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메시지]]목사(목자)란 누구인가

작성자朴大山 牧者|작성시간07.08.19|조회수736 목록 댓글 5

목사(목자)란 누구인가

 

       오늘의 본문 성경 말씀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설교 / 朴大山 목사(목자)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교회에서의 여러 가지 직분들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혹은 목사와 교사의 직분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직책들을 사람들에게 맡기시는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시는 데”에 있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에베소서 4:12)

따라서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은 어디까지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의 토대 위에서(에베소서 2:20), 여러 지체들로 이루어진 주님의 한 몸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하고 또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전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특별히 목사의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목사(牧師)란 누구인가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목사'라는 칭호는 헬라어로 ‘포이멘’으로서

‘목자’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hepherd(쉐퍼드)라고 하는데, 이 말은

sheep(슆:양)이라는 말과 herd(허어드:떼)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의 정확한 표현은, ‘양치기’, 또는 ‘목자’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목사의 직책과, 교사의 직책을 연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오늘의 본문 말씀과 고린도전서 12장 28절 말씀을 연결해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라고 기록함으로써 목사와 교사의 위치를 사도와

선지자 직분 다음으로 열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낮아져서 양떼를 잘 돌보라는 의미이며, 때로는 선지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치리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합니까?

오히려 돌로 치려고 덤비고, 이단 삼단 하며 비판하고 모함합니다.

 

어쨌든 교회에서 교사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내용을 가르치는

직책입니다. 성도는 교사의 가르침을 통해 성도로서의 사는 법을

배우고 성도의 본분을 다하게 됩니다.

 

교회의 역사에서는 이 직책이 목사와 병행되어 나타났으나, 요즘에는

구분되기도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여기에 해당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교회학교 교사들도 단순히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자로서의 직책을 같이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사와 교사’가 직분 상 그 기능면에서 어느 정도는 중복된다

하여도, 동일하게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직접적으로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로서, 정규 신학 과정을 거쳐 목사 임직을 받을 뿐 아니라 머리에

안수하여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다 사명자이고, 목사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겠습니까?

 

구약시대에 선지 학교를 나온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렸습니다.

예레미야 5장 30절과 31절에 보면 “30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라고 하였습니다(참고, 예레미야 6:13/23:15,28~32).

그러니까 당시 왕궁에 있는 선지자들은 왕궁의 녹봉(祿俸)을 먹으며

이방 나라 바벨론이 절대로 예루살렘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예언했고,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 즉 ‘니골라당’(참고,계시록 2:6)을

만들어서 다스려도 무지한 백성들은 분별력도 없이 그저 아멘 아멘을

하였으니 이것이 기이하고 괴상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니골라당'이 언급된 두 구절을 자세히 비교하여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에베소교회 기간에서는 단순히

"니골라 당의 행위들"이, 버가모교회 기간에 가서는 "니골라 당의 교리"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씨에 불과하던 것이 뿌리를 완전히 내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 당시(에베소 교회 기간)에는 "행위들"에 불과했던

'씨'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버가모교회 기간) 교회가 정치권력과

결탁함으로써 "교리"로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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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사도행전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디모데전서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사실 이때까지 안수 받아 계승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세기 초(初) 단일 감독제도가 등장하면서부터 교권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가, 325년 니케아회의 이후 계급 즉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극대화된 것이 로마 카톨릭입니다.

감독이 감독을 안수하면서부터 교회 내에 계급구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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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당'의 기원

'니골라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차원에서 이해됩니다. ① 역사적으로

이는 사도행전에 기록된(6:5,6)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니골라'가 타락하여

만든 이단 사상입니다.

② 언어적으로는 '니골라 당'이란 그리스어(헬라어)에서 음역된 것입니다.

예컨대 그리스어로 '정복하다 또는 지배하다'(conquer, over-

come)를 뜻하는 '니카오'와, '일반 백성 또는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라오스'(laity, layman)의 합성어입니다. 이 '라오스'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니골라 당'이란 "평신도를 지배한다"는

뜻으로써, 구약성경에 기록된(민수기 22:12/31:16) '발람'(백성을 이긴)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골라당'은 발람의 행위와

동일시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참고, 계시록 2:14).

 

예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이 ‘니골라 당의 행위와 교리’를 "미워하신다"

(hate)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6,15)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 대항(PROTEST)했던 개신교, 곧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들이 오늘날 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유전으로 인해 목회자는 물리적으로 지배하려 하고,

평신도들 위에서 군림하며, 자신들을 섬겨줄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지 구별된 것은 각자가 받은 "은사적 위치"(로마서 12:1-8/고린도전서

12장/에베소서 4:7~12)와 "지역교회적 직분"(디모데전서 3장/디도서

1장과 2장)의 차이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위와

힘은 "영적인 권위와 힘" 뿐입니다. 목회자의 영적인 권위와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위로부터"옵니다. 또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사도행전 6:4/디모데전서 4:5).

 

그런데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교회는 십중팔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 는

위로부터 오는 영적 권위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권위와

힘은 결코 물리적인 것이나, 신분적인 구별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목회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베드로전서 5:1~3).

