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멋과 맛을 꽃피우는 도시 전주시(全州市), 한시(漢詩)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전주시는 지방 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이자,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이며,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전라도 곡창지대를 대표하는 도시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한정식, 막걸리 골목, 물갈비 등 음식문화가 발달하여 2012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에 선정되었으며, 매년 5월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자랑스러운 문화도시다. 또한 후삼국 후백제(견훤)의 도읍지로써, 조선 왕조의 발상지(豐沛之鄕)로써, 조선 왕들의 관향(貫鄕)으로 인해 가히 ‘제왕의 도시’라고 불린다. 게다가 700여 채의 한옥이 도심 속에 보존되어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이 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전주판소리'의 본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고 품질의 전주한지를 생산하는 한지 문화의 중심지로, “천년 역사를 품고, 가장 한국적인 멋과 맛을 꽃피우는 도시”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전북대학교에 동기 2명이 교수로 근무하며 전주에서 터전을 일구면서 살고 있는데 그중 강원도 골짝 출신 친구는 그야말로 인품과 덕망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 그가 사는 이곳을 ‘명덕거(明德居)’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예로부터 물자가 풍부하고 인걸이 많이 배출되는 이런 땅을 하늘이 내린 길지(吉地)이자 복지(福地)라고 했다. “산물의 화려함은 하늘이 내린 보배이고 인물이 걸출함은 땅이 신령스러워서다.” 즉 전주는 가히 ‘물화천보(物華天寶) 인걸지령(人傑地靈)’이다. 덧붙여 항상 대학동기회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송회장과 권총무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 한편 인구 64만의 전주시의 간략한 연혁을 살펴보면, 처음 삼한의 마한에 이어 백제의 비사벌 또는 비자화로 불리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다. 신라 삼국 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완산주를 다시 설치하고, 757년(경덕왕 16)에 전주(全州)로 개칭되어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후 전주는 900년(효공왕 4)에 견훤이 무주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했다. 936년(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이어 고려시대 전주목,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후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조선시대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 1403년 이후로는 전라도의 감영이 있었던 ‘전주부’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전주의 별호는 완산(完山)·견성(甄城)이다. 해방 후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 특히 전주 시내를 둘러보면, 아직도 옛 향기가 곳곳에서 은은하게 일어나는 분위기와 접할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문화와 함께 고전적인 흥밋거리를 젊은이들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또 전라감영과 경기전, 조경묘 등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전주의 옛 객관(객사)을 완산객관(完山客館)이라고도 부르는데 현재 객관 ‘풍패관(豐沛館)’과 더불어 여기서 연유된 ‘풍남문(豐南門)’을 볼 수가 있다. 풍패(豐沛)는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현 패현'에서 유래한 말로, 왕조의 발상지를 상징한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관(전주 이씨)이므로 ‘조선 왕조의 풍패’라 불리었다. 그래서 객사 현판에 '풍패지관(豐沛之館)'이라고 적혀 있으며, 패택향(沛澤鄕)이란 말도 함께 쓰였다. 이 말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 이름’를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전주가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본향(조경묘, 경기전이 위치)이므로, 전주를 조선 왕조의 발상지(豐沛之鄕)로 격상시켜 표현한 것이다. 고로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전주를 둘러본 후, 전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찬미와 조선왕실 발상지에 대한 경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이에 전주시(全州市)를 읊은 ‘17편의 한시(漢詩)’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왕조시대 이 땅의 선조들은 전주시를 둘러 보고 난 후, 호남 제일의 도시를 어떻게 읊었는지 읽어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한 이들은 전주의 남고산, 남고사(南高寺), 기린봉, 만마동(萬馬洞), 만경대(萬景臺), 남천교, 낙민루(樂民樓), 풍패관(豊沛舘), 남문루(南門樓), 향교 만하루(鄕校萬化樓), 제남정(濟南亭), 객관(客館) 등의 지명을 차용해 문학작품의 공간적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1) 다음 ‘庚’ 운목의 칠언율시 「제완산풍패관(題完山豊沛舘)」은 조선 후기의 문신 팔송(八松) 정필달(鄭必達 1699~1773)의 시집인 『팔송집(八松集)』 권1(卷之一) 시(詩)편에 에 수록된 칠언율시다. 이 시는 전주(완산)의 객사인 풍패관(豊沛舘)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바라본 전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 왕실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기리고 있다.
*구절별 내용을 들여다보면, 첫구(句)에선, 전주가 예로부터 번화한 대도시이자, 과거 후백제 견훤이 도읍으로 삼았던 역사적 장소(甄城)임을 짚어준다(全州都會古甄城).
둘째 구에선 '자심(藉甚)'은 명성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다. 호남 지역(충청·전라)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전라감영이 있는 곳임을 강조한다(藉甚湖州第一營).
셋째 구에선, 전주천 등 도시를 둘러싸고 흐르는 물줄기를 아름다운 비단 띠(라대)에 비유했다(面面水爲羅帶繞). 넷째 구에선, 전주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산세(모악산 등)의 웅장함을 흰 용(옥룡)이 꿈틀거리며 누워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重重山作玉龍橫). 다섯째 구에선, 해 질 무렵 객사 풍패관의 화려한 누각에 드리운 커튼이나 가마의 장식 술(류수) 그림자를 묘사하여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을 그렸다(樓臺晩掩流蘇影). 여섯째 구에선, 번화한 전주 거리에 비단옷(라기)을 입은 사람들과 활기찬 문화적 분위기, 그리고 울려 퍼지는 피리(철적) 소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羅綺晴嬌鐵笛聲).
일곱째 구에선, 전주는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본향이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경기전'을 바라보며 왕실에 대한 정중한 예의와 엄숙함을 표했다(瞻謁慶基成佇立).
여덟째 구에선,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여정(왕정)이지만, 전주의 수려한 풍경과 조선 왕실의 뿌리가 깊은 이곳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작가의 심정으로 마무리하였다(朔天寒日緩王程).
결국 이 글은 전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찬미와 조선 왕실 발상지(전주)에 대한 경외감을 묘사한 한시다.
**「제완산풍패관(題完山豊沛舘)」** 『팔송집(八松集)』 정필달(鄭必達)
全州都會古甄城 전주는 큰 도시이자 옛 견훤의 도성(후백제의 수도)이요,
藉甚湖州第一營 명성도 자자한 호남의 제일가는 감영(전라감영)이로다.
面面水爲羅帶繞 면면히 흐르는 물은 비단 띠를 두른 듯 감돌고
重重山作玉龍橫 겹겹이 둘러싼 산들은 백옥 같은 용이 비껴 누운 듯하네.
樓臺晩掩流蘇影 저물녘 누대에는 오색 술(장식) 그림자 드리우고
羅綺晴嬌鐵笛聲 맑은 날 비단옷 입은 미인들 속으로 철단소 소리 아양떨듯 들려오네.
瞻謁慶基成佇立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우러러 뵙고자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朔天寒日緩王程 북녘 하늘 차가운 해 아래 임금님 명하신 여정을 잠시 늦추게 되네.
[주1] 풍패관(豊沛舘) : 전주 객사의 이름으로, '풍패'는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에서 유래하여 '왕조의 발상지'를 뜻한다.
[주2] 경기전(慶基殿) :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곳이다.
