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수학 : 해석학의 발전 시대 ▶18세기 수학의 특징
▶18세기 전반
▶오일러의 시대
▶혁명 시대의 수학자
▶미터법
◆18세기 수학의 특징
18세기는 17세기에 창설된 해석학의 발전시대로 새롭고 강력한 방법인 미적분학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었다. 이 세기 도안 삼각법, 해석기하학, 정수론, 방정식론, 확률론, 미분방정식, 해석역학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발전이 있었으며 또한 보험통계학, 변분법, 고차함수, 편미분방정식, 화법기하학,미분기하학 등 수많은 새로운 분야가 창조되었다.
18세기는 스위스의 베르누이 일가족과 프랑스의 수학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베르누이 일가의 업적과 같이 스위스의 오일러의 수많은 독창력이 해석학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또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프랑스인 라그랑주는 오일러와 더불어 변분학을 만들었다. 달랑베르는 해석학의 기초에 관심을 쏟았으며, 람베르트는 평행공준에 관한 눈문을 썼다. 해석학에 크게 공헌한 라플라스, 화법기하학을 창시한 몽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1799년 6월 22일에 프랑스 혁명을 계승한 프랑스 공화정은 도량형의 미터법을 채택했다.
◆18세기 전반
●베르누이 일가 : 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중의 하나는 17세기 후반부터 유능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보통 이상으로 많이 배출한 스위스의 베르누이 가문이다.
그 중에서도 야곱 베르누이(Jakob Bernoulli, 1654-1750)와 요한 베르누이 (Johann Bernoulli, 1667-1748)가 가장 유명하다. 이 두사람은 미적분학의 놀랄만한 위력을 깨닫고 다양한 문제에 그 도구를 적용한 최초의 수학자들에 속한다.
야곱 베르누이는 변분법을 연구한 최초의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수학적 확률을 최초로 공부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현재 야곱 베르누이의 이름을 지닌 수학적 내용들이 여러개 있다. 이들 중에는 통계학과 확률론의 '베르누이 분포'와 '베르누이 정리'미분방정식의 첫 학기 강의에서 마주치는 '베르누이 정리'등이 있다. 그리고 '적분'(integral, 1690년)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그의 형 야곱보다도 더 수학에 풍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는 미적분학을 많이 보충하였고 유럽 대륙에서, 이 새 분야의 유용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데 매우 큰 영항을 끼쳤다.
로피탈(de l'Hospital, 1661-1704)후작이 요한의 면밀한 재정적 동의 아래 1696년 최초의 미적분학 교재를 만든 것은 바로 그의 자료였다. 잘 알려진 0/0꼴의 부정형의 계산법이 후에 미적분학의 책에서 로피탈의 정리(l'Hospital'srule)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니콜라스 (1695-1726),다니엘(1700~1782)과 요한 2세 (1710-1790)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18세기 수학자와 과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 중 다니엘이 가장 유명하였고 온 정열을 확률론, 천문학, 물리학 및 유체역학에 쏟았다.
●드 무아브르와 확률론 : 18세기에 확률론에서 페르마, 파스칼, 호이겐스의 선구자적 사고가 상당히 다듬어져서 이론이 급속히 발전하였고, 그 결과 이 분야를 보다 깊게 다룬 야곱 베르누이의 <추측술, Ars conjectandi>이 나왔다. 확률론에 기여한 사람들 가운데 중요한 한 사람이 1685년 낭트 칙령이 폐지된 후 보다 정치적 환경이 좋은 런던으로 이주한 프랑스 신교도인 드 무아브르 (Abraham Re Moivre,1667-1754)이다. 그는 영국에서 가정교사로 생활하였고 뉴턴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드 무아브르는 보험 통계수학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수명에 따른 연금, Annuities upon Lives>,<우연설, Doctrine of Chances>,<해석기요,Miscellanea analytica>등으로 해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드 무아브르는 통계학 연구에서 중요한 확률적분 를 처음으로 취급하였다.
