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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미륵불의 천년 자비와 구원의 희망을 품은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한시(漢詩)편

작성자고영화|작성시간26.06.08|조회수82 목록 댓글 0

<미륵불의 천년 자비와 구원의 희망을 품은 모악산금산사(金山寺)한시(漢詩)>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전북 김제시 모악산에 위치한 미륵신앙의 성지이자, 호남 최고(最古)의 사찰인 금산사(金山寺)는 기록상 599년 백제 법왕 때 창건된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最古) 천년 고찰(古刹), 국보 제62호 미륵전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을 보유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다.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모시고 도량을 중창하여 법상종을 열어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곳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인해 유폐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어 고려시대 문종 33(1079)혜덕 왕사 소현이 다시 한번 대규모로 금산사를 고쳐 지은 다음부터 전성기를 맞이 했다. 게다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승병 활동의 핵심 기지이기도 했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암자와 건물 40여 채가 불타버렸으나 1601년 수문대사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 완공했다. 조선 고종 때 미륵전·대장전·대적광 등을 보수하고 1934년 대적광전·금강문·미륵전 등을 보수했다. 현재는 호남 제일의 가람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 금산사는 김제 모악산 금산사를 비롯해, 세종 금산사(錦山寺)가 있고 발음이 비슷한 서울 금선사(金仙寺)와 그리고 지명이 비슷한 남해도 금산 보리암(菩提庵)이 있다. 남해 보리암을 예전에 금산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편 미륵신앙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사바세계로 내려와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에 미래의 미륵(구세주)이 출현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미륵신앙은 주로 하층민의 희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금산사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모악산 자락에서 미륵불의 천년 자비와 구원의 희망을 품고 있는 백제 고찰'이다.

 

 

[문화재 및 중요 문화] 국보 및 보물 : 노주(露柱, 보물 제22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 보물 제24)·5층석탑(보물 제25석종(石鐘 : 보물 제26)·6각다층석탑(보물 제27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 등이 있다. 또한 미륵전(국보 제62대적광전이 있었고, 그밖에 대장전·명부전(冥府殿나한전·일주문·금강문·보제루(普濟樓종각·중향각·칠성각 등의 건물과 수계(受戒)의식을 행하는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자리잡고 있다.

미륵 신앙의 중심지 : 진표율사 이후 미륵부처님을 모시는 대가람으로, 호남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모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다. 미륵신앙은 미래불(구세주)로서의 미륵을 믿어 현세에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앙이다.

역사적 중요성 : 임진왜란 때 뇌묵 처영대사가 이곳에서 승병 1천여 명을 모아 행주대첩 등에 참여한 호국불교의 중심지다.

위치 및 접근 :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있으며, 전주역/터미널에서 79번 버스, 김제역에서 5번 버스로 접근 가능하다.

한편 금산사는 단순한 사찰을 넘어 불교, 개신교, 천주교, 증산도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미륵신앙의 성지] 금산사는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본산이다. 금산사미륵대불상과 금산사 미륵전(국보)이 이를 대변하며, 미륵불과 미륵보살에 대한 불교 신앙인 미륵신앙(彌勒信仰)의 명실공히 중심지다. 미륵불을 주불로 하는 이 신앙은 미륵보살이 현재 머물고 있는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래에 인간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할 미륵불의 구원을 갈망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다. 혼란했던 후삼국시대에는 미륵신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견훤은 금산사의 미륵불이 바로 자신이며 후백제야말로 미륵의 용화세계라고 주장했고, 태봉의 궁예 또한 자칭 미륵불로서 두 아들을 협시보살로 삼아 직접 불경 20여권을 만들고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을 행한다며 대중을 현혹하기도 했다. 미륵신앙은 근대로 들어오면서 후천개벽사상과 결합되어 증산교 등의 신종교 운동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미륵신앙이 본격적으로 퍼진 건 6세기 무렵 삼국시대 백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백제에서는 미륵사, 미륵불광사(彌勒佛光寺) 등의 절이 세워졌고, 미륵반가사유상의 제작이 성행하였다. 미륵선화설화(彌勒仙花說話)에 의하면위덕왕 때 신라의 승려 진자(眞慈)가 미륵화신(彌勒化身)을 직접 뵙고자 웅진성의 수원사(水源寺)를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초기의 미륵신앙이 현 공주시 일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해 퍼져나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증산교(甑山敎)] 여기 금산사 일대는 우리나라 증산교의 본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이 세상을 구원할 권능을 얻고자 1901년 전라북도(, 전북특별자치도)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대원사(大願寺)에 들어가 수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극심한 수도생활을 하던 중 같은 해 7월 하늘과 땅의 근본이 되는 바른 길,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닫게 되고, 욕심 · 음란 · 성냄 · 어리석음의 네 가지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학혁명 이후의 혼란과 함께 당시 정감록신앙과 불교의 미륵불출세사상(미륵신앙), 그리고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풍설이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과 관련되어, 그를 따르는 자들은 강일순이야말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내려온 구세주라고 믿게 되었다어찌되었건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곳에 증산교의 본부가 서게 된 사유가 되었다. 1909년 강일순 사후 그를 따르던 여러 사람들이 각종 교당 종파를 만들기 시작하여 현재 증산교의 교파가 50여 개에 이른다. 여기 금산사 부근에는 강일순을 가장 먼저 따랐던 김형렬(金亨烈)1915년 모악산 금산사(金山寺)를 중심으로 별도의 교단을 세운 뒤 1921불교진흥회라고 부르다가 1922년에는 미륵불교라고 바꾼 교파가 위치해 있다. 모악산 근처에 증산진법회, 대순진리회, 증산도 등 증산교 교파가 가장 많이 존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용화종찰 미륵성지(龍華宗刹 彌勒聖地)] 이 문구는 김제 모악산 금산사를 상징하는 핵심 수식어다. 금산사 입구(개화문 인근)의 거대한 표지석에도 이 여덟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용화종찰(龍華宗刹)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이 내려와 인류를 구원하는 지상낙원인 '용화세계(龍華世界)'의 중심이 되는 으뜸 사찰이라는 뜻이고 미륵성지(彌勒聖地)는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할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가장 신성한 장소라는 뜻이다.

