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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글(크리스천투데이)을 보고
이인규 /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대표
지방교회가 크리스천투데이에 필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필자와 최삼경 목사에 대해서 삼신론이라고 비판을 하였으므로, 필자 역시 지방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이번 기회에 지방교회의 이단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필자는 언제 어느 때, 누구라고 할지라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막론하고 최삼경 목사와 필자를 삼신론이라고 하는 사람이 요청한다면 토론과 청문회 등 어떤 방법이든 적극 환영하며 이 글을 올린다. (지방교회의 이단성 중에서 양태론은 극히 일부분이며, 그들은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모든 점에서 심각한 이단성이 발견되며,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1) 지방교회는 스스로를 기독교가 아니라고 하며, 기독교를 사탄에 세운 곳이라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교회 시대에서 그분은 이러한 이기는 무리들을 기독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오직 그분의 회복 안에서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계시록 14장은 비록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지만 이기는 자들은 다만 144,000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67쪽)
-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재하심의 실제이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비밀. 24쪽)
- 가라지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큰 나무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의미한다. 누룩은 이교도의 모든 관습, 세상적인 것, 죄 있는 것,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여자는 로마 천주교,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의미하며, 악한 자는 사단 자신이다. (위트니스 리, 왕국, 265쪽)
- 음녀들의 어미는 변절한 교회이므로 그 여자의 딸들인 그 음녀들은 어느 정도 변절한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과 실행들과 전통을 붙잡고 있는 기독교 안의 모든 각종 종파들과 단체들임에 틀림없다. 순수한 교회생활에는 변절한 교회로부터 전수한 악이 전혀 없다.(위트니스 리, 교회, 391쪽)
- 참된 지방교회들은 순수한 금등대들인데 반하여,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과 독립단체들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는 완전히 순수성을 잃은 큰 혼합물이다. 이 혼합물이 큰 바벨론을 구성한다.(위트니스 리, 교회, 390쪽)
- 계시록 17장 4절과 5절에서 우리는 변절한 기독교계의 참 상황을 본다. 밖의 모습은 단지 전시일 뿐이다. 내적으로 변절한 기독교계는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여자는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극도로 불결하다. 이것이 곧 교회의 타락의 최종완성이다.(위트니스 리, 교회, 391쪽)
기독교를 사탄이며 음녀라고 정의하는 지방교회에서, 한기총과 정통교단의 이대위에게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재평가하여 달라고 요청한다는 자체가 웃을 수 없는 코미디이며, 풀러신학교 무어학장이 자신들을 이단이 아니며 복음주의라고 했다는 글을 올린다는 자체가 참으로 웃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무어학장은 몰몬교도 이단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힌두교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CRI에 대해서 지방교회가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CRI는 지방교회 세미나를 할 때에 친이단인사들과 친이단신문사와 함께 참여한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내적으로는 기독교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자신들이 정통복음주의라고 하면서 받아들여 달라는 제스츄어를 보이는 이중적인 자들로서 이단들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아마 뒤로 돌아서면 즉시로 웃음을 보이며 그들의 긴 혀를 ‘낼름’거릴 것이다.
2) 지방교회는 명백한 양태론이다
지방교회가 양태론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신론과 교회사를 알고 있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사항이다. 어떤 양태론자라도 자신은 양태론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 2000년 교회사에서 양태론은 단 한 번도 정통신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비성경적인 주장이라는 것이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정통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신성으로서는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지만, 인격적으로는 상호구별되며, 상호교류가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나라 대표적인 신학자들이 최삼경목사가 삼신론이 아니라는 것과 지방교회는 양태론이라는 것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또 우리나라 정통교단 4곳과 한기총의 2004년 이단종합명단에도 지방교회는 이단으로 공식규정되어 있다. 필자와 최삼경 목사가 삼신론이고 지방교회가 정통신관이라면 우리나라 정통교단 이대위는 삼위일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단들만 모였다는 것인가?