드 무아브르 이름으로 알려졌고 모든 방정식론 책에서 발견되는 낯익은 공식
(cosχ+ isinχ)n=cosnχ+isinnχ, i=√-1
은 n이 자연수인 경우에 잘 알려진 드 무아브르 공식이다. 이 공식은 해석적 삼각법의 시금석이 되었다.
●드 뷔퐁 (Comte ce Brffon, 1707-1788, 프랑스) : 18세기에 보험업이 크게 성행하였고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것의 기초가 되는 확률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드 뷔퐁은 1777년에 기하학적 확률의 최초의 예인 π값을 실험적으로 어림 계산 하기 위한 그의 유명한 '바늘문제(needle problem)'를 제시하였다.
●테일러와 매클로린 : 미적분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우 유용한 함수의 테일러 전개와 매클로린 전개를 통하여 영국의 수학자 테일러(Brook Taylor,1685-1731)와 스코틀랜드 수학자 매클로린(Colin Maclaurin, 1698-1746)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 테일러가 잘 알려진 전개 정리
를 발표한 때가 1715년이다.
테일러 급수의 중요성이 완전히 인정받게 된 것은 오일러가 그것을 미분법에 적용한 1755년의 일이며 라그랑주가 잉여량을 첨가한 급수를 함수론의 기초로 이용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매클로린은 18세기의 유능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소위 매클로린 전개라 불리는 것은 단지 테일러 전개에서 a=0인 경우이다.
◆오일러의 시대
오일러(Leonhard Euler,1707-1783,스위스)는 실로 수학사의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그 결과 수학의 각 분야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성페테르부르크 학술원으로 돌아온 직후 불행하게도 완전히 눈이 멀게 되었지만 그의 놀랄만한 저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오일러의 연구는 수론, 대수학, 급수론, 대수해석, 미적분학, 해석기학학, 확률론, 역학 등에 걸쳐 있으며, 45권의 저서와 70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수학에 대한 오일러의 업적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서 전부 상술할 수는 없으나, 우선 무엇보다도 다음 표기들이 오일러에 의하여 관례화되었고,
기술분야에 관한 약간의 업적을 살펴 볼 수는 있다.
함수의 분류
임의의 함수는 직선 또는 곡선으로 나타내고, 역으로 임의의 곡선은 함수에 의해 나타내어진다는 말을 통해, 수학의중심이 기하학에서 대수학으로 이동됨을 시사.
오일러의 공식 : eix=cosx+isinx등 여러가지
그래프 이론의 기초 :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문제.
표기법의 정립
함수(sinx, cosx, log(1+x))의 무한급수 전개.
지수함수와 삼각함수의 관계를 밝힘.
Goldbach의 추측으로 알려진 문제의 제기
Γ함수, ß함수의 정의
◆혁명 시대의 수학자
●라그랑주 :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두 수학자는 오일러와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1736-1813)이다.
오일러가 직관을 이용하여 상세하게 논문을 쓰는 반면, 라그랑주는 수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면서 간결하게 논문을 썼다. 그의 불후의 논문 <해석적 역학, Mecanique analytique,1788>에서 오늘날 '라그랑주의 방정식'으로 알려진 동역학계의 일반적인 운동방정식을 담고 있다.
라그랑주의 정리라 불리는 「유한군 G의 부분군의 위수는 G의 위수의 약수」라는 군론의 중요한 정리를 만들었다.
라그랑주의 연구는 후세 수학 연구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해석학의 기초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깨닫고 미적분학을 엄밀하게 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수학자였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와 르장드르 :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기념비적인 두 작품, <천체 역학론, Traite' de mecanique Celete, 5권 1799-1825>과 <확률의 해석적 이론, The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es, 1812>을 발표하였다. 그의 이름은 '라플라스 변환' 그리고 행렬식의 '라플라스 전개'와 연관되어 있다.
라플라스에게 수학은 단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이고 라그랑주에게는 하나의 빼어난 예술이고, 그 자체가 존재 이유이다.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 1752-1833)는 많은 명제를 상당히 단순화하고 재정리하여 유클리드의 <원론>을 교육적으로 개선하려 시도했던 매우 유명한 그의 책 <기하학의 원리, Etements de geometrie>로 기초 수학사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 논문은 미국에서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금세기 기하학 교과서의 표준이 되었다.
