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추석날에 주님의 평강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추석’이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잠언 3:7절 말씀)
1.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는 말이 무엇인지요?
내 지혜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까? 결정을 내릴 때,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며 기다리는가? 내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는 마음이 있는지요? 오늘의 말씀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우리는 늘 자신을 너무 높이 보며,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옳고 그 누구도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깁니다. 또 누구건 자신이 한 일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은 교만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타락한 성품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총명하고 자질이 있고 일을 간파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쳐놓습니다. 또한 성경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지는 않는지요? 사실, 우리는 그저 피조물에 불과한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여호와 경외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시작 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경외’는 한자로 공경할 경 (敬)과 두려워할 외 (畏)가 합쳐진 말입니다. ‘깊은 존경과 동시에 두려움을 동반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닌,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함을 인식하며 존경과 사랑, 순종이 뒤따르는 상태 인 것입니다. 즉, 경외는 무서워 도망치는 마음이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겸손한 마음 입니다. 경외함이 있는 곳에는 사랑, 겸손, 순종 이 따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도 성경에 정통하다고 스스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악한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판단하여, 메시야는 틀림없이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강림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실 때 많은 진리를 선포하심과 동시에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진리인지 구하지도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수하고 있는 관념이나 상상과 다르면 메시야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진리를 선포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지금은 말세의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대함에 있어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세심하게 구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경외는 심리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입니다. 심리학자들은 경외가 인간에게 긍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외를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더 큰 우주와 자연, 또는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을 더욱 작고 겸손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며, 동시에 더 큰 목적과 소속감을 느끼게 합니다. 예를 들어, 대자연 앞에서 경외를 느끼는 것은 단순히 그 풍경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경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하며,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함으로써 겸손한 태도를 가지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경험은 더불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외감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강화하며, 면역력의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삶의 방향을 온전히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언 16:9)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자신의 이익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에게도 그 경외심을 반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악을 떠나는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일까요?
악을 떠나야 하는 이것은 우리 피조물에게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이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진정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창조주가 누구인지, 사람이 왜 창조되었는지, 피조물의 직책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창조주를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창조주의 뜻과 마음의 소리, 그리고 요구를 알고 이해하고 깨닫고 헤아려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라는 창조주의 말씀을 준행해야 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맹자가 공부하는 아들이 되길 원했기에 세 번이나 집을 옮기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손이나 얼굴에 검게 묻기도 합니다. 따라서, 나쁜 환경이나 부정적인 사람에게서 떠나야 우리의 인성이나 삶이 나쁜 쪽으로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떠나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סוּר"(쑤르)입니다. 이 단어의 원 뜻은, "돌아선다", "고개를 돌린다"라는 의미로, 지금 가는 길에서 돌아서고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길에 들어섰다면 깨닫는 즉시 돌아서고 방향을 바꿔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애써야만 합니다. 현재,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 절대적인 순종,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경외심과 두려움, 어떠한 기만, 대적, 거역도 없는 완전히 정결한 마음, 절대적인 충성과 순종입니다. 이것은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며, 시간, 장소, 연령과 관계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