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불가사의한 존재’
귀하는 X(옛 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올렸더군요. 제목이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 책임’인데, 이 글을 읽고 난 나의 첫 소감은 ‘우리 대통령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귀하가 올린 긴 글에 대하여, 나 역시 긴 글로 응대할까 하오니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먼저 귀하는 “여당(與黨)의 사전적 의미는 더불어 함께 하는 무리”라면서 “여당은 이미 집권에 성공하여 주어진 공식 권력으로 주장 아닌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대신 국가의 미래와 온 국민의 삶을 통째로 책임져야 하며, 결과로 증명된 성과를 통해 재집권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조정에서 밀려나 들판에서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집단을 야당(野黨)이라 한다. 야당은 여당과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 공격이 중요하지만 여당은 주어진 권력으로 책임을 지는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더군요.
정치 언어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인 '여당'과 '야당'의 어원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본인의 정치적 논리를 정당화하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과 정치제도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역시 지난번 고전(플라톤) 왜곡 못지않게 황당한 궤변입니다.
귀하는 여당의 '여(與)'를 "더불어 함께 하는 무리"라며 마치 상생이나 연대의 의미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자의 자형(字形)과 정치사적 맥락을 무시한 얄팍한 아전인수입니다. 이 주장이 왜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터무니없는 왜곡인지, 그 본질을 짚어 드리겠습니다.
1. '여당(與黨)'의 진짜 사전적·역사적 의미
한자 '줄 여(與)' 자는 준다, 참여하다, 편들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정치 맥락에서 여당(與黨)이란 '정권을 잡은 편(정부)과 뜻을 같이하여 돕는 정당'을 뜻합니다. 귀하가 주장하는 "더불어 함께하는 무리"가 아니라, 철저히 ‘권력을 쥔 주체와 한편이 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동양의 정치학에서 '당(黨)'은 본래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뭉친 패거리를 뜻했습니다. 따라서 여당은 '집권 세력에 붙은 편당'이라는 현실 정치적 의미가 강합니다.
2. '야당(野黨)'의 진짜 의미 : 들판이 아닌 '재야(在野)'
귀하는 야당을 "조정에서 밀려나 들판에서 노력하는 집단"이라며 은근히 비주류나 소외자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이 역시 대단히 왜곡된 시각입니다.
'들 야(野)' 자는 자연의 들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중심 바깥에 있는 '민간(民間)' 또는 '재야(在野)'를 뜻합니다. 즉, 야당은 '들판에서 헤매는 무리'가 아니라,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해 공식적인 국가 권력 기구 바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헌법적·민주주의적 책무를 갖는 주체입니다. 야당을 '들판으로 밀려난 자들'로 폄하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상호 견제 원리를 부정하는 자기 본위적 태도입니다.
요컨대 귀하의 발언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본인 소속 정당의 이름에 들어간 '더불어(與)'의 이미지를 여당이라는 단어에 억지로 끼워 맞춰, 집권 세력의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려는 얄팍한 언어 희롱에 불과합니다.
단어의 역사적 맥락과 정밀한 의미를 거세한 채, 오직 정치적 수사(Rhetoric)로만 언어를 대하는 지도자의 가벼움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고전(플라톤)을 오독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가 헌정 체제의 핵심인 여(與)와 야(野)의 개념을 마치 '서당 훈장 천자문 훈독'하듯이 자의적으로 풀이하는 모습은 실소를 넘어 탄식을 자아내게 합니다.
공적 언어를 다루는 국정 최고 책임자가 단어의 역사적 맥락이나 헌법적 가치는 외면한 채, 오직 자기 진영의 논리에 맞춰 단어를 '조립'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3. '우리 진영'이 아닌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
다음으로 귀하는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 대결과 배제보다 끊임없는 대화 소통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고 반발을 최소화하는 '큰 그릇'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타벅스를 향한 거친 공격(5월 중순)이나 투표 기권자를 향한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한다"는 비하성 투표 독려(5월 말)는 먼 과거 야당 시절의 일이 아닙니다. 권력을 잡은 현재의 대통령으로서, 그것도 불과 20일도 안 되는 아주 최근의 시점에 쏟아낸 생생한 날것의 언어들입니다.
야당 때 다르고 집권 후에 달라지는 것은 세속 정치인의 흔한 대응책이라고 치부하겠지만, '동일한 시공간'에서 한쪽 손으로는 반대파를 공격·매장하며 재정 유동성을 무책임하게 확장해 표를 사려 하면서, 다른 쪽 입으로는 고전의 외피를 빌려 "포용과 배려, 국민 전체"를 운위하는 모습이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말이 달라지는 것은 다반사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일정한 간격이 있는 법입니다.
4. '깨지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
귀하는 또한 “강한 힘이라면 모든 것을 휩쓰는 격류보다는 모든 것을 담아 정화하는 큰 바다가 더 좋겠다. 불가피하게 깨고 나가야(돌파)한다면 깨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 공감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깨지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 전임자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한 무차별적인 정치 보복은 뭐라고 변명하시렵니까? 허심탄회하게, 아니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귀하는 계엄이 정말 내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귀하도 아마 속으로는 내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계엄은 명백한 ‘실수’였습니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중책인으로서 그 실수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계엄은 실책입니다. 가벼워 보이지만 비유로 말하자면 계엄은 화투 용어로 ‘자뻑’, 바둑 용어로 ‘덜컥수’였습니다. 법률 용어로는 ‘직권남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탄핵당하고 파면당한 것 아닙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며, 의외로 많을지 모릅니다.
다음으로 북에 무인기를 보낸 것으로 외환죄를 씌워 무려 30년 형을 추가했습니다. 대통령이 무인기 보내면 외환죄 30년 형이고, 도지사가 돈 보내면 조작 기소입니까? 그럼에도 내란으로 무기징역, 외환으로 30년, 이렇게 해 놓고서 ‘깨지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옵니까? 이는 경악할 수준의 자가당착입니다.
끝으로 귀하는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자는 눈앞의 이익만 좇는 기회주의자가 되고 현실이 없는 이상주의자는 해결책 없이 편 가르기에 집중하는 무능한 선동가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귀하는 어떠신가요? 기회주의자입니까, 아니면 무능한 선동가입니까? 나는 둘 다 아니라고 봅니다. 귀하야말로 기회주의자인 동시에 무능한 선동가의 자질을 완벽하게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모순되는 두 역할을 훌륭히 다 해내시는 우리 대통령, 실로 ‘불가사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