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건너뛰어서, SSc 라는 1.5세대 개발부터 상 받을 때까지의 얘기를 좀 해보겠다.
때는 2014년 여름
내가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하고 있을 때였다.
3년차 고비도 왔고, 무엇보다 20140416 세월호 사건때 하는 짓거리들 보고는
도저히 이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민가야겠다. 를 진심으로 생각했을 때였다.
자세한 얘기는 퇴사 결심을 얘기하며 하겠다.
나의 생각과 상관없이 일단 TSV기술은 양산에 성공하여 세계최초 타이틀을 한번 때린 상태였다.
기사 참조 http://samsungsemiconstory.com/829
그리고 나서 다음 핵심 아이템 중 손꼽히고 있던게 이 SSc라는 공정인데,
Bonding 공정에서 chemical 사용량과 공정 시간을 줄이고, Peel-off라는 Debonding 공정 중 하나를 skip하는
대략 업그레이드 버젼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실상 업그레이드 수준이고, 2세대 기술이라고 하기엔 뭣하니 1.5라고 불렀다.
당시 나의 사수이자 Bonding 공정 담당자는 이 모 책임님이었는데, 당시 이 공정 담당자는 나를 포함 총 3명이었다.
그리고 연구소 인력 몇분을 포함해야 하지만, 양산팀에서 담당자는 어쨌든 3명이었다.
여튼 세계최초 뉴스 시원하게 때렸다고 메탄동에서 삼겹살+목살 시원하게 먹고 나서,
그 다음 9월 즈음, 그 전부터도 나왔지만 화두가 된 것이 이 1.5세대 개발이었다.
ㅁ 던지기
이 모 책임이 날 회의실로 부르더니 하는 얘기가
'이거 SSc까지 하면 제대로 양산 때릴 수 있다. 니가 이걸 맡아서 개발해봐라.'
난 그 자리에서 반대했다. 왜냐하면, 사실 이건 연구소에서 가장 먼저 개발한 공정중에 하나였는데,
연구소 설비에서는 도저히 구현이 안되서 포기했던 공정이었다는걸 누구보다 둘 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 날 설득했던 말은 양산설비는 업그레이드 버젼이니, 여기서 하면 될 수도 있다, 였다.
뭐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사실 당시 나의 마음은 그런 공정따위가 아니라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거였지만.
어쨌든 첫 단독 프로젝트였고, 단독이래봐야 연구소 책임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시작했는데
당초 계획을 짜기로 해 넘어가기 전까지 EIN을 마치는 거였다.
여기서 EIN, ECN은 개발단계수준인데, 기초평가->EIN->ECN->양산적용 순으로 알면 되겠다.
기초평가는 EIN 평가 시작을 위해 간만 살짝 보는 정도,
EIN은 실제로 가능성 있는, 대량 적용까지 가능한 조건 잡는 평가로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한번 조건이 결정되면 그 다음 스텝에서는 크게 바꾸기가 어렵다. 따라서 보고서도 전체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고 꼬투리 잡히기도 쉽다.
ECN은 EIN에서 결정된 2-3개의 조건으로 대량으로 테스트해서 문제점은 없는지, 검증하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그 다음 양산 적용인데, 역시 보고서도 EIN이 제일 힘들고 자료 검증도 제일 많이 해야한다.
아무튼,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3개월만에 평가 완료 계획을 짜 놓고, 평가에 들어갔다.
역시 11월 말 정도 되니 말이 나온다. 도대체 왜 진척도가 이거밖에 안되냐고.
당연히 난 따졌다. 양산설비 1대가지고 평가 하나 실으면 아침 9시반에 시작하면 4시나 되야 한 공정이 끝나는데,
그리고 결과까지 볼려면 기본 5일이었다. 당시 양산LOT 기준 Fab in-out을 1주일로 잡았는데, 평가는 당연히 더 오래걸릴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중요한 건 자재도 충분치 않아서 맨날 어디서 굽신굽신 빌려와야 했다. 투정부릴 건 많지만 어쨌든,
ㅁ 일 키우기
당시 하여튼 일이 많아서 매일 마스터 주관 회의가 있었고, 그게 좀 수그러들자 주 1-2회 마스터 주관 회의가 있었는데
차고도 넘치는 문제들 중 메인 몇개는 SSc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라고 설레발을 쳐서
졸지에 양산/연구소 인력뿐 아니라 TSV 프로젝트 담당 마스터에 심지어 팀장인 상무님까지
아 이게 결국 해답인가, 열심히 해보게, 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젼챠로...SSc 개발 실무 담당자인 나는 맨날 다이렉트 보고자가 되었다.