2) 다음 ’陽‘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완산부(完山府)」는 조선 중기 외교와 문장에 뛰어났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한시다. 완산부는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를 뜻하며, 이 시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의 당당한 기상과 역사적 위상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단순한 풍경 시가 아니라, 전주가 가진 '왕조의 발상지'라는 상징성을 시각적·역사적 고사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거대한 도시 규모(1-2구), 거쳐온 역사(3-4구), 신성한 정통성(5-6구), 영원한 번창 기원(7-8구)으로 이어지는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은 그의 문집 『계곡집(谿谷集)』 권28(卷之二十八)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인즉, 군사적·지리적으로 요충지가 되는 뛰어난 지형을 '형승(形勝)'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전주의 산천이 어우러진 풍수와 경치가 남쪽 지방 전체에서 단연 최고(冠)라고 치켜세우며 시를 시작한다. 그리고 한때는 반역과 할거의 땅이었으나, 천기(天氣)가 바뀌어 조선 왕조의 시조들이 터를 잡으면서 산천의 신령이 조선의 건국을 돕기 위해 온갖 복과 상서로운 징조(百祥)를 열어준 거룩한 땅으로 변모했음을 강조한다. 이어 장유는 조선의 전주 이씨(李氏) 황실이 일어난 전주를,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한나라와 당나라의 황실 발상지에 정식으로 비유하고 있다. 전주를 '풍패지향(풍패의 고향)'이라 부르는 전통적인 인식이 이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신성함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준다. 끝으로, '오색광(五色光)'은 성인이나 제왕이 머무는 곳에 서리는 상서로운 기운이다. 전주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저 멀리 한양의 궁궐을 바라보며, 조선 왕조와 임금의 안녕을 영원히 기원하는 신하로서의 충성심으로 시를 웅장하게 마무리했다.
**「완산부(完山府)」**/ 계곡(谿谷) 장유(張維)
槃槃一都會 거대한 규모의 번화한 하나의 도시요,
形勝冠南方 뛰어난 형승 또한 남방의 으뜸이어라.
割據當三季 삼국시대 말기에는 정족(鼎足)의 형세 이루었고
神靈啓百祥 신령스러운 분에 의해 길상(吉祥)의 문 열렸나니
唐家隴西郡 당나라 황실(王家)의 농서(隴西)군이요,
漢代沛豐鄕 한 나라로 말하면 풍패(豐沛)의 고장 같구나.
樓閣通雲氣 높은 누각이 구름 기운에 통하니
長瞻五色光 찬연한 오색 광채 길이 우러러보네.
[주1] 완산부(完山府) : 완산은 전주(全州)의 옛 이름이다.
[주2] 반반(槃槃) : 땅이 넓고 가옥이나 기상이 장대하고 서린 모습을 뜻함.
[주3] 정족(鼎足) : 할거하며 웅거하다. 세력(勢力)이 솥발과 같이 벌여 섬
[주4] 신령스러운 …… 열렸나니 : 전주 이씨(全州李氏)인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것을 말한다.
[주5] 삼계(三季) : 여기서는 신라 말기, 즉 후삼국 시대를 가리킨다. 견훤이 전주(완산주)에 후백제를 세우고 할거했던 역사를 뜻한다.
[주6] 롱서군(隴西郡)과 패풍향(沛豐鄕) : 각각 당나라 이씨(李氏) 황실과 한나라 유씨(劉氏) 황실이 일어난 고향이다. 조선 이씨 왕조의 본향(풍패지향)인 전주를 이 두 곳에 비유하여 극찬한 표현이다.
[주7] 오색광(五色光) : 제왕이나 성인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기운으로, 조선 왕조의 번창을 기원하고 있다.
3) 다음 ‘庚’과 ‘微’ 운목의 칠언율시 「전주남문루(全州南門樓)」 2수(首)는 조선 후기의 문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가 전주의 남문(풍남문)에 올라 전주의 역사적 기상과 풍경, 그리고 자신의 쓸쓸한 심회를 읊은 연시 작품이다. 이 글은 그의 저서 『석북집(石北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제1수]에선, 전주부성의 장엄한 형세와 번영하는 전주를 기술했다. 여기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풍패지향)이자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였던 역사를 되짚으며, 서울 못지 않게 번화하고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전라감영의 장엄함을 찬양하고 있다.
[제2수]에선, 평화로운 풍경 속 나그네의 쓸쓸한 심회(心懷)를 드러냈다. 비 내리는 평화로운 봄날, 풍남문에서 바라본 경기전과 후백제 견훤의 성터, 전주성 안팎의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과거 영웅들이 호령하던 역사의 자취와 달리 지금은 너무나 조용해진 풍경을 보며,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시골 나그네로 머물러 있는 시인 자신의 쓸쓸한 처지와 가슴속 품은 대망(壯心)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을 대조하여 표현한 명시다.
**「전주남문루(全州南門樓)」** / 신광수(申光洙)
全州形勢半王京 전주의 지세와 형성은 절반쯤은 서울(왕경)과 같고
城對甄萱古石城 성벽은 견훤이 쌓았던 옛 석성을 마주하고 있네.
萬樹樓臺通曙色 수많은 나무 사이 누각과 대대에는 새벽빛이 통하고
六門歌吹散春聲 여섯 성문에서는 노래와 악기 소리 봄날의 흥취로 흩어지네.
猶聞一統歸眞主 삼국 통일이 참된 군주(태조 이성계)에게 돌아갔음을 여전히 듣누나,
終制三南作上營 끝내 삼남(하삼도)을 통제하는 가장 으뜸가는 전라감영이 되었네.
辛苦向來謀國計 그동안 나라의 계책을 도모하느라 고생도 많았으니
豐原實賴聖君明 풍패지향(왕실의 고향)이 된 것은 진실로 임금의 현명함 덕분이로다.
其二
夾城槐柳雨微微 성을 끼고 도는 회화나무와 버드나무엔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고
城上高樓燕子飛 성벽 위 높은 누각에는 제비들이 날아다니네.
紫氣春浮眞殿瓦 태조의 어진을 모신 진전 기와지붕엔 봄의 자줏빛 기운이 떠 있고
靑山晝繞別營旗 푸른 산은 대낮에 군영의 깃발을 둘러싸고 있구나.
于今鵝鴨千家靜 이젠 거위와 오리 기르는 여느 민가처럼 천 가구가 평온하기만 하니
不復英雄萬馬歸 영웅들이 만 마리 말을 몰고 돌아오던 옛 시절은 다시 오지 않네.
惆悵旅遊佳麗地 이처럼 아름답고 고운 고장을 나그네 되어 유람하자니 서글퍼지는데
布衣寂寞壯心違 벼슬 없는 백성(포의)의 쓸쓸함에 젊은 날의 큰 뜻마저 어긋나네.
4)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 「완산(完山)」은 조선후기 문신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 1599~1660)의 평기식 한시로, 그의 문집 『호주집(湖洲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비 갠 유월 밤의 서정적인 풍경과 쓸쓸한 심회를 완산(전주) 부윤(太守)에게 전하는 고풍스러운 작품이다. 이 시는 한여름 밤 비가 갠 뒤의 호젓하고 고요한 완산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반부(1, 2구)에서는 비가 개인 깊은 밤, 희미하게 켜진 등불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고요하고도 다소 쓸쓸한 밤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후반부(3, 4구)에서는 그 고을을 다스리는 현명한 태수(부윤)를 향해 "이 밤,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맑은 내 마음(정취)을 당신은 알아줄 수 있겠소?"라고 다정하게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류를 아는 지인과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하는 문인의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완산(完山)」** /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 1599~1660)
完山六月雨初晴 완산(전주) 땅 유월에 비가 비로소 개니
燈火靑熒欲二更 가물거리는 등불 밑에 밤은 깊어 이경이 되려 하네.
爲問碧城賢太守 벽성(碧城)의 어진 태수에게 한 번 물어보노니
可能斟酌此時情 이러한 때 나의 이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으리오.
[주1] 청형(靑熒) : 등불 빛이 푸르스름하게 가물거리거나 희미하게 빛나는 모양을 뜻함. 밤의 고요함과 쓸쓸함을 더해준다.
[주2] 이경(二更) :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둘째 밤중으로, 밤 9시부터 11시 사이의 깊은 밤을 뜻한다.
[주3] 벽성(碧城) : 전주의 별칭 혹은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여기서는 완산의 태수가 다스리는 고을을 뜻한다.