굳이 이런 글을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나, 혹시라도 지방교회 거짓 주장에 미혹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하여 이 글을 올린다. 대표적이며 기초적인 조직신학의 내용만 몇 개 살펴보자. “삼위일체론이 바탕을 두고 있는 성경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세 위격이 각각 하나님(신)으로 인정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세 위격들 가운데서 각각 구별된(distintion) 모습으로 나타난다.”(아가폐성경사전 776쪽)“하나님이 삼위이시라는 말은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독립된 인격체이다. 또 성부는 성령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독립된 인격체이다. 그리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세분이 각각 다른 인격체임은 앞에서 인용한 여러 성구에서 이미 살펴 보았으며 신약성경에는 그 외에도 많은 구절이 있다.”(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 상권 333쪽)“성경은 한 하나님이 삼위(3인격)로 되어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특별계시의 교리로서 자연에는 계시되지 않은 교리이며, 인간이성으로서는 발견할 수 없는 교리이다. ....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한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삼위는 여러 사람들의 여러 인격들처럼, 전혀 분리된 세 인격이 아니다. 삼위는 오히려 신적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인 것이다. 동시에 명심해야 할 것은 신적 존재에 있어서의 이들 자기 구별은, 그들이 서로 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루이스벌콥의 기독교신학개론 85쪽) “성자는 본체에 있어서 성부와 성령과 동등하시지만 인격적 실체에 있어서는 그들과 다르다.”(하지 조직신학 303쪽) “우리가 보통 말하기를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한 신성(godhead)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한다. 이 서로 다른 셋은 상호관계라는 관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이해하여야만 본질의 동일성과 이 셋의 구별이라는 형식이 만들어진다.” (이종성의 삼위일체, 81쪽) 정통신학적인 증거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기 바란다.
3) 양태론자의 시각
그들이 왜 최삼경 목사와 필자를 삼신론이라고 주장할까? 첫째, 거짓말의 열매로서 필자와 최삼경 목사를 조작하고 모함하기 위함이며, 둘째, 양태론적인 시각에서 정통삼위일체는 삼신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이미 정통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즉 그들은 정통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알면서, 자신들도 정통신론을 가진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자신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다르다고 말한다. 위트니스 리의 후손들은 최소한 위트니스 리와 같이 당당함이라도 가져야만 하지 않는가?
“전통적인 가르침의 영향 때문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닌, 아들 하나님만 성육신이 되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상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약은 하나님이 육신 안에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78쪽)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아들이 아버지이고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들이 충고할수록 나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할 힘이 더 생긴다. 나는 성경에 따라 아들이시고,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우리 그리스도가 오늘 아들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그 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성령48쪽)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재하심의 실제이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 가지 비밀. 24쪽)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고도 명확한 성경의 계시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언급된 명확한 계시에 근거한 정통적인 가르침이나 해석에서 벗어나 그중 몇몇 사람들은 아버지도 한 하나님이요, 아들도 한 하나님이요, 성령도 한 하나님으로서 세 하나님이 단체적인 한 하나님이 된다고 말한다.”(하나님 282쪽)
위트니스 리는 다음 글에서 신격모독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날 것이었는데, 예수가 되고 그 영으로 요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자신들이 정통복음주의이므로 재고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다
“최종완성이라는 단어는 일이나 혹은 과정이 완성되거나 끝났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으로 예시할 수 있다. 요리하는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식품은 날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요리된 후에 식품은 만찬으로 최종 완성된다. 성육신 전에 하나님은 인성이 없이 신성만 갖고 계신 날것이었다. 성육신과 인생과 죽음과 부활과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고 최종 완성되었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날 것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신성과 인생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능력 있는 부활과 그리고 초월하는 승천을 지니신 최종완성되고 완결된 삼일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들은 과정을 거치고 최종 완성되신 삼일하나님 안에 있는 요소이자 성분이다.”(세 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53-54쪽)
그들의 삼위일체론은 세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세 인격은 단지 “한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나타난 인격”, 즉 양태론이다.
