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南冥) 曺植(조식)의 한문학 3.> 고영화(高永和) 6편 中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선생은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 사림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여, 널리 알려진 인물로서, 외가인 삼가현(경남 합천군 일대) 토동에서 태어난, 경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남명의 학문 세계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에서 나타나듯 다분히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던 퇴계의 성리학과는 다르게, 의리(義理)와 의기(義氣)의 실천을 강조해 사회현실과 정치 모순에 대해 적극적인 비판을 추구했다. 이황의 성리학이 순수한 사고나 이성만으로 사물을 인식하려는 ‘사변철학(思辨哲學)’에 가까웠다면, 조식의 성리학은 현실을 인식한 ‘사회비판철학(社會批判哲學)’에 가까웠다.
유학을 이념으로 하는 왕조국가의 군신(君臣) 관계는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는 임금을 향해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직언(直言)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사화(士禍)를 일으켜 수많은 선비들을 죽였던 살아있는 권력 문정왕후(명종 母)를 향해 “궁중의 일개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임금을 “선왕(중종)의 한 외로운 어린 아들(명종)”이라 지칭했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세속의 이욕(利慾)에 초탈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렇듯 권력의 부조리와 잘못된 사회현실에 당당하게 맞섰던 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글이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민암부(民巖賦)’이다. 이 글은 제목에서부터 불경(不敬)하고 불충(不忠)한 것이다. 민암(民巖)이란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암부’에서 남명은 임금의 덕목이 백성을 아끼고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것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 백성이 나라를 엎을 수도 있다는 경고의 말을 주저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고 일제강점기 時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나라의 진정한 선비정신은 남명선생의 철학과 사상으로부터 그 바탕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 남명의 한시 작품의 리듬을 살펴보면, ‘侵’ ‘沁’ 운자(韻字)나, ‘御’ ‘魚’ 운자(韻字)나, ‘東’ ‘冬’ 운자(韻字)나, ‘眞’ ‘元’ 운자(韻字)나, ‘寒’ ‘諫’ ‘删‘ 운자(韻字)나, ’支‘ ’微‘ 운자(韻字) 등을 구분하지 않고 詩를 적었다. 비슷한 한자 음(音)을 압운 자(字)로 섞어서, 자유로이 한시를 읊은 특징이 있다. 또한 7언 시에도 첫 구절의 운자를 맞추지 않는 시편도 여러 편 보인다. 이는 남명 선생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문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9) 춘일 즉사[春日卽事]
朱朱白白皆春事 붉고 희고 한 것이 모두 봄철 일이라
物色郊原得意新 갖가지 사물 빛이 때를 만나 들녘에 새롭구나.
自是東皇花有契 봄의 신은 스스로 꽃과 기약이 있는 듯한데
髥君於汝豈無恩 소나무 너에게는 어찌하여 은택 없는고.
선생은 사철 경물이 때마다 온갖 색깔을 입히고 변하는데 어찌 소나무 너만은 변함이 없는고. 이러한 변화를 은택으로 규정하고 소나무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10) 되는 대로 짓다[漫成]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水蒸飛粉雨渾山 물엔 김 피어오르고 빗방울은 산에 자욱할 제
朱點書床又考槃 책상 위의 책에 붉은 점 치다가 소반을 치기도 한다네.
向夜候蟲灘下急 밤이 되자 계절의 벌레 소리 여울 아래서 급한데
海南身似劍南間 해남의 몸이 칼날 같은 남인들 사이에 있는듯하네.
11) 국화[菊花]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운자(韻字)‘庚’
三月開花錦作城 삼월에 꽃 피우면 비단성 이룰텐데
如何秋盡菊生英 국화야 너는 어이 가을 다 보내고 이제서야 피는가?
化工不許霜彫落 하늘의 조화가 서리에 시들어 떨어짐을 허락치 않으니
應爲殘年未盡情 응당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의 못다한 정 때문이겠지
12) 느끼는 바가 있어[有感] 조식(曺植 1501~1572), 운자(韻字)‘紙’
人之愛正士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아끼는 것은
好虎皮相似 호랑이 털가죽을 좋아함과 같아
生前欲殺之 살았을 땐 잡아 죽이려 하고
死後方稱美 죽은 뒤엔 아름답다 떠들어대지
13) 산중 즉사[山中卽事] 二首 /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從前六十天曾假 이전의 육십년은 일찍이 하늘이 빌려준 것이고
此後雲山地借之 앞으로 구름 낀 산에서 사는 것은 땅이 빌려준 것이라네.
猶是窮塗還有路 막다른 길에도 또 다른 길이 있으니
却尋幽逕採薇歸 그윽한 오솔길 찾아 고사리 캐어 돌아가리라.
日暮山童荷鋤長 해 저물어 산골 아이는 호미 길게 둘러매고
耘時不問種時忘 김 맬 때를 묻지 않으니 파종할 때를 잊는구나.
五更鶴唳驚殘夢 새벽녘 학 울음에 놀라 꿈속을 헤매는데
始覺身兼蟻國王 이 몸이 개미나라 왕과 함께 했음을 깨닫네.
◯ “삼동(三冬)에 베옷 닙고 암혈(岩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난,
서산(西山)에 해 지다 하니 눈물계워 하노라.”
중종이 승하하자 남명이 읊은 시조로 기개가 느껴진다. 이 시조에서 ‘볕뉘’는 조그만 임금의 은총이며, ‘서산에 해지다’는 중종임금의 승하를 뜻한다. ‘차가운 겨울 동안 베옷 입고 바위 굴에서 눈비를 맞아도 임금이 내린 벼슬한 적은 없지만 임금이 붕어(崩御)했다니 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읊고 있다.
