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 야구를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가을이 되면 아주 바빠집니다. 들쥐들이 벼를 따서 양식으로 저장해 둔 것을 다시 찾아오느라고 쥐구멍을 전부 파서 헤치고 다닙니다. 그렇게 들쥐들이 저장해 놓은 벼를 모두 파오면 많을 때는 반 가마니 정도 됩니다. 그러면 깨끗이 씻어서 말려야 합니다. 동네 아이들이 파온 것을 전부 모아서 조기회 회장 네 집에서 말리고 잘 관리합니다. 그리고 조기회 회장이 방아를 찧어 팔아오면 지금으로 치면 한 2-3만 원 정도 됩니다. 그러면 정구공하고, 배구공 같은 것을 삽니다. 그 때 정구공은 아주 비쌌습니다. 말랑말랑한 정구공을 가지면 세상을 전부 얻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정구공을 가지고 산소가 많이 있는 동네 산으로 갑니다. 본래 그 산소는 종중산인데 작은 운동장 만했습니다. 그리고 산소가 마치 야구장 베이스처럼 다섯 기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정구공을 손으로 치면서 무덤위로 뛰어가면서 손 야구를 하는 것입니다. 가운데 무덤 위에 있는 아이가 공을 던지고, 모든 아이들은 무덤 위를 돌아서 홈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은 아이들이 밟고 뛰어다녀서 아예 길이 나 있고, 잔디는 잘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잔디나 풀이 자랄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소의 주인어른이 오셔서 우리는 무지하게 혼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산소에서 놀지 못하도록 하시고, 정말 눈물이 날만큼 야단을 맞았고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우리들 때문에 욕을 먹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야단을 하시는지 야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들은 너무 철이 없었던 것입니다. 너무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산소를 짓밟고 놀았던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산소의 후손들은 얼마나 조상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무덤은 무덤으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를 잘 가꾸고 벌초도 하고, 잔디도 입히고, 성묘도하며, 산소를 잘 치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입니다. 그것은 무덤 자체가 존경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무덤 안에 모신 분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에 풀이 왕성하고, 나무가 자라면, 그 자손이 너무 불효하고 있다고 자손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덤인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무덤 안에 모셔져 있는 분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렇게 무덤을 밟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고 예수님은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태도를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선적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는 겸손을 가장하고 있지만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은 외면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윗자리에 앉으려고 자리다툼을 하는가하면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겨하는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질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바로 그런 위선자임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도 양반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내 감정, 내 느낌, 내 체면을 속이고, 진심을 가슴 속에 숨기고 그렇게 위선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선생으로 존경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려운 규정과 규칙을 정해놓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기를 강요하다시피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 가족들이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율법학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질린다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이끌어 주는 작은 버팀목이었지만 진솔하지 못한 모든 것들은 내 삶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지금은 후회스러워합니다. 그런 위선에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불쾌하셨을지, 내 가족들은 얼마나 속상했을지, 나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실망했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오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기념일입니다. 성녀는 ‘완덕의 길’을 쓰신 ‘교회학자’이십니다. 완덕(完德)의 길로 나아가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완덕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위선적으로 살았던 삶을 반성하면서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에 충실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고자 노력하고자 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오늘 데레사 성녀의 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녀를 닮아 완덕으로 나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