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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경남 유배문학

거제유배문학 「가라곡(加羅曲)」 유배지 거제도의 역사문화, 풍속을 읊다

작성자고영화|작성시간26.06.12|조회수33 목록 댓글 0

<거제유배문학 가라곡(加羅曲)유배지 거제도의 역사문화, 풍속을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배문학 가라곡(加羅曲)은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이다. 가라곡(加羅曲)1690년경 거제도(裳島, 裳郡)에서 지은 14()의 연작 한시 죽지사풍(竹枝詞風)으로, 당시 거제도의 척박한 민중의 생활상, 왜구 대비 상황, 세금 문제 등, 섬 지역의 풍속과 민생의 고단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이다. 이 시는 그의 형 김진구가 지은 '탁라가(乇羅歌, 탐라 풍속시)'의 운을 빌려 거제도의 풍속을 읊은 것이며, '가라(加羅)'는 옛날 거제도에 있었다고 전하는 '가라국(加羅國)'에서 유래했다.[탐라국(제주)에 가라국(거제)을 대비하여 쓴 말임]

또한 이 시는 17세기 후반 거제도가 군사적 요충지이자 동시에 척박한 유배지였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특히, 12수에서 관아의 매질(채찍)을 피해 전복을 따는 어민들의 모습은 당시 과도한 공납과 수탈의 현장을 고발하는 문학적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게다가 화려한 수식이나 난해한 전고(典故)를 배척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직설(평이)적이고 통속적(사실적)인 시어(詩語)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가감 없이 고발했다. 김진규는 이를 통해 거제도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연민과 동시에 비판의 시각으로 담아냈다.

 

이어 가라곡(加羅曲)의 한문 문체(文體)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가라곡(加羅曲)은 한시의 갈래 중, 전형적인 근체시(近體詩) 칠언절구(七言絕句) 형식의 ’, ‘’, ‘’, ‘’, ‘’, ‘’, ‘’, ‘’, ‘’, ‘’, ‘’, ‘’,‘’, ‘운목(韻目)14수 연작시이며, 거제도라는 특정 공간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또 문체와 성격 면에서 '소악부(小樂府)'이자 죽지사(竹枝詞)’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는 중국의 고사나 관념적인 자연 예찬에서 벗어나, 특정 지역의 향토적인 풍속, 민요, 전설,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문체다. 거제도의 험난한 지리적 환경, 잦은 왜구의 위협, 과도한 세금과 징수, 섬 주민들의 궁핍한 삶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소악부(小樂府, 시가를 시화한 칠언절구의 한시) 형식의 시다.

 

다음은 총 14()의 각 수()별로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4수의 내용은 크게 4가지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변방 섬 지역의 척박한 지리와 풍속, 남해안의 군사적 긴장과 활기, 가혹한 조세와 민생의 고통, 바다의 기이한 생태와 민간 신앙이다.

*1()에선, 척박한 환경과 유민에 대한 언급했다. 거제도 백성들의 풍속은 친근하기 어렵고, 탐라(제주)보다 더 누추하며 보배가 적다. 정직한 토박이는 적고 떠돌다 들어온 유민(流民)이 많아 꾀가 많고 교활하다.

*2수에선, 왜구의 침략에 대한 대비와 긴장을 기술했다. 밤낮으로 왜구를 경계하며, 섬 해안을 따라 8개의 진(八鎭)이 배치되어 있다. 평화로운 시대(聖代)라 해도 해안 경계는 철저하다.

*3수에선, 지역의 교육과 문화의 황폐함에 서술했다. 유학자(儒士)는 적고 학문은 소략하다. 향교(校宮)는 있지만 매우 처량하고, 북방의 선진 학문을 배우는 이가 없다.

*4수에선 통영(統營)의 군사적 특징을 살펴본다. 통영 쪽을 바라보니 구름 같은 돛(군함)들이 모여 있다. 해마다 전투 연습을 하여 익숙하고, 10일간의 군사 훈련 뒤에는 삼남(三南)의 상인들이 배를 대고 장사를 한다.

