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최초 사립학교와 유치원을 설립한 강경제일감리교회
강경제일교회는 1904년 덕유정에서 야소교청년교육회로 출발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창립되었다.
1908년 3월에 강경포구역을 신설하고 김리회로부터 파송 받은 이용주 전도인이 1대 담임자로 부임하였고
1905년 강경 남쪽 당시 전라도에 속한 황산포에 있었던 남장로교회 소속인 황산교회가 1912년 황산이 충청남도 강경에 편입되자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사들의 선교협정에 따라 1913년 장로교회와 통합하여 황금정 105번지에 황산감리교회가 되었다.
선교사 윌리엄스(F.E.C.Williams)가 1907년 6월 5일에 설립한 지역최초 사립 만동학교는, 교회가 설립한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선교사와 지역유지들의 후원과 참여로 시작되어 28명의 학생으로 교회 예배당에서 공부를 시작되었으며 1911년에는 46명, 1912년에는 57명의 학생으로 증가하였고, 1920년에는 100명을 돌파하였고, 1922년에는 200여명으로 꾸준히 증가하였다.
1913년 2월에 앨리스 샤프(Allice H. Sharp)사에리시 여선교사가 우암 송시열 강학소인 팔괘정(황산동 소재)에서 20명의 학생들로 만동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교육을 최초로 시작하였다. 그 후 여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면서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 1916년 11월에는 만동여학교 신축부지로 황금정 102번지 369평을 매입하여 1917년에 학교를 신축하였다. 황산감리교회는 1919년 황금정 107번지에 건평 50평 규모의 서원보 선교사(W. C. Swearer)기념교회로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만동학교부설로 여자 야간학교를 세워 주로 부인들로 이루어진 40명의 학생을 야간에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21년 5월 18일 김장생 강학소인 임리정(화안동 소재)에서 지역 최초 유치원을 설립하여 30명의 원아들(일본인 자녀3명 포함)로 이화여전 출신 김복희 선생으로 유아교육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1916년 이후 유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선교사들의 자각이 일면서 교회나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 유치원이 함께 부설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특히, 유치원은 임리정을 사용하였고 만동여학교가 팔괘정을 사용하도록 지역 유지들의 교육공간 사용에 대한 배려와 적극적인 협력으로 교회는 미래 꿈나무들에게 애국애족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교육하였음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본 교회는 경영난으로 애쓰다가 결국은 1938년에 만동학교를 폐교하였고 그 자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였다.
그 후 1961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중학교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학교 교장인 진병선 장로가 진창옥(당시 소방대장)장로와 담임목사인 최종철목사와 상의하여 야간 중학교(웨슬레중학원)를 설립하여 강경소방청사 2층에서 운영하다가 62년부터 50여명의 학생이 모집되어 만동학교자리로 옮겨 강성중학교(고등공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주간으로 전환하여 10년간 83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바 있다.
그 동안 강경제일감리교회는 지역과 함께 하였고 특별히 교육에 대한 관심과 총력을 다하여 인재 양성에 노력한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