금산사가 미륵불의 세계, 용화세계의 으뜸 사찰로 불리어진 계기가 된 것은? 신라 혜공왕 때(766) 진표율사가 계시를 받아 금산사에 거대한 미륵불상을 조성하면서 본격적인 미륵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여기 금산사의 중심 법당인 금산사 미륵전은 미래에 올 용화세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국내 유일의 3층 목조 법당이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미륵불 법당)’,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번의 법회)’,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 도솔천 미륵불)’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결론적으로 이 문구는 "미래의 구원자인 미륵부처님이 하생할 지상 최고의 성지가 바로 이곳 모악산 금산사다"라는 역사적·종교적 선언이다.

 

[호남 제일의 가람을 방문하다] 대학동기회에서 202666(토욜) 전주시 일대를 12일 동안 둘러보기로 하여, 6일 오전 11시 즈음 대구에서 출발했다. 2시간 40분가량 걸려 김제시 금산사에 도착했다. 금산사 매표소 입구에서 바로 우회전하면 무료주차장이 나타난다. 여기에 주차하고 이쁘게 조성해 놓은 공원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개화문(성문),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금산사 입구에 도착한다. 제일 먼저 금강문과 천왕문이 우리를 반겨준다. 그리고 미륵전(국보)과 적멸보궁, 나한전을 거쳐 석등과 석탑 등의 보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된다. 이곳 금산사와 금평 저수지 일대에는 온갖 종교 시설이 즐비하다. 증산교 본부를 비롯해 천국사, 통천사 등, 마치 계룡산 일대와 유사한 듯하다. 무언가 영혼이 온 천지에 얽혀 있는 듯, 심히 유쾌하지 못한 기류에다, 울울한 기분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금산사는 김제시에 위치하고 있으나, 전주시와 가까워 전주 시민분들이 많이 놀려온다고 전한다. 특히 3층의 미륵전(국보)이 가장 압권이었다. 내부에 모셔놓은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 삼존불은 가히 압도적인 불상이었다. 충청도의 법주사, 전라도의 금산사, 경남의 통도사와 해인사는 죽기 전에 꼭 한번 이상 들려야 할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임에 틀림없었다.(금산사에 이어, 후편 전주시 편은 다음 회에 소개하겠다.)

 

[금산사 한시(漢詩)] 김제시 금산사(金山寺)는 천년사찰이자 미륵신앙의 중심지라서 그런지 왕조시대 수많은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름난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곳이다. 그래서그런지 그들이 남긴 한시(漢詩)도 수십편이나 전해온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그렇지 못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 11편을 골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시편에서 민중들의 오래된 염원이 서려 있는 천년 도량이자, 미륵 신앙지의 중심지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1) 다음 칠언율시(七言律詩) 장육불(丈六佛)은 조선후기 화가 평론가였던 담헌(澹軒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작품이다. 그의 문집 두타초(頭陀草)에 실린 한시 장육불(丈六佛)는 전북 김제 금산사의 웅장한 장육불(철불, 4.8m)을 보고 감탄하여 지었다. 이 시는 금산사의 거대한 불상을 통해 그 웅장함과 당시의 불교 신앙, 그리고 백성들의 염원을 묘사하고 있다.

내용을 분석해 보면, [1~2]에선 남도(호남)에서 가장 유명한 절인 금산사에 와서, 조선 땅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불상(장육불)을 처음 마주한 감격을 표했다. 장육불(丈六佛)16(4~5m) 이상의 크기를 가진 불상을 뜻한다. [3~4]에선 불상의 크기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손을 뻗으면 하늘의 궁궐(제좌)에 닿고, 고개를 들면 해(희륜)를 가릴 정도로 높다는 것은, 불상이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5~6]에선 조성 과정의 신성함과 경이로움를 서술했다. 신라, 백제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불사(佛事)의 역량, 혹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조성했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게 신묘하여 귀신의 솜씨를 빼앗은 것 같다(매우 뛰어나다)는 찬사를 했다. [7~8]에선 불상 조성의 목적과 백성들의 염원했다. 시주를 모아(모연) 대중을 돕고자 했던 불교적인 목적을 이해하게 된다. 불상을 통해 백성들의 명복을 빌고, 그 덕이 백성들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거대한 불상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백성들의 안녕을 비는 쉼터이자 신앙의 대상임을 강조하며 마무리했다.

결국 이 시는 이하곤이 금산사를 방문하여 느낀 장엄한 광경을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된 표현을 통해 잘 묘사한 작품이다. 웅장한 불상에 대한 경외감뿐만 아니라, 그 불상이 조성된 배경에 있는 민중들의 시주(募緣)와 그로 인한 공덕(冥福)을 생각하며 백성의 안녕을 바라는 유교적 지식인의 따뜻한 시선도 느껴진다. 참고로 이하곤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서화 수장가로, 그의 문집 두타초에는 이처럼 남도 지방을 유람하며 남긴 다양한 감상시가 수록되어 있다.

 

**장육불(丈六佛)** 무쇠를 부어 만들었는데, 길이가 거의 20여 장()에 달한다. 아래에는 철괭이(철제 받침)를 두어 두 발을 받치고 있다.(鑄鉄爲之 長幾二十餘丈 下爲鉄钁 以承雙趺) / 문집 두타초(頭陀草), 이하곤(李夏坤 1677~1724)

南方最說金山寺 남방에서 최고라 일컬어지는 곳, 김제 금산사

東域初看丈六身 동방(조선) 땅에서 처음 보는 장육불(큰 불상)이네.

竪指應將捫帝座 손가락을 세우면 마땅히 제석천의 자리(하늘)를 만지겠고

擧頭眞恐碍羲輪 머리를 들면 정말로 희륜(羲輪, 태양)을 가릴까 두렵구나.

粧嚴力已傾羅濟 장엄하게 조성한 힘은 이미 나제(신라와 백제) 시대를 기울였고

創設工疑奪鬼神 창건한 솜씨는 귀신을 빼앗은 듯(신묘한 솜씨) 하네.

可識募緣資大衆 시주를 모아 대중을 돕는 뜻을 알겠으니

能推冥福澤吾民 명복을 빌어 우리 백성에게 혜택을 주는구나.

