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시는 이원화되지 않는다(1).
개혁신학은 이방철학의 이원론 구조로 하나님과 인간, 구원과 생명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이 대립되는 이원론 구조를 따라,
율법과 복음, 하나님의 경륜과 구원을 개진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율법을 행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창조세계의 하나님 영광과 신성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창조계시에 대한 불완전성 때문에 말씀(성경)계시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의 가르침은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시편 19편을 보라.
시편 19편은 다윗의 고백이며 찬양이다.
다윗은 모세율법 아래에서 사역한 하나님의 대리왕이다.
모세율법을 따라 사역하도록 세워진 대리 통치자이다.
그는 시편 19편에서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모세율법을 따라 증거된 여호와의 어떠하심을 노래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노래하는가?
여호와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율법과 제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이러한 찬양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아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해하는 틀은 신구약에서 동일하다.
다윗은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을 찬양한다.
시편 19편에서 그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여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라고 노래한다.(시19:1-4)
이처럼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루신 창조 사역을 노래한다.
그는 율법에 대해서도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롭다.”
라고 노래한다.(시19:7-9)
여기에서 다윗은 모세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찬양한다.
그는 구원의 길이 여호와의 율법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다윗이 말하는 구원은 모세율법을 따라 주어지는 구원이다.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베푸시는 여호와의 은혜이다.
그러나 율법 아래의 구원은 죄의 울타리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다.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을 아는 앎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역사하셨다.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이스라엘을 대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세율법을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노래한다.
창조된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을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혜를 노래한다.
모세는 사람 중보자이다.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이스라엘의 중보자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여호와께서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세의 증거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 여호와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다.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언약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소유된 나라이며 제사장 백성이다.(출19:5-6)
여호와의 제사장 나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는 것이다.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행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을 잘 듣고 언약에 신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의 의로움이다.
여호와의 말과 언약이 무엇인가?
모세의 율법이다.
모세율법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을 규정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모세율법은 개혁신학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지킬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기준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간의 합의 내용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옛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질서이다.
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동거의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이는 여호와를 알도록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생명의 법이다.
모세율법은 옛 언약의 내용이다.
이는 모세가 해석적으로 선포한 여호와의 옛 경륜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한다.
그는 구원 역사적이며 언약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존재의의와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모세는 인간과 세상이 휘장 밖 죄 아래에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율법은 에덴 동편의 땅에서 시행된 하나님 뜻과 경륜이다.
따라서 모세율법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경륜이 아니다.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에 대한 통치질서이다.
따라서 율법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도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이는 휘장 밖 영역인 세상에 속한 나라이다.
따라서 휘장의 장벽이 철폐될 때에만, 죄의 문제가 해결될 때에만,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난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경륜이 나타나서 시행될 수가 있다.
그래서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이는 휘장 안 하늘의 질서를 시행하기 위함이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여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다윗왕국 백성을 종말의 천국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뜻과 경륜은 종말의 계시이다.
더 이상의 진전이나 발전이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구약에서는 봉인되었던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남이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는 이전의 의를 온전케 하는 의이다.
율법의 의, 곧 종의 의를 온전케 하는 의이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언약에 신실함이다.
모세율법은 아브라함 언약의 열매이다.
율법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서 신실하신 결과물이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체결한 계약을 따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합의한 내용을 따라,
시내산 언약의 내용인 모세율법과 제도에 신실하셔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결과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종말에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심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최고의 사역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고 말한다.(롬3:21)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최고의 사역이 무엇인가?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곧 모세율법에 신실한 의로운 자들을 구원하여 아들의 명분을 주는 것이다.
이는 종된 자들을 아들된 백성으로 세우는 일이다.
이는 휘장의 장벽 밖에 세워진 자들을 휘장 안 하늘에 세우는 일이다.
이는 다윗왕국 백성을 구원하여 종말의 천국백성으로 세우는 일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던 제자들과 바울을 구원하여 종말의 천국의 토대로 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됨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심이 절정에 이른다.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첫 창조는 하늘의 질서로 완성된다.
첫 창조는 그 목표에 이르러서 영광의 세계로 완성된다.
창조계시와 율법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신약교회의 계시로 편입이 된다.
모세율법(구약성경)은 기독론적인 해석을 떠나서는,
구원 역사적인 해석이 아니고서는 종말론적인 해석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아들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이다.
세상 창조와 세상을 경영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아들을 통하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그는 죄 아래에 있는 세상을 붙드시며 경영하신 경영주이시다.
첫 창조세계를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시는 구속주이시다.
그럼에도 세상 가운데는 죽음이 왕 노릇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연약한 존재로 치부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권세와 영광이 보이는 질서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이 없다면 모세율법의 의미는 영원히 봉인된다.
구약성경 자체로는 완전한 해석에 이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만 구약의 일들이 해석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첫 창조는 영광의 세계로 해석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