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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6월6일. 예레미야애가 3장24절

작성자윤병수|작성시간26.06.06|조회수51 목록 댓글 0

샬롬! 축복합니다.

오늘도 땅끝까지 단기선교를 꿈꾸며 나아갑니다.

세계의 평화를 2026년에 이루어 주시옵소서!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예레미야애가 3:24절 말씀)

 

1. 의미

예레미야애가는 총 5개의 시로 구성되었고, 시 각행의 첫 글자를 모으면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시를 답관체’, 또는 ‘Acrostic’이라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레미야애가 전체 다섯 장 중에서 1, 2, 4, 5장은 히브리어 알파벳에 맞춰 22절로 되어 있고, 3장은 알파벳 한 글자에 3절씩, 모두 6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가 이러한 형식으로 기록된 이유는 시를 쉽게 외우기 위한 히브리 애가의 전형적인 유형을 따른 것이기도 하고, 또 예루살렘의 심판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멸망이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애가는 유대인들의 5대 축제일에 읽는 성경 중의 하나인데. 유월절, 맥추절, 금식절, 초막절, 부림절, 5대 절기에는 하메쉬 메길로트 חמש מגילות라고 하는 다섯 개의 두루마리성경을 읽는 전통이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유월절에는 아가를 읽고, ‘맥추절에는 룻기를 읽고, ‘초막절에는 전도서를 읽고 부림절에는 에스더를 읽고, ‘금식절에는 오늘 본문인 예레미야애가를 읽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직후에 기록되었는데, 유대인들은 BC 586,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의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 이날에 가슴을 치며, 금식하면서 예레미야애가를 읽었는데, 예레미야애가의 뜻은 예레미야가 부른 슬픈 노래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근동지역의 최강국이었던 바벨론은 유다를 정복하기 위해 무려 35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벽을 포위했습니다(BC 588~586). 그로 인해 예루살렘 성에서는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의 형편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성안의 굶주린 어머니들이 배가 너무 고파, 이성을 잃고 자기 자녀들을 잡아먹기에까지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10입니다. “내 딸 백성이 멸망할 때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너무나도 처참하고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쟁과 영적 혼란과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BC 586, 유대력 119일 성벽이 뚫렸고 예레미야애가는 이에 대하여 4:1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도다예루살렘 성은 누구도 점령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기에 그곳이 적군에게 함락되어 파괴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짐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도망치다가 포로로 잡혔고, 그의 두 아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는 두 눈을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이 비참한 모습을 애통한 노래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절망적인 고통이 속히 지나가고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써내려 갑니다.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24절은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있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에서 예레미야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선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 구절이 하나님께 대한 의지와 그분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소망이 되어 주시며, 그의 도우심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알버트 바르니스는 이 구절이 인간이 고난과 시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소망을 발견하는 곳임을 강조합니다. 아담 클락은 애가의 배경을 언급하며, 이 구절이 불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이 믿음이 우리를 고난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구절은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사람들은 종종 낙담할 수 있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일깨워 줍니다. 신실한 신앙은 혼란 속에서도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2.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이것은 여호와가 부분적으로 나의 기업이라는 뜻도 아니요, “여호와가 내 기업 안에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 영혼의 기업의 총체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거나 소원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놓여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 그의 은혜나 그의 사랑이나 그의 언약만 내 것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 나의 기업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그의 기업으로 택하셨고 우리는 그를 우리의 기업으로 택했습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기업을 먼저 택해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시고도 남을 만큼 충족한 기업이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족한 분이십니다. 사실 인간의 소욕을 다 만족시켜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무언가 부족해서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모든 소원은 우리의 기업 되신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이 없나이다”(73:25)라고 말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 기쁨의 강물을 마시게 해 주신 여호와를 기뻐해야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합시다. 우리가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백성인지를 이 세상에 보여 줍시다. 이렇게 해서 그들도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8:23)고 소리칠 수 있게 만듭시다. 특히,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분배한 것에서 유래된 말입니다(1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2지파 중에서 11지파에게만 땅을 분배해 주시고, 아론 자손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으시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0). 그런데 사실, 이 말을 얼핏 들으면 매우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땅은 구체적으로 보이고 그 수확물도 확실한 반면,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또 수확물이 얼마나 될지도 추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반대임을 알게 됩니다. 다른 지파가 분배받은 그 모든 땅은 물론이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25:23).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실 때, 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1).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약속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오늘, 그리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만 믿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 허황된 것으로 생각하며 눈에 보이는 돈과 권력만을 확실한 것으로 여기며 선호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자신의 몫을 챙기는 것을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돈과 권력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불의와 불법에 한 번 몸을 내어주게 되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힘이 있을 때에는 그 모든 것들이 덮어지지만, 조금만 힘에 밀리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파산하게 되고 맙니다. 지금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을 호령하던 사람들이 다 감옥에 갔다 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는 성도들은 그들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털어도 먼지 날 것이 없게 되게 되기 때문입니다. 털면 털수록 그의 정직하고 선한 삶이 부각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바로 이러한 삶입니까?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자는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습니까?(8:32)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는 그 어떤 민족도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들을 기업으로 삼는 자는 항상 불안하여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자는 언제나 든든하며 그의 소망 역시 흔들리지 않음을 믿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았을지라도 오늘 본문의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땅의 것들에 대한 미련으로 하늘의 기업을 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고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늘에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사와 축복을 통해 참으로 풍요로우며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내가 그를 바라리라

여러분, 이스라엘이 이렇게 비참하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았을 때, 자신들이 노예였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고 이만큼 된 줄로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교만은 그들을 극심하게 타락하게 했고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내려놓는 순간 호시탐탐 노리던 바벨론이 쳐들어왔고, 힘의 근원을 잃어버린 그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없이 망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는 우리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기에 이 만큼의 내가 된 것인데, 그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이 한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그 삶에 분쟁이 시작되고, 타락이 시작되고,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애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 네가 이만큼 된 것은 하나님이 돌보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이지 네 힘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가슴에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요? 믿지 않는 사람은 고난 그 자체만 보기 때문에 실망하고 실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난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고난을 통해, 타인에 대한 핑계보다 자신의 잘못된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서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그때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믿지 않는 사람은 고난으로 넘어지지만, 믿는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신과 유다 백성이 그들이 지은 죗값으로 고통과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그때 완전한 절망만을 맛본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 오히려 소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예레미야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소망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슬픔 중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로인해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은혜를 바라며 견디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멸망해야 할 유다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말미암아 진멸되지 않고 24절 함께 읽습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다시 회복되는 내일을 소망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항상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주시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소망함으로 불의와 불법에 자신을 내어주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지켜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슬픔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한 이유를 소유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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