*5수에선, 어민의 세금 부담에 대해 언급했다. 겨울이 되면 어민들이 매우 탄식한다. 매서운 바람 속에 바다로 나가지만, 섬 주변 어장마다 세금()이 있어 쉴 틈이 없다.

*6수에선, 섬 지역의 미신과 풍속에 대해 서술했다. 곳곳에서 무당과 박수들이 노래하고 부른다. 집집마다 신당(神幕)이 있고, 병은 모두 귀신 때문이라 여겨 치료 의학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

*7수에선, 거제섬의 험난한 지형에 대해 기록했다. 파도는 백 길 높이요, 산은 만 겹이다. 이 속에서 길을 가기란 험난하기 그지없으나, 바다 섬은 오히려 오가기 쉽다.

*8수에선, 거제도 특산물 유자에 대해 말했다. 늦가을 유자가 익어 서리가 내리면, 바구니 가득 차례로 남쪽 바다를 건너간다. 텅 빈 나무만 남은 백옥(가난한 집)을 보며, 붉은 문(양반가)에서는 향기로운 유자를 즐긴다고 적었다.

*9수에선, 왜구의 침략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봉화와 통신에 대해 기술했다. 가라산(加羅山) 꼭대기 봉화대에서 저녁 안개를 헤치고 봉화를 올린다. 작은 봉화 하나가 천 리 밖(한양)에 평안을 알리니, 궁궐 아래서도 의심 없이 안다.

*10수에선, 바다 고래와 거대한 물고기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고래의 크기는 교룡보다 크고, 화살을 맞은 채 왜구의 바람을 따라 떠내려온다. 거대한 물고기가 있다는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알겠는데, 구태여 거대한 대통(고래잡이 도구)이 필요할까라고 적었다.

*11수에선, 어업에 관한 각종 세금과 바닷가 농사의 거름에 대해 서술해 놓앗다. 삐걱거리는 노 소리와 노래가 섞이고, 바다 채소(해초)를 가득 캐서 돌아온다. 거름으로 쓸 비료를 충분히 얻었으니, 올해는 다시 조세 징수(催科)에 시달리지 않으리라고 소망한다.

*12수에선, 죽림포에서 물질하는 잠녀와 잠수어민의 핍박을 기록했다. 죽포(竹浦, 죽림포)의 수영하는 아이들은 깊이 잠수하여 전복을 딴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 드는 것이 어찌 원해서이랴, 관아의 매질이 무서워서다.

*13수에선, 섬의 전염병과 섬사람들의 짧은 수명에 대해 밝혔다. 장기(瘴癘)의 뜨거운 기운은 피할 곳이 없다. 비릿한 연기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습한 구름은 높다. 남쪽 황무지라 예부터 사람들이 대부분 요절하여, 노인(二毛)을 보기 어렵다.

*14수에선, 해상 안전 기원하며 굿을 하거나 미신을 숭상한다고 언급해 놓았다. 운반선이 죽포(竹浦) 어귀를 지날 때, 사공들이 기도를 마치고 이별의 잔을 마신다. 배 위에 영리한 뱀(배의 안전을 지키는 신)이 있다 하니, 돛대와 키가 무사히 오가기를 빌어본다.

요약건대, 이 작품은 사대부의 시선에서 바라본 변방의 미개함과 척박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내었다. 왜란 이후 조선 후기 남해안의 국방 체제(통제영 및 산하 진보)와 이로 인해 파생된 상업적 활기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관리들의 가혹한 세금 독촉(催科)과 공납의 폐단을 직접 목격하고 지은 비판적·사회 고발적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다. 또한 험난한 바다를 건너기 전, 배를 지켜주는 영물인 '선박의 뱀신(船神)'에게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사공들의 민간 토속 신앙을 묘사했다.

