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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글

[스크랩] [묵상]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덮여서

작성자백영길[라파엘]|작성시간14.09.12|조회수11 목록 댓글 0

2014912일 연중 23주간 금요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덮여서

 

마음이 어린 휘니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마난

지는 님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이 모두 다 어리석다.

깊은 산 속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 올까마는

그래도 떨어지는 잎새와 바람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임일까 한다.

 

황진이의 유혹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서경덕의 연정가(戀情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삔다고 합니다. 또 콩깍지가 끼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잘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얼굴의 큰 흉터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눈이 삐도록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내가 미쳤지, 귀신이 씌었나, 눈을 감고 살았군, 살았어!’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삽니다. 그런 때는 차라리 눈을 뜨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으로 눈을 뜨고 있거나 감고 있거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으면. 어떤 아름다움이나 교태도 소용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마음 안에 아름다우면, 어떤 추함도 모두 아름다워 보일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큰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형제의 눈에 티끌을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신 하나도 제대로 버틸 힘도 없으면서 정말 앞자락이 넓어서 다른 사람 참견까지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큰 허물을 모두 덮어두고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작은 허물 밖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 앞자락은 지금 엉망진창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데 다른 사람의 실마리를 풀어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꼴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충고도 해주고, 길을 인도해 준다고 나서기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교회도 그렇고 우리 공동체도 그런 모습을 잘 보입니다. 입을 뗄 형편도 아닌데 충판해탐’(忠判解探)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충고(忠告)와 판단(判斷), 그리고 해석(解析)과 탐색(探索)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각오로 살고 있습니다. 누가 사람들을 잘 인도하는 사람인가? 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리더로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은 아주 자주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없는 질문입니다.

 

먼저 자신을 잘 살펴보고 자신의 결점을 고치고,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고, 그리고 상대방을 잘 안다면 충고도 값질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성령으로 겸손해지고, 지혜의 은총을 받아서 이웃을 옳게 판단하고, 상담해서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면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편견이나 아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소상하게 연구하고 조리 있게 해석해 준다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연구하고 조사해서 좋은 방안을 찾아내서 제시해 준다면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충판해탐(忠判解探)도 절대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치가가 눈이 어두워 종교를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고, 신앙을 함부로 얘기한다면 이는 큰일 날 일입니다. 그의 눈을 덮고 있는 그 교만을 말끔하게 씻어줄 것은 겸손한 자세뿐입니다.

 

교회도, 성직자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그렇게 눈이 밝아지고, 자신의 결점을 잘 고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매일 몹쓸 것이 잔뜩 끼어 백내장이나 녹내장처럼 소경을 만드는 그런 병들은 빨리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안약을 빨리 사서 골고루 발라야 합니다. 서로 무시하고, 서로 경시하면서 무슨 사랑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학문에 대한 교만이 가득한데 어떻게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질시와 질투가 사랑의 눈을 멀게 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부터 개안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 정말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직 어둠의 속이라는 생각이 나를 우울하게 합니다. 그 사람들의 가장 앞에 내가 있음을 느낍니다. 더러운 속내를 교묘하게 포장하고, 겸손과 성덕을 위장하고 활개를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우두머리라는 생각이 더욱 슬픈 일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의 안약으로 저를 씻어 주소서.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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