르장드르의 이름은 오늘날 응용수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2계 미분 방정식
(1-x²)y″-2xy′+n(n+1)y=0
에 붙어있다.
●몽주 : 몽주(Gaspard Monge, 1746-1818)는 화법기하학 (lescriptive geometry)의 창시와 미분기하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에 적절히 사영하여 현명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인 그의 방법은 군에서 채택하여 일급비밀로 분류하였다. 후에 그것은 화법기하학으로 널리 가르쳐졌다.
그는 젊고 유능한 많은 기하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그들 가운데는 미분기하학 분야에 기여한 듀팽 (Charles Dupin, 1784-1873)과 사영기하학 분야에 기여한 퐁슬레(Jean Victor Poncelet. 1788-1867)도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3L(Lagrange, Laplace, Legendre)와는 다르게 몽주과 카르노는 그것을 지지하고 혁명의 사건에 활발히 참여했다.
◆미터법
길이, 넓이, 부피, 무게를 재는 것은 수학의 실제적인 응용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이 측정 단위 중 기본은 길이의 단위이다. 왜냐하면 길이의 단위가 주어지면 다른 양의 단위는 쉽게 고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전 세계의 혼란스럽고 비과학적인 도량형을 정돈하여 일정하고 과학적이고 정확하고 간단한 한 가지로 대치하도록 고안된 미터법을 만든 것이다.
르장드르와 몇 사람이 지구의 자오선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한 점을 고려하여 프랑스 과학원의 위원회는 최종적으로 1미터를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길이의 1/100000로 하기로 합의 했다.(1799) 그러나 후에 사분 자오선을 측량하는 데 잘못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오늘날 표준 미터는 진공상태에서 측정된 크립톤 86의 동위 원소에서 방출되는 주황색 빛의 1,650,763.73파장으로 정한다.
▶18세기 전반
▶오일러의 시대
▶혁명 시대의 수학자
▶미터법
◆18세기 수학의 특징
18세기는 17세기에 창설된 해석학의 발전시대로 새롭고 강력한 방법인 미적분학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었다. 이 세기 도안 삼각법, 해석기하학, 정수론, 방정식론, 확률론, 미분방정식, 해석역학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발전이 있었으며 또한 보험통계학, 변분법, 고차함수, 편미분방정식, 화법기하학,미분기하학 등 수많은 새로운 분야가 창조되었다.
18세기는 스위스의 베르누이 일가족과 프랑스의 수학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베르누이 일가의 업적과 같이 스위스의 오일러의 수많은 독창력이 해석학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또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프랑스인 라그랑주는 오일러와 더불어 변분학을 만들었다. 달랑베르는 해석학의 기초에 관심을 쏟았으며, 람베르트는 평행공준에 관한 눈문을 썼다. 해석학에 크게 공헌한 라플라스, 화법기하학을 창시한 몽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었다.
1799년 6월 22일에 프랑스 혁명을 계승한 프랑스 공화정은 도량형의 미터법을 채택했다.
◆18세기 전반
●베르누이 일가 : 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중의 하나는 17세기 후반부터 유능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보통 이상으로 많이 배출한 스위스의 베르누이 가문이다.
그 중에서도 야곱 베르누이(Jakob Bernoulli, 1654-1750)와 요한 베르누이 (Johann Bernoulli, 1667-1748)가 가장 유명하다. 이 두사람은 미적분학의 놀랄만한 위력을 깨닫고 다양한 문제에 그 도구를 적용한 최초의 수학자들에 속한다.
야곱 베르누이는 변분법을 연구한 최초의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수학적 확률을 최초로 공부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현재 야곱 베르누이의 이름을 지닌 수학적 내용들이 여러개 있다. 이들 중에는 통계학과 확률론의 '베르누이 분포'와 '베르누이 정리'미분방정식의 첫 학기 강의에서 마주치는 '베르누이 정리'등이 있다. 그리고 '적분'(integral, 1690년)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그의 형 야곱보다도 더 수학에 풍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는 미적분학을 많이 보충하였고 유럽 대륙에서, 이 새 분야의 유용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데 매우 큰 영항을 끼쳤다.
