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해, 하이쿠(俳句)의 시선(詩仙)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몇 작품>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4백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세계의 많은 시인들이 하이쿠(俳句)를 쓰고 있고, 서양에는 하이쿠 시인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서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은, 속도와 효율의 신자유주의에 가장 적합한 문학형식인 까닭이다. 먼저 ‘하이쿠’는 일본의 시(詩) 형식 중에 하나로, 홋쿠(癸句)라고도 한다. 미국 호주 등의 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자, 3행 17자로 구성되었으며 각 행은 5·7·5음절로 구성된 일본의 전통적 정형시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시조는 45자 안팎이다(3·4, 4·4 / 3·4, 4·4, / 3·5, 4·3). 하이쿠는 길이가 매우 짧아 내용이 함축적이고 난해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여운을 남긴다. 짧은 시편으로 하나의 문학사적 조류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세계의 문화 자산으로 인정받은 것이 일본의 하이쿠(俳句)다. 예를 들어 바쇼의 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에서 번개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자연 속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존재의 극히 짧은 한 순간의 유한함을 연상하면서 시를 감상 할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의 ‘와카(和歌)’는 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이다. 5음과 7음의 일본어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적인 짧은 시 형태인 단카(短歌)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짧은 노래'라는 의미의 단카는 일본시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조카보다 더 오래되고 하이쿠에 선행한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시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계승되고 있으며, 5·7·5/7·7음의 5토막으로, 전부 31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 일본 ‘하이쿠(俳句)’ 정형시의 수준을 끌어올려 하이쿠의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는 에도 시대 전기, ‘하이쿠’를 위대한 문학으로 완성시켰으며 또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음유시인이었다. ‘하이쿠’는 17글자로 이루어진, 정형시 속에, 하찮은 것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우주를 담아내는 '하이쿠'. 숨 한 번의 길이에 자연과 인생과 깨달음이 담겨있다. 특히 바쇼의 하이쿠는 읽어도, 읽어도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유한한 역사와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은 일시적이고 나약할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절감하고, 노장적인 자연 사상을 추구하였다.
1)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 ‘시즈카사야 이와니시미이루 세미노 에’(靜か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 이 시는 바쇼가 고요한 산사에서 매미 소리를 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산사에는 오로지 매미만이 목청껏 울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매미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산사는 여전히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매미의 소리가 바위에 스며드는 듯 느껴진다는 탁월한 표현은 이러한 시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순간이 영원 속으로 생명이 죽음 속으로 혹은 그 반대의 것, 영원이 순간 속으로 죽음이 생명 속으로 역류하는 그 경계 속에 비로소 우리는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넘어선 절대 정적을 느낀다.’
2)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젖은 물소리.” / ‘후루이케야 카와즈토비코무 미즈노오토’(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 바쇼는 이 시에서, 이 구절은 내 기풍의 원천이니 이것으로 세상을 떠나도 괜찮다.“고 했다. “아주 조용한, 인기척이 없는 오래된 연못가.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봄의 절기 경칩 즈음에, 개구리 한마리가 땅 속에서 나와 연못에 뛰어들었다. 주위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온했던 만큼 한순간에 정적이 깨졌지만 곧 정적의 상태로 돌아간다. 고요함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다. 개구리의 잠시의 도약으로 속세의 시간 망을 찢고 시간 없는 절대적 영원 속으로 진입한다. 이 놀라운 깨달음이 물결로 퍼져나가는 도중, 현재의 생생함으로부터 과거의 그윽함 속으로 깊이 배어 들어간다. 이 푸른 이끼 가득한 옛 연못은 바로 만고의 기나긴 허공이며, 이 맑고 새로운 청개구리 뛰는 소리는 바로 하루아침의 풍경이다.
개구리와 관련하여 일본의 전통적인 시(詩) 형식인 와카(和歌)나 렌가(連歌)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울음소리다. 그에 반해 오랜 연못은 한적고담(閑寂枯談)의 풍취가 물씬 풍겨난다. 들리다가 이내 끊어지는 젖은 물소리가 시정을 더욱 깊게 한다. 봄에 깨어난 개구리의 역동적 삶이 동영상처럼 나타나고 ‘오래된‘이란 단어에서 지금의 내 나이와 한창 젊던 시절,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3) “마른 가지에 까마귀 앉아 있다. 가을 저물녘” / ‘かれえだにからすのとまりたるやあきのくれ‘(枯朶に烏のとまりけり秋の暮)
◯ 무심코 바라다보니, 어느새 잎이 다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에, 까마귀가 쓸쓸히 앉아 있다. 그 무엇이 이 늦가을의 석양녘을 저토록 잘 나타낼 수 있으랴. 1679년 바쇼가 첫 시로 발표한 이 작품은 시어가 간결하면서도 사물과 그 사물이 그려내는 분위기 묘사가 탁월하여 세간이 주목을 받게 된다. 까마귀와 늦가을 저녁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서로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두 사물을 대조시켜서 스산하고 쓸쓸한 정취를 빚어내는 이 기법은 이후에도 바쇼 문체의 특징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가 1680년, 파초암(芭蕉庵)에 들어가 참선을 하고 1648년부터 일본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의 이런 시풍이 더욱 짙어지게 된다. 한편 하이쿠 속 까마귀가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아키노쿠레(秋の暮)’는 ‘가을 저녁’과 ‘늦가을’을 동시에 의미한다. “다른 시인들의 시는 다양한 색깔로 그린 그림이지만 나의 시는 먹으로 그린 그림(수묵화)이다.”라고 바쇼는 말했다.
● 요즘 일본의 경제 조치로 인해, 반일 감정이 격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반일운동이 해방 이후에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다. 어떤 때에는 정치인들이 필요로 해서, 어떤 때에는 과거사 문제로 인해서....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것만은 맞는 것 같다.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우리들에게는, 지리적인 가까움 보다는 심리적 불편함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외면하면서 살 수도 없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다. 우리는 국민의 행복과 번영,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이웃나라인 중국이든 일본이든 북한이든, 누구든지 어디서든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때 일본과의 만남에는, 하이쿠가 또 다른 쓸모를 얻게 될 것이다. 일본인을 비추는 거울로, 그리고 일본인과 일본사회를 이해하는 재료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