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일병이 100% 범인이 아닌 이유들은 차고도
넘쳐난다. 제가 제시한 것들 외에 누락된 것은 여러분들
이 댓글이나 보충글로 기탄없이 올려주시길 바란다.
1. 김동민 일병은 참사새벽 초소에서 고참과 근무를 성실
하게 서고 있었다. 근무를 설 때 가지고 간 탄창과 수류탄
지환통 모두 그대로 가지고 내려왔다.
고참과 초소를 내려온 이유는 북한군의 추가공격을 당할
위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일병은 총기를 난사하거나
수류탄을 내무반에 투척한 사실 자체가 없었다.
2. 노무현 정권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서 혈안이
된 상태였고 2005년 6월 17일 금요일 오후 당시 방북을 해
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귀국했
고 남북긴장관계 완화 분위기가 유지되길 바랐던 노무현 정권 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은폐하고 암장할 여적죄를 서슴없이
저질렀던 것이다.
3. 북한군 병사 리영수가 2005년 6월 17일 금요일 오전 주민
신고로 한국군에 의해 검거됐고, 리영수를 뒤따라 온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여러명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등 연천지역을 비 롯한 전방지역에 최고경계태세발령 진돗개2가 발령됐고, 한국
군은 긴장상태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고, 530 GP도 차단
수색작전을 나가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었다.
군당국의 거짓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전방이 최긴장상태 인데 김동민 일병이 이런 상황하에서 어떻게 아군을 무자비하 게 살해할 마음을 먹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만들어 내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게다가 중앙초소에 근무자를
단 한 사람도 세우지 않았다는 거짓말엔 지나가는 소가 웃다가
기절할 거짓말이었다. 대한민국 그 어떤 전방 부대 초소에서 진
돗개2 발령상태에서 중앙초소 한 곳을 그냥 비워두겠는가??
범죄자들의 거짓말은 결국 발각되고 만다.
4. 북한군 당국은 리영수를 북한으로 되돌려 보낼 것을 요구했 으나 한국군 당국은 거절했다. 530GP에선 2005년 6월 18일 토요일 밤11:00 14명의 병력들이 4개조로 편성되어
야간차단작전을 나갔다. 차단작전을 나가지 않았다는 군당 국의 뻔뻔한 거짓말과 함께 김동민 일병을 가짜범인으로 만
드는 만인공노할 군수사당국의 범죄가 시작된다.
81 연대장 오주석 대령이 월간군사세계의 박계향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야간차단작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5. 차단작전을 나갔던 14명의 병력들이 2005년 6월 19일 일 요일 새벽 01:00경 벙커로 복귀하던 중 갑자기 북한군의 기 습포격이 감행된다. 7발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6명의 전사자
와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북한군은 겉으로는 리영수란 북한군 사병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 공격을 했으나 노무현 정권이 이런 도발공격을 대내외적으 로 어떻게 사건처리를 하는지를 시험하는 공격을 가해서 마 음놓고 한국군을 향해 적대적인 무력도발을 감행했던 것이 다. 대놓고 공격한 것이다!!!!!!
6. 관측장교실에서 새벽근무를 하고 있던 관측장교와 세 명의
관측병들은 한국군이 공격을 당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지휘명령체계 그대로 온전한 보고가 상향식으
로 보고 됐으나 청와대와 NSC 실세들은 이 도발공격사건을
사실 대로 공표하지 않기로 작정을 한다. 이 결정은 대통령과 당시 NSC 사무처장과 국가안보보좌관 등 세 사람의 의중이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군부가 자신들 마음 대 로 아군총기난사사건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럴 직업군인 애새끼들이 아니다!!!!!!
7. 당일 초소근무를 서고 있었고 계급이 일병이었던 김동민 일 병은 평소에도 상관이 시키는 일은 불평없이 그대로 이행하 면서 성실하게 잘 했던 일병이었다.
상관과 동료들을 살해한 총기난사범으로 조작질을 하기 위해선 적임자라고 생각한 군수사당국은 초소에서 내려온
김일병을 관측장교실에 데리고 들어가서 2시간동안 김동민
일병을 회유하고 협박하며 가짜범인이 되어 줄 것을 종용하 고 위협하며 가스라이팅 작업을 했다.