 

2)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七言律詩) 금산사(金山寺) 2()는 조선후기 문신 역암(櫟庵) 강진규(姜晉奎 1815~1883)의 문집 역암집(櫟菴集)에 수록된 고전 연작시다. 그리고 이 시는 전북 김제의 천년고찰 금산사를 배경으로, 가을날의 쓸쓸한 풍경과 불교적 무상함, 인간 삶의 유한함을 노래하면서 이를 초월하려는 내면을 격조 높게 표현했다. 강진규의 이 한시는 단순한 사찰 유람록을 넘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는 고전 시학의 깊은 멋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 작품은 가을의 쓸쓸함과 불교적 무상(無常)의 융합을 묘사했다. 어느 해 가을이 깊어가는 금산사의 쓸쓸한 자연풍경에서 시작하여,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와 종교적 허무함에 대한 성찰로 깊어간다. 내용에서, '시든 여뀌(殘蓼)', '지는 낙엽(木脫)' 등의 가을 풍경과 '흐느끼는 샘물 소리(泉聲咽)'를 통해 시각과 청각적으로 가을의 쓸쓸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2수에서는 금산사의 거대한 불상(장육신)을 보면서도, 세월 앞에서는 부처의 신통력마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불교적 가르침(삼승) 역시 허상(幻界)일 뿐이라는 유학자적 시선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인은 이에 절망하지 않고, 구름이 일고 낙엽이 지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오히려 집착을 내려놓고 나그네(자신)의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내는 격조 높은 정신적 승화로 시를 마무리했다.

 

[1]에선 경치에서 인간사로의 확장을 꾀했다. (1~2) 가을날 해 질 무렵, 금산사 주변의 쓸쓸한 자연 경관(짧은 갈대, 시든 여뀌, 석양)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묘사했다. (3~4) 물소리를 '흐느낀다()'고 표현하여 가을의 애상감을 깊게 만들었다. 잎이 지고 구름이 걷히며 드러난 산그림자를 통해 가을의 황량하면서도 맑은 기운을 대조했다. (5~6) 개인의 유랑 신세(東西經過)와 금산사의 오랜 역사적 침탈 및 중건(成毁)을 겹쳐 보며,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를 탄식한다. (7~8) 당나라의 철저한 유학자 한유(조주로)가 조주 땅으로 유배 갔을 때, 고승인 태전 선사와 교유하며 불교 교리(능엄경)를 토론했던 일화를 인용했다. 시인 자신도 유학자로서 금산사에 와 불교적 사색에 잠겼음을 멋스럽게 비유했다.

[2]에선 불교적 무상함과 정신적 초월을 드러냈다. (1~2)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방편(삼승)조차 결국은 환상(幻界)일 뿐이라는 공()사상을 드러낸다. 번창했던 사찰의 향기는 끊어지고 탑에 먼지만 남은 현실을 직시했다. (3~4) 금산사의 상징인 '미륵장육삼존불(장육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이다. 온 세상을 구원한다던 부처의 신통력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무력해 보이고, 거대한 불상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종교적·역사적 허무주의를 노래했습니다. (5~6) 끊임없이 피고 지는 구름과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를 인간의 감정(찌푸림)에 투사하여, 자연의 섭리와 무상함을 대구로 표현했다. (7~8) 푸른 연꽃(불교의 상징)과 흰 돌이 만들어내는 사찰의 고요한 풍경을 보며, 나그네(시인 자신)는 마침내 세속의 번뇌를 잊고 마음의 평안(暢神)을 얻으며 시를 마무리했다.

*이 시는 단순한 사찰 유람시를 넘어선 철학적 사색의 결과물이다. 가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금산사라는 공간적 배경을 결합하여 '유한한 인간''무상한 세상'을 깊이 있게 통찰했다. 특히 유학자의 시선으로 불교의 공()사상을 수용하고, 한유와 태전 선사의 고사를 활용하여 종교적 경계를 넘어선 정신적 해탈과 여유를 격조 높은 시어로 완성해 낸 수작이다.

 

**금산사(金山寺)** 역암집(櫟菴集) 강진규(姜晉奎)

八月金山秋色鮮 팔월의 금산사는 가을빛이 선명한데

短葭殘蓼夕陽邊 짧은 갈대와 시든 여뀌 꽃이 석양 가에 서 있네.

林迴石窳泉聲咽 숲은 돌고 돌며 돌 웅덩이에 샘물 소리 흐느끼고

木脫雲空岳影褰 나뭇잎 지고 구름 걷히니 산그림자 드러나네.

一任東西經過地 동으로 서로 지나온 길 모두 세월에 맡기나니

相傳成毁幾何年 절이 생기고 무너진 역사는 몇 해나 전해왔던가.

南來妄擬潮州老 남쪽으로 내려와 망령되이 당나라 한유(潮州老)를 흉내 내어

閒把楞嚴問太顚 한가로이 능엄경을 쥐고 태전 선사에게 물어보네.

[2]

幻界三乘摠匪眞 환상의 세상 속 삼승(불교의 가르침)이 모두 진실은 아니니

旃檀香歇塔生塵 전단향 향기 향기롭던 탑에는 먼지만 쌓였구나.

神通未遍諸千世 부처의 신통력도 온 세상에 다 미치지 못했고

色相空餘丈六身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부질없이 장육신(불상)만 남았네.

洞不休時雲起滅 골짜기는 쉴 틈 없이 구름이 일고 꺼지는데

風無情處葉舒嚬 무정한 바람 부는 곳에 나뭇잎은 찌푸리듯 떨어지네.

靑蓮白石皆如許 푸른 연꽃과 흰 돌바탕이 모두 이와 같으니

留與覊人一暢神 나그네에게 남겨두어 한 번 정신을 상쾌하게 하네.

[1] 조주로(潮州老)과 태전(太顚) : 당나라의 대문장가 한유(유학자)가 불골(부처의 뼈)을 봉안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조주(潮州)로 유배되었을 때, 고승인 태전 선사와 교류하며 사상적 문답을 나눈 고사다. 유학자인 작가(강진규) 자신을 한유에 비유하여 금산사의 스님과 불교 진리를 논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2] 삼승(三乘) : 중생을 구제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세 가지 수레(성문승·연각승·보살승)를 뜻하며, 불교 교리 전체를 상징한다.

[3] 장육신(丈六身) : 부처의 크신 몸을 뜻하는 말로, 금산사의 거대한 미륵장륙상(미륵불)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4] 기인(覊人) :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를 뜻하며, 여기서는 금산사를 찾은 작가 자신을 의미한다.

