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합니다. 오늘도 당신은 살아있음을 감사하십시오.
하늘에서 비가 내립니다. 하늘에서입니다.
오늘도 은혜의 단비로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은혜인지는 오늘 하루종일 경험해 보시고 감사하세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후서 3:5절 말씀)
1. 의미
고린도후서 3장 5절은 바울이 자신의 사역적 능력과 자격의 근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사역적 능력과 자격이 인간의 자연적 능력이나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영적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과 자격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분께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2. 사역적 능력과 자격의 근원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의 힘으로 살아 오셨다고 생각하였습니까? 부모님으로부터 타고난 은사? 배경? 자신의 노력? 그 누군가의 도움?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요즘 저는 일본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자주 한 말이 있었습니다. 일본 찬양, 노래가 신기하게 외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단기선교를 다니면서 각 나라의 말로 찬양을 하였지만, 정말 이번이 최고의 은혜였습니다. 사실 신기할 정도로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력해서 잘 된 것처럼 자랑하였습니다. 것이이 얼마나 교만인지 오늘 아침 고린도후서 말씀을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아마 사도바울도 자신의 출신, 배경, 학문 등을 자랑하다가 깨닫게 된 것이지요. 모든 영적 사역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2:3-4 개역개정“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했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며, 우리 역시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신의 전도와 설교가 인간의 지혜나 설득력 있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이 사람의 기술이나 지식에 있지 않으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진정한 변화와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 의지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랑하는 단기선교 회원 여러분! 2026년의 사역을 성령의 능력, 하난미의 힘과 은혜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전적으로, 전심으로 의지하세요. 성령님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으세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3. 여러분은 언제 어느 때 만족을 누립니까?
혹시 돈이나 멋진 외모를 인정받거나 명예를 얻었을 때 만족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은 누구든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점들은 현대인들이 만족을 얻는 공통 분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통해 얻는 만족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만족을 누리거나 과거의 내 삶의 모습과 비교해서 만족을 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예전에 비해 조금 더 살만해지고, 예전에 비해 조금 더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서 만족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만족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편이 달라지는 것 때문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만족은 소유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얻고 살아도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골이 높으며 산이 높고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의 골은 더 깊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진정한 만족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만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만족을 주시는 분이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시편 107편 9절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분을 청종하면 삶 속에 좋은 것을 누릴 수 있고 그 분을 통해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자신이 만족의 원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만족을 원천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히카노스’(ἱκανός)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감당하든지 그 감당의 주체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표준 새번역은 본문을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이 히카노스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의 70인역에 쓰인 일이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욥31:2). 나오미가 하나님을 전능자로 부를 때, 욥이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부를 때, 바로 ‘히카노스’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샤다이’ 곧 ‘전능자’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충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전능자이신가? 그 분은 충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생명이 충분하고 능력이 충분하고 사랑이 충분하고 권능이 충분하셔서 그래서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자기 자신의 만족의 원천이 하나님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무슨 일을 하든 그 분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주신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볼 때 하나님은 충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 안에서 바울은 늘 만족하고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바울은 먹을 게 많고 입을 게 많기 때문에 족하다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먹고 입고 걸칠 것만 있으면 족하다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충분자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바울이게 자격을 주시고 바울에게 충분한 능력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분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만족 속에 살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세상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게 되면 만족을 누리는데 너는 어떠하느냐?” “그러나 그런 것들이 세상에 상대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강력한 것을 얻어야 만족을 누리지 않더냐?”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그 어떤 학위나 추천서에 만족하지 말고 우리의 충분자요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 앞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분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시오 피할 바위시오 산성이시니 말이다.” “너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자격 속에서, 이 세상에 복음의 편지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어떤 경우에도 빌라도처럼 자기 만족을 위해 ‘다오 다오’하며 인생의 멸망길을 걷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전능자요 충분자이신 주님을 만족으로 삼을 때 주님은 지금도 그 사명을 감당할 힘과 능력을 부어주시지 않겠느냐?” 찬양으로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나 약해 있을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시고 나 소망 잃을 때에도 주님은 내게 오시네
나 시험당할 때에도 주님이 지켜주시고 나 실망당할 때에도 주님이 위로하시네
주님만이 내 힘이시며 오 주님만이 날 도우시네 오 나의 주님 내 아버지여
오 나의 주님 내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