 노예인 동료 히브리인을 자유하게 해 주는 것에 쓰인 말입니다(신명기 15:12,13).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주인이요,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므로 세금을 낼 의무로부터 자유로우십니다.
<참고> 27절, “가져다가 주라”(람바노, 디도미)
27절에, 물고기를 잡아 그 안에 있는 돈을 베드로가 “가져다가 주라”(람바노, 디도미)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기적으로 먹이실 때 빵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지사 주셨다”(14:19,15:36)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