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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작성자tina-55|작성시간26.06.20|조회수13 목록 댓글 0

"마고르  미싸빕"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그렇게 됩니다.

사방에서 닥쳐오는 혹은 밀려오는 공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진퇴양난이 될 수도 있겠고

'옴짝달싹 못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일을 하다보면 그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또 살다 보면 그런 상황이 오나 봅니다. 저도 5년의 특수사목을 하며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당황하며 며칠을 끙끙 앓은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인 마태오 10장 26절에서 33절은 복음서 중간에 위치하며 앞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더불어 오늘의 부분은 '제자들의 사명과 박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앞으로 닥칠 박해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공생활 동안

이어질 여러 위기와 어려움을 용기와 지혜와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선행학습과 같습니다.

 

연중 제 12주일 복음에 앞서서 제 1독서인 예레미야서는 시편 31장 14절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정녕 저는 많은 이들의 비방을 듣습니다. 사방에서 공포가 밀려옵니다.

저를 거슬러 그들이 함께 모의하여 제 목숨 빼앗을 계교를 꾸밉니다." 이 표현에서 예레미야가 

매우 곤란한 처지와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마르고 미싸빕"이라며

표현하는 대적자의 조롱에도 그저 다윗 임금과 같이 '의지할 곳은 하느님뿐'이라며 고백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정의에 의지하며 소리치는 예레미야의 고독한 외침은 오롯이 하느님을 향한

의탁에 정조준되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차례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의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도구이며 질그릇이라 칭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제 2독서에서는 하느님이 주시는 은사의 무한함에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아담을 통한 결과와 그리스도를 통한 결과의 값을 비교하면서 말이지요.

 

2021년 12월 16일 주교님의 명령을 받고, 다시 특수사목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손에 주어진 상황을 탓했습니다.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것이지요.

'조금 더 준비 됐었더라면 ⸱⸱⸱ .본당을 한 번 거쳐서 왔더라면⸱⸱⸱ .'  그러나 기억해 보니 준비되지 않고 

어려웠던 상황에 도와주었던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치고는 가기 어렵던 길들을 

놀랍게 넘어왔던 사건들이 꽤 있었습니다.

 

과연, 내 기준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사순 시기를 지나 부활 시기도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중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기준은 의탁이고 우리의 삶은

하느님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깨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모든 순간을

'사면초가'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마르고 미싸빕!"

 

대전 주보 -  연중 제 12주일  - "말씀의 향기편"에 올려 주신

대덕구장애인종합복지관장 서용원 다미아노  신부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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