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라 석굴군과 불교미술의 금자탑 아잔타 석굴군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Maharashtra)에 있는 인구 100만 정도의 데칸고원 고대도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는 인도 중부관광의 거점 도시로 근처에 수많은 유적들이 있는데 인도 마지막 제국인 무굴제국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황태자 시절 이곳 태수로 부임하였던 데서 도시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쿨다바드(Khuldabad)에 있는 아우랑제브가 왕비를 위하여 타지마할을 본 떠 17세기 중반에 건축하였다는 능묘(陵墓)를 보러갔는데 비비 카 막바라(Bibi Ka Maqbara)라고 한다.
아름다운 이 건물은 타지마할(5대 황제 샤자한의 왕비 능묘)과 꼭 닮아 작은 타지마할이라고도 불린다는데 크기는 30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능묘였다.
아름다운 능묘 ‘비비카 막바라’ / 물레방아 정원 판차키 바바사
인근에 있는 3~7세기에 건축된 수많은 석굴사원과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Fort)는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었고, 물의 정원 혹은 물레방아 정원이라고 부르는 인도 중세의 관개시설 겸 밀(麥)을 도정하던 물레방아인 판차키 바바사(Panchakki babashah) 등을 둘러보았는데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순박한 인도인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우랑가바드 북서쪽 20km 지점에 있는 엘로라 석굴군은 바위산 중턱에 2km에 걸쳐 석굴사원 34개가 조성되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각각의 석굴은 앞 땅바닥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1~12 석굴은 6~7세기에 조성된 불교석굴로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고, 13~29 석굴은 힌두교 석굴, 30~34 석굴은 8~10세기 가장 나중에 조성된 자이나교 석굴이다. 모든 석굴들은 보기에는 비슷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시는 신이 다른데 아름다운 부조들로 채워져 있고 그 중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제16 힌두교 석굴인 카일라쉬 사원(Kailash Temple)이다.
카일라쉬 사원(Kailash Temple)이 다른 석굴과 다른 것은 단순히 굴을 판 것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파고 들어가(하늘이 보이도록) 바위산 자체로 사원을 조성하고 다시 그 뒤의 바위벽을 파내어 수많은 석굴을 조성한 것이다. 사원 앞쪽의 가로길이가 46m, 사원 뒤쪽 암벽 높이가 33m, 입구에서 안쪽까지 54m나 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본전(本殿)건물은 물론 벽면들마다 가득 채워진 부조들이 눈부시고 사원의 탑 뒤에는 거대한 코끼리 상도 우뚝 서 있는데 모두 그 자리에 있던 돌을 파내고 조각하여 건물과 조형물들을 만들었다니.....
우리는 그저 훌륭한 예술품으로 감상하며 감탄하지만 바위산을 통째로 파내고 건물은 물론 각종 조각들을 새기느라 수많은 석공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곳에서 고생했을까 경외감이 든다.
엘로라 석굴군(34개의 석굴) / 산을 통째로 파낸 16굴 카일라쉬 힌두사원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6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잔타 불교 석굴군은 1819년,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 일행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근 1,200여 년 동안 밀림에 묻혀 잊혀졌던 아잔타 석굴은 호랑이가 맞은편 절벽 밑으로 사라져서 내려가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나무와 가시덤불로 뒤덮인 어마어마한 석굴군(石窟群)이 있었고 비로소 세상에 다시 알려졌던 것이다. 아잔타는 엘로라 석굴군보다 5~6세기(世紀) 앞서 조성된 석굴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버스는 황량한 데칸고원을 달리는데 텅 빈 뱃속에다 날씨가 뜨거우니 금방 녹초가 된다. 4시간 쯤 달렸을까 버스는 메마른 평원에서 갑자기 수풀이 무성한 계곡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 아래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몇 개의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나 하나만 달랑 내려놓고 가버린다. 그곳에 아잔타 석굴사원 매표소가 있었는데 마을까지는 다시 4km정도 더 가야한다. 입장료는 255루피.
와고라강 계곡이 반원형을 그리며 흐르는데 바깥쪽 절벽, 높이 70m의 암벽에 조성된 30개의 불교석굴군은 BC 2세기부터 BC 1세기까지 조성된 전기 석굴군과 AD 5세기에서 AD 7세기까지 조성된 후기 석굴군으로 나누어지는데 총 길이는 1.5km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석굴은 BC 2세기에 조성된 제10석굴이라고 하며, 이 아잔타 불교석굴군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이자 초기 인도 불교미술의 금자탑(金子塔)으로 불리어진다.
와고라 강변의 아잔타 석굴군(30개) / 무릎 꿇은 코끼리가 있는 석굴 입구모습
이 불교 석굴군(石窟群)은 초기 불교의 역사와 불화(佛畵)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전기 석굴군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오직 수행의 공간으로, 5세기 이후인 후기 석굴군부터 불상을 모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인도 불탑(佛塔)의 원조인 다고바(Dagoba)의 원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각과 벽화들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과 현란한 색채의 프레스코화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사진도 못 찍었다. 입구에 200루피 짜리 가마도 있었는데 타고 올걸 그랬다는 후회도 든다. 뱃속은 텅 비었는데 목으로는 콜라 밖에는 아무것도 넘길 수 없었는데 마침 매표소 인근에 팝콘을 팔고 있어 깔대기 모양의 신문지 봉지에 담아주는 것을 사서 한주먹 입에 넣었지만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메마른 입속에서 가까스로 녹여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석굴사원 귀퉁이에 앉아 팝콘 깔대기를 옆에 놓고 콜라를 마시는 사이 랑구르 원숭이가 옆에 세워놓은 팝콘을 낚아채 도망친다. 그것을 빼앗으려 한 무리의 원숭이 떼가 뒤를 쫓고.... 참 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잔타 석굴 내부 모습 / 아잔타의 자랑 와불상과 현란한 조각과 그림으로 채워진...
천신만고 쉬고 또 쉬며 그래도 악착같이 마지막 석굴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입구로 나와 나무그늘에서 헉헉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제법 또렷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은 아시라프 알리(Asiraf Ali)로 부산에서 1년 동안 여행사 가이드를 했다고 하며 한국 명함도 보여 주는데 매우 반가웠다. 이름이 알리인 것으로 보아 무슬림인데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정직하다고 평판이 좋다.
날씨가 너무 덥다고 했더니 지금이 장마철 직전으로 가장 더울 때라며 한낮 기온은 섭씨 38~40도 정도를 오르내린다고 하며 자신도 곧 살기 좋은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자 가는 방법이 아우랑가바드로 되돌아가서 비행기로 뭄바이로 간 다음 한국으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지금 당장 그 루트를 밟고 싶다고 했더니 택시를 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보더니 지금 바로 가자고 하여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타고 4km 떨어진 마을로 왔다.
아우랑가바드 공항까지 택시로 3시간 정도 걸리고 차비는 1,200루피(3 만원)를 달라고 한다. 당장 그렇게 하자고 흥정이 되어 알리에게는 고맙다고 100루피와, 입맛이 없어 한 개비만 피우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갑과 라이터까지 주었더니 입이 헤벌어진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택시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공항에서는 곧바로 뭄바이 행 비행기가 없어 네 시간이나 공항로비에서 앉아 기다렸는데 시원하니 그래도 살 것 같다. 또 콜라만 마셔댔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서남쪽으로 350km 날아가면 인도의 관문이라는 뭄바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