[주4] 태수(太守) : 본디 고을의 원님(수령)을 말하나 여기서는 전주 부윤을 말함.
[주5] 짐작(斟酌) : 술을 알맞게 따르다라는 뜻에서 유래하여, 상대의 사정이나 마음을 헤아려 알아준다는 의미로 쓰였다.
5) 다음 칠언절구 「전주 도중에(全州道中)」 4수(首)는 조선후기 학자 김종정(金鍾正 1722~1787)의 작품이다. 전라도 전주로 가는 길(또는 전주 여정 중)에 전주의 사월초파일 풍속과 한벽당의 연회와 애민(愛民) 정신, 그리고 우원역 길의 고요한 촌락 풍경을 마주하며 지은 연작 한시 4수다.
이 한시는 흐린 날씨 속에서 비를 맞아 더욱 푸르게 빛나는 산경을 지나 전주로 향하는 나그네의 외로운 여정과 웅장한 기개를 묘사한 작품이다. 2천 리의 먼 길을 홀로 말 한 마리에 의지해 봄바람을 맞으며 남쪽으로 향하는 장면을 통해 담담하면서도 호기로운 감정을 전달한다. 사월초파일 전주 성내의 화려한 야경과 물가에서 펼쳐진 독특한 용왕제 풍속을 노래하고 있고, 한벽당의 연회와 백성들의 농사 노고를 대조하며, 늦봄의 한적한 풍경과 함께 당시 전주의 풍요롭고 독특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전주가 한양처럼 번화했던 당시 상황과, 물가에서 병풍을 치고 축제를 즐기던 전주 고유의 세시풍속이 생생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또한 늦봄 오원역 주변의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풍경을 수묵화처럼 묘사하여, 서정적이고 쓸쓸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냇가, 우거진 풀, 고요한 외딴 마을 등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늦봄의 고즈넉한 정취와 고독감을 담았다. 이 글은 그의 저서 『운계만고(雲溪漫稿)』 권1(卷之一) 시(詩)편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을 살펴보면, [제1수]에선 전주로 향하는 노정의 초입을 그렸다.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지만, 오히려 그 비 덕분에 산의 푸른 생기가 선명해지는 자연의 변화를 포착했다. 유수(流水)와 부운(浮雲)처럼 정처 없는 나그네의 신세를 '이천 리'라는 거리감으로 표현하며, 봄바람을 안고 홀로 남쪽으로 향하는 시인의 고독하면서도 서정적인 정취가 돋보인다.
[제2수]에선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한 전주 시내의 번화함과 독특한 지역 풍속을 생생하게 기록한 풍속화 같다. 집집마다 연등을 달아놓은 모습이 수도인 한양 못지않게 번창함을 보여준다. 특히 전주 천변 등 물가에 병풍을 치고 놀며 용왕에게 제를 올렸다는 전주만의 향토적 민속(州俗)을 원주(原註)와 함께 생생히 기록하여 역사적·민속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수(首)다.
[제3수]에선 전주의 명승지인 한벽당에서 수령이 봄맞이 호화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묘사했다. 잔치를 장식하기 위해 백성들이 꽃을 채취해 바치는 것을 두고, 시인은 겉으로는 '풍류 있는 정치'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속으로는 "한창 바쁜 농번기(4월)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농사를 망치게 부려먹는구나" 하는 날카로운 비판과 걱정을 담았다. 목민관들의 과도한 풍류가 백성에게는 고통이 됨을 지적한 우국애민(憂國愛民)의 시선이 돋보인다.
[제4수]에선 전주를 지나 임실 방면의 우원역 길의 고요한 촌락 풍경을 그린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무성한 풀, 둥근 나무, 고요한 들판, 그리고 꽃이 떨어지는 봄날 저녁에 넌지시 닫혀 있는 시골집 대문(죽비)의 모습이 정취 있게 어우러진다. 앞선 2, 3수의 번화함과 소란스러움(잔치)에서 벗어나, 다시 자연과 동화된 시골 마을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서정성을 회복하며 연작을 마무리했다.
*결론적으로 김종정의 「전주 도중에」 4수는 단순한 산수유람기를 넘어, 조선후기 지방 도시의 역동적인 삶과 풍속,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적 시선을 고루 담아낸 명작이다. 특히 2수에서 언급된 사월초파일 물가에서의 '용왕제(賽龍王)' 풍속은 당시 전주 지역의 독특한 민간 신앙과 놀이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텍스트다. 3수에서 보이는 관료들의 호사스러움에 대한 우려와 백성들을 향한 따뜻한 연민은, 경치를 즐기면서도 현실(농사)을 잊지 않으려는 조선시대 현실 인식을 담은 올곧은 선비 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주 도중에(全州道中)」** / 김종정(金鍾正)
陰雲垂野鳥喃喃 먹구름 들판에 드리우고 새들은 지저귀는데
得雨山光欲放藍 비를 머금은 산빛은 푸른 빛을 발하려 하네.
流水浮雲二千里 흐르는 물과 떠도는 구름 따라 이천 리 길,
春風匹馬向天南 봄바람 맞으며 한 필의 말에 의지해 남쪽 하늘로 향하네.
其二
全州四月雜花香 전주의 사월은 온갖 꽃향기 가득하고
燈火家家似漢陽 집집마다 켜진 등불은 마치 한양 도성 같구나.
拾翠佳人爭約伴 푸른 풀 뜯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다투어 짝을 맺고
水頭屛帳賽龍王 물가에 병풍 치고 용왕에게 제사를 올리네.
전주의 풍속에 4월 8일 물 위에 병풍을 치고 서로 음식을 먹고 놀며 용왕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州俗四月八日 設屛帳於水上 相與飮食遊嬉 以祭龍王云)
其三
寒碧堂高流水長 한벽당은 높고 흐르는 물은 유유히 긴데
賞春太守綺筵張 봄을 즐기는 태수(전주부윤)는 화려한 잔치를 열었네.
貢花自是風流政 꽃을 바치게 하는 것은 본래 풍류 넘치는 정사라지만,
却恐村民穡事妨 도리어 시골 백성들의 농사일을 방해할까 두렵구나.
길에서 꽃을 짊어진 사람을 매우 많이 만났는데, 관청의 명령으로 채취하여 바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끝 구절에서 이를 언급했다.(路逢負花者甚多 以官令採納云 故末句及之)
其四
烏原驛路枕長川 우원역 가는 길은 긴 시내를 베고 누웠고
渚草茸茸嶺樹圓 물가의 풀은 무성하고 고갯마루 나무들은 둥글둥글하네.
數戶孤村臨野靜 두어 집 아담한 외딴 마을은 들판 향해 고요한데
竹扉斜掩落花天 꽃비 내리는 하늘 아래 사리문은 빗겨 닫혀 있구나.
[주1] 남남(喃喃) : 새가 낮게 지저귀는 소리.
[주2] 방람(放藍) : 푸른빛을 뿜어내다. 비를 맞아 싱그러워진 초목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표현이다.
[주3] 습취(拾翠) : 직역하면 '물새 깃털을 줍는다'는 뜻이나, 대개 봄날 여인들이 교외로 나들이를 가거나 풀을 뜯으며 노는 행위를 비유한다.
[주4] 새룡왕(賽龍王) : 신령(용왕)에게 감사 제사를 지내 보답하다.
[주5] 한벽당(寒碧堂) : 전주의 유명한 누각으로, 전주천의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는 곳에 있다.
[주6] 기연(綺筵) : 비단 자자리, 즉 화려하고 호화로운 잔치.
[주7] 색사(穡事) : 농사짓는 일 (파종과 수확).
[주8] 오원역(烏原驛) : 조선시대 전주 임실 구역에 있던 역참(현재 전북 임실군 관촌면 일대).
[주9] 용용(茸茸) : 풀이 보슬보슬하고 무성하게 자란 모양.