로피탈(de l'Hospital, 1661-1704)후작이 요한의 면밀한 재정적 동의 아래 1696년 최초의 미적분학 교재를 만든 것은 바로 그의 자료였다. 잘 알려진 0/0꼴의 부정형의 계산법이 후에 미적분학의 책에서 로피탈의 정리(l'Hospital'srule)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였다.
요한 베르누이는 니콜라스 (1695-1726),다니엘(1700~1782)과 요한 2세 (1710-1790)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18세기 수학자와 과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 중 다니엘이 가장 유명하였고 온 정열을 확률론, 천문학, 물리학 및 유체역학에 쏟았다.
●드 무아브르와 확률론 : 18세기에 확률론에서 페르마, 파스칼, 호이겐스의 선구자적 사고가 상당히 다듬어져서 이론이 급속히 발전하였고, 그 결과 이 분야를 보다 깊게 다룬 야곱 베르누이의 <추측술, Ars conjectandi>이 나왔다. 확률론에 기여한 사람들 가운데 중요한 한 사람이 1685년 낭트 칙령이 폐지된 후 보다 정치적 환경이 좋은 런던으로 이주한 프랑스 신교도인 드 무아브르 (Abraham Re Moivre,1667-1754)이다. 그는 영국에서 가정교사로 생활하였고 뉴턴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드 무아브르는 보험 통계수학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수명에 따른 연금, Annuities upon Lives>,<우연설, Doctrine of Chances>,<해석기요,Miscellanea analytica>등으로 해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드 무아브르는 통계학 연구에서 중요한 확률적분 를 처음으로 취급하였다.
드 무아브르 이름으로 알려졌고 모든 방정식론 책에서 발견되는 낯익은 공식
(cosχ+ isinχ)n=cosnχ+isinnχ, i=√-1
은 n이 자연수인 경우에 잘 알려진 드 무아브르 공식이다. 이 공식은 해석적 삼각법의 시금석이 되었다.
●드 뷔퐁 (Comte ce Brffon, 1707-1788, 프랑스) : 18세기에 보험업이 크게 성행하였고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것의 기초가 되는 확률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드 뷔퐁은 1777년에 기하학적 확률의 최초의 예인 π값을 실험적으로 어림 계산 하기 위한 그의 유명한 '바늘문제(needle problem)'를 제시하였다.
●테일러와 매클로린 : 미적분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매우 유용한 함수의 테일러 전개와 매클로린 전개를 통하여 영국의 수학자 테일러(Brook Taylor,1685-1731)와 스코틀랜드 수학자 매클로린(Colin Maclaurin, 1698-1746)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 테일러가 잘 알려진 전개 정리
를 발표한 때가 1715년이다.
테일러 급수의 중요성이 완전히 인정받게 된 것은 오일러가 그것을 미분법에 적용한 1755년의 일이며 라그랑주가 잉여량을 첨가한 급수를 함수론의 기초로 이용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매클로린은 18세기의 유능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소위 매클로린 전개라 불리는 것은 단지 테일러 전개에서 a=0인 경우이다.
◆오일러의 시대
오일러(Leonhard Euler,1707-1783,스위스)는 실로 수학사의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그 결과 수학의 각 분야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성페테르부르크 학술원으로 돌아온 직후 불행하게도 완전히 눈이 멀게 되었지만 그의 놀랄만한 저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오일러의 연구는 수론, 대수학, 급수론, 대수해석, 미적분학, 해석기학학, 확률론, 역학 등에 걸쳐 있으며, 45권의 저서와 700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수학에 대한 오일러의 업적은 너무 많아서 여기에서 전부 상술할 수는 없으나, 우선 무엇보다도 다음 표기들이 오일러에 의하여 관례화되었고,
기술분야에 관한 약간의 업적을 살펴 볼 수는 있다.