 

3) 다음 운목(韻目)의 오언율시 금산사(金山寺)는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이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를 방문하여 그 웅장함과 영험함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금산사의 상징인 미륵전(국보)과 그 안에 모셔진 거대한 미륵장륙삼존불상을 마주했을 때의 경외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윤묵은 금산사의 거대한 규모와 오랜 역사적 깊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스님에게 절의 옛 기록(견훤의 유폐 사건이나 진표율사의 창건 설화 등)을 꼬치꼬치 되묻는 호기심 가득한 문인의 모습을 시의 마지막에 재치 있게 담아냈다.

 

**금산사(金山寺)** 존재집(存齋集) 박윤묵(朴允默)

畫棟三層殿 그림같이 화려하게 단청한 기둥과 들보의 3층 법당(미륵전)

金仙六丈身 부처님(金仙)께서는 여섯 장에 달하는 거대한 몸으로 서 계시네.

若無成大壯 만약 이토록 크고 장엄하게 건물을 짓지 않았다면,

不足奉䧺神 저 영웅적이고 위엄 넘치는 신령함을 받들어 모시기에 부족했으리라.

㙜逈風雲護 높이 솟은 대는 아득히 멀어 바람과 구름이 호위하는 듯하고

山淸日月新 산빛은 맑고 깨끗하여 매일 맞이하는 해와 달도 늘 새롭구나.

冥搜多詭異 그윽하고 깊은 사찰 구석구석을 찾아보니 신기하고 기이한 자취가 많아,

舊蹟問僧頻 오래된 역사와 옛 흔적들을 스님에게 자주 묻노라.

[1] 화동삼층전(畫棟三層殿) : 외관은 3층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통층 구조인 금산사 미륵전의 독특한 구조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2] 금선(金仙) : 불교에서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선'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3] 육장신(六丈身) : 미륵전에 모셔진 거대한 불상을 뜻한다. 실제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본존불은 높이가 약 12m에 달하며, 좌우 협시보살까지 포함하여 거대한 삼존불의 위용을 자랑한다.

[4] 성대장(成大壯) :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궁실을 크게 지어 장엄함을 보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건축물이 크고 웅장함을 뜻한다.

[5] 웅신(䧺神) : '웅신(雄神)'의 이체자로, 여기서는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위엄을 지닌 미륵불을 상징한다.

 

4)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차금산사벽상운(次金山寺壁上韻) 고려후기 충숙왕·충혜왕·충목왕 때 학자였던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의 작품이다. 그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20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운목(韻目)의 한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이다. 그는 일찍이 중국 원나라에서 이름을 떨쳤으나 고려 조정에서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진 못하였다. 고려후기 뛰어난 학자로서 죽부인전, 가정집등을 저술하였다.

*내용인즉, 봄날의 경치와 금산사의 장엄함, 그리고 유람의 흥취를 표현하고 있다. 유람의 배경과 시기, 유람의 목적과 금산사 방문, 금산사의 장엄한 풍경, 유람의 여운과 아쉬움을 기술했다.

*요약건대, 특히 경련(5~6)에서 금산사의 높고 웅장한 건축미와 종소리를 도교적·자연친화적 문구로 묘사하여 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 농번기 직전의 한가로운 시기에 바다 근처의 명승지를 찾아 나선 봄날의 유람 정취와 낭만적인 태도가 나타난다. 이 시는 고려말의 지식인이 자연과 절경을 즐기며 느낀 여유와, 금산사라는 장소의 웅장함을 감각적인 시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次金山寺壁上韻)** / 가정집(稼亭集) 이곡(李穀 1298~1351)

春到靑丘日欲中 봄이 청구에 이르러 밤낮이 같아지려는 때,

勝遊要及未農功 멋진 유람은 농한기를 가려서 해야 하고말고.

爲尋海上蓬萊境 바다 위 봉래의 경내를 찾는 기회에

因訪人間覩史宮 세상 속 도사의 궁전도 들르게 됐다오.

危構簷牙磨北斗 높이 치솟은 처마 지붕은 북두와 맷돌질하고

法音鐸舌語東風 법을 설하는 풍경 소리는 동풍과 얘기 나누네.

更思杖屨窮幽絶 절경을 끝까지 더듬고 싶은 생각도 든다마는

滿壑煙霞路易窮 연하가 골에 가득해서 길이 자꾸만 막히니 원.

[1] 봉래(蓬萊) : 동해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2] 도사(覩史)의 궁전 : 미륵보살이 있는 도솔천(兜率天)의 궁전이라는 말로,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을 가리킨다. 도사는 범어(梵語) Tuṣita를 음역한 도사다(覩史多)의 준말로, 도솔(兜率)과 같은 말이다. 신라의 진표(眞表)가 경덕왕(景德王) 때에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불(主佛)로 봉안하였고, 또 법당의 남쪽 벽에 미륵보살이 도솔천 내원(內院)에서 내려와 그에게 계법(戒法)을 전수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5) 다음 조선후기 여항문인, 화가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야좌사루 차가정운(夜坐寺樓 次稼亭韵)은 금산사의 장엄한 역사와 그 속에서 느끼는 시인의 쓸쓸한 감회를 담은 명작이다. 이 시의 제목은 "밤에 사찰 누각에 앉아 가정(李穀)의 운을 따르다"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의 대문장가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라 지었다는 뜻입니다. 운목(韻目)’, 압운자는 , , , , 이다.

칠언율시(七言律詩) 한시의 구조 및 내용을 분석해 보자. 먼저 수련(1~2)에선 금산사의 위상과 역사를 언급했다. 공간적 배경인 김제 금산사의 거대함과 역사적 유래를 찬양하며 시를 시작했다. 불교를 부흥시켰던 옛 왕들의 공적을 기렸다. 이어 함련(3~4)에선 사찰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시각과 후각) 묘사했다. 사리탑(방등계단) 위에 서린 신비로운 구름(시각)과 법당에서 피어오르는 끊임없는 향연(후각)을 통해 사찰의 영험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경련(5~6)에선 역사적 무상감과 시인의 고독을 (청각과 촉각) 그렸다. 역사의 흥망성쇠는 결국 덧없는 물소리로만 들릴 뿐이며, 시인은 한밤중에 홀로 바람을 맞으며 인간적인 외로움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미련(7~8)에선 시를 마친 후의 여운과 달관을 표현했다. 밤새 시를 짓고 난 후, 방 안에는 차가운 등불만 벽에 걸려 있다. 시인은 욕심을 내려놓고 승려의 방석 위에서 노승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며, 세속의 번뇌를 잊고 자연과 종교적 평온함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는 위대한 문화유산인 금산사라는 거대한 역사적 공간과,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는 시인의 개인적이고 쓸쓸한 내면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작품이다. 중인 출신의 문인 모임인 '송석원시사'에서 활약했던 임득명은 이 시를 통해 빼어난 묘사력과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화려한 역사적 배경(1~4)에서 시작해 인생의 허무함(5~6)을 거쳐, 결국에는 노승과 함께 방석에 눕는 탈속(脫俗)의 경지(7~8)로 평온하게 마무리지어 긴 여운을 남겼다.