[주10] 죽비(竹扉) : 대나무로 만든 사리문.
6) 다음 ‘東’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완산교방가(完山敎坊歌)」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 1653~1704)이 전주(완산)의 번화함과 아름다운 풍광을 찬양하며 지은 한시다. 전주가 단순히 자연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발상지(풍패지향)로서의 역사적 권위와 수많은 인파·문화가 교류하는 대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제목에 '교방가(敎坊歌)'가 들어간 만큼, 후반부(5~6구)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추는 예인들의 모습을 시각적·청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 글은 『동계집(東溪集) 권5(卷之五)』에 수록되어 있다.
**「완산교방가(完山敎坊歌)」**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
完府繁華擅海東 완산부(전주)의 번화함은 해동(우리나라)에서 으뜸이고
山川明麗畫圖同 산천의 밝고 고운 모습은 그림과 같구나.
英雄躍馬餘殘堞 영웅이 말을 달리던 곳에는 무너진 성벽만 남았고
聖祖乘龍有閟宮 성조(태조 이성계)께서 승하하신 후 조경묘(비궁)가 있도다.
烟月千家梅竹影 안개와 달빛 어린 수많은 집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자요
笙歌百隊綺羅叢 풍악 울리는 수많은 예인들은 비단 옷을 떨쳐 입었네.
吳人每說江南樂 오나라 사람들은 매번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지만
未必江南勝此中 강남이 반드시 이곳(전주)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주1] 완부(完府) :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부(完山府)를 의미한다.
[주2] 성조승룡(聖祖乘龍) : 태조 이성계의 죽음을 왕이 용을 타고 승천했다는 고사에 비추어 표현한 것이다.
[주3] 비궁(閟宮) : 신위를 모신 사당을 뜻하며, 여기서는 전주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나 시조의 위패를 모신 조경단(조경묘)을 가리킨다.
[주4] 강남(江南) : 중국에서 가장 풍요롭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양쯔강 남쪽 지방을 뜻한다. 전주가 중국 최고의 휴양지이자 번화가인 강남보다 아름답다고 극찬한 것이다.
7) 다음 ‘尤’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완산객관만음(完山客館謾吟)」 ‘전주 객관에서 부질없이 읊다’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측기식 한시이다. 이 한시는 전주(완산) 객사에 머물며 젊은 시절을 회고하고 노년의 쓸쓸한 감회를 읊은 글로, 『백헌집(白軒集)』 권11(卷之十一) 남정록(南征錄)편에 실려 있다.
○ 내용인즉, 화자가 화려했던 과거의 관직 생활을 뒤로하고, 관직에서 물러난(休官) 노년의 나이에 과거 젊은 시절(少時) 머물렀던 전주를 다시 찾아와 느끼는 인생무상과 쓸쓸한 감회를 담고 있다. 처음엔 시간과 공간을 대비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전주(완산)라는 거대한 '공간'과 깊어가는 가을(9월)이라는 '시간'을 결합하여, 유구한 자연·역사 앞에 작아지는 인간의 삶을 부각했다. 이어 두 번째는 과거와 현재를 대비했다. 젊은 날 당당하게 머물렀던 과거와, 머리가 하얗게 세어(白首) 벼슬을 내려놓고 나그네로 찾아온 현재를 대비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극대화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여정의 소외감을 드러냈다. 한때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영의정(舊上相)이었으나, 이제는 변방의 객사에서 부질없이 시를 읊는(謾吟) 외로운 처지가 된 자신을 '남쪽 구석(南陬)'에 다다랐다고 표현하며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완산객관만음(完山客館謾吟)」** 『백헌집(白軒集)』 이경석(李景奭)
豐沛千年地 풍패(조선 왕조의 발상지) 천년의 땅에
山河九月秋 산과 강에는 9월의 가을이 깊었구나.
少時曾宿留 젊은 시절에 일찍이 머물렀던 이곳에
今日更來遊 오늘날 다시 찾아와 노니는구나.
擁傳恩光煥 수레를 몰고 올 땐 임금의 은혜 빛났으나
休官客路悠 관직을 그만둔 지금, 나그네 길은 아득하기만 하네.
誰知舊上相 그 누가 알았으랴, 한때 영의정(상상)을 지낸 이가
白首到南陬 흰머리가 다 되어 이 남쪽 구석까지 이를 줄을.
[주1] 완산객관(完山客館) : '완산'은 전주의 옛 이름이며, '객관(객사)'은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들이 숙소로 쓰거나 임금의 전패를 모셔두던 곳이다. 현재 전주 풍패지관(전주객사)를 말한다.
[주2] 풍패(豐沛) :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현 패현'에서 유래한 말로, 왕조의 발상지를 비유한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관(전주 이씨)이므로 조선 왕조의 풍패라 불렸다. 객사 현판에 '풍패지관'이라고 적혀 있다.
[주3] 옹전(擁傳) : 관리를 태운 역마나 수레를 옹위하여 달린다는 뜻으로, 과거 높은 관직에 있어 위세를 떨치며 임금의 은혜를 입었던 시절을 의미한다.
[주4] 상상(上相) : 정승, 특히 영의정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경석은 인조와 효종 연간에 영의정을 지냈다.
[주5] 남추(南陬) : '陬'는 구석이나 모퉁이를 뜻하며, 한양(조정)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변방 공간인 전라도 전주를 가리킨다.
8) 다음 ‘陽’ 운목의 칠언절구 「완산 증홍기(完山 贈紅妓)」 ‘완산에서 기생 홍이에게 주다’는 조선전기 『청계집』 등을 저술한 의병장 죽암(竹巖) 양대박(梁大樸 1543~1592)의 한시다. 아름다운 기생 홍이와의 은밀하고 애틋한 하룻밤의 정취와 풍류를 읊은 노래다. 이 글은 『청계집(靑溪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행, 기구]에선, 여인의 외모를 청초한 매화에 비유했다. 진한 화장이 아닌 '담장'을 통해 홍이의 맑고 고결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2행, 승구]에선,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활용했다. 눈길(추파)을 돌릴 때마다 풍성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향기를 묘사하여 관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미를 강조했다.
[3행, 전구]에선, 분위기가 반전되어 밤의 정경으로 들어간다. 외부와 차단된 장막 뒤에서 두 사람만의 깊고 은밀한 정을 나누는 순간이다.
[4행, 결구]에선, 시적 위트와 극적 효과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방 안의 유혹적인 분위기와 대비되도록, 누각 밖에서 이를 시샘하거나 그녀를 차지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제3자(혹은 세상 사람들)'를 등장시켜 자신들의 사랑을 은근히 과시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완산 증홍기(完山 贈紅妓)」**완산에서 기생 홍이에게 주다 / 양대박(梁大樸)
身與梅花共淡粧 그대 몸에는 매화와 함께 엷은 화장을 하였고
秋波回處鬢雲香 가을 물결 같은 눈길 돌리는 곳마다 구름 같은 머리칼 향기롭네.
紅樓一夜低帷話 붉은 누각에서 보낸 하룻밤, 장막을 낮게 내리고 이야기 나누는데
樓下何人枉斷膓 누각 아래 어느 누가 부질없이 애간장을 태우는가.
[주1] 홍기(紅妓) : '홍(紅)'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을 뜻함.
[주2] 담장(淡粧) : 진하지 않고 엷고 깨끗하게 한 화장.
[주3] 추파(秋波) : 가을의 잔잔한 물결이라는 뜻으로, 미인의 맑고 아름다운 눈빛을 비유함.
[주4] 빈운(鬢雲) : 구름처럼 풍성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머리카락을 의미함.
[주5] 홍루(紅樓) : 기생이 머무는 화려한 누각.
[주6] 저유화(低帷話) : 침실의 장막을 낮게 내리고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임.
