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세포 진영(知世浦鎭營)‘과 한시(漢詩).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시 일운면에 위치한 지세포는 고대 중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써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넘쳐났다. 고려말기 일본원정, 조선초기 대마도 정벌, 모두 지세포에서 일기를 살핀 후에 대마도로 출항했던 곳이다. 수군진영은 지세포 해안에 1441년 최초로 석보를 구축하였고, 1443년 계해약조(조어금약)를 체결한 조정의 결정으로 석보를 다시 재구축 하고, 왜국 대마도인 왕래를 관장하여 대마도주 삼착도서를 받아 문인을 발급하고, 조업 후 문인반납 및 어세를 받고, 대마도주 문인에 회비를 기입하여 인을 찍어 출국시켰다.(통행증의 왕래와 검역). 1400년대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는 모두 약 100년 동안 지세포에서 출발하여 대마도로 향했다. 이어 세종 26년 1446년 지세포 만호관을 지세포 해안마을에 설치했다. 조선 세조3년 1457년에는 방책 보와 남쪽 연지봉에 망대를 갖추었다.
성종16년 1485년, 둘레 1천8백40척 동서길이 6백40척 남북너비 4백척의 보를 지세포 선창마을에다 설치했는데, 다시 성종 21년 1490년에 둘레 1천6백5척 높이13척, 성 내부 시내 우물 2개, 수군만호 1명 배치하며 석성을 구축했다. 조선 인종 1545년 영남6부 2만5천명 동원하여 포곡식 산성을 완성하고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 성루를 완성했다.
1457년 세조3년에는 일부 기병을 포함하여 약 400명의 수군이 근무했다.(조선왕조실록)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군병강 12척․기강군 천60명․무군병강 5척]. 조선전기 지세포진영은 가라산 목장 제2소를 관장(1소는 거제현사, 3소는 옥포 만호)했다. 그리고 영전(전답) 관리 및 설치(단종원년 이후), 지세포 남쪽 후망 관리 및 봉수대 관리, 정착 한 왜인 관리 및 지원을 했고, 대마도 출입 쇄인선 지원 및 중앙파견 관리를 접대했으며, 또 봉산(벌목 금지 지정산)관리 및 관할 해안을 순찰했다. 지세진영 관할 내 각종 조세를 거입하여 조운선에 송부하기도 했다. 한때 1711년 숙종 37년, 첨사가 지세포성에 근무한 적도 있었다.(조선왕조실록). 1894년 전국 진영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다.
성 외부 시설물로는, 성 머리와 성 밑에 녹각(鹿角)을 설치하고 웅덩이와 말목(末木,나무를 깍아 그 끝을 뾰죽하게 하여 갱참(坑塹)에 박아 놓는 것)을 설비하며, 성문의 문짝을 얇은 철판을 만들어서 문짝 외면을 싸게 하였다. 배를 감춘 포구에다 큰 나무를 박아 세우고 쇠사슬로 차례차례로 연결하여 배를 감춘 포구를 횡단하고, 또 칡 동아줄로 무거운 돌을 나무에 달아 그 나무를 물 밑 한 자쯤 잠기게 하여 적선이 걸리어서 넘어 들어오지도 못하고, 찍어서 끊지도 못하게 하였다. 또한 연결한 나무 중앙에 쇠갈고리를 설치하여 잠그기도 하고 풀기도 하여, 열고 닫는 것을 우리수군이 맘대로 할 수 있게 설치했다.
조선후기(경상우수영자료) 지세포진영 소속 수사교졸(수군인원)은 수사교졸 진하(水師校卒 鎭下) 223명을 포함하여, 각색교졸(各色校卒)인 별봉수(別烽燧)망장(望將)3명, 봉수군(烽燧軍)10명, 눌일곶망(訥逸串望)20명, 방군(防軍)1200명, 무학(武學)212명, 첨격무학(添格武學)24명, 기타 진하(鎭下)13명을 포함하여 총 진영 수군인원은 1672명이었다.