함수의 분류
임의의 함수는 직선 또는 곡선으로 나타내고, 역으로 임의의 곡선은 함수에 의해 나타내어진다는 말을 통해, 수학의중심이 기하학에서 대수학으로 이동됨을 시사.
오일러의 공식 : eix=cosx+isinx등 여러가지
그래프 이론의 기초 :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문제.
표기법의 정립
함수(sinx, cosx, log(1+x))의 무한급수 전개.
지수함수와 삼각함수의 관계를 밝힘.
Goldbach의 추측으로 알려진 문제의 제기
Γ함수, ß함수의 정의
◆혁명 시대의 수학자
●라그랑주 :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두 수학자는 오일러와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1736-1813)이다.
오일러가 직관을 이용하여 상세하게 논문을 쓰는 반면, 라그랑주는 수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면서 간결하게 논문을 썼다. 그의 불후의 논문 <해석적 역학, Mecanique analytique,1788>에서 오늘날 '라그랑주의 방정식'으로 알려진 동역학계의 일반적인 운동방정식을 담고 있다.
라그랑주의 정리라 불리는 「유한군 G의 부분군의 위수는 G의 위수의 약수」라는 군론의 중요한 정리를 만들었다.
라그랑주의 연구는 후세 수학 연구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해석학의 기초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깨닫고 미적분학을 엄밀하게 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수학자였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와 르장드르 :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기념비적인 두 작품, <천체 역학론, Traite' de mecanique Celete, 5권 1799-1825>과 <확률의 해석적 이론, The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es, 1812>을 발표하였다. 그의 이름은 '라플라스 변환' 그리고 행렬식의 '라플라스 전개'와 연관되어 있다.
라플라스에게 수학은 단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이고 라그랑주에게는 하나의 빼어난 예술이고, 그 자체가 존재 이유이다.
르장드르(Adrien-Marie Legendre, 1752-1833)는 많은 명제를 상당히 단순화하고 재정리하여 유클리드의 <원론>을 교육적으로 개선하려 시도했던 매우 유명한 그의 책 <기하학의 원리, Etements de geometrie>로 기초 수학사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 논문은 미국에서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금세기 기하학 교과서의 표준이 되었다.
르장드르의 이름은 오늘날 응용수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2계 미분 방정식
(1-x²)y″-2xy′+n(n+1)y=0
에 붙어있다.
●몽주 : 몽주(Gaspard Monge, 1746-1818)는 화법기하학 (lescriptive geometry)의 창시와 미분기하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에 적절히 사영하여 현명하게 표현한 것 중의 하나인 그의 방법은 군에서 채택하여 일급비밀로 분류하였다. 후에 그것은 화법기하학으로 널리 가르쳐졌다.
그는 젊고 유능한 많은 기하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그들 가운데는 미분기하학 분야에 기여한 듀팽 (Charles Dupin, 1784-1873)과 사영기하학 분야에 기여한 퐁슬레(Jean Victor Poncelet. 1788-1867)도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3L(Lagrange, Laplace, Legendre)와는 다르게 몽주과 카르노는 그것을 지지하고 혁명의 사건에 활발히 참여했다.
◆미터법
길이, 넓이, 부피, 무게를 재는 것은 수학의 실제적인 응용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이 측정 단위 중 기본은 길이의 단위이다. 왜냐하면 길이의 단위가 주어지면 다른 양의 단위는 쉽게 고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전 세계의 혼란스럽고 비과학적인 도량형을 정돈하여 일정하고 과학적이고 정확하고 간단한 한 가지로 대치하도록 고안된 미터법을 만든 것이다.
르장드르와 몇 사람이 지구의 자오선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한 점을 고려하여 프랑스 과학원의 위원회는 최종적으로 1미터를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길이의 1/100000로 하기로 합의 했다.(1799) 그러나 후에 사분 자오선을 측량하는 데 잘못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오늘날 표준 미터는 진공상태에서 측정된 크립톤 86의 동위 원소에서 방출되는 주황색 빛의 1,650,763.73파장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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