**이에 김진규의 가라곡(加羅曲)은 단순한 유배객의 감상적인 신세 한탄을 넘어선 '조선 후기 거제도 사회의 보고서'. 작가 본인은 명문가 출신의 고위 사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시각에만 머물지 않고 관아의 채찍질에 피 흘리는 어민들과 공납으로 유자를 빼앗기는 백성들의 고통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민본주의 사상)으로 담아냈다. 조선 후기 변방의 세태와 민중 문학, 그리고 호남·영남의 어촌 경제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덧붙여 이 글은 죽천(竹泉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4(卷之四) ()편에 실려있으며, 그의 약력(프로필)은 앞서 소개한 바가 있어 생략한다.

 

**(伯氏) 김진구의 탐라(제주도) 풍속시에 운을 맞추어 거제도의 풍속을 읊어 나타내었다. 나 역시 그 운을 빌려 거제도(裳島)의 풍속을 노래하고, 그 곡명을 <가라곡(加羅曲)>이라 하였다(伯氏復佔畢淸陰乇羅歌 咏耽島風俗以示 余亦用其韻賦裳島之俗 而名其曲曰加羅)**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1] ‘운목(韻目)

裳郡氓風不可親 거제군 백성들의 풍속은 친해지기가 어려우니

陋於耽羅薄於珍 탐라(제주)보다 누추하고 진도(珍島)보다 박하다네.

頑嚚巧詐今成俗 완악하고 어리석으며 교활한 속임수가 이제 풍속이 되었는데

多是流民少土人 대부분 떠돌아온 유민들이요 토박이는 적기 때문이라네.

[2] ‘운목(韻目)

颿風日夜備倭人 돛바람 치는 밤낮으로 왜구를 대비하느라,

八鎭環居一島濱 여덟 개의 진()이 섬 해안을 둘러 진치고 있네.

聖代百年無海警 태평성대 백 년 동안 바다의 경보는 없었지만

樓船猶自港前陳 전선(戰船)들은 여전히 포구 앞에 줄지어 서 있네.

[3] ‘운목(韻目)

儒士無多仍鹵莽 선비들은 많지 않은 데다 그마저 거칠고 소략하니

校宮雖在劇凄凉 향교(校宮)가 비록 남아 있으나 몹시 쓸쓸하고 처량하네.

不見有人能北學 중앙의 선진 학문(北學)을 배우러 가는 이는 보지 못했고

空聞他邑設東堂 다른 고을에서 과거 시험(東堂)을 열었다는 소문만 부질없이 들리네.

[4] ‘운목(韻目)

統營西望簇雲帆 통영 쪽을 서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같은 돛들이 빽빽한데

習戰年年久所諳 해마다 치르는 수군 훈련은 오래전부터 익숙한 바라네.

試藝饗軍經十日 무예를 시험하고 군사들을 위로하는 열흘 동안의 잔치가 끝나면

傍船開市會三南 배 주변으로 시장이 열려 삼남(충청·전라·경상)의 장꾼들이 모여드네.

[5] ‘운목(韻目)

冬來漁子最堪歎 겨울이 오면 어부들의 처지가 가장 탄식할 만하니

出入嚴風積水間 매서운 바람과 쌓인 파도 사이를 드나들기 때문이라네.

環島漁磯皆有稅 섬을 둘러싼 낚시터마다 모두 세금이 매겨져 있으니

滄溟處處亦無閑 넓고 푸른 바다 곳곳에 어느 한 곳도 한가한 틈이 없네.

[6] ‘운목(韻目)

喧喧巫覡雜歌呼 남자 무당과 여자 무당이 시끄럽게 섞여 노래해 대니

神幕家家無處無 귀신을 모시는 신당(神幕)이 집집마다 없는 곳이 없다네.

唯言疾病皆由鬼 오직 병이 드는 것은 모두 귀신 탓이라 말하니

縱有兪倉不復須 비록 유창(嚈倉, 명의) 같은 의원이 온다 해도 다시는 필요없다네.

[7] ‘운목(韻目)

百丈層波萬疊山 백 장 높은 겹겹의 파도와 만 겹의 산이니

此中行路險千般 이 속에서 길을 가기란 천 가지 만 가지로 험난하다네.