18세기말~19세기 초까지 지세포진 선단 수군을 살펴보면, 귀선(전선) 탑승인원인 기패관(旗牌官) 1명, 도훈도(都訓導) 1명, 사부(射夫)18명, 화포수(火砲手)10명, 포수(砲手)24명, 타공(舵工) 1명, 요수(繞手)1명, 정수(碇手)1명, 능소군(能櫓軍)120명, 소계 177명이었고, 병선 인원으로는 선장(船將)1명, 사부(射夫)10명, 포수(砲手)10명, 사공(沙工)1명, 능소군(能櫓軍)14명 등 36명이었다. 또한 사후선(伺候船)인원은 사공(沙工)2명, 능소군(能櫓軍)8명, 등 10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세포(知世浦)진 해사 현황 嶺南鎭誌(1894년)에 따르면, 객사3, 객사문3, 아사4, 아사문4, 내아3, 고사(3), 군기고(3), 군관청4, 군관청 고사(4), 이청4, 이청고사(3), 사령청3, 화약고1, 총계 36칸 이었다. (괄호는 초가, 총11). 조선후기에는 전선(귀선)1척, 병선1척, 사후선2척을 보유했다.
◯ 1799년 정조23년 지세포만호 차좌일(車佐一,1753년∼1809년)은 조선후기 문신이며,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숙장(叔章), 호는 사명자(四名子), 경사(經史)에 능통하고, 서화나 음률 · 사예(射藝), 특히 시문에 뛰어났다. 홍양호(洪良浩) · 윤행임(尹行恁) · 윤사국(尹師國) · 정약용(丁若鏞) 등과 같은 당대의 문장가들과 시교(詩交)를 맺어왔으나 부모의 봉양을 위해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 지세포(知世浦) 및 겸이포(兼二浦)의 무관말직에 머물렀던 만큼 세상에 대한 불평의 뜻이 많았다. 가정적으로 불행했던 그는 동생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더욱 시작(詩作)에 전념하여, 천수경(千壽慶) · 장혼(張混) · 왕태(王太) · 최북(崔北) 등과 더불어 ‘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하여 비분과 고뇌를 시로 풀며 여생을 보냈다. 아래 시는 변방 지세포에서 공무를 수행하며 울적한 심사를 나타낸 한시이다.
1) <지세포[知世浦]> 차좌일(車佐一 1753∼1809)
一日難居知世浦 지세포에서 하루하루 지내기가 힘들어
更將何事可消憂 장차 무슨 일로 시름을 달래야 할까?
印文生綠塵留硯 인문에 쓰는 벼루엔 생긴 먼지만 차곡 쌓이는데,
不獨當年柳柳州 올해는 유유주처럼 외롭지는 않아 다행이다.
이 한시는 먼 변방 지세포에서 공무를 수행하면서, 외로움과 울적한 심사를 나타낸 글이다. 당(唐)나라의 문호(文豪) 유종원(柳宗元)이 변경으로 좌천되어 관료를 비판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자신의 우울과 고민을 술회한 고독한 시인이었다. 차좌일은 자신의 처지와 닮은, 소식(蘇軾)과 유종원(柳宗元)을 사랑하여, 그들과 닮고자 노력한 흔적이 그의 저서 곳곳에 나타난다.
[주1] 인문(印文) : 찍어 놓은 도장의 흔적.
[주2] 유유주(柳柳州) : 중국 당나라 시인, 혁신적 진보분자로 변경지방으로 좌천됨.
2) <지세포를 지키면서 [知世浦雜詩] 3首> 차좌일(車佐一 1753∼1809) 1799년作.
倭船來日日 왜놈들의 배는 날마다 드나들어
迎送卽乘潮 밀물을 타고서 왔다 간다.
幸則楊洲近 다행이도 양주가 가까운 것은
不然多浦遙 다대포가 멀리 있지 않아서겠지.
營關吾膽落 수영을 지키는 내 간담이 서늘하니
鎭棍吏魂消 진영을 지키는 관리들의 혼도 녹아나리라.
