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5일 연중 32주간 토요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손자와 손녀
나의 할아버지는 서른아홉의 아주 젊은 나이에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아주 흐릿한 사진 한 장만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는데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6.25 전쟁으로 아주 큰 상처를 주고 끝 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 동네 사람들 중에 입담이 좋은 노인들이 모여 있는 사랑방에 가서 옛날 얘기도 곧잘 듣고, 세상사는 얘기를 많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의 얘기 속에서 세상을 사는 지혜도 있었고, 잘못 사는 사람들의 얘기도 듣고, 칭찬하는 말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라디오도 없던 시대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황당한 얘기도 진담인 줄 알고 이야기 해주면 내가 더 실감나게 얘기한다고 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답니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에 가니까 동네 어른들이 나를 완전히 다르게 대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읍내 학교에 다니는 나를 완전한 지식인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군인 간 아들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아주머니가 편지를 읽어달라는 노인도 있고, 신문을 읽어달라고 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도 해설해 달라고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묻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랑방의 귀한 손님이 되어서 그분들에게 아주 나름대로 폼을 잡으면서 예수님의 얘기도, 성당의 얘기도, 과학 얘기도 자랑스럽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유식한 어른처럼 그렇게 떠들고 얘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손주를 보고 할아버지가 되어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외손자 손녀 아이들이 재롱을 떨며 걸음마를 할 때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예쁜 짓이 눈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외손녀가 초등학생이 되니까 아이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뻔히 알고 있는 것도 모른척하고는 아이에게 넌지시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치 제가 가장 잘 아는 것처럼 의기양양해서 할아버지인 내 앞에서 선생님처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아주 대견해 하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이에게 정말 모르는 것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그 얘기를 빠짐없이 듣습니다. 그러면 손녀는 더 신이 나고 용기가 나서 할아버지는 무식하다고 놀려대기도 하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주들의 얘기를 들어줍니다. 그렇게 나는 정말 기쁘게 바보가 되면 똑똑한 우리 손녀는 작은 것을 알게 되었고 빙그레 웃는 나는 큰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손녀가 할아버지의 이런 웃음을 알겠습니까?
'대지한한 소지한한 대언담담 소언첨첨'(大知閑閑 小知閒閒 大言淡淡 小言詹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나큰 지혜는 한가하고 작은 지혜는 따지려 한다. 크나큰 말은 담담하고 작은 말은 수다스럽다.>라는 말이지요. 어렸을 때 내 얘기를 아주 신기한 듯 들어주신 동네 노인들의 그 큰 지혜를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중학생이 되었다고 지식인처럼 대우해 주시던 그 어른들의 지혜와 겸손한 모습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조금 지식이 있다고,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선생을 했다고 세상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고, 사람들과 주님 앞에서 수다를 떨고 살았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바라시며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철부지 아이로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 다니며 재롱을 떨던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성당에서 한 시간 내내 부동자세로 앉아 있곤 했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이 그 노인에게 하느님께 무슨 말씀을 하시냐고 물었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은 안하십니다. 듣기만 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말씀을 드립니까?” “저도 말을 안 합니다. 듣기만 합니다.”
주님!
저희가 이렇게 기도하게 하소서.
제가 이야기하고 당신은 들으시고,
당신께서 말씀하시고, 저는 듣고,
둘 다 말하지 않고, 둘 다 듣고,
둘 다 말하지 않고, 둘 다 듣지 않고
침묵 속에서 당신만 보게 하소서.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