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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6월8일.월. 출애굽기 33장19절

작성자윤병수|작성시간26.06.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33:19절 말씀)

 

 

1. 의미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의 속성, 즉 은혜와 긍휼을 설명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를 선택하는 주권적인 권리를 지니고 계심을 밝히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본성과 주권적인 사랑, 정의로움을 동시에 강조하며,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언제나 신실하신 은혜와 자비가 계속 이뤄질 것임을 약속하는 본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3:19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의 본성과 은혜를 드러내시는 장면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을 강조합니다. 출애굽기 33:19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이 은혜롭고 긍휼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선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권적인 권리를 강조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의 선택된 자에게 그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을 설명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알버트 반스는 절에 담긴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를 설명하며, 모세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열망하는 모습에서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담 클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한계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하며, 이를 통해 영적 통찰을 설명합니다.

 

2.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

출애굽기 3319절은 중요한 신학적,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이르시되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내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이 구절은 모세가 하나님께 자신의 본성을 그에게 계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더 큰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구절의 첫 부분인 "내가 나의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을 말해줍니다. 이 개념은 우주에 본질적인 도덕적 질서가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에 많은 종교와 철학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이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 도덕적 질서에 자신을 맞추도록 노력하고 우리가 좋다고 믿는 것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구절의 두 번째 부분인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는 신성한 이름의 개념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합니다. 많은 종교 전통에서 이름은 중요한 힘이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의 경우 그의 이름을 선포하는 행위는 그의 임재 또는 본질의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름이 있다는 생각은 또한 그 지식이 인간의 이해에 의해 제한되더라도 그분을 어떤 식으로든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인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하나님이 만물에 대한 궁극적인 통제권을 갖고 계시며 그분의 뜻은 좌절될 수 없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유 의지의 본질과 세상에서 고통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그분의 자비와 은혜가 그분이 택하신 자들에게 미친다는 위안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출애굽기 3319절은 많은 중요한 신학적, 철학적 아이디어를 다루는 풍부하고 복잡한 구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시며, 그분은 그분의 이름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알려질 수 있으며, 그분의 주권은 그분의 자비와 은혜의 경륜까지 미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희망과 영감의 원천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자유 의지에 대한 질문으로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더 많은 탐구와 숙고가 필요한 어렵고 도전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통제권, 신의 주권

오늘의 말씀 앞에 당신의 생각은? 당신은 은혜와 긍휼을 구하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에 불만 하시는지요? 하나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애가 3:22, 3:36, 3:5, 55:7, 10:47-48).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절히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와 긍휼은 비슷한 것 같지만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1) 은혜(Grace) ? 받을 자격이 없고, 가치도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입니다. 은혜(Grace)를 은총(恩寵)이라고도 말합니다. 은혜에는 일반 은혜(은총)가 있고, 특별 은혜(은총)가 있습니다. 일반 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내려주시는 은혜입니다. (5:45)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니라. 이 말씀이 일반 은혜이고, 일반 은총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혜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1:4)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

) 죄인이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고,

) 땅의 사람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고,

) 육의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 절망의 사람을 소망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 원망과 불평만 하던 사람이 감사, 찬송하는 사람이 되고,

) 깡패 김익두가 부흥사 김익두로 변화되고,

)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하여 바울 사도가 되었다.

(고전 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긍휼(Mercy) ?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와 징벌을 감해 주심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행한 죄악대로 다 형벌하고 심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살아남을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죄악대로 벌하지 않으시고, 죄를 따라 갚지 않으시고, 심판을 면해 주시고, 형벌을 거두어 주는 것이 긍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죄는 곤장 100대를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곤장의 형벌을 맞지 않도록 면해 주는 것이 긍휼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사랑과 호의이고, 긍휼은 마땅히 받아야 할 진노와 징벌을 면제하고, 거두어 주심을 말합니다. 긍휼(Mercy)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잘 생각해 봅시다. 우리 인생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이다. (애가 3: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요일 5:19)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여기에, 악한 자란? 이 세상 임금(12:31)이라고 불리우는 사탄, 마귀를 말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그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처해 있고, 인류의 조상 아담이 타락 후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드리워 있습니다.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인생을 복되게 살고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67:1)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86:3)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4:1)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특별히,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있기 때문이고, 2) 현재,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고, 3)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입니다)

1)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악인은 그 악한 길을 버리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게 됩니다.

2)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과 우리나라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0:46-47)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내 가정을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으며 살다가, 어느 좋은 그 날에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永生福樂)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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