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26년 6월 6일 토요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 오늘 전례
[백] 성 노르베르토 주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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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도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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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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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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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나열합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언어는 따뜻하고 정겨운 교훈이 아니라
진실을 찾는 논쟁의 칼날이 되고,
그 칼날은 율법 학자들을 겨눕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길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향한 우월과 교만의 무대가 됩니다.
‘기도’조차도 제 위신을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장식으로 삼으며,
그리스 말 표현에 따르면
과부들의 ‘집마저 삼키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시 관행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과부들을 위한답시고
재산을 맡아 주면서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성전 제의를 위하여 봉헌하라고
권하면서 재산을 빼앗은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긴 기도는
제 이익을 위한 구실이며,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더욱 무겁게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 뒤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곧바로 장면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헌금함
맞은쪽에서 사람들이 돈을 넣는 모습을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의 많은 돈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가장 작은 동전 두 닢을 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고요.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남는 것을 바쳤으나,
과부는 부족함 속에서 ‘자기 삶 전체’를 바쳤습니다.
돌로 된 성전은 거대한 금과 은을 삼키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동전 두 닢으로
한 사람의 온 생애를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께 무엇을
‘드리는가’, 또는 무엇을 ‘내맡기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가진 돈과 시간과 노력,
봉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그들의 온전한 삶이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바라는가.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