[주7] 왕단장(枉斷膓) : 부질없이 또는 억울하게 창자가 끊어질 듯한 극심한 슬픔(질투나 그리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9) 다음 평성 '陽‘ 운목의 칠언율시 「완산(完山)」은 1758년(영조 34년) 9월 전라조장(전라아사 겸 해운판관)으로 부임(壬寅九月 以全羅亞使 兼海運判官)한 김시빈(金始鑌)이 전주(완산)에 도착하여 그 웅장한 역사성과 번화한 시장 풍경, 그리고 지방관으로서의 자부심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글은 그의 문집 『백남집(白南集)』 권2(卷之二) 호남록(湖南錄)편에 실려 있다.
또한 이 작품은 평기식 칠언율시이며, 호남의 중심지인 전주를 찬양하기 위해 중국 제(齊)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와 한나라를 세운 유방(한고조)의 고향 ’패택(沛澤)‘이라는 격 높은 고사를 정교하게 맞물려 사용했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의 활기(시각·촉각)와 왕조의 상서로운 기운(종교·정치적 상징)이 훌륭한 대칭을 이룬다.
○내용을 분석해 보면, ① 수련 (1~2구)에선, 전주 입성의 여정과 시간적 배경을 그렸다. 해 질 무렵, 넓은 호남평야를 지나 전주에 도착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그렸다. 여기서 '장교(長郊)'는 넓은 들판을 뜻하며 호남평야의 광활함을 암시한다. 저물어가는 석양빛 속에서 말(馹騎)을 달려 전주성으로 들어가는 시인의 모습에서 지방관으로서의 임지에 첫발을 내딛는 설렘과 긴장감이 묻어난다. ② 함련 (3~4구)에선, 전주의 역사적·지리적 위상을 강조했다. 전주가 역사적으로나 국방상으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인지를 대구(對句)를 통해 강조했다. ③ 경련 (5~6구)에선, 전주의 번화함과 왕조 발상지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냈다. 임치시(臨淄市)와 패택향(沛澤鄕), 두 가지 유명한 중국 고사를 인용하여 전주의 풍요로움과 역사적 위상을 극찬했다. ④ 미련 (7~8구)에선, 목민관으로서의 만족감과 포부를 밝혔다. 전주의 훌륭한 문물과 풍경을 보며, 변방 막료로 내려온 신세를 한탄하기는커녕 깊은 보람을 느꼈다. 여기서 '관미(官味)'는 벼슬살이의 맛을 뜻한다. 중앙 요직이 아닌 지방의 막료(보좌관) 직책이지만, 이토록 역사 깊고 번화한 고도(古都)를 다스리고 조망할 수 있으니 벼슬할 맛이 난다며 자부심과 만족감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완산(完山)」** / 김시빈(金始鑌) 조선 영조 때 문신.
長郊晩色逈蒼蒼 넓은 들판의 저녁 빛은 멀리 푸르스름하고
馹騎穿來趁夕陽 역마를 달려 석양을 따라 (전주에) 당도했네.
從古山河雄左海 예로부터 이곳 산하는 우리 대동(동해의 왼쪽)에서 웅장했고
卽今屛翰重南疆 지금도 남쪽 국경을 지키는 중요한 울타리라네.
千街汗雨臨淄市 수많은 거리엔 땀이 비처럼 흐르니 제나라 임치 시장 같고
一道祥雲沛澤鄕 온 고을에 상서로운 구름이 감도니 한고조의 고향 패택 같구나.
賸得古都觀覽富 고도의 풍부한 볼거리를 넉넉히 구경하니
幕僚官味不全凉 막료(지방관)로 일하는 맛이 전혀 쓸쓸하지 않네.
[주1] 여기서 바다의 왼쪽 좌해(左海)는 즉, 중국의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조선)를 뜻한다.
[주2] 병한(屛翰) : 나라를 지키는 울타리와 날개라는 뜻으로, 전주가 호남의 치소(治所)이자 남쪽 국방의 핵심 기지임을 나타낸다.
[주3] 임치시(臨淄市) : 중국 제(齊)나라의 수도로, 사람이 너무 많아 옷소매를 휘두르면 그늘이 지고 땀을 흘리면 비가 된다(揮汗成雨)고 할 정도로 번화했던 곳이다. 전주 시장의 엄청난 규모와 유동 인구를 비유했다.
[주4] 패택향(沛澤鄕) : 한나라를 세운 유방(한고조)의 고향이다. 전주는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본향(조경묘, 경기전이 위치)이므로, 전주를 조선 왕조의 발상지(풍패지향)로 격상시켜 표현한 것이다.
10) 다음 ’陽‘ 운목의 칠언율시 「완산객관지감(完山客館志感)」’완산 객관에서 느낀 바를 기록하다‘는 조선 중기의 문인 동리(東里) 이은상(李殷相, 1617~1678)이 전주(완산) 객사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지은 한시다. 과거 전주에서 가졌던 즐거운 모임이나 인연을 추억하며, 시간이 흘러 홀로 객사에 묵으며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혼여몽)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 시는 한시의 전형적인 창작 원리인 선경후정(先景後情, 전반부에서는 풍경을, 후반부에서는 감정(정서)을 서술함) 구조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다. 이 글은 『동리집(東里集)』 권7(卷之七) 시(詩)편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기(起)구]에선, 전주에 도착한 시인이 마주한 풍요롭고 번화한 전주(완산)의 첫인상을 묘사했다. '패읍(沛邑)'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이며, '낙양(洛陽)'은 중국 역대 왕조의 가장 번성했던 수도를 뜻한다. 즉,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를 중국 최고의 번화가에 비유하여 도시의 격조와 규모를 극찬했다. 이어 '만가(萬家)'는 수많은 민가를, '천맥(阡陌)'은 사방으로 탁 트인 논밭의 길을 말한다. 백성들의 집과 농토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농사와 누에치기(농상)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해 전주 지역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평화로운 민생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승(承)구]에선, 왕조의 발상지에서 느끼는 봄의 감회를 표현했다. 새해를 맞아 내리는 비와 이슬(우로)을 보며 계절의 순환을 체감한다. 여기서 '우로'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백성을 기르는 '임금의 은혜(聖恩)'를 상징하기도 한다. 새 봄의 생명력 속에서 조정과 왕조의 기운을 느끼는 대목이다. 그리고 '황조(皇祖)'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뜻하며, '의관(衣冠)'은 그의 영정(어진)을 모신 전주 경기전을 의미한다. 달이 떠올라 태조의 고향(월출향)이자 왕조의 뿌리인 전주 땅을 환하게 비추는 모습을 묘사했다. 앞서 감탄한 전주의 번화함이 바로 이곳이 왕조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했다. [전(轉)구]에선,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쓸쓸함을 드러내 시상의 전환을 꾀했다. 시인의 시선이 외부 풍경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과거에 방문했던 객사(玄觀)를 '다시 유람(重遊)'하게 되니 옛 기억과 인연에 대한 그리움(戀)이 유독 가슴에 사무친다는 고백이다. '벽루(碧樓)'는 전주 객사(풍패지관)나 주변의 아름다운 누각을 뜻한다. 과거 그 누각에서 뜻이 맞는 문인들, 혹은 반가운 지인들과 함께 가졌던 '아름다운 모임(佳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며 강하게 반문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릴수록 현재 홀로 남은 외로움은 더욱 극대화된다. [결(結)구]에선, 인생무상과 홀로 남은 밤의 독백을 묘사했다. 이 시의 핵심 주제가 드러나는 구절이다. 지나간 즐거운 일들(往事)을 가만히 헤아려 생각해보니, 그 모든 화려함과 즐거움이 '온통 꿈만 같다(渾如夢)'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정서를 토로한다. 번화한 전주성 안에서 시인 개인은 깊은 허무감을 느낀다. 깊어가는 밤, 객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베개에 기대어(倚枕) '외로이 시를 읊조리는(孤吟)' 시인의 실존적 모습을 드러내며, 과거에 지었거나 혹은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옛 시의 장을 혼자서 외롭게 이어 나가며(續舊章) 쓸쓸히 시를 마무리했다.
