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26년 6월 7일 주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오늘 전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보편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에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의무 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겨 지낸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모시는 이 미사에 기쁘게 참여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 깊이 머무르는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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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도
주님,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거룩한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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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속가
<21절부터 시작하여 짧게 할 수도 있다.>
1. 찬양하라 시온이여 목자시며 인도자신 구세주를 찬양하라.
2. 정성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능력 부족하다.
3. 생명주는 천상양식 모두함께 기념하며 오늘특히 찬송하라.
4. 거룩하온 만찬때에 열두제자 받아모신 그빵임이 틀림없다.
5. 우렁차고 유쾌하게 기쁜노래 함께불러 용약하며 찬양하라.
6.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7. 새임금님 베푼잔치 새파스카 새법으로 낡은예식 끝내도다.
8. 새것와서 옛것쫓고 예표가고 진리오니 어둠대신 빛이온다.
9. 그리스도 명하시니 만찬때에 하신대로 기념하며 거행한다.
10. 거룩하신 말씀따라 빵과술을 축성하여 구원위해 봉헌한다.
11. 모든교우 믿는교리 빵이변해 성체되고 술이변해 성혈된다.
12. 물질세계 넘어서니 감각으로 알수없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13. 빵과술의 형상안에 표징들로 드러나는 놀랄신비 감춰있네.
14. 살은음식 피는음료 두가지의 형상안에 그리스도 온전하다.
15. 나뉨없고 갈림없어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
16. 한사람도 천사람도 같은주님 모시어도 무궁무진 끝이없네.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달라 삶과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19. 나뉜성체 조각마다 온전하게 주예수님 계시옴을 의심마라.
20. 겉모습은 쪼개져도 가리키는 실체만은 손상없이 그대로다.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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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묵상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성체성사의 본질은 ‘사랑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 것을 기념하며 현재화합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생생한 기억입니다. 이 기억은 우리
가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게 하며 그에 따른 삶을 실천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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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세상에서 저희가 주님의 보배로우신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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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평하였을 뿐 아니라
그분과 다투기까지 하였습니다
(탈출 17,2; 민수 20,3 참조).
탈출기에 나타난 싸움의 말이
요한 복음서에서도 나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두고 서로 “말다툼”
(요한 6,52)을 벌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닫힌 결과입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스스로의 계산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속으로 불평하며,
하느님께 따지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6,53)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저 상식과 관습을
깨뜨리는 사변적 언어 표현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는
‘이 세상에 하느님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분의 찢긴 몸과 쏟아진 피를
내 생명의 뿌리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체성사를
암시하면서도 꼭 성체성사만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성체성사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리이며,
삶이 그 믿음으로 다시
살아 꿈틀거리는 자리입니다.
내가, 우리가 그분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드러나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이 세상에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 삶의 참된 음식이며 참된 음료입니다.
우리 삶과 생명을
이어 가게 하는 실제입니다.
그분을 받아 모시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죽어 가는 우리의 자리,
우리의 공허와 상처와 좌절의 자리에
그분의 살과 피를 들여놓아,
그분의 생명이
우리 대신 살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분 없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