 

**야좌사루 차가정운(夜坐寺樓 次稼亭韵)** 송월만록(松月漫錄) 임득명(林得明)

金山寺刹冠南中 금산사 사찰은 호남 지방에서 으뜸이고

崇佛羅王大有功 불교를 숭상한 신라 왕들의 큰 공적이 있네.

雲氣長留舍利塔 구름 기운은 사리탑에 오래도록 머물고

香烟不斷釋迦宮 향불 연기는 석가모니 법당에 끊이지 않네.

千年往事空聞水 천 년의 지난 일은 부질없이 물소리로 들리고

半夜孤懷獨御風 한밤중 외로운 마음으로 홀로 바람을 맞네.

詩罷寒燈猶掛壁 시 짓기를 마치니 쓸쓸한 등불은 여전히 벽에 걸려 있고

蒲團就卧老僧同 부들 방석에 누워 늙은 스님과 함께 잠을 청하네.

[1] 관남중(冠南中) : '남중'은 호남(전라도) 지방을 뜻하며, ''은 갓을 쓰듯 으뜸이라는 의미다. , 금산사가 호남 최고의 사찰임을 말함.

[2] 라왕(羅王) : 신라의 왕들. 금산사는 백제 때 창건되어 신라 해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3] 고회(孤懷) : 외로운 감정이나 생각을 뜻한다.

[4] 어풍(御風) : 바람을 타다, 혹은 바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세속을 벗어난 초연한 경지를 비유한다.

[5] 포단(蒲團) : 부들풀로 만든 방석으로, 승려들이 수행할 때 쓰는 도구다.

 

6)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숙금산사(宿金山寺)는 조선 전기의 천재 문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작품이다. 이 시는 김시습이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천년고찰 금산사(金山寺)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지은 숙금산사(宿金山寺). 저자 김시습이 속세를 떠나 산천을 유랑하던 중에, 한여름 깊은 밤 금산사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풍경과 절 내부의 고요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내용인즉, 전반부(1~4)에서 웅장한 야경과 쓸쓸한 고요함의 대비를 묘사했다. 넓은 골짜기, 거친 여울물 소리, 밤하늘의 별과 바람, 천둥 등 웅장하고 역동적인 자연을 그려내었다. 후반부(5~8)는 이끼 낀 비석, 꺾인 고목, 은은한 종소리를 배치해 쓸쓸하고 고요한 분위기로 전환하였다. 방랑시인 김시습은 세속을 떠나(脫俗) 현실 정치(세조의 왕위 찬탈)에 환멸을 느끼고 평생을 떠돌았던 시인의 외로움과, 불교적 세계(招提境)에서 얻는 정신적 자유로움이 '소연(翛然)'이라는 단어에 압축되어 있다.

 

**금산사에서 묵으며(宿金山寺)** / 매월당집(梅月堂集) 김시습(金時習)

雲氣微茫洞府寬 구름 기운 아득하고 골짜기는 넓은데

縈林絡石響鳴湍 숲을 얽고 돌을 감으며 여울물 소리 울리네.

中天星斗明金刹 하늘 한가운데 별들은 금산사(金刹)를 밝히고

半夜風雷繞石壇 한밤중의 바람과 천둥은 석단을 에워싸누나.

苔蝕古幢微有字 이끼가 갉아먹은 옛 돌기둥(당간지주)엔 희미한 글자 남아있고

風摧枯樹晚生寒 바람에 꺾인 마른 나무에 저물녘 한기가 이네.

翛然一宿招提境 자유롭고 호젓하게 절간(招提境)에서 하룻밤 묵어가니

煙裏疏鐘韻未闌 안개 속 은은한 종소리 여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1] 동부(洞府) : 신선이 사는 곳처럼 깊고 으슥한 산속 골짜기를 뜻한다.

[2] 명단(鳴湍) : 세차게 흐르며 소리를 내는 여울물이다.

[3] 금찰(金刹) : 사찰을 높여 부르는 말로, 여기서는 김제의 금산사를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4] 고당(古幢) : 옛 석당(石幢) 또는 당간지주를 뜻하며,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소재다.

[5] 소연(翛然) :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깃털처럼 가벼운 모양을 뜻한다. 방랑 시인이었던 김시습의 심경이 잘 드러난다.

[6] 초제경(招提境) : '초제'는 사방의 승려들이 모이는 곳, 즉 절(사찰)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7] 미란(未闌) : 아직 다하지 않았다, 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

 

7)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차숙금산사운(次宿金山寺韻)은 조선 중기의 문신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작품이다. 이 시는 조선 전기의 천재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숙금산사(宿金山寺)를 차운하여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1~2]에선 청각과 시각의 조화를 묘사했다. 깊어가는 가을밤, 금산사라는 사찰의 공간적 배경을 제시한다. 이어 무거운 종소리가 온 가을산을 울리며 퍼져나간다. 그 소리가 번지는 하늘과 산봉우리는 노을이나 빛에 반사되어 자줏빛과 푸른빛(紫翠)으로 물들어 있다. 웅장한 청각적 심상과 신비로운 시각적 심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3~4]에선 탈속과 정적의 경지를 보여준다. 종소리가 지나간 후 찾아온 깊은 고요함을 표현했다. '학의 꿈'은 세속을 벗어난 고고함을 뜻하며, 소나무에 걸린 달빛 아래 극도의 정적()을 유지한다. 이어서 구도자의 마음(禪心)을 흐르는 구름에 비유하여, 세상의 권력이나 소란함에서 벗어난 영원한 자유와 한가로움()을 노래했다. 특히 제3(鶴夢~)와 제4(禪心~)가 정교한 대칭을 이루었다. 학의 꿈(鶴夢)과 스님의 마음(禪心), 소나무 달(松月)과 골짜기 구름(洞雲), 그리고 고요함()과 한가로움()이 대구를 이루었다.