“왜 그 분의 경륜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세 인격들이 필요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나타난 한분의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 363쪽)
양태론자의 대표적인 비유법으로 물, 수증기, 얼음의 비유를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방면이다. 예를 들어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실체가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실체가 수증기의 상태에 이를 때에 우리가 호흡하는 데 유용하다.” (하나님 297쪽)
예수의 껍질 안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성육신 되신 후에 하나님은 성육신 되기 이전과는 달라지셨다. 성육신 이전에 그 분은 다만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나 성육신되신 후에 그 분은 사람의 껍질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다.”(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하나님 54쪽)
한 하나님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는 주장이다. 그 두 단계는 예수와 영이 되신 것이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 분은 또 하나의 단계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 가지 큰 비밀. 19-20쪽)
위에 올린 글을 보고 지방교회가 양태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양태론자가 될 것이다.
4) 최삼경 목사에 대한 교단의 입장
지방교회는 아무리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로의 양심까지 속이는 조작과 모함을 하지 않기 바란다. 최삼경 목사는 어느 교단으로도 이단으로 규정된 적이 없다. 예장통합을 물론이고 예장합동에서도 친이단인사들이 총회에 질의를 통하여 이단조작을 수없이 시도하였으나 모두 이단성이 없다고 공식 규정되었다. 예장통합의 이대위는 동노회의 질의에 대해서 최목사를 삼신론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으나 총회는 삼신론이라는 판결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든지 이단에 대한 의심이나 질의를 받을 수는 있으며 보고서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판결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느 사람의 살인혐의로 고발되었다고 가정하자, 검찰에서 살인혐의로 기소를 하여도 재판에서 무혐의로 석방되었다는 그는 죄가 없는 것이 아닌가? 기소내용만 보고 그가 살인자라고 한다면 그는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하게 될 수 있다.
예장통합에는 최종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보고서도 그것도 공식서류이므로 올려져있다. 그러나 최종적인 공식결의를 무시하고 채택되지 않은 보고서만 올리면서 최삼경 목사가 삼신론으로 규정되었다는 고의적인 주장은 법적으로 명백한 명예훼손이 아닌가? 한기총의 발표도 그렇다. 한기총은 이대위도 없으며, 단지 질서위에서 조사를 한 것뿐이다. 더욱이 한기총은 교단에서 공식 규정한 사항을 다시 재조사하는 재판기관이나 조사기관이 아니다. 더욱이 질서위원장도 모르는 사전혐의를 이미 조사 전에 발표하더니, 조사 3일 만에 이단이라고 하는 보고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 더욱이 7명의 어느 개인이 한 장의 종이에 조사요청을 서명하였기에 이단성의 조사를 시작했다는 한기총의 발표는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한기총에서 최삼경 목사를 이단으로 공식규정하려면 먼저 임원회와 실행위원회를 통과하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절차가 있어야만 한다. 질서위원회라는 곳에서 비상식적인 보고서 하나를 올린 것뿐인데 언제 최삼경 목사가 이단으로 공식 발표되었단 말인가?
5) 최삼경 목사의 주장을 조작하지 말라
최삼경 목사가 “본질적으로 각각 다른 세 영”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은 이미 “조작된 삼신론”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와 신앙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최삼경 목사는 분명히 “인격으로는” 이라고 말했는데, 한기총은 “본질로서는”라고 변질을 시키더니, “영이 곧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에 최삼경 목사가 “인격으로는 한 영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 “세 본질”을 주장한 것이라고 조작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영이라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속성이다. 그것도 비공유적인 속성이 아니라 공유적인 속성을 뜻한다. 공유적인 속성이라는 것은 다른 존재도 공유할 수 있는 속성을 뜻하며, 실제로 천사도 사탄도 영이며, 인간에게도 영이 있다. 영이 본질이라면 천사와 사탄과 사람의 영도 하나님의 본질이 되는가? 삼위일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본질은 “영”이 아니라 “신성, 즉 신적본질”을 뜻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최삼경 목사가 언제 인격과 본질을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는가? 최삼경 목사는 본질로서는 하나이며, 인격으로는 구별되는 셋이라고 말하여 온 증거가 너무 많지 않은가? 지방교회에 말로 인격이 하나라고 주장하는 양태론자가 아니던가?
