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설화 '오입쟁이의 기지'

작성자고영화|작성시간25.04.12|조회수17 목록 댓글 0

<거제설화 '오입쟁이의 기지'> 고영화(高永和)


설화는 '한 민족 사이에 구전(口傳)되어 오는 이야기의 총칭'이라 정의하며, 말로써 표현 전승된 구비문학(口碑文學)으로 신화·전설·민담의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설화의 발생은 자연적이고 집단적이며, 그 내용은 민족적이고 평민적이어서 한 민족의 생활감정과 풍습을 암시하고 있다. 그 중에 가난하고 미천한 인물이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민담은 인간의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하지만 대다수 권선징악적 성격이 강하다. 유교적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시대, 유교적 권위에 맞서는 민담도 종종 등장한다. 민담은 재미로 이야기하고 듣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생활 가운데 이완된 시간에 이야기된다. 특히 상황을 전환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민중의 삶에서 우러나온 욕구와 감정이 깊고도 넓게 반영, 전승된 이야기라 그런지 솔직하고 다채롭게 드러낸다. 또한 인간내면의 감정들이 해학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실현되는 것이 민담의 세계다. 일정한 이념, 즉 성리학이나 사회규범에 규제된 식자계층이 생각하기 어려운 '희노애락오욕구'등 본능적인 욕구와 감정을, 민중이 충분히 구현해 낼 수 있는 삶의 문학이다.

 

○ 거제도 설화 중에 '오입쟁이 기지(機智)'는 화자에 의한 청중의 원초적 쾌감의 효과를 연장해 주면서 인간의 삶을 희극적으로 변형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이다. 오입쟁이는 과부에게 전답(田畓)과 돈(錢)을 주겠다하곤, 한 집에서 한동안 동거하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에 과부는 고소하기에 이르고 고을 원님이 오입쟁이를 취조한다. 하지만 오입쟁이는 순간, 재치 있는 기지(機智)를 발휘해 위기를 넘긴다는 줄거리이다. 고을 관아에서 행한 취조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원님이 오입쟁이한테 호통하길, “야 이놈아, 수절 지킨 과부를 속여 가지고 보상도 안 해주고 네 이놈!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오입쟁일 왈(曰), “그, 뭐, 서로가 좋았는데 보상해 줄 게 뭐 있습니까?” 원님 왈(曰), “야 이놈아, 저 꿀단지에다가 혀로 핥으면 혀가 다나? 꿀단지가 다나?” 오입쟁일 왈(曰), “그럼, 원님은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요, 성냥개비가 시원하요?” 결국 원님은 오입쟁이를 무죄로 판결했다는 이야기다.

 

○ 위 설화와는 반대로 거제시 사등면 설화 '고창녕 원님의 기지'에는,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한 것처럼 여자가 재미 봤다는 오입쟁이의 궤변을, 원님이 꿀단지에 혀를 넣으면 혀가 단맛을 보듯이 남자가 재미 봤다는 대답으로 오입쟁이를 승복시키고 과부의 억울함을 구했다"구연한다. 거제도 선조들은 잠재된 욕구의 자유로운 성취를 위해 수많은 설화를 구연하며 즐겼다. '거제 오입쟁이의 기지'는 남성에만 해당되던 성적 희열을 여성에게도 동일화시키는 능동적인 민중 설화이다.

 

○ 민담 속에 나타난 해학적인 풍자는 단순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을 잘 간파해서 간접적인 대리만족을 시켜 주고 있다. 다소 엉뚱하면서 통쾌하고 재치와 유머를 겸비한 이야기들을, 우리 선조들은 일상생활에 일어날 수 있는 얘기를 통해 웃음을 찾고자 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꽁트에 버금가는 전통적 민담과 해학이 많다. 또한 민담에는 주로 성(性)에 관한 음담과 그렇지 않는 점잖은 해학의 우스운 이야기가 있는데 그 소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있다.

 

● 조선시대 ‘원님재판’의 성격에 따르면, 조선 후기 지방관들은 소송에서 유리한 판정을 청탁하는 간찰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들이 청탁받은 내용을 재판에 반영하였다면 그 재판이 공정할 수 있었을까?

예를 들어 위 설화에서 “저 꿀단지에다가 혀로 핥으면 혀가 다나? 꿀단지가 다나?” “그럼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요? 성냥개비가 시원하요?”를 순서를 바꾸어, “성냥개비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나? 성냥개비가 시원하나?” “그럼 꿀단지에다가 혀로 핥으면 혀가 달콤합니까? 꿀단지가 달콤합니까?” 이와 같이 질문 순서에 따라 그 판결이 정반대로 바뀌어 버린다. 이러한 결과는, 수령(법관)이 사전에 미리 정해진 추상적인 규칙(또는 법률)에 따라 재판하지 않고, 다른 요인에 따라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이야기는 만들어낸 어두운 설화 또는 스토리텔링일 뿐이다.
실제 재판의 실태를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객관적인 자료는, 각종의 결송입안(決訟立案 소송의 판결을 공증하는 문서)이다. 충실한 결송입안에는 분쟁의 자초지종을 알 수 있는 상세한 정보와 송관의 법논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정보가 담겨 있는데, 조선시대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은 4만자, 그 다음으로 긴 것은 2만 5천자의 분량이고 1만자가 넘는 것들도 상당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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