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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대구시 중구 대봉동 「건들바위(立巖)」 수려한 풍광과 오랜 추억의 명소

작성자고영화|작성시간26.06.22|조회수20 목록 댓글 0

<대구시 중구 대봉동 건들바위(立巖)수려한 풍광과 오랜 추억의 명소>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부제 : ‘흥에 겨워 한시(漢詩) 2편을 짓다.’

 

얼마 전,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중구 대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4년 전에 새아파트를 구입해 놓았다가 세를 주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에 세입자가 나가길래 외손자 키우는데도 도움을 주고자 사위 집 근처인 이곳으로 이사를 강행했다. 나는 중구의 동남쪽인 이곳이 생소하지만 집사람은 여기 근처에 살면서 경북여고를 졸업했던 추억의 동네이기도 하다. 여긴 방천 시장, 김광석 길, 대구향교, 건들바위(立巖), 봉산문화거리, 봉리단길이 유명하다.

동네 북쪽으로는 지하철 2호선이, 남쪽으론 지상철 3호선이, 서쪽으론 지하철 1호선이, 동쪽으론 신천(新川)이 흐르고 있다. 기존 수성구 시지 지구보다는 여러 문화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교통도 편리하나, 한 가지 문제점은 운동할 만한 야산이나 공원이 없고 인공 건축물로 뒤덮여 있어 삭막하게 느껴진다. 다만 신천(新川)에 형성되어 있는 하천 부지의 평탄한 산책(조깅,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을 뿐이다. 다음은 대봉동 건들바위(立巖)을 보고 느낀 남편을 기다리는 바위의 신선 같은 풍경을 오언절구로 지어 보았다.

 

1) 대봉동 건들바위(立巖)/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孤岩對峭壁 우뚝 솟은 외로운 바위가 가파른 절벽과 마주하여

相視笑談中 서로 바라보며 웃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네.

彷彿望夫石 마치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망부석 같으니

天然是仙宮 이 자연 그대로의 기이함이 바로 신선의 세상일세.

 

예전에는 건들바위를 한자어로 삿갓바위(笠巖)’라고 칭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현대에 들어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선바위(立巖)’임이 기록물로 증명되었다. 게다가 서거정의 대구십영(大丘十詠), 2입암조어(笠巖釣魚)’에 나오는 바위를 입암(笠巖)이라 부르며 건들바위로 잘못 인식하기도 했으나 고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입암(笠巖, 삿갓 바위)이 대구부에서 동쪽으로 5[1.96] 부근의 신천 변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건들바위가 삿갓바위(笠巖)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 나는 새로운 나와바리를 탐구하고자 온 동네를 골목골목 싸돌아 다니면서 볼거리, 먹거리, 눈요기 할 곳을 파악하였다. 그러다가 대구 사람들의 오래된 추억의 명소건들바위(立巖)와 마주하게 되었다. 45년 전에 친구와 함께 처음 왔을 때는 풀 한포기 없는 민둥 절벽에 선바위(立巖)가 전부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폭포와 여러 조형물이 갖추어져 있고 풀과 수목이 무성한 건들바위(立巖)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이 건들바위가 시민들의 쉼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경공사를 통해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감회가 새로워 옛 시인묵객들의 정서와 운율을 빌려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편을 지었다.

 

다음 대구시 중구 대봉동 건들바위(立巖)한시는 칠언절구 형식의 작품으로, 그 모습이 마치 팥시루떡(赤豆甑餠)을 쌓아 놓은 듯, 기이한 모습을 배경으로 삼았다. 내용에서 '불마풍(不磨風)'은 오랜 세월이 흘러 풍화(갈고 닦임)를 겪어도 그 기상과 본질이 없어지지 않는 선비의 절개나 풍모를 뜻한다. 이는 굳센 바위처럼 지조를 지키는 올곧은 정신을 찬양한 것이다. ‘신기(神機)’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필설이나 그림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치가 극치에 달해 있음을 극찬하는 표현이다. 또한 눈앞에 보이는 선바위, 혹은 지형의 형세가 마치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상의 새인 '봉황()'이 날아와 웅거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는 대봉동(大鳳洞)에 담긴 뜻과 지형의 기상이 매우 상서롭고 웅장함을 비유한 것이다.

 

2) 대봉동 건들바위(立巖)/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最愛立巖積甑餠 켜켜이 쌓인 시루떡처럼 우뚝 솟은 바위가 참으로 정겨운데

依然千古不磨風 천고의 모진 바람에도 닳지 않은 그 풍모는 여전히 의연하구나.