김동민 일병은 끝까지 버텼어야 했지만 너무도 순진무구했고 네 지금의 희생과 고생이 언젠간 반드시 좋게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회유하고 위협하는 수사대의 감언이설에 굴복하고 만다.
8. 북한군의 포공격으로 쓰러져 있던 아군장병들의 시신들과 부상자들을 벙커 안에 있던 생존사병들과 차단작전에 나갔 다가 생존한 사병들을 현장으로 보내서 내무반과 취사장과 체력단련실로 옮겨와서 시신 재배치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부소대장 최충걸 하사가 도맡아서 했다. 군수사대 아이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하며 냉혈적인 악귀들인지를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최하사를 조작범죄도구 취급하며
끝까지 이용을 해먹은 군수사대 악귀 애새끼들이었다.
여기다가 실제 내무반과 체력단련실, 그리고 취사장과 복도에도 소총을 쏴서 탄피들을 여기저기 떨어뜨려 놓고 심지어 고인들의 시신에 사후총질까지 했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현장을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진 범죄현장으로 조작질을 했다.
빨리 이송해서 치료만 하면 충분히 살 수 있는 부상병 네 사람을 일부러 늦게 후송해서 출혈과다로 사망케 만든 군
당국 악귀 애새끼들 이었다. 생존자가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 면 사후에 입단속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일부러 피를 흘리면 서 죽게끔 방치해 버린 것이다!!!!!!!!!!
9. 북한군 공격을 받고 전사한 박의원 상병이 김동민 일병이 투 척한 수류탄을 복부에 거의 다 방패막이가 되어 막아내면서 사망했다고 구라를 쳤다. 제2초소 근무자였던 박의원 상병 과 김영민 상병이 마치 제2초소에서 근무를 서지 않고 내무 반에서 자고 있었던 양 조작질을 한 것이다. 이 조작질로 부 소대장 최충걸 하사는 졸지에 경계근무수칙 위반죄와 상관 명령 불복종 죄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전과 자가 되고 만다.
제2초소에도 한 발의 포격이 가해졌고 박의원 상병이 직격탄
을 맞고 전사한다.
박상병은 한국군 차단작전 복귀중인 병력들이 포공격을 당 하자 즉시 응사자세를 취하면서 초소를 나섰으며 이 때
초소를 나서는 순간 포탄을 맞고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포탄소리와 비명소리에 놀라서 벙커 옥상에 뛰어 올라온 이 건욱 상병을 향해서 마지막 9번째 포탄이 벙커 옥상을 강타
했고 포탄 파편상을 당한 이건욱 상병은 옥상에 그대로 쓰러
졌다. 내무반과 취사장 그리고 체력단련실에선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발생한 사실 자체가 없었다.
10. 생존사병들이 조기전역하고 대부분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 고 연금지급 대상자가 되자 유족분들은 이 사건이 완전조 작 되었음을 확신한다. 당초 김동민 일병을 괴롭혔다는 혐 의로 입건됐던 7명의 사병들이 슬며시 무혐의 처리되었고 이들 모두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자 이들에게 연금을 지급 한 이유가 사회에 나가서 연천참사에 대해서 진실폭로를 막기 위한 입틀막 이었음이 들통나고 말았다.
건국 이래 총기난사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국가유공자지정
을 해준 전례는 결단코 없었다. 수상하고 이상한 짓거리
를 하다가 딱 걸린 것이다.
11. 조기전역해서 대학에 복학한 박준영 일병을 월간조선의 오동룡 기자가 대학에 찾아갔다. 박준영 일병은 차단작전 에 나갔던 병력들이 북한군 포격을 받은 진실을 털어놓았 고 군수사당국이 차단작전의 증거물들을 인멸하기 위해서 작전에 나갔던 병사들의 군복과 방탄조끼와 방독면들을 모조리 소각했다고 진술했다. 김동민 일병을 가짜범인으 로 조작질 했고 벙커 옥상에 남겨진 포탄 흔적을 지우기 위 해서 공병대로 하여금 여러 개의 소형텐트들을 쳤다고 진 술을 했다. 김동민 일병이 범인이 아니란 진실이 들통난 것 이다.