사실 초반엔 사수인 이 모 책임이 보고했지만, 나중에는 과정/설명을 나에게 떠넘겨서 그냥 내가 했다. 부장님도 그냥 날 불러서 물어봤고.
하지만 애당초 연구소에서도 실패한 공정을 여기서 3개월만에 완성시킬 수는 없었지 않은가.
ㅁ 1차 말바꾸기
그래서 개발계획은 1월, 2월로 점점 밀렸고, PS가 나왔고, 설보너스도 나오고, 겨울도 끝나갈 무렵
어김없이 고과의 계절이 돌아왔는데, 여기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고과 배정은 민감한 사안이니 언급하지 않겠지만, 여튼 요는 그거였다.
자기는 TSV 양산 개발의 공로로 상금 50만원짜리 상을 받았고, 고과도 가 고과를 받았지만,
니가 SSc 개발하는게 늦어서 내가 수석 진급을 못했다, 그리고 너도 그걸 못해서 니 후배에게 가 고과가 가고, 넌 다 고과다.
그래서 난 다 고과를 받고, 내 1년 후배는 가 고과를 받았다.
고과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같이 고생한 후배인 형이 받아서 솔직히 마음은 편했다.
야근하는 빈도나 시간이 다른 공정에 비해 월등히 많은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퇴사를 맘먹은 마당에 고과 받아봐야..
하지만 내가 못해서 못받았다고 까진 이해하겠는데, 정작 자기가 그것때문에 진급을 못했다는건 이해가 안됐다.
ㅁ 2차 말바꾸기
개발 막바지, 2월 중순~3월이 넘어갈 즈음, 여전히 미팅시간엔 분위기가 안좋았고,
점점 사람들이 안되는걸 왜 되냐고 주장했냐고 따지기 시작했을 때,
'거봐 내가 안된다고 했는데 부장이 우겨서 하자고 했는데 왜 나한테 뭐라 하냐'
부장은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원년멤버였단 한 모 수석님은 그룹장으로 진급해서
이미 다른 부서로 간 상태였고, 부장은 그 이후에 들어와서 Bonding 공정이 뭔지도 정확히 모를 때였으니까,
심지어 같은 셋업멤버였던 다른 파트 책임들, 사원들도 그때까지도 정확히 Bonding 공정이 뭔지 몰랐다.
고로 저 말은 책임 떠넘기기 라고 밖에 난 생각할 수 없었다.
ㅁ 결말
어쨌든 2월 말? 3월초? 정도에 개발은 마무리됐고, 급한 ECN 후 양산적용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갑자기 김 모 수석님이 나에게 오더니 내일모레 저기 화성가서 상 받고 오라고,
타이틀은 1.5세대 개발로 인한 생산성 향상에 기여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난 '아 그럼 XX(후배인 형) 이랑 같이 받는 겁니까' 라고 물어봤고, 이름은 내 이름만 올라가 있다고
그럼 갈때 같이 가서 받겠다, 나 혼자 한게 아니다, 라고 했는데
이 얘기를 왜 담당과장이자 사수인 이 모 책임에게 안듣고 수석에게 들어야 했는지는 의문이었다.
뭐 상 얘기가 나온 이후에도 아무 얘기 없길래 그냥 형만 같이 가자고 해서 가서 받았다.
가서 보니 나만 올라가서 상 받고 결국 형은 구경만 했지만..
받고 와서는 20만원 받았으니 회식 한번 쏘래서
옳타꾸나 우리 사원 6명만 회식했다. 정중하게 우리끼리만 회식할 거라고 얘기하고.
자기 상받은건 혼자 먹고 사원이 받은건 회식이라니 어허허 감사합니다 좋은걸 배웠네요.
회식은 쪽갈비를 먹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20이 넘게 나왔고 난 두 달 후인 5월에 퇴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보고서가 남아있었는데, 내가 거의 다 썼으니 형 이름으로 보고서 상신하라고, 저 과장한테 뺏기지 말라고 부탁아닌 부탁을 마지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