6) 지방교회와 한기총은 신학자들의 견해를 모두 조작하고 있다.
지방교회와 한기총은 언제부터 의견을 같이 하였는가? 한기총은 정통교단이 정의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지방교회와 같은 견해를 주장하는가?
이미 신학자들이 한 견해는 교회와 신앙에 올린 조작된 삼신론에 올려져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모든 신학자들은 최삼경 목사는 삼신론이 아니고, 지방교회가 양태론이라고 견해를 올리고 있는데, 지방교회나 한기총은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든지 거꾸로 그 내용을 인용하여 최삼경 목사가 삼신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해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든지, 조작할 내용이 그렇게 없어서 그런지 참으로 의문이다.
지방교회에서 올려준 글을 살펴보자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 삼신론이라는 불가피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프랑크의 수도사였던 고트샤크(Gottschalk)는 위격들의 신격성과 신적 본성의 ‘신성’을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는 라임스의 힝크마르에 의해 배격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고트사크는 853년에 스와송(Sissons)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이 공의회는 단 하나의 신적 영의 소유자들로서 세 위격의 상호 점유를 재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위격'과 '영'이 동의어라는 사상을 배격했다.”(제럴드 브레이, 신론,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년, 211-212쪽).
지방교회는 중간에 자신들을 지칭하는 구절, 자신들에게 불리한 구절을 ‘ ....’으로 표시하여 살짝 빼버렸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러므로 영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제3위가 사실상 있는 그대로의 신적인 본성의 가장 충만한 계시라는 것이다”
즉 위의 고트사크의 주장은 성부의 인격도 영이고, 성자의 인격도 영이며, 성령의 인격도 영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제3위인 성령도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 가장 본성에서 충만한 본성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전혀 최삼경 목사의 주장과 다르다. 오히려 지방교회야말로 세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며 하나의 영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살려주는 영”이 삼일하나님의 최종적인 본질이라고 주장하지 않는가?
최삼경 목사가 위격과 영을 동의어라고 하였는가? 최삼경 목사는 “본질로서는 한 영이 맞지만, 인격으로는 한 영이 아니다”라고 단지 숫자적인 단위를 영으로 표현한 것뿐이며 인격이 영이라고 동의어로 사용한 적이 없다.
최삼경 목사가 영이라는 단위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위트니스 리가 먼저 그런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위트니스 리가 “세 인격은 한 인격이며 한 영”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최삼경 목사는 동일한 용어로 표현하여 지방교회를 비판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방교회가 최삼경 목사에게 한 달 월급이 8,000달러라고 하였다. 그래서 최삼경 목사는 지방교회를 반박하면서 자신의 월급이 3,000달러라고 반박하였다. 그런데 지방교회는 최삼경 목사가 한국 돈 “원”을 받으면서 “달러”를 받는다고 하였으니 거짓말을 한다고 모함을 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자신이 먼저 미국 달러 단위로 표현하였으면서, 동일한 단위로 반박한 사람을 오히려 모함하는 경우와 같다.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에서 인격이 셋인가 하나인가를 말하고 있는데, 지방교회는 자신들이 먼저 사용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했으며, 그것을 동일한 용어로서 “인격으로는 한 영이 아니다”라고 단위를 사용한 것만 문제 삼으면서 삼신론이라고 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이종성 박사는 그래서 지방교회를 “일령론”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지방교회는 이종성 박사를 삼신론으로 조작하기에 힘이 벅차는가?