所愧爲人役 부끄러워라! 남들에게 부림 받으며
低頭更折腰 고개를 숙인 데다 허리까지 굽혀야 했으니.
採採蛤蔘蝮 조개 인삼 큰 뱀을 채집하여
輕舟趁退潮 가벼운 큰 배에 조류를 따라 싣고 나간다.
帶瓢還泛泛 장식이 있는 바가지도 범범히 돌아오는데
沉水更遙遙 침수(침향)약으로 언제 내 병이 났겠는가?
果腹醪常煖 과한 술로 배에 열이 계속 이어지고
煨身火未消 몸에 난 열이 사라지지 않는구나.
終年勤苦甚 과한 공무로 한해가 지나가니
猶不飽長腰 긴 허리만 잘록해 졌다네.
吾有百强弩 나에게 큰활과 백 개의 화살이 있는데도
朝來欲射潮 아침부터 조수가 활처럼 밀려온다.
殺湍陻水去 죽일듯한 급류가 가는 물도 막고
濬澮距川遙 깊은 봇도랑 먼 하천도 가로 막네.
萬頃良田起 아주 넓은 비옥한 땅을 일구면
千年大害消 천년의 큰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經營而已矣 다만 경영만이 있을 뿐이니,
弧矢謾橫腰 활과 화살을 허리에 찬지도 까마득하다네.
◯ 다음은 홍성민(洪聖民,1536~1594) 선생이, 1581년(선조14년) 봄 음력 2월에 웅천 안골포에서 배를 타고 가덕도 영등포(구영등) 수영지를 거쳐 율포(구율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구조라) 오아포 진영, 거제도의 각종 누정과 각종 관아 건물(고현성), 거제면 명진리을 모두 순행하고 느낀 점을 시로 남겼다. 선생은 거제의 누정이나 각종 관아 건물, 거제7진영을 시로서 아름답게 읊어 거제도 고전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1581년 당시 최전방이었던, 거제시 지세포진영 주위의 평온한 풍경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으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가 순행하는 여행길에서 본,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를 활용해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관료로서 국토의 한 자락 자락을 살피면서, 사실적으로 정경을 형상화한 뛰어난 작가의 심상(心像)에 놀랍다.
3) <지세포 잡시[知世浦 雜詩] 3首> 1581년 홍성민(洪聖民).
畫戟森森海上營 지세진영 해상은 화극의 그림같이 삼삼하고
春波初暖麗暉明 초봄 바다 물결의 밝은 빛이 아름답고 따스하네.
沙汀鷗鷺渠休怕 갯가 모래톱의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개천가에 담담하게 쉬고
邊靜無煩洗甲兵 변방의 갑옷 입은 병사도 성가시게 씻을 필요 없구나.
令嚴轅門鼓角催 진중의 고각소리로 엄한 군령을 재촉하고
散天飛雹作奔雷 휘날리는 우박과 세찬 천둥이 천지에 흩어지네.
書生枉踏鰲頭去 서생은 자라(거북) 머리를 밟고는 미친 듯이 재촉하니
泝盡滄溟萬頃回 푸른바다를 거슬러 간 배가 넓은 바다로부터 다시 돌아온다.
小島蒼茫曉角催 넓고 푸른 작은 섬에 호각소리 재촉하고
枕邊驚夢海中雷 바다의 천둥소리에 베게머리 꿈을 깨는구나.
問渠今夜寒潮水 묻노니, 오늘밤에 조수 한창 들어오는 때인지라,
打罷孤城幾度廻 외딴 성을 몇 번이나 돌아야 적을 예방할 수 있으랴.
[주1] 화극 : 색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은 창의 하나, 의장용
[주2] 삼삼하다 :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무성한 그런 모습이다. 은근히 좋다.
[주3] 잡시(雜詩) : 정형에 구애를 받지 않거나, 제목이 없는 시.
[주4] 고각소리 : 군중을 호령할 때 쓰던 북과 나팔소리.
[주5] 서생 : 유학을 닦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