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연둣빛 입술
ㅡ 이순정
흙먼지 펄펄 날린 신작로 밟고 올 때
씁쓸한 소리들이 문장 속 헤매어도
표현을 못한 아픔은 뿌리 깊이 삭혔네
뒤척인 몸을 씻고 오늘을 맞이하면
성당의 종소리도 내게로 내려 앉아
힘겨룬 마디마디가 삶의 궤적 이루네
봄 햇살 수혈하는 눈부신 유리창에
시간은 모퉁이롤 무심히 질러 와도
흉터 난 꽃자루 옆에 새 입술이 돋는다
《차상》
첫차의 그리움은 막차의 입술을 기억한다
ㅡ 여량 정혜
오래된 일기장을 조용히 펼쳐보듯
새벽은 늘 애매한 배웅을 털고 돌아
깜찍한 볼우물 한줌 밭이랑을 메우네
더 깊이 파고드는 사람과 사람으로
기억을 파묘하고 떠나는 새벽 안개
사랑할 기회도 없이 입맞추는 막차여
그 짧은 찰라 속에 길고 긴 기다림을
우리가 존재하는 서사로 바꿔보자
마치 긴 여행을 떠난 사진첩의 미소로
《차하》
막차를 기다리며
ㅡ 김종식
회색빛 도시 바다 찬바람 닻을 올려
빌딩 숲 어둠 줄기 숨가쁜 지느러미
서러운 조각배 타고 막막하게 떠간다
가로등 졸고 있는 미로 속 등불 하나
지워진 발자국은 신기루 아련해도
안갯속 새벽별 보며 재촉하며 걷는다
저 너머 태양빛이 침묵을 깨울 때에
고단한 어깨 위로 눈부신 옷을 입고
내일은 푸른 꿈들이 첫차 타고 오려나
♧ 시제
정태춘 박은옥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가사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길모퉁이 돌아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고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나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에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그쳐 깨는
새벽길 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