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에 대한 상징*
(본문, 마태복음 3장16-17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시는
자라 하시느니라"
오늘은 비둘기에 관하여 연구하고 같이 공부하여서
비둘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알고
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비둘기의 일반적인 특성.
비둘기는 성질이 양순하여 길들이기가 쉬우며 순결
하고 깨끗한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높은 바위
틈이나 벼랑의 구멍에 둥우리를 틀고 먼 거리까지
날으며 무리를 지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새과에
속합니다.
비둘기는 겁이 많으면서도 유순하여 사람과도 쉽게
친해 질 수가 있습니다. 특히 비둘기는 눈이 아름
답고 사랑스런 새입니다. 한 쌍이 둥우리를 함께
틀고 새끼가 깨어나면 암수가 똑같이 새끼를 돌봅
니다.
비둘기는 암수가 함께 어울리며 부리를 부벼서
사랑을 나타내고 구구구 하는 소리를 내며 우는
소리는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2>,성령의 사역에 비유된 비둘기.
성령의 사역을 설명할 때 바람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기름같은 성령, 인(印)과 같은 성령, 생수
같은 성령 등으로 비유하지만 역시 비둘기 같은
성령으로도 비유를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본문)
이러한 비둘기 같은 성령의 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희생 제물로서의 비둘기
구약시대 하나님께 바쳐진 대표적인 제물은 '양'
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나 제사장 또는 부자가 번제를 드릴
때는 황소를 드리도록 규정했고, 족장은 양이나
염소를 드리고, 일반 백성은 자기 능력껏 드리되
양이나 염소를 드릴 수 없는 가난한 백성은 산비둘
기나 집비둘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은 언제나 내 죄를 대신하여
제물을 희생시킨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2} 화평과 유화와 순결의 상징으로서의 비둘기.
비둘기는 성질이 온순하고 유화합니다. 독수리나
사자가 사납고 강인한 동물이라면 어린 양이나
비둘기는 약하고 순한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이나
새들은 자기 새끼를 해치면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새끼를 보호하나 약하고 순한 비둘기는 안달하며
슬퍼할 뿐입니다.
닭은 한 마당에서 같이 놀다가도 서로 싸우며,
개는 먹이를 놓고 으르렁거리며 물고 찢으나
비둘기는 싸우지를 않습니다.
큰 무리가 떼지어 살면서도 평화롭게 어울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고 일렀습니다.
'순결하다'라는 뜻은 '순진한'.'썩지 않는',
'죄 없는','소박한', 책망할 것 없는 등의 뜻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진리를 마음에 품고 악에
물들지 않으며 결코 이기심으로 보복하지 않습
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순하고 겸허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온유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화평을 도모하며 순결의 사람
입니다.
{3},눈이 어여뿐 비둘기.
솔로몬이 슬람미 여인의 눈을 비둘기에 비유
하였습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아1장15절)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아4장1절).
슬람미 여인의 눈을 비둘기 눈에 비유한 것은
구속받은 성도의 순결한 눈, 자애의 눈, 주님을
소망하는 눈을 뜻합니다.
어여뿐 비둘기 같은 눈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눈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은 사악한 눈이요, 욕심이 가득한
눈이요, 죄를 바라보는 눈이요, 남을 홀기는 눈이요,
정욕의 눈이요, 술취한 붉은 눈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받은 눈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소망하는 눈입니다.
또 솔로몬은 슬람미 여인 곧 성도를 비둘기에 비유
하여 불렀습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
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하라 네 소리를 듣게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2장14절).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서 골짜기의 비둘기
처럼 슬퍼하며, 자기 죄 때문에 슬퍼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는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너의 순결하고 맑고 티없는
얼굴을 들라, 그리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자
나로 하여금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가 말하는 사연을
들어보자"
주님은 그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38장 18절에서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
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8장은 히스기야 왕이 중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며 심히 통곡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사38장5,하반절)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죄로 멸망하며 고통당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며 그 백성을 슬피우는
비둘기에 비유하였습니다.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 처럼 슬피울 것이며"
(겔7장16절).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죄를 통탄히 여깁니다.
죄를 슬퍼하며 비둘기 같이 슬피웁니다.
주님은 그 얼굴을 역겨워 하지를 않습니다.
죄로 인하여 통회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얼굴은
주님이 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죄를 통회하며
슬피우는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은 거절치 아니 합니다.
3>,어리석고 겁이 많은 비둘기.
비둘기는 어리석고 겁이 많은동물에 비유하기도 하였
습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호7장11절).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로 야곱의 열 두 지파에
계수된 종족입니다.
이스라엘의 창건자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지파 사람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브라임은 곧 이스라엘
나라를 지칭하는 말이됩니다.
이스라엘이 패망하기 직전 남쪽에는 강대국 애굽이
있었고 북쪽에는 신흥국가 앗수르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 가운데서 애굽에 많은 조공을
보냈고 군사동맹을 맺었고 앗수르에 추파를 던지며
도움을 구했다.
이스라엘은 마땅이 하나님만 구하여야 함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였다.
이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할 적에 애굽은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
기였다. 비둘기는 자기를 잡는 그물을 피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새이다.
어리석다 라는 말은 '속이다''쉽게 용납하게 한다',
'유혹하다,''개유하다,'(타이르다)등의 뜻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설득을 당한다.
쉽게 유혹 당한다 쉽게 진리를 양보하고 이단을
용납한다. 쉽게 꾀임을 받는다. 쉽게 속는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
와는 상종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비둘기는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비둘기는 겁이 많아 위험할 때에는 인근으로 빨리
날아간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군사적 원조를 청하
고 앗수르에 사신을 보낼지라도 그들은 비둘기
같이 떨며 올 것이라고 했다.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호11장11절).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이다.
4>,감람나무 새잎을 물고 돌아온 비둘기.
노아시대 하나님은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셨다.
40주야 쏟아진 물은 150일간 땅에 창일하였다.
(창7장24절).
노아는 지면에 물이 감하였는지를 알기 위하여
방주에서 비둘기를 세 번 내어 놓았다. 비둘기는
처음은 물이 창일하여 앉을 곳이 없으므로 방주로
돌아왔다. 7일이 지난 후 두 번째 비둘기를 내어
놓았을 때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 잎을 입에 물고
돌아왔다.
세 번째 비둘기를 내어 놓아을 때에는 돌아오지
아니했다. 감람나무 새잎을 입에 물고 돌아온
비둘기는 새 소식을 전했다. 노아로 하여금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였다.
이로서 비둘기는 은혜에 보답을 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둘기 같이 아름답고 순결하되 어리석
은 비둘기는 되지 말기를 이 상징의 말씀으로 같이
합니다. 건강하시고 충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