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와 8년을 살다가 64세에 아내 곁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려 했는데, 집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나는 현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초인종을 눌렀다. 예전 같았으면 아내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 “또 열쇠 안 챙겼어요?” 하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문 안쪽은 조용했다. 3분쯤 지나서야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문틈 사이로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올해 서른일곱. 내가 기억하던 젊은 얼굴이 아니었다. 눈 밑은 푹 꺼져 있었고, 관자놀이 쪽에는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고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문을 더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 위로 한약 냄새와 오래 끓인 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예전에 거실 한가운데 있던 낡은 소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병원 침대처럼 생긴 전동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고, 얼굴은 반쪽처럼 말라 있었다. 얇은 이불 아래 몸은 너무 작아 보였다. 몇 초 뒤에야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내 아내였다.
그녀는 천장을 보고 있다가, 문소리를 듣고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였다. 나를 몇 초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천장 쪽으로 돌렸다. 왼손은 굳은 듯 말려 있었고, 오른손은 침대 옆으로 내려와 손가락만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캐리어 바퀴가 현관 턱에 걸려 끼익 소리를 냈다. 아들이 말없이 다가와 캐리어를 들어 벽 쪽에 세웠다. 움직임이 이상하리만큼 조심스러웠다. 마치 집 안의 작은 소리 하나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았다.
아들이 물 한 잔을 내밀었다. 얇은 종이컵이었다.
“엄마 작년에 두 번 쓰러졌어요.”
그의 목소리는 너무 평평했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병원 기록을 읽는 사람 같았다.
“뇌졸중이었어요. 왼쪽 몸을 거의 못 써요. 말도 못 하고요. 사람은 알아보는데, 말을 못 해요.”
나는 종이컵을 받아 들고도 마시지 못했다.
아들은 거실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말했다.
“아버지 방은 그대로예요. 엄마가 안 치웠어요. 제가 지난주에 이불은 햇볕에 말렸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이상하게 찌그러졌다.
나는 천천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내가 8년 전 떠났던 그날과 거의 같았다. 화장대 위에는 내 면도기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래전에 사둔 헤어토닉 병이 반쯤 남아 있었다. 병 안의 액체는 이미 굳어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은 2015년 8월에서 멈춰 있었다. 내가 그 집을 나간 달이었다.
침대 위 이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났다. 그런데 모서리는 오래 빨아 희게 닳아 있었고, 몇 군데는 천이 얇아져 빛이 비칠 정도였다.
나는 그 이불을 손으로 만지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은 아들이 차렸다.
데친 브로콜리 한 접시, 계란찜 한 그릇, 아주 묽게 끓인 죽. 그는 먼저 아내에게 턱받이를 해주고, 숟가락으로 죽을 조금씩 떠먹였다. 아내의 왼쪽 입가로 죽이 흘러내리면, 작은 수건으로 세 번 네 번 부드럽게 닦아냈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나를 보지 않았다. 아내도 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계속 숟가락 끝과 그릇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아주 정밀한 작업을 하는 사람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예전에 밥을 잘했다. 내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도 콩나물국을 데워줬고, 주말이면 생선조림을 했다. 내가 “간이 좀 세다”고 투덜거리면, 그녀는 말없이 물 한 컵을 내 앞에 놓았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자기 입가에 묻은 죽도 닦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쯤, 옆방에서 희미한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다. 아들 방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컴퓨터 화면의 푸른빛이 새어나왔다.
아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병원 영수증과 약국 봉투, 재활센터 안내문이 잔뜩 펼쳐져 있었다. 가장 위에 놓인 종이에 숫자가 보였다.
월 재활 돌봄 비용 54만 원.
침 치료 1회 2만 7천 원.
약값 내역은 작은 글씨로 빽빽했다.
아들은 휴대폰 계산기 앱을 켜놓고 숫자를 하나씩 눌렀다. 숫자 하나를 누르고, 한참 멈췄다가, 다시 하나를 눌렀다.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문밖 어둠 속에 서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그때 문득 한 달 전 일이 떠올랐다.
내연녀가 내 앞에 부동산 계약서를 밀어놓던 날이었다. 그녀는 내게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계약서 한쪽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그어놓았다.
“오빠, 우리 같이 산 게 8년이야. 내 딸 집 장만하는데 당신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빨간 동그라미 안에는 부족한 계약금이 적혀 있었다.
6,240만 원.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내가 당연히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갈 곳이 없어져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은행에 갔다.
창구에서 지난 8년간의 거래 내역을 뽑았다. 내연녀에게 보낸 돈의 기록은 길게 이어졌다. 명품 가방, 병원비, 여행 경비, 생활비, 딸 학원비. 가장 최근에는 안마의자를 산다며 190만 원을 보낸 기록이 있었다.
한참을 넘기다 보니 손끝이 식었다.
아내에게 보낸 돈은 단 한 줄뿐이었다.
2015년 9월, 110만 원.