○ 이 작품은 '전주'라는 공간이 가진 2가지 속성을 교차시켰다. 공적(公的) 공간으로,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자 번화하고 풍요로운 역사적 중심지(전반부), 그리고 사적(私的) 공간으로, 시인 개인이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홀로 밤을 지새우는 쓸쓸한 객사(후반부)다. 도시 전체는 새봄을 맞아 비와 이슬 속에 번창하고 달빛까지 환하게 비추지만, 그 거대한 번화함 속에서 홀로 베개를 베고 꿈같은 옛일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외로운 독백(孤吟)이 강한 대비를 이루어 깊은 여운을 주는 명시다.
**「완산객관지감(完山客館志感)」** 『동리집(東里集)』 이은상(李殷相)
沛邑繁華似洛陽 패현(조선 태조의 고향인 전주)의 번화함이 낙양과 같고
萬家阡陌盛農桑 수많은 집의 논밭에는 농사와 누에치기가 성하구나.
新年雨露春來感 새해의 비와 이슬에 봄이 온 것을 느끼고
皇祖衣冠月出鄕 태조 대왕의 의관을 모신 곳에 달이 고향을 비추네.
玄觀重遊偏有戀 현관(玄觀, 객관)을 거듭 찾아와보니 유독 그리움이 남고
碧樓佳會可能忘 푸른 누각에서의 아름다운 모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思量往事渾如夢 지난 일을 생각해보니 온통 꿈만 같은데
倚枕孤吟續舊章 베개에 기대어 외로이 읊조리며 옛 시의 장을 이어보네.
[주1] 패읍(沛邑) :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완산)를 왕조의 발상지라는 의미에서 '패읍'이라 자주 비유했다.
[주2] 황조의관(皇祖衣冠) : 전주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경기전(慶基殿)이 있다. 이를 임금의 옷과 갓을 모신 곳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3] 현관(玄觀) : 도교의 사원이나 웅장한 객사의 건물을 뜻한다.
11) 다음 ’東‘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완산 도중에(完山途中)」는 고려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전주(완산)를 여행하며 지은 한시다. 당시 전주 지역의 당당한 기상과 인재들의 명성,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호쾌하게 노래했다. 틍히 이 작품은 ’雄‘과 ’中‘ 두 압운자를 이어 사용해 라임과 운율을 극대화했다. 이 글은 저자의 문집 『가정집(稼亭集)』 권20(卷之二十)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을 감상해 보면, 먼저 [1~4구]에선, 전주의 당당한 기상과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전라도의 중심인 전주의 웅장한 기세를 찬탄하며 시작했다. 특히 과거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최포와 이달충 같은 대단한 인재들을 배출한 곳임을 강조한다. 전주를 지나가는 외지인들이 아무리 높은 벼슬을 자랑하더라도, "이곳은 정승판서가 수두룩하게 나온 인재의 고향"이라며 전주라는 공간에 엄청난 자부심을 부여하고 있다. [5~6구]에선, 인간적인 친근함과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지방의 기상을 예찬한 뒤, 시인은 자신이 잘 아는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언급한다. 장원급제를 했던 최포는 이제 술을 좋아하는 친근한 동네 어르신(주벽)이 되었고, 이달충은 여전히 뛰어난 시 실력을 자랑하는 시웅(詩雄)으로 묘사하며 호쾌한 문인들의 풍류를 보여준다. [7~8구]에선, 인생무상과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완산도(전주 길)를 걸으며 느끼는 감정을 담았다. 뛰어난 인재들의 명성도, 조정의 높은 벼슬도, 세월이 흐르면 결국 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일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다. 시인은 이를 비관적으로 보기보다, 봄날의 풍경 속에서 "허허" 하고 한바탕 웃어넘기는 호방하고 달관적인 태도로 시를 마무리했다.
**「완산 도중에(完山途中)」** / 이곡(李穀)
狀元崔李才名大 장원 급제한 최씨(최포)와 이씨(이달충)는 재주와 명성이 자자하고
界首全羅氣象雄 전라도의 머리인 완산부(전주)는 그 기상이 웅장하구나.
過客休誇金紫貴 지나가는 나그네들이여, 고관대작의 귀함을 자랑하지 말라.
公卿多出一鄕中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들이 여기 이 한 고을에서 많이 나왔다네.
典薄先生成酒癖 전박 선생(최포)은 술버릇이 깊어졌고
訥齋相國號詩雄 눌재 상국(이달충)은 시의 영웅이라 불릴 만하도다.
靑春白日完山道 푸른 봄날, 밝은 해가 비치는 완산 길을 걸어가노라니
萬事都休一笑中 세상만사가 모두 한바탕 웃음 속에 부질없어지는구나.
[주1] 완산(完山) : 전주(全州)의 옛 이름. 전주의 별호는 완산(完山)·견성(甄城)
[주2] 최이(崔李) : 전주 출신의 뛰어난 문인인 최포(崔抱)와 이달충(李達衷)을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과거 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주3] 계수(界首) : 한 행정 구역의 중심이 되는 우두머리 고을을 뜻함. 여기서는 전라도의 중심지인 전주를 의미한다.
[주4] 금자(金紫) : 금인(금도장)과 자수(보라색 인끈)로, 고관대작이 누리는 부귀영화와 높은 벼슬을 상징함.
[주5] 전박(典薄) : 최포가 지낸 관직(태자문학 등)과 관련된 별칭이다.
[주6] 눌재(訥齋) : 고려 말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이달충의 호다.
[주7] 도휴(都休) : 모두 끝나다, 부질없어지다. 라는 뜻.
12) 다음 ’虞‘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완산(完山)」은 조선후기 문신 당촌(塘村) 황위(黃暐 1605~1654)의 작품이다. 전주(옛 완산주)를 배경으로 역사의 흥망성쇠를 읊으며,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라를 구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율시다. 이 글은 그의 문집 『당촌집(塘村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을 살펴보면, 완산(전주)의 역사적 유적지를 돌아보며 느낀 역사의 무상함(맥수지탄)과 국난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의 무력감과 우국충정을 노래하고 있다. [1~2구]에선, 홀로 말을 타고 만마동을 지나는 시인의 쓸쓸한 여정으로 시작한다. 지는 해와 외로운 봉우리는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외로운 심정을 시각적으로 투영한다. [3~4구]에선, 전주의 역사적 공간을 대조하였다. 후백제 견훤의 화려했던 성터는 무너졌지만 여전히 큰 고을이고, 만경대는 주인 없이 비어있으나 풍경만큼은 그대로다. 인간의 역사는 유한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는 대조를 이룬다. [5~6구]에선, 개인의 감상이 시대적 현실로 확장된다. 흥망성쇠를 돌아보니 감회가 깊은데, 지금 세상은 전쟁(풍진)으로 인해 온 천지가 황폐한 잡초밭(진무)처럼 변해버렸다는 슬픔을 토로했다. [7~8구]에선, 시의 핵심 주제가 드러난다. 자신을 한낱 무력한 '서생'으로 낮추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세력(오랑캐)을 물리칠 방책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결국 난세를 구하고자 했던 제갈량의 '양부음'을 홀로 읊조리며, 깊은 탄식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완산(完山)」 / 황위(黃暐 1605~1654)
匹馬悠悠萬馬洞 외로운 말 한 마리 타고 유유히 만마동을 지나는데
斜陽欲盡遠峯孤 석양은 뉘엿뉘엿 지려 하고 저 멀리 외로운 봉우리만 홀로 서 있네.
甄萱城廢卽雄府 견훤의 성터는 황폐해졌으나 이곳은 여전히 큰 고을(전주부)이요,
萬景臺空仍勝區 만경대는 비어 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명승지로구나.
