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지신 주를 위해 울지 말라
눅 23:28-29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은 그 뒤를 따르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처형하는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이 이 여인들에게는 일생의 큰 슬픔으로 다가왔고, 그 비참함으로 눈물 흘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126분 길이의 영화가 있습니다.’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로, 제임스 카비젤이 예수 역을 맡았습니다. 카비젤은 예수님 역할을 한 이 영화가 자신의 배우생활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영화는 주님께서 온갖 수모를 당하시며 살이 찢어지고 피 흘리시는 모습을 재현했는데, 카비젤은 십자가의 모습을 흉내만 내어도 죽을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 영화를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관경을 보고 참고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들도 바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열 두 제자들도 도망가고 배신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것을 끝까지 따라간 여인들의 믿음은 위대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주님은 우리 생각과 다른데요,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은 울며 따르는 여인들을 향하여 울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는 주님의 말씀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위해서 울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여인들의 눈물의 비친 뜻
눈물은 눈에 먼지가 들어오거나 여러 가지 감정에 의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모습을 본 여인들이 눈물 흘린 것은 슬프고 애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인들의 슬픈 감정에 대해 주님의 말씀을 비추어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1. 실망한 눈물
여인들은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주님을 섬겼습니다. 여인들은 주님을 섬기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눅 8:3) (3)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주님은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귀신 드린 자를 고쳐주었습니다. 죄인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려 주어 소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여인들은 그렇게 능력 있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도 능력이 나타나신 주님을 뵈올 때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인들은 그 주님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전하고 책을 써서라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었던 주님의 손발에 못이 박히고, 죽게 되었을 때 그 기대한 마음은 십자가 앞에서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인들의 기대한 바가 한 순간 사라지게 되어 슬퍼진 것입니다. 여인들은 어쩌면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가난하고 병든 자의 편이 되어 세상을 바꿔주실 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인들이 자신에게 찾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지신 십자가의 참 의미를 깨닫고 슬퍼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을 불쌍히 여기는 눈물
주님은 33세에 죄 없이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루살렘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짐승에게도 사용할 수 없는 채찍을 주님께 사용하여 살이 찢어지는 그 관경을 보고 여인들은 울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눈물이 저절로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그 모습을 보고 울지 않는 자는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는 여인들을 향하여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울지 말라 하신 그 말씀을 들었으니 슬픈 감정에 빠지지 말고 이성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되어 이 눈물을 분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인들이 주님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것은 죄인 된 여인들이 의인이신 주님을 보고 눈물 흘리며 괴로워한 것입니다. 인간을 구속하러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위해 여인들이 불쌍히 여겨 애통하며 흘린 눈물이 올바른 것일까요?
주님을 위한 여인들의 열심이 주님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동정의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 여인들의 동정어린 눈물로 희석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비밀이 영롱하게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 십자가를 지신 주께 영광을 돌리라
주님은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한 발자국 한 자국 피를 흘리며 골고다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려고 골고다로 끌어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로 끌려갈지라도 영적으로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짐으로 사탄의 머리가 깨졌습니다. 모세가 예언한대로 사단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상한 것은 발꿈치가 상한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창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이 십자가에 죽게 된 것은 곧 바로 저 원수 마귀가 정복되고 사탄의 권세가 멸망하게 되는 것인데, 성도는 이때 울지만 말고 영광을 찬송을 돌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짐으로 사탄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은 곧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뉴스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시면서 영적으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리의 개가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주님과 함께 승리를 개가를 부르며 행진곡을 불러야 합니다.
마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인간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아주 치밀하게 유혹하고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로 멸망하여 지옥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어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직접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그 사단의 계획을 한 순간에 무효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성경은 마귀의 일을 멸한 것이라고 합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의 일을 멸하였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사탄의 노력은 모두 무효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증오하고 저주하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사랑하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적 승리의 개선가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동안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지 못합니다. 사단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함께 십자가에 죽어간 강도 역시 마귀의 유혹을 받아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마귀는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주님을 비웃는 것입니다. 한편 강도가 주님의 십자가를 자세히 보니 주님의 십자가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사슬이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바른 말을 해보지 못한 강도가 바른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뉘우치지 못한 강도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성령의 감동으로 죄를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죄를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그 권세가 무너진 것입니다.
(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강도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강도가 받은 은혜를 믿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행진가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외쳤습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를 보며 주님의 육체적 고통에 슬퍼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당당해진 강도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강도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죽음을 피하여 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강도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을 우리 주님께 구한 것입니다.
(눅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아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육체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지만,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았습니다. 마귀의 사망권세를 십자가의 생명의 법이 삼킨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망을 삼키는 영생을 누리며 승전가를 부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