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수학강사 여성3쿠션 동호인 김갑선>
안녕하세요. 저는 1977년 10월 부산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 탓에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하는 편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태권도가 너무 배우고 싶어 며칠동안 엄마를 졸라 2단까지 태권도를 배운 적도 있고, 경찰 특공대가 하고 싶어서 서울까지 실기 시험을 치러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남자들이 즐기는 것들을 많이 해 보아서 그런지 당구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199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고 남자 동기들과 많이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구장을 다니게 되었고 자주 가는 당구장에는 포켓테이블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4구로 당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구에 푹 빠졌구나! 라고 생각한 것은 사구를 80정도 놓고 칠 때였습니다. 주위에 모든 것이 당구공으로 보이고 당구를 치다가 놓쳤던 공이 하루 종일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아마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다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수업이 비는 시간에는 당구를 안치더라도 꼭 당구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자주 다녔던지 저를 당구장 주인아주머니 딸 인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답니다.
대학 4학년 때쯤 되니 당구 수지가 200 정도가 되었고, 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동생이 250 정도를 치던 터라 우리 남매의 공동 관심사는 항상 당구였습니다. 제가 당구를 쉬지 않고 꾸준하게 계속 칠 수 있었던 건 옆에서 언제나 같이 칠 수 있는 남동생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지금 동생은 적성을 살려 경성대 옆 ‘발리 당구장’에서 지배인 일을 하면서 틈틈이 테이블 수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요즘 당구를 더 많이 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우연히 부산생활체육당구연합회 사무국장님을 알게 되어 부산에 크고 작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았고, 얼마 전 해운대 MDR당구장에서 열린 국제식 대대 3쿠션 대회에 참가해 8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제가 당구를 치면서 그날처럼 가슴 뛰던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자신감을 얻어 “제1회 코스모스배 국제식중대 여자3쿠션대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3쿠션을 치는 여자 선수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첫 경기를 시작할 때, 15개 테이블에서 30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멋진 브릿지로 당구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을 만큼 가슴이 벅찼습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3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동안 내내 혼자서 가슴 뿌듯해하며 트로피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당구가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날 서울에 같이 올라갔던 정은영씨가 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더군요. 부산에서 대대 3쿠션 여자모임을 가져보자고. 저는 좋은 생각이라고 뜻을 같이 했습니다. 현재 한 번의 모임을 가졌으며, 첫 모임의 인원수는 4명, 풀 리그전으로 경기를 치렀고,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낸 것 같습니다. 2회, 3회, 횟수가 늘어날수록 참가 인원도 많아져서 부산 여자3쿠션이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현재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종종 당구 이야기를 해줍니다. 당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 항상 당구가 얼마나 매력 있는 스포츠인지, 그리고 과격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이야기 해 주곤 합니다.
“당구”는 저에게 많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해주었고, 즐거움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넌 당구 칠 때 진짜 행복해 보이고 예뻐 보인다!” 제가 당구 치는 걸 많이 좋아하긴 좋아하나 봅니다. 당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구를 치는 동안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서 김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