今古興亡多感慨 고금의 흥하고 망함에 감회가 깊어지는데
風塵天地自榛蕪 전쟁의 바람과 먼지(풍진) 속에 천지는 절로 거친 잡초밭이 되었네.
書生愧乏平胡策 글만 읽은 서생으로서 오랑캐를 평정할 계책이 없으니 부끄러워,
梁父吟成但一吁 제갈량의 양부음을 읊조려 보며 오직 한숨만 지을 뿐이네.
[주1] 만마동(萬馬洞) : 전주 인근의 지명으로, 완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나 골짜기를 뜻한다.
[주2] 견훤성(甄萱城) :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전주에 쌓았던 성의 흔적.
[주3] 만경대(萬景臺) : 전주 남고산에 있는 바위로, 고려 말 정몽주가 우왕을 걱정하며 시를 남긴 곳으로 유명하다.
[주4] 풍진(風塵) : 세상의 어지러운 난리나 전쟁을 비유함.(작가가 살았던 시기의 국난을 의미)
[주5] 평호책(平胡策) : '오랑캐를 평정할 계책'이라는 뜻, 외침에 대응할 국방·정치적 해결책을 말함.
[주6] 양부음(梁父吟) : 삼국지의 제갈량이 초야에 묻혀 살 때 즐겨 불렀던 노래로, 난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인재의 안타까움이나 우국충정을 상징한다.
13) 다음은 조선 후기의 학자 모주(茅洲) 김시보(金時保, 1658~1734)가 전주(완산)를 지나며 지은 ’靑‘과 ’蕭‘ 운목의 연시 칠언절구 「과완산(過完山, 완산을 지나며)」 2수다. 이 시는 과거 전주에서 지인들과 함께 나누었던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며,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전주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과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애틋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 글은 그의 문집 『모주집(茅洲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 시는 전주의 아름다운 봄 풍경을 배경으로 ‘과거의 찬란함’과 ‘현재의 쓸쓸함’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자연은 변함없이 봄을 맞아 풀이 푸르고 아름답지만(草靑靑), 다시 돌아온 화자의 머리는 어느새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쇠어버렸다(鬂霜凋). 과거 기린봉에서 달빛을 받으며 음악과 함께 돌아오던 화려한 밤은 가고, 이제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먼저 떠나간 벗들을 그리워하는 늙은 시인의 고독이 깊게 배어 있는 명시다.
**「과완산(過完山)」** 모주(茅洲) 김시보(金時保)
*제1수 (其一)
完城曉望草靑靑 완성(전주성)의 새벽녘 바라보니 풀은 푸릇푸릇하고
歇馬春天喚酒甁 봄날에 말을 멈추고 술병을 불러온다(술을 주문).
暗誦舊詩心已折 옛날에 지었던 시를 가만히 읊조리니 마음은 이미 꺾이고
醒來恐近濟南亭 술에서 깨어나면 제남정(濟南亭)에 가까워져 있을까 두렵구나.
[주1] 완성(完城) :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完山)'에 쌓은 성, 즉 전주를 의미함.
[주2] 제남정(濟南亭) : 전주성 남문(풍남문) 밖에 있던 조선시대의 유명한 누정. 여기서는 과거 예인들과 교류하거나 풍류를 즐기던 상징적인 공간으로, 옛 추억이 서린 곳을 직면하기 두려운 화자의 애틋한 심정이 투영되어 있다.
*제2수 (其二)
麒麟峰上昔招邀 예전에는 기린봉(麒麟峰) 위로 초대를 받아 모였고
歸路笙歌月滿橋 돌아오는 길엔 생황소리와 노래가락 속에 달빛이 다리에 가득했었지.
不道中間存沒恨 그사이 삶과 죽음이 갈라진 한(恨)은 말하지 않더라도
重來吾亦鬂霜凋 다시 찾아온 나 역시 살쩍이 서리처럼 하얗게 시들어버렸구나.
[주1] 기린봉(麒麟峰) : 전주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로, 예로부터 전주 고을의 명소다.
[주2] 존몰한(存沒恨) : 살아있는 사람(存)과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沒) 사이에 느끼는 슬픔과 그리움을 뜻한다. 과거 기린봉에서 함께 풍류를 즐기던 벗들이 이미 많이 세상을 떠났음을 암시한다.
14) 다음 ‘魚’와 ‘御’ 운목의 칠언율시 「만보완산남천교(晩步完山南川橋)」 ‘저물녘 완산(전주) 남천교를 거닐며’는 조선후기 문인 화가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의 작품이다. 이 시는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중인 신분의 시인) 임득명이 전주(완산)의 남천교를 저물녘에 산책하며, 느낀 감흥을 노래한 7언율시다. 그의 문집 『송월만록(松月漫錄)』 책1(冊一) 에 수록되어 전한다. [1~4구]에선, 역사와 풍수의 공간을 묘사했다. 작가는 전주가 조선 왕조의 발상지(선원)이자 왕기(王氣)가 서린 서사적 공간임을 먼저 짚어내었다. 남천교 주변으로 빼곡한 민가들과 신라 시대부터 내려오는 석탑을 바라보며 전주가 가진 깊은 역사적 무게감을 표현하고 있다. [5~8구]에선, 남천교에서 바라본 전주의 풍류와 사색을 서술했다. 저물녘 시원하게 펼쳐진 남천교의 풍경은 시인의 눈을 맑게 해주고, 기분 좋게 취한 술기운(微醺)은 나그네의 세상 시름을 날려준다. 작가는 이 유서 깊고 번화한 전주의 자연과 역사가 결국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깨달으며 시를 마무리했다.
**「만보완산남천교(晩步完山南川橋)」**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
萬馬洞深王氣餘 만마동 골짜기 깊은 곳에 왕의 기운이 남아있고
虹橋南北挾民居 무지개다리(남천교) 남북으로는 백성들의 집이 끼어 있네.
璿源遠自完山府 왕실의 근원은 멀리 완산부(전주)로부터 비롯되었고
石塔流傳羅寺墟 석탑은 신라 시대 절터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네.
佳境令人雙眼豁 빼어난 경치는 사람의 두 눈을 시원하게 열어주고
微醺留客九愁除 얼근히 취한 술기운은 나그네를 붙잡아 온갖 시름을 없애주네.
定知終古繁華地 이곳이 예로부터 오랜 번화지임을 분명히 알겠으니
月露風雲盡入書 달과 이슬, 바람과 구름, 자연의 변화가 모두 글 속에 들어있네.
[주1] 남천교(南川橋) : 전주 한옥마을 인근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다리다.
[주2] 만마동(萬馬洞) : 전주 인근의 지명으로,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설화나 왕기(王氣)와 관련된 풍수지리적 공간이다.
[주3] 선원(璿源) : 왕실의 계통(왕들의 계보)을 뜻함. 전주는 조선 이씨 왕조의 발상지(관향)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했다.
[주4] 라사허(羅寺墟) : 신라 시대 절이 있던 터를 의미함. 전주 주변의 고적
[주5] 구수(九愁) : 수많은 걱정과 시름을 뜻하는 문학적 표현.
