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청명시조문학상》 수상 작품 선정 및 심사평
“생명의 원천은 우주다. 고로, 시인은 별이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다. 태양이 지나다니는 황도 역시 삐뚤삐뚤한 타원형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는 우주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인 것. 특히 몸 또한 그렇다. 많은 모순과 왜곡을 안고 있지만, 특히 심장과 신장의 관계가 그렇다. 심장과 신장은 일직선이 아니다. 비스듬하게 어긋나 있다.
이 간극 만큼 아픔과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야 산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질병이란 생명의 시원 혹은 우주의 발생과 더불어 탄생하였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픔의 깊이와 폭 만큼 명작이 탄생하였다.
문학상 행사는 응모 대상에 제한이 없어 우주적인 합평회다. 축하의 마음과 아픔이 교차하여 미묘한 떨림과 허전함을 연주하는 시적 성장통의 음악회다. 낙선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벼워져서, 밟히면 맑은 소리를 내는 낙엽이 된다. 이 거름은 발효되어 향긋하고 구수하다. 썩어도 청명한 시심으로 썩어야 시적 자아가 받아줄 게 아닌가.
올해 제9회 청명시조문학상 응모 요건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정격시조 형식이어야 하며 초장 3·4·3·4, 중장 3·4·3·4, 종장 3·5·4·3 총 43자를 준수할 것을 사전에 공지하였다. 이 중에서 출품 수 미달 및 초과, 정격시조 외 작품, 7명의 심사위원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예선, 본선, 최종선 3차에 걸친 심사 결과, 제9회 《청명시조문학상》 <대상>은 전원 합의 끝에 선정하지 않았으며, 금상에 ‘물안개’(이관희), 은상에 ‘담쟁이’(김병철)를 선정하였다.
<금상> 수상작
물안개 / 이관희
강물에 펼쳐놓은 새하얀 치맛자락
속살이 보일세라 살포시 주저앉아
꼬리를 사려 감추고 흔적 없이 지는 꽃 (전문)
시상이 아무리 좋아도 시적 형상화에 필수인 시어를 어떻게 조합하고 배열하느냐가 시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흔한 소재인 ‘물안개’를 제재로 해서 여성적인 시어로 시상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구심력이 강한 작품을 ‘속살이 보일세라 살포시’ 펼쳐놓았다. ‘구심력이 실력이다’라는 말을 실감 나게 형상화한 수작이다.
‘강물에 펼쳐놓은 새하얀 치맛자락’만으로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운데, 중장 ‘속살이 보일세라 살포시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모시나비를 연상하게 한다. 아름다운 인연과 행복은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고 했던가. 종장은 인간 세상뿐 아니라 이 자연계의 깊은 섭리를,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직조하여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다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현실성과 시대적 아픔은 거세되어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물안개라는 현상을 통해 나비보다 신비로운 여인상을 섬세한 붓으로 명징하게 그렸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었다.
산과 숲을 떠나 수많은 시냇물이 모여서 하나가 되어 들판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가는 강은 ‘거대한 담쟁이’다. ‘꽃’ 다음으로 시인들이 애용하는 시어 중 하나다. 화자는 그런 강물에 상반되는 매개물인 ‘물안개’를 펼쳐놓고 동화됨으로써 영원성과 순간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시어와 심상이 만나 공감의 교집합이 생기기 전에 문학이라는 여인이 어떻게 보편성과 초월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지를 ‘속살이 보일세라 살포시 주저앉아’ 손짓하지만 다가가지 마시라. 시적 화자는 행복도, 그리움도 ‘흔적 없이 지는 꽃’임을 잊지 말라는 상징의 보따리를 살포시 건네줄 것이다.
<은상> 수상작
담쟁이 / 김병철
오체의 느린 몸짓 점자를 읽어가듯
벽 위에 길을 내고 광야에 글을 쓰며
업보를 벗어 놓고서 기도하듯 나간다 (전문)
‘담쟁이’라는 제재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가 교과서에 실린 이후, ‘담쟁이’의 시적 이미지가 거의 고착되었다. ‘희망이란 절망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덮는 것’이며 나아가 그 벽을 함께 타야만 벽을 넘을 수 있고, 새로운 세계에 닿을 수 있다는 강렬한 시적 등대가 되었다. 그래서 이 제재로 시를 쓴다는 것은 큰 용기를 내야만 하는, 철조망 같은 시어로 우뚝 서 있다. 은상 수상자는 ‘오체의 느린 몸짓 점자를 읽어가듯’ ‘벽 위에 길을 내고 광야에 글을 쓰며’ ‘업보를 벗어 놓고서 기도하듯 나간다’.
인간은 누구나 담쟁이덩굴이다. 초장, 중장, 종장이 모두 벽을 타고 넘는 삶의 고단한 몸짓이다. ‘업보’마저 벗어놓고 ‘광야에 글을 쓰며’ 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기에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하듯 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숙명적이고 슬픈 삶의 이면을 ‘담쟁이’를 통해 깊이 있게 내면화해서 인간 내면의 깊은 명상과 초월적 사유를 담아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