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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 계시록 6:1,2)
글/ 朴大山
성경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면류관은 모두‘스테파노스’(στεφανος)이며,하나님
보좌 주위의 24 장로들이 쓰고 있는 면류관도
‘스타파노스’(στεφανος)입니다.(요한 계시록 4:4,10)
그런데 어떤 분은 이 스테파노스 면류관을 쓰고 있는
흰 말 탄 자를 적그리스도로 보는데,그렇다면
적그리스도에게 하나님께서 승리의 상징이요 충성의
상급이 되는‘스테파노스 ’면류관을 주실 것으로 생각
해야 되는가?
적그리스도가 한 때 세상의 왕노릇을 하기 때문에
‘디아데마’ 왕관은 썼지만(요한 계시록 13:1),
‘스테파노스’ 면류관을 쓴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흰 말 탄 자가‘이기고 또 이기려고’하는 것은,
십자가로 이미 승리한 것을 거듭‘영원한 복음’(계시록
14:6)으로 완전 승리할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필자는
이 복음주의 사상이 다른 모든 사상을 가진 국가들을
파하고 최후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을 보여 주신 말씀이
라고 봅니다.
이 부분을 공동 번역과 표준 새 번역 그리고 현대어
성경 번역까지 모두 흰 말 탄 자를 최종 승리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적 그리스도가 최종 승리자라고
한다면 엄청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흰색’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색깔이라는 데서
흰 말 탄 자를 무조건 예수님으로 보는 해석도 불완전
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보좌 주위의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고
외칠 때, 흰 말 탄 자가 나타났는데,만왕의 왕이신
주께서 천사(네 생물은 하나님을 호위하는그룹 천사임,
에스겔 10:14,15)의‘오라’는 명령을 받을리도,좇을리
도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본래 있는데’라고 하지만..)
흰 말 탄 자를 '예수님'으로 보는 견해는, 개혁주의
신학 노선입니다.
그 분들은 흰 말 탄 자를 한결같이 예수님이라고
단정합니다.말이 희다는 것과,이긴다는 것과,면류관을
썼다는 말에 근거합니다.
반면에 흰 말 탄 자를 적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세대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흰 말을 탄 자는, 예수님도,적그리스도도 아닌
예수 복음주의 운동의 주역이 되는 말일의 추수꾼 선지
사명자들 즉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은 십사만사천 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며, 그 이유에 대해 부언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흰 말 탄 자는 면류관을 썼다고 했습니다.
이 면류관에'스테파노스'(στεφανος)라는 용어를
쓴 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면류관에 대하여 두가지 단어로 구분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스테파노스'요,다른 하나는'디아데마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두 단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스테파노스'에 대하여 알아보면 이 면류관은
승리의 화관(花冠)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한 우승자에게 주는
월계관(月桂冠)입니다.
이 면류관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스테파노스'의 경우,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들에게
언약된 영광스러운 면류관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의 면류관으로 (디모데 후서 4:8).
*생명의 면류관으로 (야고보서 1:12).
*영광의 면류관으로 (베드로 전서 5:4).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의
면류관으로(계시록 2:10. 3:11. 6:2. 12:1).
그렇다면 또 하나의 면류관인 '디아데마타'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가?
이 면류관은 '승리의 면류관'과는 달리 '왕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구분은 요한 계시록 6:2절의 흰말을 해석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役割)을 하기 때문에,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런데 왕관인'디아데마타'는 성도들과 연계(連繫)
시킨 경우는 한번도 없고 예수님에게(계시록19:12),
그리고 적 그리스도(계시록13:1)와 사단(계시록12:3)
에게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므로 왕관인 '디아데마타'를
쓰셨고,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 은 이 세상 왕으로서
역시 잠정적으로 이 왕관을 썼으며 적 그리스도는 마흔
두 달간, 이 세계를 지배할 왕으로, 열 뿔의 왕으로 이
왕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디아데마타'는 왕관으로서의 면류관으로만 나와 있을
뿐 그 왕관을 반드시 선한 의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제한은 없기 때문에,예수님의 경우에도, 적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공동으로 이 왕관으로서의 면류관을 적용시키
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흰말이 예수님이라면 계시록 6:2절에 나오
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가 아니라 '디아데마타'라야
합니다.
특히 흰말을 탄 자가 예수님이 아닌 사실은 그의 싸움
에서 나타납니다.
6장에서 면류관을 받고 나가는 자는'이기고 또 이기려
는' 싸움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이기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
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계시록5:5).
앞으로 예수님은 이기고 또 이기려고 싸우시지 않습니
다. 그 분은 이미 영원히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흰말을 탄 자가 예수님이란
사실을 계시록 19:11절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백마
를 타고 내려오시는 모습으로,그 해석의 근거를 삼으려
고 하는데, 그 백마와 계시록 6장의 흰말은 서로 맥이
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백마 탄 자는 예수님 뿐만이 아닙니다.
계시록 19:14절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군대들이
있는데, 이들도 백마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아닌데도 백마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 탄 자의 존재를 예수
님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음을 명백히 입증해 주는 예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흰 말 탄 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말씀
들이 더 있지만 다른 지면을 통해 설명하기로 하고,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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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6장에 나오는 흰말은 그의 생김새나 그의
활동 면으로 볼 때,하나님 편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흰 말'은 희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
해 줍니다.
그리고 성도들과도 연계됩니다
(요한 계시록 6:11/7:9,14/19:14).
따라서 계시록 6장에 등장한 흰 말에는 사단과 연결시
켜도 좋을 그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 흰 말이 결코 사단 편에서 나왔다거나,
사단의 위장된 가면이라는 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
다.
그가 쓴 면류관이나 이기고 이기려는 모습은, 선한
싸움의 승리를 상징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
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류의 종말에 왜 이 흰 말을 등장시
키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닥쳐 올 무서운 대 환난 중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에서입니다.
예컨대 앞으로 인류들은'붉은 말'에 의한 재앙, '검은
말'에 의한 재앙,'청황색 말'에 의한 무서운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재앙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10일 동안의 환난'
(계시록 2:10)이라고 하셨고'시험의 때'(계시록 3:10)
라고 하셨으며'뜻밖에 덫과 같이 임할 그 날'이라고도
하셨습니다.(누가복음 21:34)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대 환난에서 그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한 역사로,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의
백성들에게 경종하시는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아모스 3:7)
흰말의 등장은 바로 이와 같은 구속사적인 깊은 의미
가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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