15) 다음 ‘豪’ 운목의 칠언율시 「차완산낙민루운(次完山樂民樓韻)」은 조선 말기의 문신 죽포(竹圃) 박기종(朴淇鍾 1824~1898)의 문집인 『죽포집(竹圃集)』 권1(卷之一) 시(詩)편에 수록된 작품이다. 완산(完山)은 지금의 전북 전주를 뜻하며, 낙민루(樂民樓)는 그곳에 있던 유명한 누각 이름이다. 저문 가을날 전주 낙민루에 올라 전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고,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고자 하는 애민정신(愛民精神)을 담아 지은 한시다. 저자는 관찰사를 보좌하는 '판관'의 당당하고 호탕한 모습을 칭찬하며, 누각 위에 모인 관원들의 훌륭한 면면을 기렸다. 또 전주 주변의 산봉우리의 모양을 여인의 아름다운 머리 모양(螺鬟)에 비유하여, 푸른 절벽들이 웅장하게 펼쳐진 모습으로 그렸다. 아름다운 풍경을 관원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평안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 시의 핵심 주제인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또한 이 시는 전주 낙민루에 올라 감상한 가을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수려한 비유로 그려내는 동시에, 지방관들의 당당한 풍모를 기리고, 최종적으로는 낡은 현실을 개혁하여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목민관의 숭고한 정신을 노래한 한시다.
**「차완산낙민루운(次完山樂民樓韻)」 / 죽포(竹圃) 박기종(朴淇鍾)
鎭北名樓出世高 북방을 진압하는 이름난 누각이 세상에 높이 솟아 있으니
淸秋木葉下山臯 맑은 가을날 나뭇잎은 산언덕 아래로 떨어지네.
刺史風儀天上望 자사(관찰사)의 위풍당당한 풍모는 천상(조정)을 바라보고
判官標致座中豪 판관의 빼어난 풍채와 멋은 좌중에서 호걸답도다.
螺鬟森列靑磨嶂 소라의 쪽진 머리같은 산봉우리들이 푸른 돌같이 빽빽이 늘어섰고
鏡面半開白鍊濤 거울 면이 반쯤 열린 듯한 물결 위로 하얀 비단 파도가 일렁이네.
願使斯民同此樂 바라건대 이 백성들과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으니
有誰改造弊緇袍 그 누가 해어진 검은 도포를 다시 고쳐 지어줄 것인가.
[주1] 진북(鎭北) : 군사적·행정적 요충지로서의 전주를 상징한다.
[주2] 치포(緇袍) : 관원이나 선비가 입는 옷을 뜻하기도 하고, 낡고 해어진 제도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비유하기도 한다.
16) 다음 ‘麻’ 운목의 오언율시 「완산 제석(完山除夕)」 ‘전주의 섣달그믐날 밤’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한송재(寒松齋) 심사주(沈師周)가 전주(완산)에서 섣달그믐날 밤을 맞이하여 지은 평기식 한시다. 타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그네의 쓸쓸함 대신,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하고 화려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과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였다. 이 글은 『한송재집(寒松齋集)』 권2(卷之二) 시(詩)편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가족과의 화합 [1~2구]에선, 보통 타향에서 맞이하는 섣달그믐(제석)은 고향 생각에 쓸쓸하기 마련이지만, 이 시에서는 온 가족('전가')이 함께 모여 음식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3~4구]에선, 방 안의 비단 장막에 비치는 매화 불빛과, 밤하늘 은하수 아래 대나무 그림자가 대조를 이루며 시적 공간을 아름답게 확장했다. [5~6구]에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 전주의 이국적이고 따뜻한 풍경을 그렸다. 전주성 주변의 눈이 녹고 누각에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7~8구]에선, 나그네의 외로움을 잊을 만큼 흥이 나 밤늦도록 시를 쓰느라, 촛농이 종이 위에 꽃처럼 떨어지는 시각적 잔상을 남기며 여운 있게 마무리했다.
**「완산 제석(完山除夕)」** 전주의 섣달그믐날 밤 / 심사주(沈師周)
完山逢歲日 완산(전주)에서 섣달그믐날을 맞이하여
飮食樂全家 음식을 나누며 온 가족이 함께 즐거워하네.
錦幕梅光動 비단 장막에는 매화 그림자가 흔들리고
銀河竹影斜 은하수 아래로 대나무 그림자 비스듬히 드리우네.
城池晴渙雪 날이 개니 성문 앞 못의 눈이 녹아내리고
樓閣暖生霞 따뜻해진 누각에는 저녁노을이 피어오르는 듯하구나.
高興忘羇夕 고조된 흥겨움에 나그네의 쓸쓸한 밤을 잊은 채,
華牋落燭花 화려한 시전지(종이) 위로 촛농이 꽃처럼 떨어지네.
17) 다음 평론시 「완산제영(完山題詠)」은 조선말기 영의정을 지낸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작품이다. 그는 전주시 전라감영의 연신당(燕申堂) 현판에 걸린 이집(李集)과 조현명(趙顯命)의 한시에 차운(‘鹽’ 운목(韻目))하여 이 글을 지었다. 산문 형식의 이 글은 이집과 조현명의 시를 소개하며 평론하였으며 그의 저서 『임하필기(林下筆記)』 권26(卷之二十六)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 글은 문학의 영원한 생명력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일화로써, 완산(전주) 전라감영의 연신당을 배경으로 하여 평론하였다. 결국 “사람과 나무는 사라져도 훌륭한 시문(詩文)은 영원히 남아 후대에 전해진다.”면서 마무리했다.
○ 요약건대, 이집의 시는 고요하고 맑은 감각적 풍경(淸)을, 조현명의 시는 화려하고 풍성한 감영의 일상(富)을 대비하여 보여줬다. 이에 오동나무는 베어져 사라졌지만, 그 나무를 노래한 시는 멈추지 않고 살아남아(문학의 불멸성)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무를 계속 존재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완산제영(完山題詠)」** 전주(완산)의 시를 읊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
*배경, 완영(전라감영)의 연신당(燕申堂)에서 관양 이공(이집)이 시를 지었다.
*관양(冠陽) 이집(李集)의 시, “석류꽃 봉오리마다 뾰족뾰족 돋아나고 아침 햇살 속 가랑비에 가늘고 곱게 보이네. 바둑 동무는 앉아 졸고 거문고 타던 미인은 떠났는데 한 그루 오동나무 푸른 빛이 발에 가득하구나.(安石榴花箇箇尖 朝陽微雨見纖纖 棋朋坐睡琴娥去 一樹梧桐碧滿簾)”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의 차운시, 귀록 상공이 그 운(韵)을 따라 시를 지었는데 그중에는 "늦은 저녁 붉은 먹으로 먹줄 치고 누각에 오르니, 열두 난간에서 기생이 발을 걷어 올리네(有晩揮朱墨登樓去 十二欄干妓捲簾)"라는 구절이 있다.
*당대의 평가, 사람들은 이집의 시는 ‘맑음(淸)’을 얻었고, 조현명의 시는 ‘풍요로움(富)’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글쓴이의 감회, 예전에 오동나무를 보며 이 시를 떠올리곤 했는데 근래엔 그 나무가 누군가에게 베어졌다고 한다. 사물의 목숨이 길게 전해지는 데에는 시문(詩文)만 한 것이 없다.
[完營燕申堂 冠陽李公題詩曰, “安石榴花箇箇尖 朝陽微雨見纖纖 棋朋坐睡琴娥去 一樹梧桐碧滿簾” 歸鹿相公 次其韵, “有晩揮朱墨登樓去 十二欄干妓捲簾”之句. 人謂李公得其淸 趙公得其富. 曾見梧桐而想其詩 近則爲人所斫云 物之壽傳 莫如詩文也]
[주1] 연신당(燕申堂) : 전라감영의 연신당은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총괄하던 최고 지방관인 전라감사(관찰사)가 정무를 보다가 휴식을 취하거나 머물던 처소(주거 공간)다.
[주2] 이집(李集 1672~1747) : 조선후기 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백생(伯生), 호는 세심재(洗心齋) 또는 수월헌(水月軒). 이황(李滉)의 5세손. 의금부도사·삼가현감(三嘉縣監)역임, 이조참판에 증직됨.
[주3] 조현명(趙顯命 1690~1752) : 1733년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조선후기 문신, 1738년 이조판서로 복직, 그 후 좌참찬·한성부판윤·공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를 지냈다. 1740년 우의정이 되고 뒤이어 좌의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