작자인 최명길은 병자호란 등 조선의 가장 치열한 정계 한복판에 있던 정치가였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연과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완벽한 마음의 평화와 정서적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숙금산사운(次宿金山寺韻)** / 지천집(遲川集) 최명길(崔鳴吉)

寺樓鍾動殷秋山 절 누각의 종소리 울려 가을산을 뒤흔들고

響落層霄紫翠間 그 울림은 높은 하늘 자줏빛 푸른 봉우리 사이로 떨어지네.

鶴夢倂將松月靜 학의 꿈은 소나무에 걸린 달과 함께 고요하고

禪心長與洞雲閑 스님의 마음은 골짜기 구름과 더불어 영원히 한가롭네.

 

8)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유금산사(遊金山寺)는 조선후기 문신, 학자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작품이다. 주제어에서 밝혔듯이 윤증(尹拯)이 김제 금산사를 유람하며, 김시습(金時習)()숙금산사(宿金山寺)에 차운하여 이 글을 지었다. 그는 송시열의 문하(제자)에서 특히 예론(禮論)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났으나, 노론의 송시열과 반목하는 소론의 영수가 되어 당쟁을 촉발시켰다. 이 시는 금산사의 가을 풍경과 함께, 억압된 시대를 살다 간 김시습의 삶을 회고하며 맑은 정취와 쓸쓸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내용인즉, ‘금산사 유람의 배경과 한가로움, 절 안의 풍경과 심경, 가을의 단풍(秋色)과 노을과 가을비의 금산사 풍경, 김시습을 그리워하며 회고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맑은 시내(淸湍), 차가운 시냇물(澗聲寒) 등의 시어를 통해 가을밤의 쓸쓸하면서도 맑은 분위기를 잘 그려냈다. 이 시는 금산사의 경치를 묘사한 시()인 동시에, 절개 있는 옛사람을 추모하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서정시다.

 

**금산사(金山寺)에 노닐며 김열경(金悅卿김시습(金時習))의 시에 차운하다(遊金山寺 次金悅卿韻)** / 명재유고(明齋遺稿) 윤증(尹拯)

浮世誰如此地寛 덧없는 세상에 이곳처럼 한가한 곳 또 있으랴.

細尋苔徑度淸湍 이끼 낀 오솔길과 맑은 여울 따라 걸었네.

疎煩自問垂藤井 등나무 드리워진 우물에서 번뇌 씻고

選勝先登老檜壇 늙은 전나무가 선 석단(石壇)에 오르누나.

沓嶂蒸霞秋色纈 겹겹의 산봉우리 가을빛이 얽혀 있고

滿林飛雨澗聲寒 숲 가득히 비 날리니 시냇물 소리 차갑구나.

淸風忽憶東峯子 맑은 바람 불자 갑자기 동봉자가 생각나서

三唱遺篇夜已闌 남긴 시 읊조리매 밤이 벌써 깊었구나.

[] 동봉자(東峯子) : 조선 전기 천재 문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본인을 뜻한다.

 

9)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숙금산사(宿金山寺), 가정(稼亭) 이곡의 시운(詩韻)을 사용하여(用稼亭韻)1721(辛丑) 작품은 조선후기 문신 뇌연(雷淵) 남유용(南有容 1698~1773)의 글이다. 1721년 초여름에 그가 김제 금산사에 머물며 느낀 역사의 무상함과 불교적 진리를 담은 한시다. 고려 말 문인 이곡(稼亭)의 시운(詩韻)을 빌려 지었다고 언급해 놓았다.

주제는 금산사의 장엄한 풍경과 역사적 무상함, 그리고 이를 초월한 자연의 영원한 진리임을 깨닫는다는 글이다. [1-2]에선 금산사의 웅장한 모습과 백제 때부터 이어진 깊은 역사적 내력(장육불상)을 제시하였다. 금산사는 거대한 미륵불(丈六佛)로 유명한 미륵 신앙의 성지다. 작가는 이 거대한 불상을 보며 백제시대부터 흘러온 기나긴 시간을 체감하고 있다. [3-4]에선 불교 전래의 전설과 인간 세상 왕조들의 무상한 흥망성쇠를 대조하였다. [5-6]는 산사 주변의 신비로운 자연 풍경을 묘사했다. 안개(용의 기운)와 밤바람 소리(원숭이 울음)를 통해 몽환적이고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를 그렸다. [7-8]에선 세상의 흥망은 덧없지만, 차가운 연못에 비친 달빛(寒潭月色)만큼은 변하지 않는 우주의 본질이자 깨달음의 진리()임을 깨닫는다.

 

**숙금산사(宿金山寺)** 가정(稼亭) 이곡의 시운(詩韻)을 사용하여(用稼亭韻) 1721(辛丑) / 뇌연집(雷淵集) 남유용(南有容)

華甍鳥革法雲中 화려한 지붕은 새가 날개 편 듯 불법의 구름 속에 솟아 있고

丈六曾聞百濟功 장륙불상(미륵불)은 일찍이 백제 시대의 공덕이라 들었네.

漫發光明驚漢帝 부질없이 빛을 발해 후한의 황제를 놀라게 하더니

幾看荊棘産吳宮 오나라 궁궐에 가시나무 우거진 것 같은 흥망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

龍欺醉客噓朝霧 용은 취한 나그네를 속이듯 아침 안개를 내뿜고

猿戱禪翁嘯夜風 원숭이는 선승을 놀리듯 밤바람 속에 휘파람 불며 우네.

獨有一般觀理處 홀로 변치 않는 이치를 관조하는 한 곳이 있으니

寒潭月色浩無窮 차가운 못에 비친 달빛만은 넓고 커서 끝이 없구나.

[] 용가정운(用稼亭韻) : 고려 시대의 대문호 가정(稼亭) 이곡의 시운을 그대로 가져와 지었다는 뜻이다. 당시 문인들이 선배 문인의 작품을 오마주하며 문학적 재능을 겨루던 방식이다.