7) 교회사를 조작하는 지방교회의 상호내재
상호내재란 무엇일까? 고전적 삼위일체에서 “상호내재”는 ‘페리코레시스’라고 하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윤무(輪舞)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다”는 요한복음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이 상호내재라는 주장은 초대교회에서 종속론(오리겐)이 등장하였을 때에 그것을 반박하기 위한 주장으로서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어거스틴에 의하여 주장된 것이다. 즉 초대교회에서 고전적인 삼위일체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잘못된 주장이 등장하였는데, 즉 성부가 가장 크고, 성자 예수와 성령은 좀 열등한 신성을 가졌다는 소위 ‘종속론’이라는 주장이 오리겐 등을 통하여 나타났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예수는 열등한 신적존재라는 것이다.
그 상호내재라는 이론은 서로가 동등하다는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줌으로서, 종속론에 멋진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호내재라는 이론은 종속론을 반격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삼위의 인격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의문을 일으켰기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된다.
- 또한 이 말은 모든 신적인 속성 각각이 세 휘포타시스 모두에게 똑같이 돌려진다는 의미다. 즉 세 휘포타시스는 모두 전능하며 전지하며 영원하다. 이 교리는 종속론의 문제를 피하게 해주며 사벨리우스주의나 서머나의 노예투스의 성부고난설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골로새서2:9 "그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상호점유의 개념은 오리겐의 위계질서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커다란 진보였다. 그러나 이 개념(상호내재)은 휘포스타시스들이 서로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 점에서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제럴드브레이의 신론, IVP, 186-187쪽)
다시 말하자면 ‘상호내재’(페리코레시스)라는 개념은 종속설을 반격하기 위한 용어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인격적인 구별을 할 수 없으므로 양태론적인 오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또 상호내재라는 개념은 “한 공간에 셋이 동시존재한다”는 장소적이며 공간적인 개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에서는 동적인 개념으로서 ‘상호침투, 상호순환’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게 된다.
교회사적으로 정통신학적인 상호내재는 본질의 단일성과 함께 상호 인격이 구별되면서, 상호교류가 가능한 상호침투, 상호관통의 개념으로 안전하게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초대교회에서 양태론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고전적 삼위일체를 슬쩍 끄집어내어, 자신들이 양태론이 아닌 것처럼 조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교회사적인 배경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감추면서 단지 초대교회 교부들과 어거스틴도 이런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은 양태론이 아니라는 교회사적인 조작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교회사까지 조작하는가?
김석환 박사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을 보면 그 서문의 추천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그리고 일부 현대신학자들이 자기들의 신학적 문제점을 감추기 위하여 이 정통교부들을 끌어와 극찬함으로서 마치 자기들의 신학적 입장이 정통임을 은근히 과시해 왔다”(추천사, 서철원교수)즉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이단적인 주장을 감추기 위하여 이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주장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며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정통이라고 위장해 온 것이다. 지방교회는 삼위일체가 정립되는 과정에 있었던 교부들이 갖고 있었던 고전적 삼위일체론, 즉 인격을 구별할 수 없어서 비판을 받던 상호내재를 장소적인 동시존재의 개념으로 주장함으로서 마치 그것이 정통삼위일체인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
다음 글의 내용은 “결론”이라는 제목으로 김석환 박사가 직접 쓰고 있다.
