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과 그분을 전하라(6월 20일 안식일/일몰19시 56분)
■ 나는 모든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가?
안식일 아침 차를 몰고 교회에 가는 길에 갑자기 옆차가 앞으로 끼어들어 겨우 급제동을 하고서
화가나 주먹을 치켜들며 상대운전자를 향해 소리쳤다.
교회에 도착한 강목사는 예배시간 교과를 가르치려고 일어섰을 때 그의 시선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보고 놀랐다.
바로 조금 전 그가 화를 내고 소리쳤던 그 차의 운전자였다.
당신의 행동, 특히 믿는 사람으로서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결코 다 알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깨달으며 경험을 통해 다른 이와 나누는 것이다.
오직 주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할 때 당신의 삶, 행동, 말, 기도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은 교인이든 아니든,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태도가 친절한가?
전도의 성공은 나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 넘치는 것에서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전도인으로 성장하였는지 그 비결을 우리에게 소개한다(행 4:13).
그들이 원래 전할 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능력 되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충만히 임하셨을 때 그들은 비로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행 1:8).
전도법의 원칙은 이렇다.
일요일 교과제목처럼 “넘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님과의 교재를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사랑과 은혜가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넘칠 때, 비로소 전도는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증거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목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며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발견한 그 경험을 그대로 다른 이들과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부가설명>
가장 좋은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들이 학문없는 무지한 자로 알았다.
그런데 막힘이 없이 복음 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행동과 언어에서 예수님을 봤다는 뜻이다.
이런 삶이 가장 좋은 전도다.
우리 존재가 예수님을 보여주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는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라고 기록했다,
지금 우리나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당시 사람이나 똑같은 입장이다.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면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고 살아가게 된다.
■ 강요가 아닌 능력으로
교과는 우리 개인의 회심의 경험을 되돌아보라 한다.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누군가의 강압에서인가 아니면 그분의 사랑에 반응해서인가?
강요가 아닌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력한 사랑으로 우리를 감화시키신다.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증거할 때 그리스도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강요가 아닌 사랑의 능력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비록 진리를 미워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현실이 우리가 사려 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나누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성장하는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벧후3:18).
그 생명은 은혜와 지식의 음식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먹어야 한다(벧전2:2).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려면 말씀의 젖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사명을 주시면서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
우리는 자신이 개인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역사하심과 주님과의 관계로 넘쳐날 때 비로소 전도자로서 준비될 수 있다고 배웠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자라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온다.
그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탄의 자손이 점점 진화해서 예수처럼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사람으로 출생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런데 이런 말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교회는 성화라는 표현으로 성화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거룩하지 않은데 점점 자라면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식하는 것은 성화를 성화진화론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거룩한 씨로 출생할 때 되는 것이다(사6:13).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거듭나서 그 거듭난 상태가 성장해야 한다.
■ 방황하는 자녀
수요일 교과는 교회 안에서의 잃은 양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신앙가정에서 자랐고, 삼육교육을 받았으나 교회를 떠난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이다.
이러한 일은 매우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독교 통계단체인 바르나 리서치에서는 20대 기독교 가정 자녀들이 절반 이상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보고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은 절반의 자녀들도 어떤 두려움 때문에 교회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대부분이라는 통계를 내 놓았다.
이 내용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영적 잃어버린 자녀는 오늘날 우리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다.
교과는 열두 지파중 하나였던 에브라임의 사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일원이었던 에브라임 지파는 그분을 떠났다.[호4:17,7:1~16]
그가 주님과의 관계를 저버렸기 때문에 에브라임의 할머니인 라헬이 통곡하고 있다는 비유적인 기록도 볼 수 있다(렘 31:15).
예레미야는 라헬에게 방황하는 자식을 위해 울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고 말한다(렘 31:18,19).
에브라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언제나 소망이 있음을 배운다.
우리는 큰 고통과 좌절, 낙담을 느끼거나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떠나간 가까운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간 자녀를 결코 잊지 않으셨음을 상기시켜 주신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간절하고 진실된 것이다.
<부가설명>
에브라임은 북방 이스라엘의 대표지파다.
에브라임 개별 지파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북방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에브라임을 책망하시고 돌아오라고 하신다(호11:8).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하고, 이익을 따라 흔들렸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이같은 심정을 나타내신다.
우리는 돌아가서 말씀대로 굴복해야 한다.
남은 자손이여, 회개하고 진정 말씀으로 돌아가자.
■ 그들이 돌아오게 하리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불충실했거나 너무 오랫동안 미지근하여
믿음이 약하거나 흔들리는 골짜기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사람과 어떻게 관계하고 소통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배우자나 자녀를 위한 당신의 삶의 증거, 행동, 말, 기도는 그들의 삶과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관된 삶의 모본을 보일 때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 모든 역경 속에서도 믿음에 서는 소망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다.
<부가설명>
주님은 기다리신다.
탕자 아버지가 문밖에 서서 아들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듯이 기다리신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거스르기 때문에 자기 죄의 부끄러움으로 돌아가기를 어려워한다.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돌아가야 한다(엡3:17~19).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교우들을 위한 기도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기도이기도 하다.
바울처럼 자신은 매일 죽고 예수님이 매일 살려주시는 경험으로 주님께 영광이 되도록 살자(롬8:2).
[26.2기.12과 안교교과/ 부가설명:김명호목사]
■ 참고자료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한 여론조사(25년/26.01.13.조선일보)에 따르면,
사회 각 분야별로 청렴도를 10점 만점기준으로 평가할 때
정당·입법부는 2.42점,
사법부2.63점, 언론2.69점,
종교단체3.33점,
노조·노동단체3.63점,
행정기관3.82점,
시민단체3.93점,
공기업4.11점,
문화·예술·체육계4.29점,
민간기업4.41점,
교육계4.49점 순으로 부패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