12. 부소대장 최충걸 하사도 유족분들을 만나서 차단작전이 있었음을 진술했다. 박준영 일병과 최충걸 하사가 2007 년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자 군수사당국 은 최하사의 집으로 찾아가서 국회에서 위증을 할 것을 종용한다. 박준영 일병도 군당국의 집요한 회유와 위협에
굴복해서 국회에서 위증을 하고 만다.
위증을 한 대가는 국가유공자 등급을 7급에서 6급으로 상향조정해 주는 것이었고, 최하사는 위증을 한 후에 하 사에서 중사로 진급했다.
13. 28사단 공병대 병사와 김영민 상병은 참사 새벽 북한군 공 격이 있었음을 유족분들에게 진술해 주었다.
이들의 진술은 연천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4. 2021년 6월 19일 연천참사 제16주기에 김종명 대위 묘 역 앞에 생존사병 한 사람이 병영에서 쓰던 수첩을 남기고 갔다. 수첩엔 한자李 표식에 여러 번 동그라미를 씌워 강 조 표식을 했다. 답을 주고 사라진 것이다. 연천참사의 발 단이 됐던 '리영수'의 성이었다. 북한군 공격이 있었음을 알린 것이다.
15. 2012년 9월 13일 무소속 국회의원 김형태씨가 김동민 일병을 면회 갔다. 당신이 정말 범인이 맞느냐는 질문에 울 기만 하던 김동민 일병은 김의원이 고등군사법원에서 말했 던 "재판장 님!!!! 말뿐이지 제가 범행을 했다는 증거는 하나 도 없음에도 어떻게 그토록 쉽게 범인이라고 단정을 하십 니까?"란 최후진술내용은 지금도 유효한가 물으니 그렇다 고 답변을 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란 뜻이다!!!!!!
16. 당시 연천 부대에서 근무를 했다가 타지역으로 전출을 간 여러 직업군인들이 연천참사의 범인은 김동민 일병이 아니 란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는 전언들이 댓글에서 많이 발 견 되고 있다는 점도 김동민 일병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한 다고 하겠다. 수 많은 직업군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 는 것이다.
17. 매년 28사단 주관으로 6월 19일 연천참사 추념회가 대전
현충원에서 열리고 있다. 누가봐도 수상하고 기이하다. 왜
동료들과 상관을 무지막지하게 살해한 총기난사사건의 희 생자들을 매년 추모하고 사단에서 일정액의 예산까지 써서 추모비를 세워준단 말인가???? 언제부터 한국부대가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아군 총기난사사건의 피해자들을 챙 겨주고 추념까지 해주었더란 말이더냐???? 쉬쉬하면서 하
루속히 잊어버리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총기난사
사건이 아니었던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수상한 짓거리다. 이는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이미 28사단의 직업군인들이 자백한 것이 나 다름 없다. 그 진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18. 차단작전에 가지고 나갔던 K-3기관총과 소총 여러정이 파 손 당했고, 탄약통도 파손되어서 무려 4,395발이 줄어들 었다. 김동민 일병이 기관총과 소총과 탄약 수 천 발을 손상
시킨 사실이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김동민 일병이 범행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차단작전에 나섰던 병력들이 북 한군 공격에 피해를 당했다는 결정적인 또 하나의 증거였 다.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강압과 회유와 기만과 거짓과
범죄에 의해서 강요된 자백과 진술들은 모조리 위법
수집증거들로서 증거의 가치와 효력을 상실한다.
김동민 일병과 24명의 생존사병들의 거짓진술과
자백은 그 자체로서 그 어떤 효력조차 완전히 상실
했다.
한국민들이 병신마냥 권력을 잡은 놈들에게 눈속임을
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은 사라질 수 없다.
이 한 많은 세상을 살면서 어찌 고통과 부조리와 불합리
한 끔찍한 인생의 사연들을 피해갈 수 있으랴만...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말을 남긴다.
"심심하고 무료했던 악이 얌전하게 앉아서 졸고 있던
원숭이의 눈에 담뱃불을 집어 던졌다."
순진무구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민초들이 국가범죄에 철저하게 희생되는 비극
은 없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