메모에는 “생활비”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이 내가 집을 나간 첫 달이자, 마지막 달이었다.
나는 은행 밖 벤치에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8년 동안 나는 한 여자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돈을 보냈고, 나를 기다리던 아내에게는 단 한 번의 생활비를 끝으로 등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과 아내는 병원에 가고 없었다. 아들이 오늘 월례 재활 치료가 있다고 했다. 나는 괜히 집 안을 서성이다가 베란다로 나갔다.
화분 속 스킨답서스는 반쯤 말라 있었다. 물을 주려다 발끝에 있던 낡은 양철 상자를 건드렸다. 상자가 넘어지며 안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그 안에는 오래된 통장이 있었다.
명의는 아내 이름이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통장을 펼쳤다. 마지막 입금은 2021년 3월 15일, 51만 원. 잔액은 10만 6천 원 남짓이었다. 그전 기록에는 몇 달에 한 번씩 작은 돈이 들어와 있었다. 10만 원, 20만 원, 많아야 30만 원. 메모에는 “손뜨개”, “청소”, “반찬값”, “부업”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최근 1년 기록은 거의 출금뿐이었다.
매달 정해진 날, 54만 원씩 재활센터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상자 맨 밑에는 작은 쪽지도 있었다. 글씨가 삐뚤빼뚤했다. 아마 오른손이 불편해진 뒤, 힘겹게 쓴 글씨 같았다.
“국동이 전세금 때문에 큰언니에게 1,110만 원 빌림. 450만 원 갚음. 670만 원 남음. 내년 한식 전까지 갚기.”
나는 그 쪽지를 들고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피우지는 않았다. 그냥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끝이 타들어가는 걸 바라봤다. 재가 떨어져 바지 위에 앉았지만, 털어내지도 못했다.
그날 점심 무렵, 아들이 아내를 업고 돌아왔다. 셔츠 등판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래되어 자주 멈춘다며, 오늘도 계단을 몇 층 걸어 올라왔다고 했다.
아내는 나를 보더니 목 안쪽에서 “허어, 허어” 하는 소리를 냈다. 오른손을 힘겹게 들어 주방 쪽을 가리켰다.
아들이 그녀의 손짓을 보고 말했다.
“엄마가 아버지 생선머리 두부탕 좋아한다고, 냉장고에 생선머리 사다 놨대요. 해드리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8년 동안 다른 여자 집에서 밥을 먹고, 다른 여자 딸의 집값을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내는 말을 잃은 몸으로도 내가 좋아하던 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뽀얗게 끓인 생선머리 두부탕이 올라왔다. 아들은 먼저 아내에게 죽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그리고 내 앞에 국 한 그릇을 놓았다.
국물이 너무 뜨거워 김이 안경을 덮었다. 나는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닦고 또 닦았다. 사실 김은 이미 사라졌는데, 나는 계속 닦고 있었다.
밤이 되자 나는 내연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집 문제는 못 도와줘. 미안하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3분 뒤, 휴대폰에 은행 알림이 떴다.
내 계좌에서 670만 원이 이체됐다. 수신인은 아들이었다. 잔액은 16만 원 정도 남았다.
메모에는 네 글자만 적었다.
“장보기, 보양식.”
잠시 뒤 거실에서 아들 휴대폰 알림음이 들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굳어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자격이 없었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에는 오래된 그릇 몇 개가 쌓여 있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틀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물이 뜨거웠다. 그릇 하나의 가장자리에 작은 흠집이 있었다. 오래전 내가 술에 취해 떨어뜨려 만든 자국이었다.
나는 그 그릇을 아주 천천히 씻었다.
한 번 씻고, 또 씻고, 세 번이나 씻었다.
거실 쪽에서 아주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목을 틀어막고 참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거칠어진 손바닥이, 아주 조심스럽게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
툭.
툭.
툭.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집은 사람이 늙었다고 돌아와 기대는 곳이 아니다.
버린 사람이 마음 내킬 때 다시 들어와도 되는 곳도 아니다.
집은 누군가가 아파도 지키고, 돈이 없어도 버티고, 말 못 하는 사람의 손짓 하나까지 알아보며 살아낸 사람들이 만든 자리다.
나는 그 자리를 8년 동안 비워두었다.
그리고 이제야 돌아와,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내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남편 자리도 잃었고, 아버지 자리도 잃었다.
다만 그들이 아직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을 뿐이다.
**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봄가을(서울) 작성시간 26.06.20 ㅜㅜ 참담 하고 또 참담한 이야기군요
아내와 가족을 버린 사람은 그 자신도 모든것을
잃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다올(대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이거 웬지 AI가 만들어낸
이야기 아닌가 싶어요
남자의 감정도
여자의 감정도
영 겪어보지 않은
이론으로 만들어낸
모델 같거든요
도무지 납득이 되지않는
감정선의 주인공들
어이상실입니다.
세상에는 별일 별사람
많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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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달님이(부천) 작성시간 26.06.23 참 암담한 상황이네요
비현실적인 이야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