 

 

둘째, 목자(牧者)란 누구인가

 

목사(牧師) 목자(牧者)는 목회자(牧會者)의 줄임말입니다. 일부에서는

교역자의 범위에 해당 되지 않는 ‘목회 사역자’에게(구역장이나 세분화된

교회 그룹의 리더) ‘목자’(牧者)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목자'란 칭호는 양치는 '목자'에서 연유된 직책으로서, 일반적으로

성도를 다스리고, 가르치며, 지도하는 직책입니다. 요컨대 목자가 그의

양 떼를 보살펴 주고 인도하며, 이리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는 직책입니다.

그러나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한복음 10:12)라고 하였습니다. 양(羊)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문을 통하지 않고, ‘비 진리’나 다른 개구멍이나 담을 넘어

들어온 자는 모두 절도요, 강도요, 삯군입니다.

오직 복음의 진리의 문을 통하여 들어가며 나오며, 썩지 아니할 영의

양식인 꼴을 먹여야 하는데, 양의 탈을 쓰고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살인하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0:7~10)

 

 

셋째, 주의 종(從) 이란 누구인가

 

성경에서 '종'이란 용어 '둘로스'(헬라어)는, 철저히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를 가리킵니다(참고, 로마서 6:16) 이는 '청지기' '집사'를 가리키는

'디아코노스'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 앞에서의 자신의 신분을 '둘로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노예라고 표현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자기를 부르신 주님 앞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고백한 겸손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앞에서 이와 같다는 차원에서, 성도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주인의 명을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목사의 직무 안에는 사도적 성향을 띤 직무가 내포되어 있으나, 그 일을

수행하는 자세는 바울처럼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사역한다면 더욱 빛 된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넷째, 목회자(牧會者)란 누구인가

 

앞에서 목회자의 줄임 말이 목사임을 살펴보았는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회의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목회 사역자)중 목사가 아닌 사람들

(전도사)을 총칭하여 부를 때 ‘교역자’(敎役者)라는 용어와 함께 쓰여지고

있습니다.

 

다섯째, 주의 사자(使者)란 누구인가

 

글자 그대로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직책으로서, 주로 천사들에게

사용되어졌습니다. 천사는 우리 성도를 섬기는 존재이지만(히브리서 1:14),

그 천사가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러 사람에게 나타났을 때 그들의 권위는

주님의 권위와 동등한 엄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주의 사자’를 예수님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주의 사자'란 사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를 '주의 사자'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여섯째, 교회의 사자란 누구인가

 

요한 계시록 1장 20절과 2장 1절에 '교회의 사자'가 나옵니다. 이 용어는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교회를 지키는 천사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사자로 번역된

단어가 성경의 곳곳에, 천사로 병행되어 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자를 상징하는 ‘별’과 교회를 뜻하는 ‘촛대’(계시록 1:20)는,

각각 교회의 지도자와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1장

20절에서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요(별)'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사자'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봅니다.

성경에 보면 '사자'(앙겔로스)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표기된 곳이,

여러 군데에 나옵니다(마태복음 11:10/누가복음 9:52/야고보서 2:25/

말라기 2:7/학개서 1:13).

 

따라서 교회의 사자는 마지막 날 끝까지 교회의 승리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고(요한 1서 4:1.6),나아가

말세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일곱 머리 열뿔 달린 용’(계시록 12:3, 7~9/

11~13)의 정체를 밝히고 날마다 이기는 역사를 가져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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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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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시온의 빛 | 작성시간 07.08.20 목사와 하나님의 종은 그 차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목사는 신학이란 과정을 거치면 거반 목사 임직을 받을 수 있지만,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길은 어렵다고 여겨집니다.그렇지만 목사(목자)직분은 매우 중요합니다.하나님의 양떼들을 돌보고 늘 시들지 않는 푸른 초장에서 살찐 꼴을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때문에 목자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된 자세로 사역해야 함을 새삼 깨닫는 바입니다.그리고 아울러 그는 제사장직 뿐만 아니라,선지자적 기능도 가질 수 있다고 보는데,성경은 선지자 직분을 목사 위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구속사적으로 시대에 나타나는
  • 작성자시온의 빛 | 작성시간 07.08.20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예언의 사역'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제사장직과 선지자직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특별히 이 두 사역을 잘 감당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은총 | 작성시간 07.08.21 아~~ 귀하고 귀한 설교, 어려웠던 말씀의 비밀이 이렇게 쉽게 풀릴줄이야~ 오늘은 감동만 넘치게 받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을 쓰려니 리플란이 부족해요..도배하면 안되니까요..오늘은 설교자체로서만 말씀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저 말씀 깊이 빠져서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꺼내주지 마세요. ^^
  • 작성자morn | 작성시간 08.10.06 어떻게 언제 가입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그다지 자주 들어온 적도 없는 카페였는데 요즘 발길이 조금씩 이리로 향하게 되네요. 박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로 성경적으로 순전해서 좋습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ahfhthl | 작성시간 14.10.16 참 어렵습니다.하나님의 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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