 

10)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금산사에서 최석초(제항) 상사와 함께(金山寺 和崔石樵(齊恒) 上舍)는 조선말기의 한학자ㆍ시인 고환당(古歡堂) 강위(姜瑋 1820~1884)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성격상 불교적, 탈속적, 명상적, 차시(茶詩)라고 할 수 있고 특징으로는 차()를 매개로 시작하여 사찰의 풍경과 역사를 읊은 뒤, 불교적 사색으로 승화시키는 구조를 가진다. 5(청각, 경쇠 소리)6(시각, 등불)의 대조가 매우 뛰어나다. 깊은 산사에서 차를 마시며 느끼는 세상에 대한 사색과 초연한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다.

내용인즉, [1~2]에선 시상의 시작과 배경을 서술했다. 차를 끓이기 위해 절 안에서 가장 좋은 샘물(第一泉)을 찾는 모습, '과령(鍋瓴)'은 솥과 물병을 뜻하며, 산사에서 차를 달여 마시는 풍류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금초(金焦)'는 중국 양쯔강에 있는 명산인 금산(金山)과 초산(焦山)을 뜻한다. 여기서는 금산사의 빼어난 풍경이 마치 중국의 명승지나 신선이 사는 세상(洞中天)처럼 아름답다는 찬사다. [3~4]에선 금산사의 역사와 불교적 깊이를 묘사했다. '패엽(貝葉)'은 종이가 없던 시절 패다라 나무 잎에 새긴 불교 경전(패엽경)을 뜻하고, '육천 권'은 방대한 불교 경전의 규모를 상징한다. 이어 '정람(精藍)'은 사찰(승가람마)을 뜻하는 말이다. 수많은 세월(오백 년) 동안 불법을 지켜온 사찰의 깊은 역사와 고요함을 예찬하고 있다. [5~6]에선 시각과 청각이 대조를 이룬다. '고경(孤磬)'은 외롭게 울리는 경쇠(불교 의식에 쓰는 악기) 소리다. 이 소리가 아득한 구름 끝에서 들려온다는 표현을 통해 산사의 고요함과 탈속적인 분위기를 청각적으로 극대화했다. 이어 '화등(華燈)'은 부처님 앞에 켜둔 등불이다. 밤이 깊어 사방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밝게 빛나는(的的) 등불을 시각적으로 묘사하여 종교적 경외감과 수행의 가치를 드러낸다. [7~8]에선 주제 의식과 여운을 남겼다. '기멸(起滅)'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생멸(태어나고 사라짐)이다. 인간 세상의 덧없는 흥망성쇠와 집착(인간상)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사색하는 단계다. 이어 인간사의 번뇌를 깨닫고 난 뒤, 풍로에 불을 지펴 향을 피우고(一炷烟) 차를 마시는 행위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는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시인의 정신적 경지를 보여준다.

 

**금산사(金山寺)** 최석초(제항) 상사와 함께(和崔石樵 (齊恒上舍) / 강위(姜瑋)

試覔鍋瓴第一泉 솥과 병 밑바닥 긁어 천하 제일의 샘물을 찾으니

金焦宛在洞中天 금산(金山)과 초산(焦山)이 완연히 동천(신선 세계) 속에 있네.

誰携貝葉六千卷 누가 패엽경 육천 권을 가지고 와서

獨住精藍五百年 이 절(精藍)에서 홀로 오백 년을 머물렀는가.

孤磬寥寥雲際落 외로운 경쇠 소리 쓸쓸히 구름 사이로 떨어지고

華燈的的夜深懸 화려한 등불은 밤이 깊도록 환하게 걸려 있네.

商量起滅人間相 인간 세상의 생멸하는 모습을 헤아려 보며

多爇風爐一炷烟 풍로에 향 한 대 피우고 차를 더 끓여 마시네.

 

11) 다음 운목(韻目)의 칠언고시(七言古詩) 금산사견벽상시(金山寺見壁上詩)42()는 조선후기 학자 다산(茶山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보유(補遺) 진주선(眞珠船)에 수록된 작품으로, 주제어의 뜻은 금산사 벽 위의 시를 보고, 혜례에게 달밤에 강서의 소금배로 가 노래를 불러 찾게 하다(金山寺見壁上詩 敎慧隷令月夜往唱江西鹽舶問)’이다. 시 전체의 분위기는 사랑하는 사람(仙郞, 仙人)과 이별하고 홀로 남은 여인의 애절한 그리움과 재회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규원가(閨怨歌) 풍의 장편 고시(古詩). 시구 하나하나가 매우 화려하고 고사를 인용하여 문학적 수준이 높다. 선생이 금산사(金山寺) 벽에 적힌 어느 여인의 시를 보고 감동하여 하인 혜례(慧隷)에게 달밤에 강서의 소금배로 가서 이 노래를 부르며 시를 쓴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지시하는 극적인 배경을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젊은 시절(과거 급제 전(科前)) 금산사 벽에서 절절한 시를 읽고, 깊은 여운에 잠겨 이 이를 지었다. 한 여인이 남편과의 이별(혹은 사별) 후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그녀의 슬픈 운명을 위로하고 동조하는 극적인 서사가 담겨 있다.

 

금산사견벽상시(金山寺見壁上詩)는 과거를 보러 가던 길(科前)에 금산사 벽에서 절절한 사연이 담긴 한 여인의 시를 발견하고, 그 슬픈 사랑 이야기에 감응하여 지은 대작이다. 이 작품은 정약용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科前)인 젊은 시절, 호남 지역(또는 서해안 조운로 인근)을 여행하다가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벽에 걸린 시를 보고 그 주인공(남편을 잃었거나 이별한 여인)을 찾아 밤눈을 헤치며 배들이 모인 곳으로 하인(혜례)을 보내는 설정은 당대 한문 단편 소설이나 전기(傳奇) 소설의 모티프와 매우 닮아 있어 문학적 가치가 높다.

 

문학적 특징을 분석해 보자. 이 작품의 화자는 남편 혹은 사랑하는 남성을 떠나보낸 여인의 입장에서 쓰인 시다. 화려한 시어와 고사를 사용했다. 백주(栢舟 - 지조), 청란(靑鸞 - 악기), 계적(桂籍 - 과거 급제), (- ) 등의 고사를 사용하여 그리움의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자고새(鷓鴣)', '사라진 그림자', '안개 낀 달빛', '부고(訃告)' 등의 시어를 통해 슬프고 불안한 심정을 묘사했다. 님에 대한 그리움과 신뢰를 묘사했다. '한상(寒霜)', '금산(金山)' 등에서 님이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정약용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와, 한시 속에서도 조선의 서정(여인의 마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고로 이 시는 사랑하는 님(仙郞)과 헤어져 홀로 남은 여인이, 님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에 떠도는 소문(부고 등)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결국 다시 만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읊은 시다. 옛날의 행복했던 시절('울금당', '쌍제비')을 추억하며, 님을 향한 정절을 지키고 자신의 슬픔과 근황을 님에게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내용상, 이별의 슬픔과 과거의 추억(전반부), 이별의 정황과 세상의 평판(중반부), 그리움의 구체화와 재회 염원(후반부)으로 나눌 수 있다.

