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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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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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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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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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잔치에서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저희가 주님의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어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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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어조로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들추어내십니다.
“목숨”은 먹고 살아야
하는 구체적 생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안으로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삶에 대한 염려는 삶을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새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늘의 아버지께서 먹이시지요.
여기서 초점은 노동을
부정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먹이고 입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6,27)라고 물으십니다.
불안과 걱정은 우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삶을 소진할 뿐입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참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6,33)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이 정확히 알려 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7,12).
신앙은 주어지는
오늘을 건네받는 태도입니다.
오늘, 우리 삶은 나의 노력이나
걱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먹고 입는 문제로 힘들어한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리 서로가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지는 오늘을
걱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야겠습니다.
적어도 먹고 입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게 서로 챙기면 좋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