如今平地多危道 오히려 지금은 평지에도 위험한 길이 많으니

海島飜看易往還 바다 섬을 오가는 것이 차라리 더 쉬워 보이네.

[8] ‘운목(韻目)

柚熟深秋正着霜 늦가을 유자가 익어 갈 무렵 서리가 내리니

滿籠相續渡南洋 광주리에 가득 담겨 연달아 남쪽 바다를 건너가네.

漸看白屋餘空樹 가난한 초가집(白屋)에는 빈 나무만 남은 것을 빤히 보며

遙想朱門賞異香 고관대작집(朱門)에서 그 기이한 향기를 즐길 것을 멀리서 상상하네.

[9] ‘운목(韻目)

加羅山頂望㙜圍 가라산(加羅山) 꼭대기 봉수대 주변을 바라보니

烽火初傳夕霧披 봉화 불빛이 처음 전해질 때 저녁 안개가 퍼져 나가네.

一點平安千里報 한 점 불빛으로 평안함을 천 리 밖에 전하니

蓬萊闕下看無疑 임금님 계신 궁궐 아래서도 의심 없이 바라보겠네.

[10] ‘운목(韻目)

鯨魚之大過蛟龍 고래의 크기는 교룡보다도 거대한데

帶鏃漂從馬島風 화살을 맞은 채 대마도(馬島) 바람을 따라 떠내려왔네.

始覺巨緇非妄語 비로소 거대한 물고기(巨緇)에 대한 전설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았으니

區區那用筩兼筒 구구하게 고래잡이 통을 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11] ‘운목(韻目)

櫓聲咿軋雜謳歌 삐걱거리는 노 소리에 어부들의 노래 섞이고

采采歸來海藻多 바다 채소(, 우뭇가사리 등)를 가득 캐서 돌아오네.

佇得糞田收穫足 논밭에 뿌릴 거름을 충분히 거두었으니

今年那復困催科 올해는 어찌 다시 세금 독촉(催科)에 시달리며 곤궁해지겠는가.

[12] ‘운목(韻目)

竹浦泅人自小兒 죽포(竹浦)의 잠수부들은 어려서부터 아이 때부터 물에 들어가

沒深方得鰒魚肥 깊은 바다에 빠져서야 비로소 살진 전복을 얻는다네.

輕生蹈海胡能爾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바다를 밟는 것을 어찌 좋아서 하겠는가.

多爲縣門鞭撻威 대부분 관아(縣門)의 모진 매질과 위엄이 무서워서라네.

[13] ‘운목(韻目)

瘴癘炎蒸無處逃 전염병(瘴癘)과 찌는 듯한 더위는 피할 곳이 없고

腥烟四起濕雲高 비린내 나는 연기가 사방에서 일어나며 습한 구름이 높게 깔렸네.

南荒從古人多夭 남쪽 변방이라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요절하니

眼看居民少二毛 눈을 씻고 보아도 주민 중에 머리가 희끗한 노인(二毛)이 적다네.

[14] ‘운목(韻目)

運舶將關竹浦隈 운반선이 장차 죽포(竹浦) 모퉁이를 지나려 할 때

篙二禱罷飮離杯 사공들이 기도를 마치고 이별의 술잔을 나누네.

謂言船上靈蛇在 배 위에 신령스러운 뱀(배의 수호신)이 있다고 말하니

可卜帆檣好去來 돛대와 키가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지 점쳐 볼 수 있겠네.

[1] 탐라국(耽羅國) : 지금의 제주도에 있었던 옛 나라. 탐모라국(耽牟羅國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라고도 표기되었다.

[2] 가라국(加羅國) : 기원 전후에 경남지역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나라. 여기서는 탐라에 탐라국이 있었듯이, 거제도에도 가라산(加羅山)이 있으니 가라국이 있었다고 가정한 말이다.

[3] 죽포(竹浦) : 거제면 오수리 죽림포 어촌 마을. 거제부사 직할 수군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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