 

**금산사 벽 위의 시를 보고, 혜례에게 달밤에 강서의 소금배로 가 노래를 불러 찾게 하다(金山寺見壁上詩 敎慧隷令月夜往唱江西鹽舶問)**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정약용(丁若鏞).

霞帔寶帶無遺影 노을빛 치마와 보배로운 띠는 흔적도 없고

帆去江空鷓鴣啼 돛배 떠난 빈 강에는 자고새만 슬피 우네.

靑鸞一曲悵求凰 청란의 한 곡조(靑鸞一曲)로 짝을 찾다 낙담하니

素月無痕煙樹迷 하얀 달빛 속 안개 낀 나무들만 아스라하네.

儂家昔日鬱金堂 내 집은 옛날 울금향(鬱金香) 가득한 화려한 방이었고

百年鴛盟雙鷰棲 백년가약 맺어 한 쌍의 제비처럼 살았었지.

芳心不惜鳳樓寒 꽃다운 마음으로 봉황루의 추위도 아랑곳 않고

誦我凌雲烹伏鷄 내가 구름을 뚫는 시를 읊으며 복계(소박한 음식)를 끓여주었네.

寒霜黑貂十年蹤 찬 서리 맞으며 검은 담비 옷 입고 지낸 십 년의 자취

存沒江鄕稀赫蹄 살았는지 죽었는지 강마을엔 편지 한 장 귀하구나.

/簮花仍帶木天香 머리에 꽂은 꽃에는 여전히 예문관의 향기가 배어있으니

一枝留揷情人笄 한 가지 남겨 사랑하는 이의 비녀에 꽂아주려 했건만.

狂風浪傳長公訃 미친 바람은 부질없이 낭군의 부고를 전하고

栢舟搖搖共伯妻 흔들리는 잣나무 배(수절 아내 마음)는 공백의 아내와 처지가 같네.

靑雲誤人一生緣 청운의 꿈(출세)이 한평생의 인연을 그르쳤으니

馬倦金山芳草蹊 지친 말은 금산사(金山)의 방초 우거진 길을 헤매누나.

山腰禪閣逈添愁 산허리 사찰의 누각은 멀리 시름을 더하고

臨水虛欄悽獨躋 물가 빈 난간에 처량하게 홀로 오르네.

/斑斑壁墨是誰裁 얼룩덜룩 벽에 남은 먹글씨는 누가 지었는가

慣眼紅詞荑手題 눈에 익은 붉은 시구는 고운 손으로 적었구려.

春林跡留過麝香 봄 수풀엔 사향노루 지나간 듯 향기가 남아있고

畵樑痕餘歸鷰泥 그림 그려진 들보엔 돌아온 제비의 진흙 흔적이 감도네.

孤煙平楚數峯青 외로운 연기 피어나는 평원에 몇 봉우리 푸른데

所懷伊人何處凄 그리워하는 그 사람은 어느 처량한 곳에 있는가.

靑廬舊話杳難憑 푸른 천막(혼례) 속 옛이야기는 아득하여 믿기 어렵고

桂籍新名言不稽 과거 급제자 명부의 새 이름은 상고할 길 없네.

從知壁上一串珠 벽 위의 시가 한 줄기 궤뚫은 구슬 같음을 알겠으니

便作心中千里犀 곧 내 마음속 신령한 소뿔(서로 통하는 마음)이 되었구려.

蠻吟竸動估客船 오랑캐의 노래(여인의 시)가 장사꾼 배를 뒤흔드는데

五兩飄飄如竹齊 바람개비는 대나무처럼 나란히 휘날리네.

微微風便碎玉聲 은은한 바람결에 옥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 들리니

不難篷牕聽一凄 돛배 창가에서 그 처량한 노래를 듣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

離鸞別鶴不盡愁 이별한 난새와 학(離鸞別鶴)의 시름은 끝이 없는데

錦囊新詞嗟小奚 비단 주머니 속 새 시를 보며 어린 하인(혜례)과 탄식하네.

朦朦煙月十里岸 어둑한 안개 달빛 비치는 십 리 강안

此曲分明江水西 이 노래는 분명 강물 서쪽에서 들려오리라.

檣烏叢裏若有問 돛대 무리 속에서 만약 (누가 불렀냐고)묻는 이가 있거든

爲言山門余馬嘶 산사 문 앞에서 내 말이 울고 있다고 말해주오.

虛樓百尺悵延佇 백 척 높은 빈 누각에서 슬프게 오래도록 서성이니

黯雨凄雲巫峀迷 어두운 비와 처량한 구름 속에 무산 봉우리가 아스라하네.

床琴復續旣斷絃 침상 위 거문고 끊어진 줄을 다시 이어 켜노니

還我仙郞金玉閨 부디 내 신선 같은 낭군을 금방(안방)으로 돌려보내 주오.

[1] 청란일곡(靑鸞一曲) : 고전 문학과 한시에서 '청란(푸른 난새)이 부르는 한 자락의 노래'라는 뜻으로, 대개 '홀로 남은 외로움'이나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슬픈 마음'을 비유하는 시어다.

[2] 울금당(鬱金堂) : 중국 고전 시가에서 '울금향(鬱金香)이라는 향료를 벽에 발라 향기가 나도록 화려하게 꾸민 여인의 방'을 뜻하는 말. 주로 한시에서 귀족 가문의 젊은 여인이나 아내가 거처하는 아름답고 고아한 규방을 미화하여 표현할 때 사용된다.

[3] 능운지기(凌雲之氣) : 높은 구름을 뚫는 기세. 높은 지위나 뜻을 이루려는 기운.

[4] 이란별학(離鸞別鶴) : 부부가 서로 헤어져 멀리 떨어져 지내는 외롭고 슬픈 처지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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