誰能狀出此神機 그 누가 이 신묘한 자연의 조화를 온전히 그려낼 수 있으랴.

大鳳來儀若居東 동쪽에서 날아온 거대한 봉황이 사뿐히 내려앉은 듯하네.

[1] 입암(笠巖) : 삿갓 바위, 옛날 건들바위 한자어는 입암(立巖)이었음.

[2] 증병(甑餠) : 시루떡, 여기서는 팥시루떡(赤豆甑餠)을 의미함.

[3] 대봉(大鳳) : 거대한 봉황, 건들바위가 있는 대봉동(大鳳洞)을 상징함.

 

대구 중구 대봉2735-28번지에 위치한 건들바위(立巖)는 암벽의 균열과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입석으로 대구분지의 지반구조(대구층)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바위다. 옛날에는 이 건들바위 앞으로 신천 상류에서 시작되는 대구를 관통하는 중심 하천인 대구천이 흘렀다. 그 물길에 의해 현재의 건들바위와 주변 단애(斷崖, 절벽)의 암벽 지층이 퇴적암층의 절리에 따라 침식되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들바위 또한 암벽의 균열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흐르는 물의 작용에 의해서 암벽의 기슭에서 떨어져 나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건들바위의 큰 몸체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건드리면 건들건들 한다고 해서 건들바위라 이름하였다는 설이 통설이다. 예전에 대구의 어른들은 건들바우’, ‘삿갓바우라고도 하며,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1982629일 지정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곳에 점쟁이와 무당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리곤 했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이 찾았다.

조선후기 대구의 중심부로 지나는 물길(대구천)을 신천으로 돌리기 전에는 바위 앞으로 맑고 깊은 냇물이 흘러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며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였다고 한다. 1994년 조경공사를 통해 건들바위 앞으로 분수, 계류, 폭포 등을 새로이 설피하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였고 몇 차례의 개선 공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대구시 문화재 기념물 제2]

 

또한 건들바위(立巖)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선바위(하식애)로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호수로 운반되어 온 자갈, 모래, 실트, 점토 등의 물질이 쌓여 이루어진 퇴적암이다. 옛날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대구천이 흘렀고 건들바위는 대구천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후 암벽의 균열과 더불어 대구천에 의한 지속적인 침식작용으로 인해 암벽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서 있는 모습이 불안하게 보여 인근 주민들은 건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 점쟁이와 무당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리곤 했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이 찾았다고 한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천은 건들바위 앞으로 흘렀으나, 이후 지속적인 개발로 인해 물길은 사라지고 현재와 같이 복개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건들바위의 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바위 앞으로 풍부하고도 맑은 물이 흘러 수려한 풍광을 보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1994년 조경공사를 통해 건들바위 일대에 분수, 계류, 폭포 등을 새로이 설치하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였고 몇차례의 개선 공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대구시 지층을 대구층(大邱層)이라 부른다. 대구층은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지층이며 경상층군(慶尙層群)의 하부로부터 7번째 지층에 해당된다. 이 지층은 적색, 황갈색 또는 암회색을 띠는 이암(泥巖), 셰일(shale), 사암(砂巖)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적색을 띠는 이암과 셰일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드물게 회색 석회암의 박층(얇은층)을 협재(狹在)하기도 한다. 물결자국, 건렬 등의 퇴적구조는 많이 발견되지만 하천이나 호수에서 퇴적되었기 때문에 화석은 매우 드물다. 이러한 대구층이 도시개발로 인해 거의 사라져 그 특색을 찾기 어려우나 이곳에 그 일부가 남아 있어 보존한다.

 

○ 「대구천(大邱川)200년 전만 하더라도 건들바위 앞으로는 맑은 하천물이 흘렀는데 이 물길은 과거 대구의 중심 하천인 대구천이다. 이 물길은 대구 도심 반월당을 거쳐 달성토성 앞 현재의 복개된 달서천으로 합류되는 물길과 삼덕동과 칠성시장 쪽을 거쳐 신천으로 합류되는 지류로 나뉘어 흘렀으나 홍수 때마다 그 피해가 생겨 조선후기 대구판관 이서(李漵)가 물줄기를 신천으로 돌렸다. 그 이후 물길은 건천 형태로 남아 있다가 1930년대 도시구획 정리 때 대부분의 하천 흔적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건들바위 주변과 하류부의 암벽에서 옛 물길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건들바위 앞으로 물이 흘러 수려한 풍광을 보이는 명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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