“한편 세 번째 소주제인 페리코레시스 이론과 관련하여 헬라어인 페리코레시스 용어 그 자체를 분해해 보면, 페리코레시스 용어는 다소 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상호내주의 의미도 포함하지만, 다소 동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상호관통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호관통(상호상통)의 의미에서의 페리코레시스에 관한 진술이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격들의 삼위성에 관하여 진술할 때, 상호내재(공통내재)의 의미에서만 그들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석환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349쪽)
만약 상호내재를 한 공간, 한 장소에 분리되지 않는 동시존재의 삼위로 주장한다면, 성부가 성령을 파송하고 성자를 파송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보면 양태론임이 곧 밝혀진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삼일하나님이 삼일하나님을 보내셨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복음14장26절에 의하면 삼일성의 첫 번째가 세 번째를 보내셨다. 그러나 세 번째가 보내심을 받았을 때, 그 분은 두 번째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15장26절에 의하면, 세 번째는 첫 번째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두 번째에 의해서도 보내심을 받았다. 세 번째가 오셨을 때 그분은 두 번째로 첫 번째와 함께 오셨다. 하나가 보내심을 받을 때에 모두가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하나가 올 때 모두가 오는 것이다.”(성령. 190쪽)
그렇다면 보내는 성부에게도 삼위가 동시존재하고 파송되는 성령과 성자에게도 동시에 삼위가 상호내재 되었으면 지방교회는 구위삼체인가?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그대는 한 빛의 섬광과 동시에 셋에 의하여 즉시 조명받아야 한다. 개별성이나 위격들에서는 셋이다. 또는 누가 그렇게 부르기를 원한다면 위(persons)에서는 셋이다. 왜냐하면 그 음절들이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한, 우리는 그 용어들에 대해서 시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체의 관점에서는 즉 신격의 관점에서는 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그렇게 말해도 좋다면, 위격들은 구분없이 나누이기 때문이다. 위격들은 구분 안에서 연합된다. 왜냐하면 신격은 셋 안에서 하나이고, 그 셋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셋 안에 신격이 있다. 또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셋이 바로 신격이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그레고리 교부의 견해 217쪽)
그렇다면 현대의 조직신학자가 말하는 페리코레시스에 대해서 알아보자.웨인그루뎀은 분명하게 독립된 삼위와 독립된 개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예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연합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같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으로, 우리의 하나됨은 영원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함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삼위를 통한 비유가 대단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개개인의 성품을 흡수해 버리지는 못할 것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들은 독립된 삼위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관심 책임, 친구관계, 선호도, 욕망 등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7쪽)
8) 이종성 박사가 올린 일령론에 대한 전문:
한기총과 지방교회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변조시켜 인용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문을 그대로 올린다. 이종성 박사는 지방교회 일령론을 비판하며 치삼경 목사가 삼신론이 아니라는 내용을 쓴 것이다.
“기독교인 가운데 우리가 믿는 대상인 3위1체 하나님을 한 영으로 집약해서 일령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영이다’라는 말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영성과 성령의 영성이 아버지 야웨의 영성으로 승화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정통적 신관은 아니다. 물론 성령도 영이요 그리스도도 영으로 계시고 야웨 하나님도 영이시다. 그렇다고 해서 3령신론을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세 영이 한 영으로 합일이 된다. 그러나 한 영으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 영으로 계시면서, 하나님 자체 안에서 그 세 영이 상호관계 안에서 하나와 셋으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정통적 3위1체론의 근본적 논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성을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적용하여 기독교의 신관은 1령신론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원론이 파괴된다. 3위1체론을 말할 때 두 가지 말해서는 안 될 금물이 있다. 하나는, 3신(령)론이 1신(영)신론으로 발전한다는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에 실패와 변경이 있다는 두 가지 사상이다. 전자는 지방교회론자들에게서 발견되고(윗트니스 리 : 하나님의 경륜, 15쪽) 후자는 스코휠드의 세대주의에서 발견된다. 복음적이고 정통적인 3위1체 신관이 말하는 하나님에게는 발전이나 전진이나 개혁이나 변경이 없다.“(이종성 박사)
지방교회는 정통신론과 교회사를 모르면 정통조직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든지, 차라리 이단적인 양태론이 옳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바란다. 제발 아무리 이단이라고 하여도 부분적으로만 책을 인용하고, 교회사를 왜곡시키며, 채택되지 않은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정통교단의 공식 발표까지 변조시키는 행위를 삼가기 바라며, 특히 자신들이 마치 정통삼위일체를 가진 것처럼 남을 모함하고 왜곡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