<남명(南冥) 曺植(조식)의 한문학 4.> 고영화(高永和) 6편 中
남명은 자신이 실천적이고 실용성을 강조하다 보니 그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미적 특징도 ‘내수외치(內修外治)’와 ‘노장적 은일(老莊的 隱逸)’ 두 요소에서 함축되어 표출되는 미감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전자는 자기수양과 현실 참여를 지향하는 한편 후자는 ‘은일’을 통하여 자연과 자신을 관조하여 스스로의 행할 바를 생각해 냄으로써 현실에 대한 참여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남명은 산수를 유람하면서 산과 물을 통해 자신은 물론 역사와 현실을 통시해 냄으로써 도학자적 심신수양의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참여 의지와 실천적 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다 우뚝 솟아 천 길 벼랑 같은 그의 면모는 민본주의적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자연에의 은일’과 ‘현실 참여’ 사이를 오가며 ‘정(靜)’한 가운데 ‘동(動)’을 잉태하고[靜中動], 차가운 듯 하면서도 따뜻함[冷中暖]을 느낄 수 있는 인간애를 감지 할 수 있다. 남명 문학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이미지에서 그의 현실주의적 미감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리학적 사유에 근거한 현실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유가적 성향과 도가적 성향이 상호 보완적으로 혼재해 있다.
◯ 그는 젊었을 적에 한 때 문학으로 이름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성인의 학문을 자신이 공부할 목표로 정한 뒤로부터는 문학을 멀리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벽이 있어 시를 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다. 남명은 결국 시를 멀리 하면서도 시를 짓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물론 시흥이 나서 어쩔 수없이 지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시를 지었던 것이다. 남명의 문학작품 속에는 그가 문학을 멀리하면서도 왜 작품을 짓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는 사실과 문학작품을 지음에 있어서 무엇을 강조하였는가,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 드러난 것을 통해서 그가 무엇을 중시하였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결국 그의 작품은 그의 유교•도교적 철학과 실용주의적 생각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4) 무제[無題] 한가로운 저물녘 풍경을 읊은 詩이다.
雨洗山嵐盡 산안개 말끔히 비가 씻어 가니
尖峯畵裡看 그림 같이 드러나는 뾰족 묏부리.
歸雲低薄暮 땅거미 속에 구름이 낮게 깔리니
意態自閑閑 그 모습 제 절로 한가롭구나.
15) 천왕봉[天王峰] 운자(韻字)‘庚’
請看千石鐘 천 석 되는 큰 종을 보고 싶다 하니
非大扣無聲 큰 종채가 아니면 쳐도 울리지 않는다네.
萬古天王峰 만고의 천왕봉은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려도 울리지 않는구나.
16) 청학동[靑鶴洞]
獨鶴穿雲歸上界 고독한 학, 구름 뚫고 천상으로 돌아가고
一溪流玉走人間 한 줄기 맑은 개울, 옥같은 물결 인간계로 흘러온다.
從知無累翻爲累 날개치며 날아감이 누(累) 되는 누가 아님을 알아도
心地山河語不看 마음속에 담은 산과 강들, 나는 못 보았다 말하리라.
17) 차운 양산 쌍벽루[次梁山雙碧樓韻] / 조식(曺植 1501~1572) 운자(韻字)‘尤’
綠水靑簹銀箭流 푸른 물 푸른 대 은살이 되어 흐르고
落來寒葉桂殘秋 나뒹구는 찬 계수나무 잎에 가을이 저문다.
無人醬去良州干 옛 양산군에 술잔 기울이는 이 없으니
滿目歸雲不滿愁 눈에 가득 돌아가는 구름이야 시름차지도 않네.
[주1] 은전금호(銀箭金壺) : 고대에 시간을 알리는 계기, 금호는 구리로 만드는데 병처럼 생긴 壺속에는 물을 저장하고 있고, 호의 바닥에는 물을 저장하고 있다. 호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물이 똑똑 떨어지게 되어 있다.
[주2] 양주간(良州干) : 양산군(梁山郡)을 일컬음. 신라 때는 삽량주, 고려시대에서는 양주(梁州)라 했다가 밀양(密陽)에 합친 뒤 다시 의춘(宜春)·순정(順正)이라 명명. 조선시대에는 양산군으로 개칭, 선조(宣租) 때에 동래(東萊)에 합쳤다가 다시 나누어 양산군으로 바꾸고 경주진(慶州鎭)에 예속.
18) 함허정[涵虛亭] 김해에 있다(在金海) / 조식(曺植), 운자(韻字) ‘陽’
蜃騰蛟屋燕無樑 신기루처럼 솟은 교룡의 집 들보엔 제비 없는데,
虛箇涵來見直方 텅 빈 것 머금어야 곧고 바름을 볼 수 있다네.
傑閣專南謾好大 남쪽에 이름난 크고 좋은 집이요,
老虬分北剩風霜 늙은 솔이 북쪽 맡아 바람과 서리 많도다.
棠華館裏笙歌咽 우애 좋은 집엔 풍악소리도 그쳤고,
王母池邊河漢凉 서왕모의 못가엔 은하수가 서늘하네.
殘落生涯寒落水 쓸쓸한 생애는 줄어든 차가운 물과 같기에,
欲將埋恨引杯長 한을 묻어버리고자 잔 길게 끌어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